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천권의 시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하나의 단환만이 남았다.
대환단.
이 세상에 수많은 영약이 있다 한들 그 정점의 자리는 정해져 있으니, 모든 이들이 공통되게 부르는 지고의 보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 역시, 이것만큼은 만들 자신이 없었지.”
온갖 독과 약학에 조예가 깊은 나였고, 독만 따지면 천하제일… 아니, 고금제일이라 자신할 수 있었음에도 대환단만큼은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
왜냐면, 대환단은 단순한 영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환단, 그것은 깊은 업과 덕을 쌓은 고승의 유해. 즉, 사리(舍利)니까.”
오로지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유골이 바로 사리다. 평생 수행하고 덕을 쌓아온 이들이 죽음 이후에 자신들이 쌓은 업을 평가받으니, 속세에서 아무리 그들을 덕망 높은 고승으로 추대해도, 스스로가 참된 수행을 쌓지 못한 이들은 결코 사리를 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사리를 남긴다 해도 모든 것이 대환단이 될 수는 없지.’
사리는 말 그대로 사리일 뿐이다.
참된 수행의 결과로서 사리는 시작점일 뿐이고, 그 수행을 끝없이 쌓아 진정 높은 경지에 도달했을 때야 환단의 형상이 된다.
“또한, 모든 환단이 대환단이 되는 것은 아닐지니…….”
극히 일부의 고승, 그러니까 소림의 방장쯤 되는 이들이나 환단을 남기는데 이중 대부분은 대환단이 아닌 소환단이라 불리는 것을 남긴다.
즉, 대환단이란 그만큼이나 희박한 확률 속에 만들어지는 유품과 같은 것이고, 만들어지는 대환단이란 만든 이에 따라 그 효과마저 천차만별로 나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만들 수도 없는 것이라 여겼건만…….’
나는 녀석이 남긴 대환단을 꾹 쥐었다.
“땡중 놈… 그래도, 꼴에 고승이라 이거냐?”
이 작은 환단에 녀석의 정업(淨業)이 담겨 있다.
소림 방장 중 역대 제일이란 녀석이 수십 년간 닦아온 수련의 결과가, 그리고도 부족해 삼십 년간 나란 놈 하나만을 바라보며 매진해 온 결과가, 그렇게 하고도 미련이 남아 성불하지 못해 수년간 저 비쩍 마른 시체에 머물러 있던 결과가,
“고작해야… 이 작은 단환 하나라고…….”
그 질 나쁜 농담에 눈을 질끈 감았다.
동굴이라 그런지 너무나 습했다.
“진짜, 빌어먹을 땡중 놈…….”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빚지게 만들어 놓고 갚지도 못하게 도망치는 놈이라더니.
녀석이 있던 자리에 작게 고개를 숙이며 읊조렸다.
“다음 생엔, 좀 부잣집 아들내미로 태어나라.”
맨날 풀만 뜯어 먹는 땡중으로 태어나지 말고, 고깃덩이 좀 뜯어 먹는 그런 세속적인 집안에서 태어나길.
나름대로의 축문을 외워준 뒤 녀석이 사라져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된 동굴에 앉았다.
“대환단… 그래, 해보자고.”
그리고 녀석이 남긴 대환단을 단번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구구구.
효과는 빨랐다.
대환단은 입 안에 털어 넘기자마자 그대로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게 결코 사라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거대한 내공으로 화하며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발하기 시작했다.
‘큭!’
대환단의 기운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저 거대했고, 그저 굳건했으며, 그저 강대했다.
그것만으로도 내부에선 거대한 기운이 폭발하듯 부풀어 올랐고 까딱하다간 내 몸이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쪽팔리게, 그럴 수는 없지!’
대환단이라고 해도 결국은 영약.
영약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해 사망한다면, 삼대천이라 불렸던 나머지 둘이 저승에서도 나를 비웃을 것이다.
‘아, 한 놈은 아직 안 죽었나?’
약 기운이 얼마나 강렬한지, 벌써 헤롱헤롱하네.
‘어쨌거나.’
술에 취한 듯 흐트러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혼원신공을 운용했다. 세상의 모든 기운을 포용하겠다는 배포로 만들어낸 신공은 과연 내 모든 지식을 동원했던 보람이 있는지 요동치는 대환단의 기운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만약 다른 심법이었다면 진작 혈도가 터져 나갔을 법한 힘이지만, 혼원신공이란 말 그대로 혼원(混元), 천지 우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심법이다.
체내의 단전만으로 불가능하다면 전신 혈도를, 전신 혈도로도 부족하다면…….
‘그 이상으로 확장하면 그만일 뿐!’
눈이 번쩍 뜨였다.
실시간으로 그 모습을 보지는 못하지만, 아마 누군가 내 모습을 본다면 두 눈에서 광망(光芒)이 쏟아져나오는 형태겠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이르면 내공을 체내에 쌓는 것에서 벗어나 체외로 표출한다. 검기(劍氣)와 같이 병장기 위해 내공을 두르는 것이 그 첫 발걸음이요, 여기서 발전하면 강기(罡氣)에 이르게 된다.’
내공을 전신에 둘러 갑주처럼 다루는 것이 호신강기(護身罡氣).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란 그 인지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체외에도 자신의 의지를 닿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그것을 더욱 용이하게 할 수단이 있으니.
‘일어나라, 탐(貪). 네 녀석의 존재를 드러내라.’
- 크르르…….
텅 비어버린 공동에 한 줄기 흉성과 함께 검푸른 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광폭한 기세를 뽐내며 두 눈을 번쩍 떴고, 내 몸을 휘감으며 똬리를 틀었다.
체외로 뿜어진 대환단의 약력은 바로 그러한 녀석의 체내를 타고 흘렀다.
- 크릉! 크르르르……!!
탐이 온몸을 비틀며 괴로운 듯 울부짖었다.
그것은 단순히 대환단의 약력이 강대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놈아!! 버텨!!’
그건 바로 녀석의 체내에 존재하고 있는 마기(魔氣)가 대환단의 약력과 충돌하기 시작했기 때문.
일 년 안에 원래의 경지를 되찾기 위해 어떤 종류의 힘이든 가리지 않고 포식하던 나였기에 탐의 체내에는 상당수의 마기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정반대의 성질을 지닌 정순한 대환단의 기운과 부딪치며 반발이 인것이다.
- 크르르르르!!
혹시나 이 녀석이 반발하며 힘의 흡수를 거부하면 어찌할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럴 걱정은 없었다.
탐(貪)이란 녀석은 내 성질을 상당 부분 타고났기 때문인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힘에 무릎 꿇고 도망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부러지면 부러졌지, 굽힐 줄은 모르는 흉폭한 맹수.
그런 탐이었기에 거대한 힘의 흐름에 그대로 온몸이 폭발해 버릴 듯 덜덜 떨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변화는 그와 함께 시작됐다.
투둑, 투두둑…….
녀석의 검푸른 비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얼음장이 깨지는 것마냥 전신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부서지는 잔해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누가 본다면 금방이라도 존재 자체가 붕괴할 것만 같은 모습이지만,
‘나는 네 녀석을 그리 약하게 키우지 않았거든!!’
지금의 육체로 버티지 못한다?
그럼 이 육체를 변화시키면 된다.
아니,
‘진화(進化)시키면 된다!’
한 걸음 더 앞으로.
- 크르르르……!!
부서진 자리에 새살이 모습을 드러냈고, 떨어진 비늘에는 그보다 더욱 단단하고 질긴 비늘이 자라났다.
내 주변을 똬리 틀고 있던 탐(貪)은 스스로 그 몸집을 불렸고, 자신의 체내에서 충돌하는 마기와 대환단의 약력을 동시에 짓눌렀다.
콰득!
부서져라 이를 악물며 조금의 기운도 흘러나가길 허용치 않자 상반되는 두 기운은 탐의 체내에서 더욱 거세게 격전을 벌였다.
그때마다 탐은 또다시 온몸이 부서져 나갔지만, 스스로를 진화시키며 부서진 자리를 메우며 이를 악물고 버텼고, 자연스레 내 오감 역시 그와 함께 확장되었다.
“크으으윽!!”
괴로운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항시 만전의 상태를 기하기 위해 최상의 상태로 닦아 놓았던 육신이 여기저기가 어그러졌다.
약력을 이기지 못한 혈도가 터지고, 덕분에 뼈와 관절이 제멋대로 어긋나버리고, 근육과 힘줄이 파열되기 시작했다.
몸 안에 화약을 넣고 터트리면 딱 이런 기분이 아닐까?
‘그것참, 더럽게 화끈하네……!’
탐과 나눠 가졌음에도 이 정도라니.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는 위기감이 아른거렸지만, 그보단 더 큰 희열이 찾아왔다.
‘이 힘이라면… 단번에 간극을 좁힐 수 있다!’
권천이 쌓아 놓은 업이란 무시무시했으니, 확장되는 오감은 하단전을 거쳐 중단전을 꿰뚫고 상단전을 열어젖혔다.
“크악!!”
그 순간, 머리 위로 무언가가 펑― 하고 뚫리는 듯하더니, 내 의식이 어디론가 솟구쳐 올랐다.
* * *
‘…뭐야?’
정신을 차렸을 땐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온 사방이 시커멓기 그지없는 어둠이라, 순간 대환단을 흡수하다가 실수로 야명주를 깨트려 먹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곧 그게 아님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이곳은 내가 있던 동굴이라기에는 아득히 넓었으니까.
‘이건…….’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흠칫!
한쪽 편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무언가의 ‘눈’이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지독한 기시감을 느껴야 했다.
‘이, 이건… 한번 봤던 적이…….’
언제였지?
이런 장면을 내가 본 적이 있던가?
‘아, 분명 이건……!’
그때가 언제인지 깨닫는 그 순간,
- 호오, 이건 의외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애초에 열릴 입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정신체로서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고, 상대편 역시 정신체로서 나를 불러오고 있었다.
- 지난번엔 그 검푸른 뱀이 자네를 지키고 있더니, 이번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군. 얼마나 귀하게 감싸고 있던지, 도통 그대와 눈을 마주하기도 어려웠는데 말일세.
신기하다는 듯 말을 걸어오는 존재는 마치 나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 뭐, 잘된 일이 아닌가 싶네. 나 역시 그동안 지루하기 그지없었으니. 아무리 기나긴 시간을 존재해 온 나라지만, 누군가들의 염원을 일방적 듣고만 있는 것도 꽤나 괴로운 일이라서 말이지.
이 어둠이, 이 심연이, 이 혼돈이.
조금도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해 오는 상대는 상당히 여유로워서 내게 너스레를 떠는 것만 같았다.
- 이런이런. 그대도 대답 좀 해주시게. 나 혼자 떠드는 것은 실로 재미없는 일일세. 게다가, 그걸 일방적으로 당해 온 내 입장에선… 너무 나를 괴팍하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그 존재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놀랍게도 ‘호의’에 가까운 감정이 느껴졌다.
조금도 나를 적대하지 않는 모습이며, 오히려 오랜 친구를 재회했다는 듯 반가운 감정마저 느껴졌다.
그 모습이,
‘정말, 다시 한번 죽여버리고 싶게 하는구나.’
실로 오랜만에, 내 내면에 잠들어 있던 살의(殺意)를 들끓게 만들었다.
- 저런, 너무 대우가 각박하군.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사이가 아닌가. 아, 물론 내 관점에선 그리 길지도 않았지만.
명백한 적의를 드러냄에도 상대는 개의치 않고 내게 말해 왔다.
우리의 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지만,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녀석의 존재를 조금 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애초에 이제야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수준이었으니,
‘그래, 정말 오랜만이지 않지. 하지만 나는 이제야 널 만나게 된 게 안타까울 정도야.’
선명한 적의를 드러내며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한 번 죽여준 걸로는 부족했냐, 천마(天魔)?’
그렇게 찾아 헤매던 적이,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