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19화 (319/350)

319화

‘천마가 부활했다라…….’

스스로의 발언이 가진 무게감을 아는지 하윤호는 최대한 덤덤한 모습을 가장하려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녀석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나름대로 혼자 무거운 진실을 감당하려 한 기색이 보였다.

하지만,

“그러냐.”

딱히, 큰 충격과 반전이 있지는 않았다.

“예, 옙? 공자님!! 천마가 부활했습니다요!!”

“그렇겠지.”

아무렴, 그 정신 나간 광신도 놈들이 삼십 년간을 지하 땅굴에 매달려 작당 모의를 했는데―

‘이제는 부활할 때가 되긴 했지.’

얼마 전에 그 기묘한 공간에서 마주쳤던 것도 있고.

“저… 공자님, 제 말 들으신 것 맞으십니까요? 천마가 부활했습니다요!”

“대단하네.”

“반응이 너무 시원찮으신데…….”

“대단하네!”

녀석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지만, 이보다 더한 반응을 보여주긴 힘들다.

‘이 녀석 입장에서야 내가 전장에 나설 때 괜히 잡념에 방해될까 걱정한 것이겠지만…….’

이미 그 수준은 한참 넘어선 지 오래다.

‘진작 저 암흑 공간에서 천마 놈이랑 별까지 무너트리며 죽어라 싸우고 온 마당에, 고작해야 부활했다는 소식에 일일이 놀라기는 그렇잖아.’

뭔가 괜히 고생했다는 표정 짓는 하윤호에게서 죽간을 받아가며 말했다.

“됐고, 애들 구해 올 테니 요양할 수 있을 만한 곳이나 알아봐 둬. 의원이 많이 필요하겠네.”

“예? 그들을 구하시겠다는 겁니까요? 무, 물론 공자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가능한 것이냐고.

떨리는 동공으로 물어오는 녀석에게, 나는 씨익 미소 지으며 답해 주었다.

“뭐, 될 것 같네.”

* * *

하윤호와 헤어진 뒤 곧장 사천당가로 돌아왔다.

제아무리 경신법을 발휘한다 해도 요령까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고, 그 시간을 좁힐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게는 그 방법이 있었다.

“이놈!! 네가 여기 왜 있는 것이냐!! 다른 아이들은, 가주님은……!!”

“비켜. 지금 너랑 실랑이하고 있을 시간 없어.”

눈이 뒤집힌 당궁상이 멱살잡이를 하며 달려들었지만, 지금은 이 녀석과 놀아줄 시간도 없었다.

“홍수월을 불러줘.”

“뭐, 뭣? …너, 무언가 방법이 있는 거냐?”

“그럼 방법이 없는데 불렀을까. 적석촌으로 갈 테니까, 최대한 빠르게 와달라고 해.”

당궁상에게는 홍수월을 적석촌으로 와달라고 하고, 나는 곧장 붉은 바위 일족이 모여 있는 그들의 작은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궁상과 마찬가지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은인!! 이게 어찌 된 것입니까?”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은 적세희.

불퇴 놈과 의미심장한 관계를 만들어 가던 그녀답게 전 무림에 퍼진 정천맹의 패퇴 소식에 걱정이 태산인 듯했다.

그녀의 뒤로 다른 붉은 바위 일족의 전사들도 모였는데, 그들 역시 걱정스럽기는 매한가지인지 하나둘 목소리를 냈다.

“은인. 소식은 들었습니다. 사패천의 함정에 빠진 정천맹이 연일 패퇴하고 있다고.”

“당가의 사람들은 괜찮은 것입니까?”

‘그래도, 아직 자세한 건 안 퍼졌나.’

정천맹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야 숨길 수 없지만, 그 세세한 내막까지 이들에게 퍼진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그랬으면 이 정도로 끝나겠어.

“은인!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그들을 진정시키고 있으려니 홍수월 역시 당궁상의 안내를 받았는지 이곳으로 날아왔다.

‘진짜… 날아오네?’

비유상 표현이 아니라, 술법이라도 부렸는지 하늘을 휘휘 날아온 홍수월이 내 앞 삼 장 정도의 위치에 착지하자 나는 모인 이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 모였네요. 안 그래도 여러분들 도움이 필요했는데”

“저희의 도움말입니까?”

“예. 우리 애들한테 최대한 빠르게 날아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여러분들이 저를 도와줘야 해요.”

내 말에 그들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답했다.

“물론, 가능하다면 저희도 은인을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희 일족이 가진 비술 중에는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시켜주는 비술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조님께서라면 장거리 이동 도술을 부릴 수 있으셨겠지만, 저는 아직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무력함에 몹시도 미안한 모습.

하지만 괜찮다.

내가 원한 건 그들이 말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뇨. 충분히 도움될 겁니다. 그러니 우선은… 빵실아!”

휘익―

입에 손가락을 물고 휘파람을 불자 저편에서 특유의 빵실빵실한 빵뎅이가 인상적인 빵실이가 달려왔다.

과연 명견 빵실.

살인적인 귀여움으로 무장한 맹수지만, 그 본질은 영수라는 걸 증명하듯 내가 부르자 곧장 찾아왔다.

머리 위에 삐약이를 태운 채로.

“삑삑!”

“…걔는 왜 데려왔냐?”

“헥헥!”

“자기가 알아서 왔다고? 그…렇구나?”

그래, 개랑 새들이 그러겠다는데 어찌할 수 있을까.

여하튼―

“이 녀석을 성장시켜야 해요. 그때 도움이 필요하고.”

“이 아이는…….”

“영수를 말입니까?”

빵실이는 이미 당가의 귀여움을 상징하는 녀석으로서, 그 정체 역시 알 사람은 다 알았다.

술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홍수월은 말할 바도 없고 중단전을 다루느라 상위 종족과 교감이 잦은 붉은 바위 일족의 주술사들도 빵실이의 진면모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난색을 표했다.

“은인. 빵… 아니, 무민이를 성장시켜 영수의 권능을 활용해 단번에 요령까지 날아갈 계획이신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영수는 영수입니다. 고작 영약 몇 알을 먹인다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홍수월 촌장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들은 신령한 존재로, 땅의 정기와 하늘의 은혜를 고루 받아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그 두 요소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아아. 난 또 뭐라고.

“그러니까, 그 요소들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거죠?”

“예?”

“하늘의 은혜는 모르겠지만, 땅의 정기는 내가 끌어다 쓸 수 있거든요.”

“자, 잠깐.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은인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땅의 정기가 무엇인지…….”

“잘 알죠. 용맥(龍脈)을 말하는 것 아니에요?”

풍수지리에서, 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 그 정기가 모인 자리가 혈(穴)을 말하는 게 용맥이다. 하지만 이건 굳이 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지기(地氣) 그 자체의 응축된 지점을 뜻하기도 했다.

“원래, 명가(名家), 명문(名門)이라 불리는 곳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위치 선점에서 머리 깨지는 곳들이거든요. 입지가 생명이니 뭐니 하면서 온갖 도사들을 불러 풍수지리에 입각한 최적의 자리 선정에 목매달거든.”

뭐 한 번 땅을 파면 수백 년 안정과 번영을 추구할 수 있다거나, 선산만 잘 갖추면 후대에 나라의 고관대작이 난다거나.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라 불리는 이들 중 풍수지리 한번 안 읽어본 가문이 없을 거다.

그건 사천당가 역시 마찬가지.

“우리 집도 풍수지리적으로 꽤 좋은 곳이거든요. 홍 촌장님도 그건 알고 계시죠?”

“확실히… 당가의 위치는 조종산과 조산의 사이에 있어, 내청룡과 외백호, 내백호와 외백호에 감싸 안는 듯한 명당이니… 그 지기가 보통이 아니기는 했습니다.”

내가 율도촌 촌민들을 구조해 준 보답으로 당가에 각종 기문진식들을 설치해 준 홍수월이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건 홍길동에게 직접 들은 것이거든.’

“히야, 명당이다, 명당. 내수구와 두뇌, 미사, 안산의 위치까지 완벽하군. 보아하니 일부분은 의도적으로 토목 공사를 시행하기도 한 것 같은데… 공사하느라 돈 꽤나 썼겠어.”

환신 지경에 이르렀다던 홍길동이 했던 말이니까 틀림은 없을 것이다.

“여하튼, 그 용맥을 끌어다 쓰겠습니다. 다만, 제가 이걸 누군가에게 주입시키는 것은 처음이라서요. 그 안정성을 여러분이 보조해 주셔야 해요.”

“예, 예? 그 말은 용맥 자체는 써보셨다는 것입니까?”

“그랬죠.”

당연 많이도 써봤지.

삼십 년 전에 마교도 놈들을 상대할 때, 수적으로도 무력적으로도 열세이던 당시에는 쓸 수 있는 모든 걸 썼어야 했다.

그때 용맥을 터트려 대규모 함정을 파놓았던 것은 일상과도 같은 일.

‘지금 다시 하라면 절대 다시 못할 미친 짓이지만.’

용맥이란 말 그대로 거대한 대자연의 지력(地力)이 응축된 곳이니, 그걸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어마어마한 반발을 맞게 된다.

혼원신공을 창안한 지금도 대환단을 먹기 전엔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한 행위였지만, 지금은 다행히 그 미친 짓을 다시 할 기반이 갖추어진 상태.

“이러니저러니 해도 빵실이는 아직 어린 영수니까. 여러분들의 보조가 필요합니다. 혹시 상황이 이상하다 싶으면 즉각 나서주시구요. 그 부분에서 붉은 바위 일족 여러분들을 믿고 맡기겠습니다.”

그쪽은 여러분들이 전문가잖아.

“저, 저희가 말입니까?”

“예, 부탁드립니다.”

상위 종족인 영수와 교감까지 하는 그들이다.

물론 나 역시 비슷하게 상위 종족이라 불리는 이들과 접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진짜 물리적인 접점들뿐이었잖아?’

서로가 시원하게 서로의 뚝배기를 깨버리는 물리적인 접촉밖에 없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부드럽고 섬세한 작업은 전문 외주 업체를 부르는 수밖에.

“과연…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건 일회성 성장일 뿐일 확률이 높습니다. 지금 당장 무민이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 일회성 성장이 필요한 것이잖아요?”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결국 모두에 대한 설득은 끝이 났다.

한쪽에서 혓바닥을 내밀고 헥헥거리고 있던 빵실이를 불렀고, 신나게 달려온 녀석을 품에 안아 든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네가 말은 못하는 영수라지만, 영특해서 우리가 어떤 대화를 한 지는 알아들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릴 도와줄 수 있겠니?”

“헥헥!”

녀석은 용맹하게 꼬리를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내 얼굴을 자신의 타액으로 범벅으로 만드는 것으로 응원해 줬다.

‘좋아, 그럼 해보자고.’

양측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금 빵실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곧장 정신을 집중했다.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 긴장되는구만.’

눈을 감고 발밑에 흐르는 용맥의 흐름을 느꼈다.

원래라면 우리가 자연스레 밟고 다니는 용맥은 그 거대한 흐름 때문에 오히려 존재감을 느끼기 힘든 게 정상.

물 밖에서야 물에 맞아서 젖는 게 느껴지지만, 물속으로 들어가면 젖는다는 감각 자체를 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에 한번 용맥의 흐름을 감지하자, 거대한 기의 흐름이 내게 짓쳐들어오는 것을 느껴야 했다.

‘큭, 화끈하게도 오는구만!’

용맥이란 그런 것이었다.

한번 인지하는 순간 어느새 내게 노도처럼 몰려오고 있었으니, 기실 그것은 내가 용맥이 흐르는 대지와 동화되었음을 뜻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오래 버티기 힘들 거대한 힘이었으니, 나는 곧장 혼원신공을 운용해 그 힘을 체내에서 순환시켰다.

‘이대로는, 빵실이도 못 버틴다.’

그나마 지금의 나니까 이 용맥의 흐름을 담을 수 있는 것이지, 이건 영수 새끼가 아니라 영수 성체에다 들이부어도 그 몸뚱이가 펑 하고 터져버릴 만한 어마어마한 거력이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빵실이의 빵뎅이를 잃게 되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손실을 잃게 될 터.

그 거력을 최대한 정화시켜 안정된 힘의 흐름으로 바꾸었고, 그것이 누군가의 체내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단계가 되었을 때 두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지금!”

외침과 동시에 체내의 힘은 빵실이에게 흘러들기 시작했고, 홍수월과 붉은 바위 일족의 주술사들은 앞다투어 달려들며 각자의 진언을 외웠다.

“흡……!”

“혈웅이시여……!”

우우우웅…….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누군가의 영험한 주언이 곧 실존하는 힘이 되었고, 그것은 빵실이에게 흘러가는 힘이 안정적으로 정찰하도록 만들어주었다.

“헥, 헥헥… 헥!!”

그리고 그 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헥!!”

빵실이의 헥헥거리는 소리가 폭발하듯 울려 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