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23화 (323/350)

323화

* * *

언젠가 그런 날이 있었다.

“형님.”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 자신의 어린 형님이 어디선가 주워온 강아지 한 마리랑 노는 걸 지켜보다가 무심결에 입을 열었다.

“형님께선, 어찌 그렇게 강하신 겁니까?”

“엥? 갑자ㄱ… 웁웁! 야, 이놈아! 잠깐만!”

자신과 놀던 중 다른 사람을 돌아보자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헥헥이’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대형을 마구마구 핥았다.

한참을 헥헥이와 어울리던 대형은 겨우겨우 녀석을 진정시켰고, 이내 녀석을 품에 안은 채 나를 돌아다봤다.

“강함의 비결? 거참. 네가 그런 걸 묻는 날도 오는구나.”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이상하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

헥헥이를 품에 안은 채 내 곁으로 다가온 대형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구나 강해지고 싶어하는 법. 그게 너라고 예외일 수 있겠느냐. 다만, 이 경우에는 한 가지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지.”

“어떤 것을 말입니까?”

“네가 원하는 것이, 나처럼 강해지는 방법인지. 혹은 네가 당장 강해질 방법인지를 말이다.”

결국 같은 말이 아닌가?

두 선택지를 비교하던 당위혼은 곧 답을 깨달았다.

‘차이가 있구나.’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조급함.’

전자는 큰 목표를 앞에 두고 천천히 걸어나가는 것이라면, 후자는 지금 당장 강해질 수단을 바란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나는, 조급했구나.’

대형의 눈에 비친 나는, 아무래도 후자였나 보다.

“…죄송합니다.”

“녀석, 뭘 죄송할 것까지야. 다만, 묻고 싶긴 하구나. 무엇이 너를 그리 조급하게 만들었느냐?”

너는 지금까지 잘해 왔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거늘.

어린 대형은 부드럽게 말하며 자신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온기가 느껴지는 따스한 손.

‘그래.’

사실은 알고 있었다.

대형이 자신을 대하는 것과 다른 이들을 대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음을.

그래서 더더욱 조급함이 느껴졌다.

‘어째서일까. 이렇게도 가까이 있는데, 이렇게나 금방이라도 떠나버릴 것만 같은 기분은.’

단순히 기분 탓이라 하기에 그 불안함은 너무나 선명했다.

항상 곁에 있어도 대형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항상 함께 있어도 대형은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지난 일 년간, 가족같이 지내며 실제로도 한가족이 된 그들이지만―

‘우린, 대형에 대해 아는 게 너무나 없다.’

대형과 만나기 이전의 대형에 대해선 아무도 아는 게 없다.

그저 머나먼 곳에서 온 직계라는 자기소개만 있을 뿐, 그 뒤로 누구도 자세한 것을 캐묻지 않았다.

그리하는 것이 가족이라 여겼고, 필요하다면 언젠가 알려 주리라 여겼으니까.

사실 지금도 그것이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다.

다만, 불안했다.

‘바람처럼 온 것은, 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는 법이니까.’

대형은 우리를 단련시켜 주었다.

온갖 실전된 비급을 돌려주었고, 귀한 약재와 값비싼 영약을 지원해 주었다.

몇 가지 일들을 자신과 방계들에게 맡기기도 했지만, 그건 아주 일부일 뿐 정말 중대한 일들은 스스로가 나서서 처리했다.

가문이 성장하기 위한 외적인 모든 일들을 대형이 도맡아 처리하다시피 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당가였다.

그렇다면, 이건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대형은,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행동들을 하였을까.’

사람은 누구나 얻을 게 있어 투자를 하는 법이다.

그것을 단순히 속물이다, 이해득실적이다…라고 말한다면 너무나 속 편한 이야기다.

만일, 어떤 관계가 있고 그 관계가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과연 평화로울 수 있을까?

‘아니,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쪽은 너무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가 있다면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무언가’가 없다면?

‘오로지 한쪽의 의지만으로 유지되는 일방적인 관계. 그 반대쪽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와… 아니, 당가와 대형의 관계였다.

‘아.’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깨닫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사실 전자와 후자 둘 다였다는 것을.

‘대형처럼 강해지고 싶고, 그렇게 강해져서 대형과 함께하고 싶다.’

생각보다 자신의 욕심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곁에 있던 대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냐, 머리 아프게.”

“저는…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세상에 약해지고 싶은 녀석이 어디 있겠냐?”

흐음.

어찌하면 좋을까.

대형은 잠깐 골몰히 생각하다가 아, 하고 무언가를 떠올린 듯 탄성을 흘렸다.

“그럼, 우선 목표부터 정해 보는 게 어떻겠냐?”

“목표 말입니까?”

그런 것이라면 있다.

다름 아닌…….

“야야, 아서라. 사람에겐 저마다 목표로 하는 점이 다른 거야. 나와 네가 같은 가족이라지만, 지향점은 또 다를 수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닮을 게 없어서 날 닮으려 하냐.

“넌 당가의 가주잖아. 그럼, 당가에 내려오는 전설적인 경지를 목표로 하는 게 어떠냐?”

“전설적인 경지라면…….”

그게 무엇인지는 자신도 알았다.

모든 독인들이라면 꿈에 그리는 지고의 경지.

그 경지를 속으로 생각할 때, 대형은 불쑥 제안해 왔다.

“네가 그 경지라도 나아간다면, 내가 알려줄 것이 하나 있다. 물론, 그 지식은 워낙 위험한 것인지라 너는 그것을 참고만 해야 하지만.”

“대형께서 따로 연구한 것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내가 한 건 아니고, 우리 조상님들이 한 것이지. 다만, 그 위험성이 너무나도 크기에 은폐해야 했던.”

저런 것은 또 어떻게 아는 걸까?

불쑥불쑥 다른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하는 것들을 가져와 자신들에게 알려 주는 대형의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지식은 이제 와서 하나하나 따지는 것도 우스울 지경이었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형은 하던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렇기에 이건 연구 일지와 같은 거야. 나는 그 연구 일지의 내용을 네게 말해 주려는 것이고. 말하자면 가설과 같은 것이고, 완벽히 그 경지로 나아가는 정설로 채택되지는 않았지. 그럼에도 그 연구의 깊이는 경이로울 정도로 깊고 넓으며, 위험해.”

“…위험하단 말입니까?”

“연구한 선조님들의 말로가 영 좋지 않았거든. 애초에 이 연구 자체가 광기(狂氣)의 결실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한 가문이 존재 이래로 평생 숙원으로 삼아 왔던 과업이다.

당가가 역대급으로 흥했던 시기에 대규모의 자본이 유치되며 시작된 연구는 사람과 영약, 독을 갈아 넣다시피 하여 진행되었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단순히 실패했다면 그것으로 끝이었겠지만, 우리 선조님들은 당시 오대세가로는 남궁세가를, 구파일방으로는 무당파 싸대기 때릴 정도로 잘나가셨거든. 본인들의 실패를 쉬이 인정할 수 없었고, 무수한 실패에도 계속계속 연구를 이어 나가셨지. 그러다, 결국 선을 넘고 말았고…….”

금기(禁忌)가 되었다.

“굳이 그게 어떤 일인지까지는 일일이 말할 필요 없겠지. 그 이후 이 연구 기록은 쭉 봉인되어 왔다. 하지만 말했듯, 문제는 그들이 금기를 넘었다는 사실일 뿐, 연구 내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 아니, 오히려 당가의 독공과 무학의 집대성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가 완성도가 높다. 심지어 당대 내로라하는 무학자들과 무인들이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채 그저 지향점만을 지정해 두었으니 네가 익히고 발전해 나가기에 적합하지.”

그러니까,

“알겠지? 이제부터 알려줄 건 참고만 하는 거야. 결코 맹신해서도 안 되고 그들이 선을 넘었다는 부분은 결코 발을 디뎌서는 안 된다. 그걸 지킬 수만 있다면, 안전지대까지 정해진 무학(武學)이니까.”

오로지 너니까 알려주는 것이라고.

어떤 고난과 역경의 순간에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정도를 걸어와 당가를 지켜온 너이기에 믿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대형의 그런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했고,

‘…죄송합니다, 대형.’

그 목소리에 웃으며 화답했다.

‘아무래도, 저는 말 안 듣는 동생인가 봅니다.’

* * *

구구구…….

미증유의 힘이 넘쳐났다.

주변 자연지기를 마구잡이로 흡수한 육신은 활력으로 넘치고, 단전에선 어마어마한 내공이 들끓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두근두근하군.”

“걱정하지 마십시오, 실망시켜 드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흐흐, 그럼… 한번 봐볼까!”

콰앙!!

일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던 투왕 조취산이 다시금 당위혼의 측면에서 나타나 주먹을 내질렀다.

‘보인다!’

원래라면 채 좇지도 못한 속도였으나, 지금의 그에게는 조취산의 움직임이 보였다.

아슬아슬한 속도로 몸을 숙여 권격을 피해 냈고, 그에 그치지 않고 옆구리를 향해 일장을 때려 박았다.

쩌엉―!!

“크흐!”

이전까진 미동도 하지 않던 조취산의 몸이 괴로운 듯 들썩였다. 그러나 그 고통을 꿀꺽 삼키며 조취산은 뻗었던 손을 회수하여 당위혼의 뒷목을 움켜잡아 측면의 돌벽으로 내던졌다.

콰아앙!!

돌벽이 박살 나며 당위혼의 몸이 반쯤 파묻혔고, 그 위로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사람이 저 안에 있다면 온 관절이 다 박살 나고 뼈와 근육이 짓이겨져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

퓨퓨퓩!

그러나 조취산은 결코 여기서 끝이 아니라 확신했고, 그에 보답하듯 뿌옇게 피어난 먼지를 꿰뚫고 그 안에서 십수 개의 쇠 구슬이 쏘아져 나왔다.

“흥!”

이 정도쯤이야, 하며 마주 주먹을 내지르려던 순간―

쩌적―

‘어……?’

날아들던 쇠 구슬은 갑자기 중간에 스스로 터져버리더니, 무수한 파편이 되어 조취산의 전신을 휩쓸었다.

‘이런!!’

재빨리 호신강기를 강화해 그것들을 받아냈지만, 때문에 그의 경계에 빈틈이 생겨났다.

그것이 시선 끌기임을 깨달았을 땐 어느새 뒤편에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고, 재빨리 몸을 빼냈음에도 서걱― 하는 절삭음과 함께 종아리 쪽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당했군.’

베인 깊이가 얕은지 깊은지는 중요치 않았다. 저 비수를 다루는 이는 천하제일독문의 가주.

비수의 날에 묻은 극독이 순식간에 체내로 침투하는 것을 깨닫자마자 조취산은 재빨리 내공을 운용해 독의 운행을 막으려 했다.

그런데,

‘내공이?!’

예상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 내공.

무언가 체내에서 돌덩이처럼 내공의 운행을 막고 있었고, 그 발원지를 쫓으니 조금 전 일장을 허용한 옆구리라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 잘 되지 않으시나 봅니다.”

그 순간 들려오는 당위혼의 목소리.

“……!”

조취산은 당황하면서도 두 팔을 겹쳐 다가올 공격을 막았으나,

탁―

다음 차례에 다가온 것은 자신의 두 팔 위에 가볍게 얹는 듯한 손길이 고작이었다.

‘뭐?’

그 기묘함에 조취산이 눈을 부릅떴을 때, 그 자신의 팔을 사이에 두고 자신을 바라보는 당위혼의 두 눈이 보였다.

그건 마치 함정에 빠진 사냥감을 보는 사냥꾼의 눈이었고, 여기까지 당했음을 깨달은 조취산은 재빨리 두 팔을 떼 내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그러나 두 팔은 마치 아교라도 붙인 듯 떼어지지 않았으니,

‘뭐 이런 수법이!!’

단단히 달라붙은 두 팔과 당위혼의 손 사이로 끔찍한 무언가가 흘러드는 걸 느꼈다.

“검의 극의에 이른 자, 검(劍)과 신(身)이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나니 이를 검신합일이라 부르고.”

그 사이에서 당위혼의 덤덤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오니,

“독(毒)의 극의에 이른 자, 육신이 곧 독(毒)이 되는 경지에 이르니.”

이를,

“독인지경(毒人之境)이라 칭한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이 조취산의 거체를 뒤로 날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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