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내리 휘둘러진 파산대부는 무고한 희생자를 반으로 쪼개며 틀어박혔다.
조금 전까지 당위혼이 서 있던 대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무슨 속도가!’
눈 감짝할 새에 목전에서 나타나선 그대로 도끼를 내리꽂는데,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두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였다.
때문에 속으로 크게 경악한 당위혼이었지만, 겉으론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다.
뒤로 물러서느라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고,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연이어 내리꽂히는 파산대부의 겉면을 후려쳤다.
쩌엉―!
“하하!! 잘 따라오는데!!”
자신의 공격이 튕겨 나갔음에도 투왕은 껄껄 웃었고, 당위혼은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측면을 노려 튕겨 내는 데 성공했으나, 반탄력이 손등의 뼈를 다 부술 듯 아려왔다.
‘멈추면 안 된다.’
이를 악물며 고통을 삼키고, 제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땅을 박차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튕겨 나간 도끼는 언제 자신이 궤도를 이탈했냐는 듯 다시금 대지를 후려치며 땅거죽을 뜯어냈고, 조금이라도 더 늦게 그곳에 있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절절히 느끼며 당위혼은 품에 손을 집어넣고 쓸 만한 암기를 물색했다.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저 무식한 도끼질이 주력인 투왕과 암기, 독 등을 다루는 자신이 전면전을 벌인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은 일.
계속해서 거리를 벌려야 했고, 그 틈에 변수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첫 번째로 선택된 것은,
후두둑―
“철질려(鐵蒺蔾)? 으하하! 내 아무리 멧돼지처럼 행동했다지만, 벌이는 수가 겨우 이 정도라는 건 너무 섭섭한데!”
끝이 뾰족한 철 조각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투왕과 당위혼 사이를 메운 철질려의 끝에는 독이 가득 묻어 있었고, 하나라도 밟으면 즉시 중독 증세를 일으킬 만한 극독으로만 엄선해서 흩뿌렸다.
그렇게 지면을 철질려로 메운 뒤 당위혼은 두 팔을 휘둘러 수십 개의 비침을 쏘아냈다.
“어이쿠!”
쏘아지는 비침에 맞서 투왕은 파산대부를 부채처럼 휘둘렀다.
그 거대한 도끼날의 옆면에 비침들이 부딪치자 티티팅 소리와 함께 튕겨 졌고, 투왕은 씨익 웃으며 파산대부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투척으로 승부를 보자는 건가? 재밌군. 투척이라면 나도 좀 하는데!”
다음 순간 투왕은 움켜쥔 파산대부를 힘껏 내던졌다.
부웅―!
살벌한 소리와 함께 파산대부가 원반처럼 날아들었다.
지금까지야 그 측면을 쳐내거나 하는 식으로 받아냈지만, 미친 원심력을 자랑하며 날아드는 파산대부는 감히 정면으로 받아내거나 흘릴 엄두도 들지 않았다.
곧장 땅바닥으로 몸을 숙이는 당위혼이었고, 그런 그의 위로 그림자가 졌다.
“하하, 내게 절을 하는 건가!”
콰아아앙!!
파산대부를 투척함과 동시에 철질려를 넘어 날아든 투왕이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천근추의 수법으로 중량을 늘임과 동시에 주먹을 내다 꽂는 강습!
바닥엔 거미줄과 같은 균열이 일었고, 데굴데굴 몸을 굴러 피해 낸 당위혼은 균열이 간 바닥을 박차고 몸을 일으키며 손을 튕겼다.
팅―!
언제 숨겨놨는지 날아드는 쇠 구슬 하나.
내공을 듬뿍 담은 쇠 구슬은 사람의 두개골도 쉽게 뚫을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으직―!
“큭큭.”
이마를 마주 내밀어 쇠 구슬을 으깨버린 투왕은 눈 위로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아내며 흉험하게 웃었다.
“구슬치기라도 하자는 겐가?”
‘…미친.’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함을 잃지 않는 당위혼마저 순간 아연해질 풍경.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멈칫했을 때,
“빈틈!”
어느 순간 거리를 좁힌 투왕이 면전에서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컥!!”
뒤로 나가떨어진 당위혼이 거칠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서둘러 두 팔을 겹쳐 방어해 냈음에도 그 충격을 온전히 받아내지 못했고, 직접 투왕의 주먹과 맞닿은 두 팔은 금이라도 간 듯 욱신욱신했다.
하지만 그 모습에도 투왕은 휘파람을 불었다.
“허. 분명 빈틈이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 충격을 덜어냈는가?’
“…쿨럭.”
온전히 받아내지 못했을 뿐, 정타로 맞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충격에 울혈이 치밀어올랐다.
그걸 억지로 틀어막은 덕분에 핏물 한 줄기가 입가에 흘러내렸고, 투왕은 파산대부를 향해 손을 뻗으려다가 멈췄다.
“흐흐, 오랜만에 박투로 즐겨볼까.”
허공섭물로 파산대부를 끌어당기려 했으나, 당위혼이 내비치는 투혼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도끼질을 하는 대신 주먹질을 하고 싶어졌고, 평생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투왕은 이번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두 주먹을 움켜쥐고 당위혼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아주오, 가주!”
아직 균형조차 제대로 잡지 못해 비틀거리는 당위혼이지만, 투왕은 이 어린 가주가 숨겨둔 패가 더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가 거리를 좁힐수록 그의 커다란 눈에 비친 당위혼의 모습이 커졌고,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좁혔을 땐 그 모습이 두 배쯤은 크게 보였다.
‘응? 두 배?’
아니, 아무리 가까워져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이크! 진짜 커졌잖아!!’
실제로도 두꺼비마냥 부푼 상대의 모습에 투왕은 위기감이 경종을 울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당위혼의 입이 열리며 눌러 참았던 사혈(死血)이 퍼부어졌다.
푸화아아악!!
“이… 치사한!!”
퍼부어진 건 핏물이 아니라 피 안개 수준이었다.
그것은 실제로도 사룡후(死龍吼)라 불리는 당가의 독공이었으며, 체내의 독성분을 독 안개로 만들어 숨결처럼 뿜어내는 무공이었다.
재빨리 온몸에 호신강기를 둘러 모공을 막고 숨을 참은 투왕이지만, 어느새 주변은 자욱한 독 안개로 가득 찬 뒤였다.
당위혼이 움직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뇌명타(雷鳴打).
쩌엉―!
차양십이수 중 쾌(快)를 상징하는 뇌명타가 투왕의 이마를 후려쳤다.
이미 반쯤 부서진 쇠 구슬이 박힌 이마는 뒤로 밀려나며 그의 시야를 가렸고,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삼절격(三絶擊).
퍼퍼퍽―
차양십이수의 연격을 상징하는 삼절격이 투왕의 양어깨와 복부에 번갈아 적중하며 그의 균형을 무너트렸고,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진천권(振天拳).
콰아아앙!!
마지막, 가장 강한 위력을 지닌 진천권이 그의 복부에 작렬하며 폭음을 일으켰다.
“오오오오!! 가주님!!!”
“저건 크다!!”
지켜보던 이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울려 퍼지는 타격음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고, 그 연계가 같은 무공을 익힌 방계들이 보고 감탄할 정도로 깔끔했다.
하지만,
“…….”
정작 그 연계를 성사시킨 당위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얕다. 아니, 얕은 수준이 아니라…….’
손끝에 남는 감각이 알려주는 절망적인 현실에 당위혼이 인상을 찌푸릴 때,
번쩍―
뒤로 들쳐 올려졌던 투왕의 두 주먹이 바닥을 내리찍으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후우우우웅!!
“크하!! 숨 참기 힘들구만?!”
거대한 바람이 독 안개를 걷어내고, 그 속에서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투왕이 몸을 폈다.
“과연, 제법이오! 당가주.”
척―
엄지를 세워 보이는 투왕의 모습은 누가 봐도 끔찍할 만큼 엉망진창이었지만, 그가 짓는 미소에는 터럭 한 점이 없었다.
“다만… 이래서야 후기지수 수준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겠는걸.”
분명 연계도 좋았고, 한 방 한 방의 위력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딱… 나쁘지만 않은 수준.’
후기지수들의 수준이라면 최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전장은 벽을 넘어서 천하를 오시할 이들이 노니는 곳이었다.
“보여줄 게 이 정도가 끝이라면, 과연 오늘 해가 뜰 때까지 버틸 수 있겠소?”
겨우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여흥도 여기서 끝일 수밖에.
투왕이 말아쥐었던 손을 펴 자신의 파산대부를 쥐려는 모습에 당위혼은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니다.”
“응?”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투왕은 뻗으려던 손을 멈췄다.
“뭐라고 하셨소?”
“옳은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내상에 의해 발생할 출혈, 그것을 독으로 바꾸며 흩뿌리는 과정에서 내상은 더더욱 악화되었다.
고작해야 반쯤 피해를 흘려낸 주먹 한 방을 맞았다기에는 치명적인 부상.
그런 부상을 웃으며 입힐 수 있는 괴물이 눈앞에 있다.
‘그런데… 그런 괴물을 상대로 나는 너무나도 안일하게 싸우려 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무언가를 대가로 바쳐야만 한다.
불꽃이 피어오르기 위해 장작이 필요하고,
꽃이 피기 위해 양분이 필요하듯,
세상은 언제나 합당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모두가 함께 동이 터 오르는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만한 대가를 져야 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내가 진다.’
구구구…….
“흐음?”
투왕은 뻗으려다가 멈추어버린 손을 까딱였다.
‘저게 뭐지?’
그들의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지기가 눈앞의 어린 가주에게 흡수되듯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평생 산에 살며,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볼 수 있는 투왕이었기에 그것을 좀 더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뭘 하려는 거지?’
그것은 몹시도 흥미로운 것.
뒤편에 있는 흑시문주나 흑상이었다면 그 모습에 문답무용으로 칼을 휘둘러 목을 따버렸겠지만,
‘이거… 너무 기대되잖아!!’
하필 여기 있는 게 투왕이었기에, 그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기현상에도 당위혼을 방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크게 뜨며 흘러가는 상황을 살폈다.
‘자연지기를 흡수하는 건가? 하지만 저렇게 무식하게 흡수해서야 금방 터져버릴 텐데?’
가만 지켜보는 와중에도 눈앞의 어린 가주는 주변의 자연지기를 계속해서 흡수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운기조식을 할 때 무인들이 자연지기를 흡수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라지만, 저렇게 대책 없이 흡수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결국 흡수한 자연지기는 내공으로 치환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렇게 흡수한 자연지기는 단전에 담아야만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
아무리 많은 자연지기를 흡수해 봐야 내공으로 바꿀 수 있는 한도는 정해져 있고, 그걸 넘어선다면 주화입마에 걸리기 십상이다.
‘저 정도 되는 이가 그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가공할 속도로 흡수되는 자연지기는 암만 봐도 이미 저 어린 가주의 한계치를 넘어선 지 한참은 된 듯했다.
그런데도 주변의 자연지기를 끌어들이는 행위는 도통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쯤 되자 문득 투왕의 머릿속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잠깐, 설마 자폭 하려는 건가?’
저 정도의 자연지기를 흡수한다면 인간의 몸이 폭탄처럼 펑 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만약, 그걸 이용할 수 있는 무공이 있다면…….
“자, 잠깐! 가주. 설마 자폭하려는 생각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다급히 손을 뻗는 순간,
“후우…….”
언제 그랬냐는 듯, 폭풍의 중심에 있는 듯하던 당위혼이 안정된 숨결을 내쉬며 눈을 떴다.
“기다려주어서 감사합니다, 투왕.”
“어, 어어?”
얼빠진 소리를 낸 투왕이 눈만 껌뻑거리다 머쓱해져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자폭하려던 거 아니었소?”
“예? 자폭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소리.
“저는 살아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동이 터 오르는 것을 봐야만 합니다.”
그 말에 투왕이 저 어린 가주가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가만 살펴보니, 과연 상대의 두 눈에는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렇게 투지로 가득한 모습으로 당위혼은 다시금 선언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 봅시다.”
나의 투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