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그 옛날, 당가의 독인들은 말했다.
“우리들은 단점이 너무나 많소. 다른 놈들은 칼 한 자루 차면 검이 부서질 때까지 싸울 수 있는데, 우린 독과 암기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며 싸워야 하오!”
“그나마 칼 쓰는 놈이면 다행이지. 주먹 쓰는 놈들은 어떻고? 우리가 갖은 돈 들여가며 비싼 독, 비싼 암기 만들 때 그들은 무일푼으로 강도 짓을 행하고 있소!”
“우리도 좀 바뀌어야 하오!!”
정말 선조님들이 저런 말씀들을 하셨을까?
당위혼은 영 아닌 것 같았지만, 아무튼 그의 대형은 독인지경의 시초가 저런 불만의 제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굳이 귀찮게 독과 암기를 주렁주렁 달고 있지 않더라도 무한히 사용할 수 있을 것. 신검합일에 이른 검사들이 풀 떼기만 들어도 심검이니 뭐니 하며 다루듯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심독(心毒)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어떤 무인도 버틸 수 있을 전설적인 극독, 무형지독(無形之毒)을 다룰 수 있을 것.”
하나하나 붙이다 보니 말도 안 되는 형태의 것이 목표란 이름으로 덩어리지기 시작했단다.
“그게… 가능한 것입니까?”
“모르지. 일단 꿈은 크게 꾸라는 말이 있지 않냐. 어쨌거나 선조님들은 그런 허황되기까지 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광기에 가까운 연구를 이어 나갔다.”
그 결말이 결국 좋게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 연구는 여러 가지 부산물을 만들어냈다.
그 극단적인 부산물이 또 다른 당가칠대금기인 사화(死花)가 되는 등의 일도 있었지만, 독인지경에 대한 연구는 그들이 꿈으로 그리던 연구에 어느 정도 윤곽을 그려 나갔고,
“그 결과, 순환(循環)이라는 하나의 해답에 도달하게 되었지.”
그 자체로 무한할 수 없다면, 무한이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들이 내놓은 답은 거대한 순환이었다.
하늘에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고, 비가 물이 되어 흐르면 물은 대해로 흘러가 다시 구름이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바퀴처럼 순환하듯, 그 바퀴를 돌릴 수만 있다면 무한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 거대한 바퀴를 돌릴만한 힘이다. 일단 바퀴를 돌린 다음에야 뭘 하지 않겠냐?”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 막대한 자연지기를 흡수해야 했다.
그들의 선조는 이 과정부터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했지만, 다행히 그의 대형은 이 부분을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심법을 하나 알려주마. 심법의 이름은 혼원(混元). 천지 만물의 힘을 담기 위한 그릇이 되는 신공이다.”
대형이 직접 창안한 신공이라며 알려준 그것은 과연 신공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공능을 지니고 있었다.
‘…큭.’
몇몇 부분에서 자신을 위해 수정했다는 혼원신공은 발동시키자마자 막대한 자연지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양이 얼마나 방대한지, 혈맥은 물론이고 온몸이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혼원신공은 그 어마어마한 기운을 수용하는 데 성공했고, 수용된 기운은 곧 거대한 수레바퀴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순환(循環).
당위혼을 구성하던 모든 것들이 녹아내리고, 그것은 거대한 독이 되었다.
인간의 껍데기를 둘러쓰고 있지만, 이미 자신의 육신은 독의 정화라 부를 수 있었다.
“크하!!”
자신을 짓누른 돌무더기들을 거치게 밀어내며 조취산이 몸을 일으켰다.
“짜릿짜릿하군.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내 두 팔이 아주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렸겠어.”
당위혼의 손과 마주했던 두 팔에는 큼지막한 검붉은 무늬가 생겨나 있었다. 순환(循環)의 범위를 확장해 조취산의 두 팔까지 녹여버리려 했지만, 찰나의 순간 그는 반응해 그 순환의 흐름을 깨트려버렸다.
조금 전 일어난 폭발은 사실 조취산이 당하기 직전 만들어낸 방어 행동이었다.
“흐흐, 대체 뭐지? 기묘한 흐름이 가주의 체내에서 일어나고 있군. 그 순환은 끊임없이 거대한 동력을 만들고 있고… 지독히도 위험해.”
그 순환 흐름에 뒤섞이는 것만으로 자신의 팔이 녹아내릴 뻔했다. 겨우 떼어냈지만, 그 여파에 당한 팔뚝은 지독한 독에 중독되어 버렸다.
“스스로에게는 동력이 되고 적에게는 극독이 된다라. 무척이나 불공평한 수법이군.”
분명 거기까지만 본다면 실로 불합리한 무공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무공이 있을 수는 없지. 게다가, 자세히는 몰라도 내가 보기에 그 수법의 끝이 결코 좋아 보이지는 않는 데 말일세.”
조취산은 어렴풋이 저것이 무슨 수법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미처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 그렇게 발생한 동력은 기존에는 감히 낼 수 없던 어마어마한 거력을 선사하겠지만, 그럼 당연한 의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감당치 못할 거대한 수레바퀴를 회전시켰다. 그렇다면, 그 수레바퀴의 회전을 자신의 의지로 멈출 수 있을까?’
하다못해 영약조차 잘못 먹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는데, 저 정도의 거대한 기운을 사람이 감당하고 있는 게 말이나 되겠냐고.
“눈 내린 설산의 정상에서 굴러떨어지기 시작한 눈덩이는 스스로 멈출 수 없지. 가주가 딱 그 모양이군.”
단번에 자신을 꿰뚫어 본 투왕의 평가에 당위혼은 대답 대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정답이군!’
콰앙!!
두 주먹이 무식하게 맞부딪치며 굉음을 터트렸다.
‘그사이에 더 강해진 건가?’
느껴지는 반탄력이 보통이 아니다.
암만 그래도 정면 대결은 밀렸던 것 같은데, 이젠 그럭저럭 따라오고 있다.
‘그렇군.’
금술이구나.
쾅, 콰아앙!!
주먹을 계속해서 맞부딪치며 조취산은 확신했다.
‘세상에 온갖 무공이 있더라도, 일시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게 해주는 무공은 대게 마공으로 분류되지.’
원래라면 닿을 수 없는 영역을 임시로 끌어다 쓰게 해주는 무공.
효과만 듣는다면 이렇게 좋은 게 있을 수 있나 싶지만, 대개 그런 무공이 마공으로 분류되고 금술로 치부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주! 무슨 대가를 지불하기로 한 겐가! 목숨? 아니지, 살아 돌아간다고 했으니 그런 걸 대가로 걸었을 리는 없겠지!”
말을 하는 와중에도 점점 그 위력은 커져 간다.
거대한 화마와 같이, 피어오른 불꽃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눈덩이처럼 그 몸을 불려갔다.
저걸 과연 스스로 멈출 수 있을까?
‘아하.’
스스로 몸집을 불리기 시작해 도저히 자의로는 멈출 수 없게 된 불꽃을 꺼트리는 방법은 애초에 하나뿐.
“무공이군. 이 한순간의 싸움을 위해, 무공을 대가로 바친 겐가!”
“……!”
정확했다.
순간 당위혼의 동공이 움찔 떨렸고, 조취산은 자신이 정답을 맞혔음을 깨닫고 광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 화끈하군!! 한 번의 싸움에 모든 걸 태운다고?”
한계를 넘게 해주는 대가로 앞으로의 가능성을 전부 불살라버리는 거대한 불꽃.
그 해결책은 실로 간단했다.
‘싸워주지 않으면 그만이지.’
저런 불꽃에는 맞불을 놓는다거나 어설프게 물을 뿌려 진화하는 건 하책이다.
그저 자리를 피하고 저 불꽃이 제풀에 꺼지기를 기다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 생에 최고의 싸움이 되겠어!!”
걸려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투왕(鬪王)의 이명을 얻은 조취산은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어울려 주겠소, 가주!!”
콰콰콰쾅!!
맞부딪치는 주먹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굉음이 점점 더 커져 갔다.
이제는 언뜻 비슷해진 수준으로 끌어올려진 위력.
거기다,
‘크흐흐흐, 더더욱 지독해졌군!’
지독해진 것은 주먹을 맞부딪칠 때마다 침투해 오는 독성 또한 마찬가지.
‘내가 피하지 않을 것을 알고, 그걸 이용해서 일부러 주먹을 맞부딪치고 있구나!’
일권일장에 실린 독이 체내에 침투하며 자신은 점점 약해지는데, 상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져만 가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이 극단적인 불리함이 지속될 수 있을까?
스스로 한계치를 시험하듯 투왕은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내던졌고,
‘…아?’
어느 순간, 자신의 두 다리가 의지를 벗어나 멋대로 삐걱거리는 것을 느꼈다.
‘언제?’
부지불식간에 조취산의 육신을 잠식한 독이 하반신에 뿌리를 뻗어 두 다리의 근육과 관절을 어긋나게 만든 것이다.
‘아, 맞다. 이 자는… 사천당문의 가주였지.’
무식하리만치 마주 주먹을 뻗어오는 기세에 순간적으로 망각했다. 아니, 상대가 자신을 망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끊임없이 마주 주먹을 부딪쳐 자신의 두 주먹에 집중하게 만들고, 그 사고의 빈틈을 노려 독을 쑤셔 넣은 것을.
‘독공의 고수가 무서운 것은… 그 은밀함이 아니라 그 지독함이라더니…….’
몰래 배후에서 비수를 찔러넣거나, 음식물에 독을 타는 것만이 하독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은 하수나 할 법한 착각.
상대에 맞춰,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 극독을 쑤셔 넣는 것이 진정한 독공의 고수가 보일 수 있는 조예.
정확히 자신의 심리를 꿰뚫고, 그에 맞춰 자신의 온몸을 제물로 바쳐 기어코 빈틈을 만들어 낸 상대의 술수에 투왕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즐기는 자와 목숨을 건 자의 차이가 이 정도인 건가?’
분명 상대와 자신의 격차는 컸다.
하지만 순수하게 즐기려 한 자신과 달리 목숨까지 다 바쳐 이기려 한 상대가 이렇게 승리를 따낸 것이다.
‘훌륭하군.’
역시 인생이란 생과 사를 넘나드는 투쟁의 연속.
누가 외줄 타기를 더 기가 막히게 하는 지가 관건인 싸움이었고, 아무래도 이번 싸움은 저쪽이 더욱 기가 막힌 줄타기를 보인 듯했다.
‘내가, 졌군.’
패인을 따진다면 여러 가지가 있다.
그동안 자신은 승리뿐인 싸움에 너무나 무료했던 것 같다.
투쟁이란 죽음과 삶을 동시에 벗 삼아야 하거늘, 오로지 삶과 벗 삼으며 싸워왔더니 투쟁답지 않은 투쟁에 너무나 진절머리가 났던 것이다.
그 덕분에 죽음을 각오해야 할 투쟁을 즐기기만 했으니, 한 끗 차이의 승부가 패배로 결착된들 이상할 게 없어져 버렸다.
‘다시 싸운다면…….’
한 번 만 더 다시 싸운다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리 생각해 봤자 그건 부질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투쟁이란 되돌릴 수 없는 한 끗 차이의 사투이기에 가치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이 이리도 목숨을 걸 만한 것이었다.
‘이제, 다섯 수 정도인가?’
수 싸움에 도가 튼 투왕이었기에,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 속에서 앞으로 몇 번의 수가 오가면 자신의 죽음이 목전에 들이밀어 질지도 뚜렷이 직감했다.
‘앞으로 넷.’
맞부딪친 주먹이 튕겨 나가고,
‘앞으로 셋.’
연이은 타격에 관절이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둘… 큭!’
벌려진 틈을 놓치지 않고 당위혼이 바짝 붙으며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니,
‘끝…인가.’
투왕은 두 눈을 부릅뜨며 다가올 자신의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푸욱!!
마지막 순간 들려온 파육음.
“쿨…럭!”
“아……?”
스스로의 죽음에서 눈 돌리지 않기 위해 부릅뜬 눈으로 다가오는 당위혼을 바라보던 조취산은 눈에 삐쭉 튀어나온 검날이 보였다.
그것은, 당위혼의 등 뒤에서부터 박혀 완전히 관통한 채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으니,
“승부는 끝이 났소, 투왕.”
서늘한 목소리의 주인이 담담히 승부의 끝을 고했고,
“이… 이……!!”
투왕의 귓가에 무언가 뚝 끊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흑시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