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뭐, 뭐지 이게?”
“그러니까…….”
“저자가 저희를 속이려 했던 겁니까?”
방계들은 혼란에 빠졌다.
갑자기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당황스러웠는데, 거기까지 함정이었다고?
믿기지 않는 눈으로 가주들을 바라보는 방계들이었지만, 정작 그 시선을 받는 당위혼은 덤덤히 목숨이 다한 이의 눈을 감겨줄 뿐이었다.
“가자.”
“예, 예?”
“어딜 말씀이신지…….”
“습격받고 있다지 않느냐.”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났을 때, 당위혼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스스로의 무장을 재점검했다.
“이자는 거짓이지만, 습격받는다는 것은 사실이겠지. 실제로도, 이자가 훔친 신분은 이들의 습격을 받은 예하 부대 무인의 신분일 테니. 우리와 같이 간파한 자들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면…….”
그 결과는 끔찍하리라.
다른 이들이 자신과 같이 그래도 맹 내의 동료라 여기며 기억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임을 당위혼은 잘 알았다.
‘그러니까 서둘러 움직여야겠지.’
“보급 물자는 일단 인근 마을에 들러 예하 부대에 호위를 맡기게 한다. 예하 부대는 본가의 지시가 아니면 그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게 하고… 잡룡단만이 함께하도록.”
“예? 가주님, 그러면 수가 너무 적지 않습니까?”
잡룡단 전부가 함께 온 것이 아니기에 다 합치면 그 숫자가 일백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적들의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 와중에 스스로 수를 줄인다고?
“…….”
당위혼은 불안에 떠는 방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지명을 대표로 바라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두려운가?”
“네, 넵?”
방계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렵냐고 물었다.”
“그게…….”
솔직히 말하자면 두려웠다.
사파와도 싸워 봤고, 웬 괴물 같은 놈들과도 싸워 봤다.
실전이라면 충분히 했다 생각한 당지명이었고, 스스로 죽을 위기도 넘겨 봤다고 생각했다.
그럼, 지금은?
‘나는…….’
두렵다.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게…….”
“이 자리에 있는 게, 대형이 아니라 나라서 두려운가 보군.”
“가, 가주님!! 아닙니다!! 저는 절대 그런 게…….”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려던 당지명이었지만, 당위혼은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해져도 괜찮다. 사실대로 말해 보자꾸나. 항상 우리를 이끌어주던 대형이 없는 사이 이런 일이 터지니 너무 두렵지 않느냐.”
“그, 그건…….”
당유혼.
그의 빈자리가 크다는 사실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걸 쉽게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은 곧 가주에 대한 불신이 되니까.
그런 불경은 쉬이 인정할 수 없어 고개를 젓는 당지명이었지만, 이미 그 반응들이 지금 그들이 가진 불안에 대한 방증이었다.
그에 당위혼은 오히려 웃었다.
“괜찮다. 나도 두려우니까.”
“예, 예?”
“어찌 두렵지 않겠느냐. 나는 너희들처럼 대형을 따라다니며 실전을 여러 번 치러본 적도 없고, 매번 골방 서생처럼 가주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첫 실전을 겪는 것인데. 나도 사람이라면 두렵지 않겠느냐?”
‘그, 그러고 보니…….’
너무나 의연한 모습에 깜빡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어린 가주에게는 이것이 첫 실전이었다.
또한, 당위혼은 방계들 보다도 나이가 어렸다.
너무나 의연한 모습이 그 사실을 망각하게 했을 뿐.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입만 멍하니 뻥긋거리는 방계들에게 당위혼은 말했다.
“그대들의 두려움을 이해한다. 사실, 나 역시 얼마 전이었다면 이렇게 그대들에게 지시를 내리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얼마 전 대형이 내게 본심을 털어놓은 것을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더구나.”
“대형의 본심이라면…….”
“두렵다더구나. 너희를 잃는 게.”
“……!”
‘그, 대형이… 그런 말을 했다고?’
방계들은 순간 자신들이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그 모습에 당위혼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는 그저 든든한 대형이지만, 그대들에게는 실로 악귀나찰 같은 분이시니 이해하기 힘들겠지. 하지만 그대들만을 서안으로 보낸 이후 대형께서는 밤잠을 못 이루셨다. 어째서인 것 같으냐?”
“저희가… 못 미더워서 아닙니까?”
“아니, 너희를 잃는 게 두려워서다.”
“…예?”
연이은 상상도 못한 대답.
이어지는 가주의 폭탄 발언에 방계들이 정신을 못 차렸다.
“대형께서 어떻게 그리 강하신지 궁금했다. 하지만 알겠더구나. 그건 바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두, 두려움이요?”
“그래. 대형께서는 겁이 참 많은 분이시다. 너희들이 어디서 맞고 다닐까 두려워 직접 두들겨 패시고, 너희들이 어디서 길을 잃을까 두려워 너희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며, 너희들이 어디서 떳떳하지 못할까 봐 억지로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신다.”
억지로라고?
여전히 방계들의 눈엔 불신이 가득했고, 그 모습에 어린 가주의 입에 어린 웃음은 더더욱 짙어졌다.
“대형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그, 그야… 대단히…….”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
“…대단히 폭력적이시죠.”
“거기다 오만불손하고, 본인 잘난 맛에 살며, 항상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것 같으냐?”
“어… 그건…….”
암만 그래도 거기까지 말해도 되려나?
다들 암묵적 동의를 눈빛으로 표현하는 동안 당위혼은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들 그리 생각하겠지. 하지만 반대로 묻자꾸나. 그렇게 자존감 높으시며,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시는 것 같은 대형이… 정작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느냐?”
“예?”
“대형의 취미가 무엇인지 아는 이가 있느냐?”
그 괴팍한 양반의 취미?
“그야…….”
“그… 우리, 괴롭히는 거?”
생각해 보니, 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우리를 수련시키고, 외부로 나가 사업을 따오거나 타 문파의 장로들과 협상하고.’
‘어디선가 거대 상단과의 연계를 해오고…….’
‘지금의 세를 불려 낸 대형은…….’
“취미가… 있었던가?”
누구보다 질리게 붙어 살았다 생각한 대형이지만, 그들은 당유혼이 취미 생활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누군가는 쉬는 날에 국밥집을 가고, 누군가는 화단에 독초를 키우고, 누군가는 새로운 독을 연구하겠다고 골방에 처박히기까지 하는데.
정작 당유혼만은 그렇게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게 대형이시다. 매일매일 너희들을 소중히 여겨 잃는 것이 두려워 항상 움직이신다. 그렇게, 누구보다 자신의 두려움에 맞서 싸우는 것이 대형이시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당유혼과 사천당가를 만들었다.
“나는, 그런 대형에게 협의를 배웠다. 두려움에 언제나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 그 행동이 몸에 밴 사람. 인생 그 자체가 자신의 두려움에 대한 투쟁이 되어버린 사람. 그렇게… 몇 번을 두려워하고 고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비인간적이라 많이들 욕하는 당유혼이지만, 당위혼에게는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대형이었다.
“대형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괴로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매번 전전긍긍 고민하고 번민한다. 그러나 한 번도 발목을 잡는 그 감정들에 멈춰선 적은 없다. 협의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두려움을 알지 못하는 이는 협의를 행할 수 없다.
그것은 힘 있는 자의 방만일 뿐이니까.
번뇌하지 않는 자는 협의를 행할 수 없다.
그것은 무지한 자의 무도함 일뿐이니까.
두려워하고 번뇌하는 이만이, 자신이 행하려는 것이 얼마나 고난의 행로인지 아는 이만이 그 길을 걸어나갈 수 있다.
“그렇기에 본가가 필요한 것은 단 두 가지일지니, 그것은 바로 두려움에 물러서지 않고 싸워나갈 무(武)와 그 방향을 제시해 줄 협(俠).”
단지, 그것뿐.
“지금 이 시간에도 도움을 바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조금 전 사파의 간자는 거짓 신분으로 위장한 적이었으나, 분명 어딘가에는 습격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가족을 구해줄 이를 간절히 바라는 이가 있을 터.”
그러니까,
“가주로서 그대들에게 물으마. 우리가 가장 괴로웠던 그 시절, 그 누구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준 적이 없다. 누구보다 가장 그 괴로움을 아는 것이 우리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우리가 어찌해야 한다 생각하느냐?”
툭 하고 던져진 하나의 질문.
그것은,
“…참, 가주님 답지 않은 질문이십니다.”
“맞습니다. 그런 건 불퇴 같은 놈이나 하는 질문입니다.”
“뭐, 뭐? 내가 왜!!”
엉겁결에 얻어맞은 당불퇴가 억울해하며 항변했지만, 그 누구도 들은 척하지 않은 채 말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시지 않습니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
“가야지요.”
“가서 돕죠.”
“아니, 뭐… 솔직히 우리 안 도와준 놈들 돕는다는 게 영 아니꼽긴 하지만…….”
“그럼 뭐 더러운 사파 놈들 족친다고 생각하고 가면 되니까.”
어쨌거나―
“맞서 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가니까.
천하제일협의지문이라 불리었던, 사천당가니까.
그것이 당가에 흐르는 혼(魂)이니까.
“저희가 어리석었습니다, 가주님.”
“싸워야 할 이유는 이리도 차고 넘치는 데 말입니다.”
“당장 가서 싸우고 싶습니다!!”
“까짓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 웁웁?”
“아, 이 새끼야! 주둥아리 좀……!!”
누군가 선 넘는 말에 다른 이들이 달려들어 허겁지겁 입을 막았다.
어쨌든 간 당가에서 죽는다는 말은 금기와 같았으니까.
“다들 의욕적이군.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은 없다. 적들의 동태로 보기에, 그렇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옙?”
“사패천이 그리 유리했다면 이런 간계를 쓰지 않았겠지. 결국 지혜는 힘이 없는 자가 힘이 있는 자를 이기기 위해서 부리는 것이니까. 또한, 아까도 말했듯 간자였던 이는 습격해 온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파 내에서 동료 의식이 그리 깊다고 보긴 힘들 테니, 그들을 부하로 두는 계급이 되겠군.”
“그럼…….”
“그들은 최소한 부지휘관 정도의 인력을 상실한 셈. 또한, 습격을 통해 이득을 취했다 한들 전투를 거친 이후 피로하긴 매한가지일 테니 그들의 상태도 결코 만전은 않겠지.”
기습한다면, 지금이야말로 적기다.
“오오!!”
“야야, 뭐 하냐! 다들 짐 싸라!”
“잠깐만, 저분들 마을에 데려다줘야지!”
두려움 대신 투지가 차오르며 다들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확실히 겁에 질린 것보다는 이게 낫다.
그 모습에 당위혼은 미소 지었지만,
“…….”
속으로는 그 역시 심란한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형님…….’
말마따나, 그들의 대형은 참 유난스럽다 할 만큼 자신들을 싸고돌았다.
당장 얼마 전 서안에 방계들을 보낸 뒤에도 그 불안증이 사천 전체에 퍼질 정도로 난리를 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무엇이 그리 중하기에, 저희를 두고 그리 가셨습니까.’
내색하려 하지 않으려 한 그들의 대형이었을 테지만, 그래도 어릴 적부터 가주로서 아랫사람들을 신경 쓰고 살아온 당위혼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나, 스스로의 두려움을 맞서 싸우시는 표정으로 가야만 하셨습니까.’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꾹 눌러 참았다.
‘믿겠습니다, 형님.’
믿는 것.
심장이 떨릴 만큼 걱정되더라도, 가족이라면 그저 믿어주는 것.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그것을 오늘도 행하며, 당위혼은 그저 자신의 형님이 있을 방향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