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14화 (314/350)

314화

* * *

소림.

무당과 함께 중원 무림의 태산북두로 불리는 곳.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이란 말처럼, 모든 무공의 총 본산이라 불리는 곳이 소림이었다.

그렇기에 만민에 존경받고 경외의 대상이 된 곳이 소림이었다.

적어도, 삼십 년 전까지는.

“…여기도, 이렇게 됐나.”

소림이 무당과 함께 봉문에 들어갔다는 사실이야 익히 알고 있었다.

여전히 사찰로서 역할은 다 하고 있지만, 그것은 소림이 원래 중원 불교의 총 본산이기 때문.

황제조차 한때는 소림의 승려를 스승으로 모실 정도였으니, 세상이 말하는 소림과 무림이 말하는 소림은 엄격히 따져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소림은 그 명성을 유지하기 충분했으나,

“독한 양반들 같으니라고. 같은 이름 쓰고, 같은 가족이라고 여긴다면… 기부금쯤은 좀 나눠 쓰지 그랬나.”

내가 아는, 그 지독한 땡중 놈들은 참으로 독하게도 ‘소림’스러웠으니―

“부서지고 망가진 것들이 이리 많은데, 좀 고쳐 쓰지…….”

불가로서 소림은 세상에 있을지언즉, 무림에 속한 소림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듯, 소림으로 향하는 길은 제대로 관리조차 되지 않아 엉망진창이었다.

하다못해 기본적인 유지 보수조차 빼먹은 그 모습은, 사람의 왕래가 끊긴 지 한참이나 된 듯 어수선했으며 과거의 찬란한 영광은 그저 흔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당가처럼.

“넓기만 더럽게 넓어서는…….”

걸어갈 길이 멀다.

진짜 더럽게 멀다.

당가도 넓었지만, 소림은 그보다 더 끗발 날리던 곳 아니랄까 봐 경전을 향해 걷고 있으면 참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애들은 잘 지내고 있나? 괜히 또 협객병이 도져서 위험에 처한 이들 구해 주러 간다고 나서지 않았으려나? 또 날 핑계 대며 나라면 싸웠을 것이라고 싸움 걸지는 않았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에이, 설마 그래도 진짜 아무 곳에서나 끼어들까?

설마 수적으로도 불리할지 모르는데 사파 놈들이 나쁜 짓 꾸몄다고 달려들까?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빨리, 빨리 일을 끝마치고 가야… 음.”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념에 열심히 번뇌하고 있을 때, 그런 상념을 끊어주는 듯한 기운이 저 멀리서 느껴졌다.

“이건…….”

바위처럼 단단하며 거목처럼 굳건하다.

대지처럼 변함없으나, 산악처럼 거대하다.

그 힘은 세상의 어떤 것을 끌어와 비유해도 부족함이 없을 테지만, 그들은 결코 자신의 힘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 양반들, 삼십 년간 불공만 닦았다더니.”

삼십 년간 갈무리된 기운은 삼십 년 전을 기준으로 해도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내가 올 걸 알고 있었잖아.’

느껴지는 기세는 순전 자신들이 여기 있으니 이리로 오라고 소리치고 있다.

“잘됐네.”

헷갈릴 염려도 없다.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고, 마침내 경전 앞에 모인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그 수가 무려 백 하고도 여덟.

모두가 머리에 계인을 새긴 무승(武僧)들이었다.

반장을 취한 채 서 있던 그들 중 하나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주.”

“그 말은…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소림은 봉문 중이었다 들었는데, 제가 알지 못하는 눈과 귀라도 있었나 봅니다.”

그래도 바깥소식은 듣고 살았던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렇지 않습니다.”

선두에 선 무승은 모로 고개를 저었다.

“그저, 선대로부터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가르침?’

그게 뭔가 싶을 때, 무승은 흠흠 목을 풀더니 짐짓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세상이 일만 개의 흐름으로 찢어지고, 그것이 다시 두 개의 거대한 흐름으로 봉합되며 전에 없던 혼란을 일으킬 때, 귀인(貴人)이 본사를 찾아오리니 너희들은 그를 따라 세상으로 나아가거라.”

누군가의 유언을 전하듯, 담담한 어조로 말을 끝낸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가르침에 따라, 시주를 안내하겠습니다.”

“안내?”

“시주에게 전해진 것이 있습니다.”

‘뭐 그런…….’

내가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그저 가르침이 있었으니 그대로 따르겠다고?

‘우연히 오늘 내가 찾아온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쩌려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나 역시 크게 걱정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저 말을 전하라 한 이가 누구였을 지 짐작이 됐으니까.

“이쪽으로.”

백 하고 여덟 명의 무승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고, 선두에 섰던 무승이 나를 안내해 소림사 내부로 걸어갔다.

‘걸음걸이가 상당히 안정되어 있군.’

무승 하나하나의 수준이 지금의 나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눈앞의 나를 안내하는 무승은 그중 제일인 듯싶었고, 단순히 무공만으로 부딪친다면 필패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내게는 그 이상을 만들어낼 변수들이 많이 있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이런 고련을 쌓은 이들이 하나도 아니고 일백이 넘는다라…….’

과연 소림이구나 싶었고, 동시에 이런 일을 꾸민 이가 누구인지 확신이 들었다.

“도착했습니다.”

마음속에 확신이 드는 동안에도 걸음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어느 거대한 동굴 앞에서 무승이 멈춰 섰다.

“안으로 드시지요.”

“저 혼자 들어갑니까?”

“저는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

그저 이 자리에 뿌리 내린 나무처럼 있겠다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동굴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거대한 철문을 마주했다.

‘먼지가 쌓여 있다. 꽤… 오랫동안 드나든 이가 없었다는 뜻.’

굳게 닫힌 문은 긴 세월 녹이 슬어 있었고, 손으로 힘껏 밀자 비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서서히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둠 속에서 미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것의 정체는 천장에 박힌 하나의 야명주가 발하는 것이었다.

그 아래로 하나의 인영이 가부좌를 취하고 있었으니―

“…하.”

그것은 이미 죽어버린 시체요, 녹슨 가사를 두른 채 먼지 속에 파묻힌 망자였다.

그리고 나는 그 망자의 정체를 알았다.

“빌어먹을 놈아. 내게 이딴 모습을 보여주려고 부른 거냐?”

그것은 그리운 옛 인연.

한때, 삼대천이라 불리었던 마지막 인물.

그 이름은,

“이 빌어먹을 ㄸ…….”

- 땡중이라 부르지 말거라,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아.

“ㄸ… 뭐, 뭐야?! 궈, 권천?!”

한때 권천(拳天)이라 불리었던 소림사의 방장.

그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 그래, 나다.

목소리는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음공인 육합전성(六合傳聲)으로 들려왔지만, 그 진원지는 분명 눈앞의 시체였다.

“너… 죽은 거 아니었냐?”

- 맞다.

“뭐?”

- 죽은 거 맞다고. 천둥벌거숭이야, 네 눈에는 내가 산 사람으로 보이더냐?

내가 아직도 산 사람으로 보여?

장난치듯 뱉는 말치고는 매우매우 심각했다.

“때려주고 싶은 건 여전하군. 이 땡중 놈.”

- 나도 마찬가지다, 독종.

“독천이다, 땡중.”

- 흐흐, 아해야. 아직도 세간의 칭호가 중요하더냐? 그 나이 먹고?

“뭐래는 거야, 나이 처먹은 걸로 따지면 너만 하겠냐? 그리고 나, 이제 젊어졌거든?”

한동안 육합전성으로 들려오는 산송장 놈과 투닥거리다가,

“큭…….”

- 크흐흐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 세월이란 참으로 무상하구나. 그렇게 지독하게 굴던 네놈이… 실로 보고 싶었다.

“…나는 아닌데?”

- 흘흘, 그렇겠지.

여전히 시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들려온 목소리만으로도 녀석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처럼 보였고, 그 미소는 누군가를 비웃는 게 아니라 손자를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따스함이 깃든 그것이었다.

- 그럼, 나 혼자 보고 싶었던 걸로 하자꾸나. 유혼(流魂).

“…진짜 죽을 때 다되면 사람이 변한다더니, 왜 이름으로 부르고 그래?”

- 죽을 때가 지났고, 실제로 죽었으니 그렇다.

“…그런가.”

정말로, 그렇구나.

“너… 죽은 거구나.”

순간 목이 먹먹해졌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지만, 그냥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었을 뿐.

- 유혼.

“…….”

- 인간은 모두 죽는다. 나는 인간치고 오래 살았고, 검천은 인간을 반쯤 포기함으로써 지금까지 이 땅에 스스로를 못 박아 두고 있는 것이지.

덤덤하게 말해 오는 내용은 너무나 아픈 것이었다.

어찌 저리 담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던한 어조였기에 나는 괜스레 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아주 땡중 다 되셨군. 입적(入寂)까지 이르니, 어디 사후 세계에서 깨달음이라도 얻으셨나?”

- 항상 그러길 바라고 있지만, 속세에 미련이 남아서 말일세. 아직은 해탈(解脫)에 이르지 못했다네.

“한심한 녀석. 불경 외운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열반에 이르지 못한 거냐?”

- 끌끌, 쉽지 않더군.

덤덤하게 받아치는 웃음이, 내겐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 그 꼴은?”

- 뭐긴 뭐겠나. 나는 천수를 누렸고, 그럼에도 아직 못다 한 것이 있기에 속세에 의지를 남긴 것이지. 그래, 사실은 나 역시 반쯤 해탈을 하긴 했네. 심신(心身)이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위(有爲) 해탈이라는 게지. 물론, 자네와 같이 불가에 연이 없는 이는 모르겠지만.

“…그러냐?”

권천이라 불리던 이는 없다.

신승이라 불리던 이도 이제 없다.

남은 것은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잔향과도 같은 것.

산에 울려 퍼진 메아리가 돌고 돌아 들려오듯, 그것을 가만 듣고 있으면 적막한 산하의 고독함만이 짙게 배어 나왔다.

“참, 지독한 삶이군. 무슨 꼴을 보겠다고 죽어서도 이딴 습기 찬 곳에 남아 있는 거냐?”

- 흐흐흐, 어쩌겠나. 나보다 더한 놈도 죽지 못해 이 세상에 남아 있는데.

“검천이라면… 나도 봤다. 그래, 지독하긴 하더군.”

죽지 못해 살아 있는 처지.

스스로를 핵으로 삶아, 저주받은 흉물을 봉인하고 무당산의 영기와 합일(合一)해 버린 검천이라면…….

- 큭큭큭…….

“…왜 웃어?”

- 자넨 참, 여전히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군. 내가 말하는 것은 자네라네. 남은 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동료에 대한 걱정으로,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구천(九天)을 방황하다 삼십 년이 이른 후 부활해 버리고만 불쌍한 혼(魂)이여.

고승은 말했다.

이미 고목처럼 말라버린 몸으로, 물기 어린 목소리를 냈다.

- 누구보다 강인하고 굳건한 정신을 지녔으나, 누구보다 어리고 약한 마음을 가진 나의 친구여.

여전히 고승의 시체는 미동조차 없건만, 녀석은 분명 울고 있었다.

괴팍하고, 고집스럽고, 그럼에도 역대 소림의 방장 중 가장 깊은 업을 쌓았다던 녀석이 울고 있었다.

- 아니길 바라였건만, 끝끝내 그대는 이 세상에 미련을 져버리지 못하였구나.

탄식하고 있었고, 슬퍼하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장탄식 속에,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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