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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312화 (312/350)

312화

습격이라고?

그 한 단어에 수레에 있던 방계들이 제자리서 뛰쳐 일어났다.

덕분에 물자를 이끌어가던 이들은 깜짝 놀라 움찔 몸을 떨었지만, 습격이란 단어는 도저히 그것까지 고려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습격입니다!! 선발대가 지금 습격받고 있습니다!!”

헐레벌떡 달려온 남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그것은 실로 폐부가 끊어지는 듯한 절박한 외침이었고, 여기저기 찢어진 옷들이 그의 다급함을 대변했다.

“습격이라니…….”

“그게 무슨…….”

웅성웅성.

당황한 방계들도 저마다 돌아보며 눈을 크게 떴다.

툭― 하고 던져진 단어 하나라 하기에 그 파급 효과는 어마무시했다.

그때, 선두에 있던 당위혼이 앞으로 나섰다.

“사천당가의 가주, 당위혼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귀하의 성명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저, 저 말입니까? 전 신강문의 장로직을 맡고 있는 사인도입니다! 부족하지만 비파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을 장로님이셨군요. 알겠습니다, 우선 먼 길을 달려오신 듯한데 목부터 축이시지요.”

당위혼은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수통을 열어 직접 봉인을 풀어주었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내밀었다.

“아… 가,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수통을 받아든 사인도는 꿀꺽꿀꺽 내용물을 비웠고, 어느 정도 갈증이 해갈되는 듯 보이자 당위혼이 이어 물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습격이라니,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저희 신강문은 현무단의 예하 부대에 자원하여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예하 부대…….’

현재 정천맹의 원정대는 사신단을 축으로 하여, 맹 내에 소속된 문인들을 각 예하 부대를 추가한 뒤 운영 중이었다.

즉, 사신단에 속한 이들은 만일의 경우가 발생했을 때 일종의 지휘관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구조였고, 사신단에 들지 못한 이들은 예비군으로서 지금과 같은 전신에 지시를 받는 예하 부대로 참전하게 되는 형태였다.

맹 내의 인원을 전부 들일 수 없기에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운영하려 한 결과였고, 덕분에 정천맹에선 전시 상황에 최대한의 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다만,

‘그만큼, 병력의 질은 떨어질 수 있다.’

정천맹은 아직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단이다.

가뜩이나 나타협의와 만가쟁패의 시대를 거쳐 의기와 협의가 바닥에 떨어진 지금에 오로지 이득만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이들.

그들에게 의협(義俠)을 논하는 게 얼마나 꿈과 망상 같은 일이었고, 또한 그렇기에 정천맹에는 결코 감출 수 없는 약점이 존재했다.

‘각 집단과의 협력은커녕 유기적인 관계조차 잘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확고부동한 우두머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세력 간의 견제를 표방한다면 사패천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

각자의 이득과 이권만을 우선시하는 것이 사파라는 족속이고, 필요하다면 동료의 등에도 비수를 박을 수 있는 이들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권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취할 이득이 더 많을 때지.’

만약 지금 무림의 판세가 사파 쪽에 기울어 있다면 모른다.

그러나 지난 삼십 년간의 대혼란기를 거쳤음에도 총합은 정파의 권세가 더욱 크다.

아니, 설령 그렇지 않아도 지난 수백 년간 정파인들은 자신들이 정도를 걷는 이들이며 사파란 그들의 찬란한 빛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에 불과하다 여기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정파는 자신들끼리 권력을 뺏기 위해 바빴고, 사파는 그런 정파를 물어뜯기 좋은 고깃덩이로 여겨 단합을 이루어낸 상태였다.

거기다 오로지 힘만이 모든 것을 주장하는 사파이기에 지휘 체계 역시 뚜렷하니, 이런 식으로 기습을 당한다면 충분히 각개격파를 당할 수도 있었다.

‘사신단 체계를 통해 평소 간부단을 만들고 전시에 예하 부대를 이끌게 하더라도, 예하 부대 자체의 무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머릿속으로 사고의 흐름이 빠르게 이어졌고, 그 와중에도 전령의 말은 귀를 열어 경청했다.

“병력의 숫자는 대략… 백여 명 정도 되었습니다……. 개개인의 수준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비겁하게 산중에 숨어 함정을 파고 저희를 급습했습니다!!”

“매복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당시 저희는 작전 지역을 향해 전속으로 전진하느라 미처 방비하지 못했었습니다! 설마 모용세가를 급습할 줄 알았지, 인원을 나눠 저희를 대비한 함정을 준비할 줄은… 크흑……!”

그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지금이라도 저와 같은 이들을 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제발, 제 예하 부대의 동료들을 구해 주십시오!!”

비통한 외침이었다.

방계들의 표정도 어두워졌고, 그들은 저마다 돌아보다 앞으로 나서며 당위혼에게 말했다.

“가주님!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저희는 싸울 준비가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이백이라면, 충분히 할 만합니다!!”

당가 역시 보급 부대를 이끌며 그걸 운반할 예하 부대를 일부 인계받은 상태였다.

그 수가 삼백에 달하니, 이백이라면 수준도 얼마 되지 않을 듯하여 충분히 도울 수 있을 듯했다.

“…….”

의기를 불태우는 당가인들을 보며 당위혼은 굳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다.”

그리고,

“우선, 간자부터 처리하고.”

퍼퍽!!

“큭?!”

기습적으로 손을 뻗어 사인도를 후려쳤다.

“가, 가주님?”

“무, 무슨……!”

“끄으으… 어, 어째서?”

겨우겨우 두 팔을 겹쳐 막아낸 사인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제게 왜 이러십니까!!”

“왜냐니.”

그에 당위혼은 덤덤하게 답했다.

“그야, 당신은 사패천에서 보낸 간자가 아닙니까?”

“예?!”

“저, 저자가 간자라구요?!”

방계들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고 사인도 역시 무슨 소리냐며 항변했다.

“제가 간자라니!! 어째서 그런 말씀을……!!”

“흠, 증거가 필요한 겁니까?”

“증거? 마, 말씀해 주십시오! 대체 왜…….”

“솔직히 많습니다만… 사인… 아니, 어차피 그 역시 가면일 테니 그쪽이라 칭하지요. 그쪽은 저를 아십니까?”

“그야 당가의 가주님 아니십니까!!”

“그렇지요. 정확히는 멸문 직전까지 갔던 당가의 가주입니다.”

누구보다 가족을 잃는 고통을 잘 아는 당가의 가주였다.

“그런 제가 보기에 말입니다. 당신은 동료를 잃었다기엔 너무나 의뭉스럽군요.”

“의뭉스럽다니…….”

“우선 첫 번째. 당신은 저희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급보입니다, 습격입니다, 선발대가 습격을 받았습니다… 라고.”

“그, 그야 사실 전달을 위해서…….”

“그렇지요. 하지만 사람이란 실로 자신의 이득과 영달을 추구하기 마련인 것이 본성입니다. 저 역시 가족을 잃어 봤기에 그 상황을 잘 알고 있는데, 어찌 그때 사람이 습격과 급보를 먼저 알리겠습니까. 우선, 자신의 사문을 도와달라… 살려달라… 이런 말을 하겠지요.”

당위혼은 바보가 아니었다.

당가가 지켜온 의기란, 당가의 혼이란, 결코 세상에 흔한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쉽게 지킬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본가가 그것을 행한 대가로, 본가는 멸문지화의 업을 감당해야 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은 질리도록 겪었고, 사람은 위기에 처했을 때 타인에게 쉽사리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제, 제가 저희 문파를 먼저 도와달라 하지 않았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그리고 두 번째, 제가 건네드린 물은 시원하셨습니까?”

“예? 그, 그게 무슨…….”

“저는 몰락한 가문을 재건하기 위해 매일 같이 새벽마다 약초와 독초를 캐고 산행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타는 듯한 갈증보다는 어떻게든 값이 되는 약초를 캐어 사문을 살리고자 하는 일념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상황에 처한 분께서는 우선 본인의 목을 축이고 상황을 설명하시더군요.”

“그런 억측이!!”

여전히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는 사인도였으나, 당위혼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세 번째. 상황이 너무 공교롭지 않습니까? 어찌 습격당한 숫자가 마침 저희 보급 부대가 감당할 만한 숫자이지 않습니까? 마치, 저희 보급 부대의 머릿수를 보고 이 정도면 상대할 만하다 싶은 숫자가 아니겠습니까.”

“그, 그건 마침 그들의 머릿수가…….”

“네 번째. 그들이 할 만하다고 하셨습니까? 제가 아직 목숨의 위기를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가문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였던 경험은 잦습니다. 그럴 때는 지나가는 한낱 약초 상인조차 부럽고 조심스럽게 대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설령 본가에 대한 악소문 하나만 내더라도 약초를 파는 데 악영향이 끼칠까 두려웠으니까. 그런데 당신은 죽음의 위기를 경험한 것치고는 너무나 그들을 얕보시더군요.”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한낱 사파이지 않습니까! 어찌……!”

마치,

“아니지요. 그들을 휘하에 부리는 분이니 자연스레 멸시가 나온 것이지요. 아, 그리고 이건 말하던 중 떠오른 것인데, 제가 상처에 대해서는 좀 잘 압니다. 그런데 당신의 상처는 너무나 인위적이군요. 베인 곳은 없고, 도망치다 어디 옷가지가 쓸렸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라면… 일부러 나뭇가지에 거죽을 찢기라도 하셨다면 좋았을 터인데 말입니다.”

“……!”

말을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당위혼은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증거를 말하려 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됐다, 닥쳐라!”

그러나 그 순간 사인도는 발작하듯 몸을 튕겨 일어났고,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죽… 컥?!”

세 발자국을 걷기 전에 그는 자신의 심장을 움켜잡으며 허물어졌고,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크헉… 도, 독?”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가 건네드리는 물은 시원하였냐고.”

“이… X팔… 독을 준거냐……?”

“사일도입니다.”

“…뭐?”

“당신이 빼앗은 거짓 신분 말입니다. 신강문의 장로이며, 비파검이라 불리는 분은 사일도 장로십니다.”

그 말에 사일도라 자처했다는 자는 부릅 눈을 떴다가 곧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 하하, X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지난 시간 동안, 정천맹에 규합된 이들의 인명록을 암기하려 노력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잊힌다는 괴로움을 잘 알기에, 저라도 그분들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이제는… 오늘날과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시대가 아닙니까.”

“…미친놈.”

사인도라 자처한 이는 질린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작… 죽어 나자빠진 놈 신분을 훔치려다가… 이런 놈한테 걸리다니…….”

거짓 의기만이 점철된 시대다.

하지만 그 거짓의 시대에 홀로 미약한 불꽃을 피워내는 이가 있었고, 그는 설령 자신과 같은 의기를 불태우는 이는 아닐지라도 그 누구 하나 잊지 않고 기억하려 개개인의 이름을 모두 외웠다.

그리고, 하필 그런 이에게 걸렸다.

‘이딴… 말도 안 되는 확률이 어딨어…….’

전직 혈견대의 대주였으며, 이복이라 불리었던 이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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