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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317화 (317/350)

317화

천마.

녀석의 존재라면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 동료들을 가져가고, 내 가족들을 가져가고, 내 소중한 이들을 가져간 녀석을.

‘보고 싶었다, 정말로.’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진심을 토해 내자, 녀석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녀석의 웃음은 선명했고, 그렇게 미소 지은 놈이 내게 말해 왔다.

- 나를 죽이고 싶나?

‘…그딴 걸 질문이라고 하냐?’

이미 한 번 죽인 놈이지만, 몇백 번을 고쳐 죽여도 내 마음속 원한은 풀릴 것 같지 않았다.

- 그렇다면 아쉽군. 애석하게도 이곳에서는 그대와 나는 서로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

‘뭐?’

- 그대여, 그대는 이곳이 어디라 생각하는가?

‘무슨…….’

단순히 말을 돌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천마에게는 나와 같은 투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었고, 들끓는 불꽃과 같은 나와 달리, 녀석은 흐르는 물처럼 평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하긴, 구천을 방황하던 혼인 그대는 이곳이 낯설겠군. 나는 수없이 오랜 세월 이곳에 있었지만 말일세.

‘이 시커먼 곳이 네 집이라도 된단 말이냐?’

- 집? 후후후, 그건 실로 친절한 표현이군. 그대여, 이곳은 만물의 요람이지만, 그것이 제공하는 은혜는 꼭 모든 이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닐세. 모든 이들은 결국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으나, 그들에게 베풀어지는 은혜란 실로 가혹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

이게 진짜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광신도 아니랄까 봐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성이었다.

-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군.

‘미친놈, 그따위로 말해 놓고 상대가 이해하기를 바랐던 거냐?’

- 꽤 친절한 설명이었거늘… 뭐, 좋네. 말로 이해가 힘들다면,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겠지.

사납게 뱉은 말에도 천마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 차례 주변의 풍경이 일변했다.

우우웅…….

‘이, 이건?’

어둡던 공간에 무수한 빛무리가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별과도 같아서, 어두운 밤하늘에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반짝반짝 광채를 자랑했다.

- 아름답지 않은가?

빛무리 하나하나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애쓰며 밝게 빛나고 있었고, 그런 총천연의 찬란함 속에 들려온 물음은 제아무리 발언권자가 녀석이어도 도저히 부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슨 수작질을 부리려는 것이냐?’

- 수작이라. 후후, 그건 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말이 아니더냐?

찬란한 빛무리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은 어둠이 뭉쳐 형상을 이루었다.

어둠은 빛나는 별 무리 중 하나로 다가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고,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한 한 송이의 눈꽃을 소중히 받아내듯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 세상에는 수많은 이들이 있지. 개중, 특출한 업적을 세우고 무수한 이들로부터 명성을 쌓은 이들은 스스로를 빛내며 하늘의 별이 된다네. 세간에선 이런 이들을 영웅이라고 칭하지.

마치, 자네와 나처럼.

‘흥, 나는 몰라도 네놈이 영웅이라고? 영웅 다 죽었네. 자화자찬도 유분수지, 어떻게 네깟 놈 따위가 영웅이 되는 거냐?’

사납게 쏘아보지만, 녀석은 그저 여상한 미소를 지으며 답할 뿐이었다.

- 관점의 차이지. 자네는 중원 무림의 무인들에게 영웅인 것처럼, 나는 천마신교의 교도들에게 영웅인 걸세.

‘하, 그런 쓸모도 없는 버러지 따위가?’

- 후후…….

‘왜 웃지? 네 신도들을 비웃는 게 기분이라도 나쁜가?’

- 아니, 그냥 우스워서 그런 거라네.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뭐?

- 천하에 둘 없을 극독이라 불리는 것도 약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이 그대가 아닌가, 독천.

‘……!’

녀석의 말이 폐부를 찌르듯 다가왔다.

- 자, 부탁이니 부디 쓸모없는 언쟁 따위는 관두세. 그보다는, 이걸 봐주시게.

형체가 된 어둠이 두 손을 소중히 모으자 그 위로 빛무리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그것은 별처럼 빛나지는 않으나, 그 나름대로의 빛을 간직한 별 무리들이었고 그것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자 거대한 광채가 되었다.

그 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천마를 둘러싼 어둠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고, 덕분에 숨겨져 있던 녀석의 얼굴이 드러났으니, 그에 드러난 감정은 분명…….

‘슬픔?’

놀랍게도, 짙디짙은 비애(悲哀)였다.

- 별이 되지 못한 이들. 별 부스러기와 같은 이들에게도 그들 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법. 설령 주변에서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가려진다 한들 그들 역시 저마다가 자신이 있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리 노력한다네.

천하의 천마가 뱉은 말이라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감상적인 발언이었다.

- 이게 무엇인지 아는가? 이것은 운명이요, 경애이며, 신앙이라네. 한 가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가능성의 총체이며, 아주 오랫동안 내가 보아온 것이라네.

그것들을 소중하게 보듬어 안듯 쓰다듬던 천마였고, 그가 두 손을 내려놓자 빛무리는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듯 스르르 흩어졌다.

- 나는 본디 형체 없는 자였으나, 그들이 나를 불렀지. 애타게 찾는 목소리가 이 공간에 그저 응어리진 어둠이었던 나를 끌어냈고, 저 하늘 아래 강림하게 하였다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어.

빛무리가 가시며 다시금 모든 것이 어둠으로 가려진 그가 말했다.

- 그들이 나를 애타게 찾았다네. 원래라면 나는 자네와의 일전으로 다시금 형체 없는 어둠으로서 영겁토록 이 자리에 머무를 운명이었을 걸세. 하지만 애타게 나를 찾는 저들 덕에 이곳에서 눈을 떴고, 그런 나는 또다시 자네를 불렀다네.

‘…네가, 나를?’

- 후후, 아닌 것 같나? 구천을 방황하는 혼이었던 그대가 어찌 다시 이 땅에 생육할 수 있었을 것 같았나?

애초에 말일세.

- 의문스러운 것은 너무나도 많지 않았나? 자네가 그 난리를 쳤는데도 나를 추종하는 이들이 그대를 찾지 않은 것이 의아하지 않나? 제아무리 자네가 턱없이 약해졌다 한들, 다른 이름도 아닌 사천당가라는 흉명으로 활동하였다면, 나를 추종하는 이들에게 있어 자네는 필히 멸하여야 할 대상일진데.

‘네놈이… 나를 찾지 않게 했단 말이더냐?’

- 후후, 글쎄.

녀석은 여전히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짜 입만 열면…….’

누가 광신도들의 우두머리 아니랄까 봐, 요사스럽기 짝이 없는 말들이나 내뱉고 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 믿을 수 없는 것인가, 혹은 믿기 싫은 것인가? 그대라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텐데?

천마의 말은 사이했으나, 그 깊이가 있었다.

역시, 십만 광신도의 우두머리쯤 되면 저렇게 입 터는 것에도 혼이 실린 개소리를 지껄일 수 있게 되는 건가?

‘이 자식이 어디서 약을 팔…….’

더 들어 주다가는 나도 저놈이 파는 약에 강매당하겠다 싶어 일갈하려 할 때,

- 크허어어어어엉……!!

나보다 먼저, 이 어두운 밤하늘과 같은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게 만드는 포효가 일었다.

‘탐(貪)?!’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저편에서 거대한 어둠이 검푸른 어둠의 형상이 되어 이곳을 향해 날아드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어? 너……!’

그것은 지금까지 보던 단순한 검푸른 어둠의 형상이 아니었다.

녀석의 주변으로 찬란한 빛무리의 별 부스러기처럼 흘러내리고 있었고, 전례 없던 분노를 끌어안은 채 날아와 나를 감싸듯 그 거대한 형상으로 꽈리를 틀었다.

- 후후, 참 귀하게도 싸고도는구나. 전과 달리 다시는 잃지 않겠다는 겐가?

탐의 거대한 형상에도 천마는 유유한 반응을 보였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탐은 그 거대한 입을 벌리며 포효했고, 다음 순간 녀석의 아가리 앞에 수많은 별 무리의 광채가 모여들었다.

- 크허허허허헝!!

광채(光彩)는 곧 광구(光球)가 되었고, 광구(光球)는 곧 광선(光線)이 되었다.

탐의 입에서 쏘아진 광선은 언제 뿜어졌는지 미처 알지도 못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아가 천마를 후려쳤다.

하지만,

- 후후후, 급하구나. 어찌 우리의 기념적인 재회를 이리 허망히 끝내려 하느냐.

어둠에 둘러싸인 천마는 그것을 성벽처럼 둘러싸 거대한 광선의 포격에도 끄떡없이 버텨내었다.

‘뭐야? 저 자식, 전성기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도 안 되는 강함이다.

아니, 사실 그렇게 따지면 탐 녀석도 저런 힘을 가지고 있는 녀석은 아니었는…….

‘잠깐.’

그러고 보니 익숙했다.

이 지독한 어둠.

바닥을 밟고 섰음에도 서 있는 것 같지 않고, 어둠 속에 부유하고 있음에도 부유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이 기묘한 어둠의 감각.

그래, 그건 마치―

‘가주 전용 연공실에서의 그때와 똑같아!’

사고(思考)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될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궁구하고 또 궁구한다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던 그 공간!

그 생각이 머리에 닿는 순간 나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천마!!’

깨닫는 순간 나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드는 호접(胡蝶)이었고, 도달한 순간 나는 녀석의 머리 위에서 수십의 촉수를 휘둘러 내리꽂는 팔초어(八稍魚)였다.

콰콰콰쾅!!

- 후후후후…….

수십 개의 촉수가 어둠을 후려쳤음에도 여전히 녀석은 음험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고, 잔뜩 투기를 드러내는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볼 뿐이었다.

- 고작 이 정도로 되겠나?

‘그럴 리가.’

고작 이 정도에 당해 주면, 오히려 내가 섭섭할 뻔했다.

‘이건 연습일 뿐이었어.’

- 연습?

‘왠지, 될 것 같은 게 있는데… 확신이 들지 않았거든.’

그런데 이제는 확신이 들어.

‘어차피 이곳에서 너와 끝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겠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너와 오래 보고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고.’

어차피 오래 보고 싶은 사이도 아니지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이왕이면 큰 걸로 먹여주마!’

우우우웅…….

정신을 집중하고 사고를 확장시킨다.

거미줄처럼 뻗어 나간 의지의 실은 이 찬란한 별 무리 공간 전역을 향하듯 뿜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 별 무리가 걸렸다.

‘나도, 나만큼 찾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별 무리 하나하나의 의지를 들을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느낄 수는 있다.

애초에 저들이 나를 비추고 있다는 것은, 애초에 저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뜻.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나는 이를 악물어 웃어 보였다.

‘어차피, 안 뒈질 거 아니까 나중에 다시 보자. 내가 다시 꼭 찾아갈 테니까.’

당가칠대금기(唐家七大禁忌).

만천화우(萬天花雨).

외식(外式).

무수한 별 무리가 떨어진다.

그것을 보며 천마 역시 읊조렸다.

- 아름답군.

‘빌어먹을 놈.’

그것만큼은 짜증 나게도 동감이다.

우우우우우…….

서서히 떨어지는 별 무리의 따스함을 느끼며 오로지 이 공간에서만 완성시킬 수 있던 초식을 매듭지었다.

유혼(流魂).

구구구구……!!

폭음 없이 오로지 웅장한 함성과 함께, 어둠의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 * *

어둠, 그리고 어둠.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몸을 일으켰고, 그에 반응하듯 세 명의 인영이 고개를 들었다.

“어이하여 기침하셨나이까, 천마시여.”

“아직, 정양이 더욱 필요하시나이다.”

“…….”

천마(天魔).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킨 남자는 자신의 손을 들어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유혼(流魂)이라…….”

피식, 웃어버렸다.

“이름 한번… 잘 지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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