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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329화 (329/350)

329화

지금 와서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나는 흑상 이 새끼가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거 관상부터 완전 매국노 관상이잖아?

원래 그냥 나쁜 새끼보다 똑똑하게 나쁜 새끼가 더 위험하다고, 이놈이 딱 그랬다.

그래, 그렇긴 한데.

“그렇다 해도, 네 도움이 있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한 가지는 인정하긴 해야 했다.

지금이라면 몰라도, 예전에 진짜 쥐뿔도 없을 때는 이놈 도움 없었다면 뭐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란 사실.

“그래서 우리 계산이 굉장히 복잡해.”

당장 죽일까 싶은데도, 사실 얘랑 나랑 그렇게 큰 원수 사이는 또 아니란 말이지.

“따지고 보면 득은 있어도 아직 실은 없으니까. 정작 우리한테 해를 입힌 새끼들은 저기 협곡 안에서 발 뻗고 잠만 잘 자고 있으니까.”

이 복잡한 계산을 어찌할꼬, 하다가 결국 한숨만 내쉬며 손을 까딱였다.

“좋게 말하마. 가라. 가서 십 년간 쥐죽은 듯 박혀 있어.”

“…불가침 조약을 맺자는 말씀이십니까?”

“응, 정말 좋은 조건이지?”

마음 같으면 여기서 너희를 싹 다 갈아버릴 수도 있어.

굳이 뒷말을 덧붙이진 않았지만, 내 의사 자체는 확실히 전해졌다.

“하하…….”

“뭘 눈깔을 굴려. 여기 없는 애들이라도 찾아? 걔들 있으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아?”

“그건… 아니겠지요.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정말, 같은 사람은 맞으십니까?”

녀석의 눈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굳이 자신의 무력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제 보니 이 녀석도 벽을 넘은 게 확실한 수준의 고수.

그런 놈이기에 내가 흑시문주를 팔 병신으로 만드는 것을 보며,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했을 것이다.

‘내가, 녀석들의 상성이란 것을.’

사패천을 구성하는 집단은 넷.

흑상.

녹림.

흑시문.

만검산장.

이중 흑상이야 애초부터 무력 수준이 떨어지니 논외고, 녹림은 인구수가 곧 최대 전력인 집단이다. 하지만 당가의 독은 질적으로 떨어지고 양적으로 승부하는 놈들에게 쥐약이다.

‘거기서 승부를 보려 한 게 흑시문 놈들이었겠지.’

비슷하게 독을 쓰는 문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강시공을 익힌 이들은 일반적으로 독에 면역이라는 게 통념이다. 그러나 그 통념은 내가 정면에서 박살 내줌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그것도, 그들의 독물을 완벽히 분석하고, 농락하며.

‘그러니 남는 것은 만검산장뿐 이겠지만, 보아하니 횟수 제한이 다 된 것 같고.’

애초부터 횟수 제한이 존재해서 철저히 필요한 경우에만 그들을 기용했을 그들이다.

그런데 정천맹과의 결착을 맺을지도 모르는 이 중요한 대전에서 그들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들을 기용할 기회는 진작 다 써버렸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남은 전투는 흑시문을 이용해 죽은 고수들을 강시로 만들어 전력 차를 메꾸려 했겠지만, 그마저도 물 건너가 버렸지.’

셈이 빠른 녀석이라면 이미 스스로의 유불리함에 대한 계산은 끝마쳤을 것이다.

결국, 녀석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십 년의 대계가 이렇게 허망하리만치 끝을 맺을 줄이야.”

“인마, 이 정도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 아니냐? 몸 성히 돌려보내 준다니까?”

“연기는 그쯤 하셔도 됩니다. 뼛속까지 우려 드실 생각이시면서.”

“…들켰냐?”

역시 똑똑한 놈이다.

녀석은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빛에서,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자신을 살려 보내는지 완벽히 이해한 모습이었다.

“…천하를 거머쥘 기회가 왔는데도 이리 허망하게 실패하다니. 후후후.”

씁쓸한 웃음과 함께 그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한 시대를 손에 쥘 수 있었던 간웅이 퇴장하는 순간이었다.

* * *

사악한 음모를 꾸미던 사패천의 음모를 분쇄하고, 나는 무림의 평화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라고 끝낸다면 참 좋겠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경사났네, 경사났어 하는 식의 끝맺음을 맺기는 쉽지 않았다.

우선, 살릴 사람들은 살리고 봐야 했으니까.

“형님!! 당주 형님!!”

“죽으면 안 됩니다!! 형님!!!”

“어헝헝, 대형!! 우리 당주 형님 좀 살려주십시쇼!!”

방계 녀석들은 지들도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 당지명을 살려달라고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알겠으니 좀 놔 봐! 아니, 안 놔?”

“못 놓습니다!! 절대 못 놓습니다!!”

“살려주신다는 확답을 받기 전에는 못 놓습니다!!”

허허.

이 새끼들은 나를 무슨 생사신의 정도로 아는 걸까?

염라대왕과 동기 동창하는 사이라서 생사부에 붓 몇 번 끄적이면 ‘옜다, 수명 십 년 추가!’ 하는 그런 놈으로 아는 걸까?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

염라대왕과 동기 동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생사신의(生死神醫)라 불릴 정도의 의술은 겸비하고 있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놔야 이 자식을 살리든 말든 할 거 아니냐.”

“헉!! 저, 정말 살려주신다는 것입니까?”

“그럼, 못 살릴 거 같았으면 왜 잡고 늘어졌어? 사이좋게 너희 맏형이랑 입원하고 싶은 거 아니면 놔라.”

“넵!!”

녀석들은 재빨리 제 손들을 놓고 떨어졌고, 나는 실신한 당지명을 들쳐업고 근처 마을에서 빌린 의방에다 내려놨다.

그리고,

“빌어먹을 놈.”

혹시 몰라 당가에 들렀을 때, 가져온 것들을 쏟듯이 바닥에 내려놓았다.

“미친놈. 정신 나간 놈. 아주 뒈지려고 환장했지?”

녀석들에겐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지명이 놈의 상태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생사신의(生死神醫)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서, 진짜 죽음의 구렁텅이에 있는 놈을 물고기 낚듯 쉽사리 건져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남들은 절대 못 해내는 것을 그나마 시도해 볼 가능성이 일 푼이라도 생겼다는 차이가 있을 뿐.

“기혈은 다 막혀 있고… 미친놈, 내장 기관이며… 관절이며, 성한 부분을 찾는 게 더 빠르겠군.”

강시 놈들의 목을 따고 왔더니, 그보다 더한 산송장이 여기 누워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이건 단순히 맞는 사람이 잘 맞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이놈을 이렇게 만든 놈이, 최대한 죽지 않는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힘 조절을 가하며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을 주겠다고 작정해야 이를 만한 상태였다.

보통 사람들은 이 꼴이 되기 전 다 죽는다.

열 명 중 아홉 꼴로 죽는 게 아니라, 일만 명 중 구천구백구십구 명은 죽는다.

“대체, 뭘 위해 이렇게 버틴 거냐?”

이 정도면 부상이 심해져서 죽는 게 아니라, 고통에 의해 사람의 뇌가 망가져 죽어버릴 수준이다.

“빌어먹을 놈. 이 정신 나간 놈!”

풀어헤친 금침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 정도면, 혈도에 하나하나 꽂는 일방적인 의술로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그래, 일방적인 방법으로는.

“…버텨라. 네놈을 살릴 방법은 나로서도 하나뿐이니까.”

대환단을 먹고, 옛 경지를 되찾다시피 하였음에도 식은땀이 흐르고 긴장 때문에 손발에 힘이 들어갔다.

“무공이란 나 하나 잘하면 끝날 일. 하지만 의술이란 환자의 노력 여하도 필요하다. 잘 된다면 너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육신을 얻게 되겠지만, 실패한다면 입도 뻥끗하지 못한 채 천참만륙(千斬萬戮)의 고통 속에 헤매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내 손으로 너를 편하게 해줘야만 하고.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정신 똑바로 차려라.”

어차피 들리지 않을 말을 홀로 되뇌며 허공섭물로 띄어 올린 금침들에 일정한 비율로 독기(毒氣)를 주입했다.

지금부터 할 것은 원래 수백 종의 약물을 필요로 했지만, 다행히도 예전의 경지를 찾은 내 몸은 만독불침이자 천하독물의 보고가 된 상태.

체내에서 자아낸 독기가 수백 종의 약물이 가진 약효를 대신하며 금침에 차올랐고, 그것이 가장 완벽한 황금비가 되었을 때 일제히 녀석의 체내에 투입되었다.

당가칠대금기(唐家七大禁忌).

생사환혼대법(生死還魂大法).

퓨퓨퓩―

일천 개의 금침이 기경팔맥(奇經八脈)과 십이경맥(十二經脈)이 연결된 경락들에 동시에 파고들었다.

소음과 소양에 해당하는 곳에는 하나의 금침이, 궐음과 양명에는 두 개의 금침이, 태양과 태음의 맥에는 세 개의 금침들이 박혀 들었다.

‘진짜, 죽기 직전까지 처맞았군. 제대로 된 혈도가 없어.’

원래도 혈도가 가진 고유한 기운의 크기에 따라 박아넣을 금침의 개수가 다르지만, 지금 지명이 놈의 육신은 워낙에 엉망진창이라 본래 혈도가 가졌어야 할 기운조차 제각기였다.

관절이 찌부러지고 내장이 터진 곳도 한둘이 아니기에, 경맥의 상태가 뒤틀린 곳에는 평소보다 적거나 많은 양의 금침을 박아 넣어야 했고, 하나하나가 전해져 내려오는 금술의 내용을 재해석하여 임의적으로 시술을 진행해야 했다.

덕분에, 그 난이도는 수백 배로 올라간다.

“끄으으…….”

“참아, 이 새끼야. 못 버티면 너 진짜 뒈져.”

녀석의 입에서도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이 대법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서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 내는 금술이었으니까.

“알고 있냐, 지명아? 원래 이건 우리 선조님들 중 하나가, 구음절맥(九陰絶脈)을 타고난 자기 딸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 낸 대법이었다.”

한 번 박힌 금침은 그 자리에서 계속하여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

금침의 역할은 막힌 기혈을 뚫고, 엉킨 혈맥을 풀어주는 것이기에, 그 효력이 보일 때마다 뽑아서 새로운 곳에 재차 박아 넣어야 했다.

“구음절맥이 뭔지는 네 녀석도 알지? 날 때부터 음기가 너무 강해 혈맥이 틀어막힌 이들. 제대로 기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름시름 앓다 단명하는 이들이 걸린 절맥증이다. 너 역시 당가인이면 알고 있을 거다. 구음절맥에 걸린 이들은, 스물을 넘기기 전에 죽는다는 것을.”

허공섭물을 통해 금침을 수십 번 꽂았다 빼기를 반복하면서도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 녀석이 과연 내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글쎄.

나는 바삐 내공을 움직여 금침대법을 수행하며 그 비사를 읊어갔다.

“하지만 우리 선조님은, 그러니까 당시의 가주였던 양반은 그런 운명이 너무나도 싫었단다. 해서, 방법을 찾아냈지. 음기가 너무 강해 혈맥을 뚫을 수가 없는 수준이라면, 그 혈맥 자체를 바꿔버리자고.”

인간이 제각기 타고난 생김새가 다르다지만, 혈맥은 모두가 일맥상통했다.

그것이 인간이란 종족이 지닌 특성이니까.

“제정신이라면 그런 짓을 할 수 없었겠지만, 우리 선조님께선 제정신이 아니셨다더라. 게다가, 하필 이런 금술은 꼭 당가가 전성기를 달릴 때만 만들어지거든. 당시 선조님은 무공으로도 전 무림에서 한 손 안에 드셨다더니, 못할 게 없었겠지.”

모두가 불가능을 외칠 때, 오로지 그 양반만 가능하다고 끝까지 대법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 결과 대법은 성공했다. 하지만 또한 실패해 버렸지.”

당가에는 또 하나의 금기가 추가되어 버렸다.

“어째서인 줄 아느냐?”

대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니, 대법 자체로는 너무나 뛰어난 의술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그것이 금기라 불린 이유는, 그만한 대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따르는 고통이라거나, 대법에 요구되는 막대한 재화라거나 하는 것 등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생명의 가치는 오로지 생명으로만 치를 수 있는 법. 생사환혼대법의 마지막 요구 사항은, 시술자의 진원진기였기 때문이지.”

다른 모든 것은 금침과 영약, 값비싼 약재로 대신할 수 있었지만, 혈맥을 바꾸는 과정 중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켜 줄 진원진기는 결국 다른 누군가가 대체해 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건 결코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일천 개의 금침에 꾸준히 공급되어야 할 진원진기는 오로지 한 명이 계속해서 투입해야 하는 순수성이 필수였으니까.

그러니까,

“알겠냐? 이 자식아. 너를 위해, 내 이십 년의 수명을 바치겠다.”

네가 지켜낸 것이 적어도 그것보단 가치 있으니까.

그러니까,

“살아나, 이 자식아. 당지명 주제에, 여기서 죽어 나자빠지긴 이십 년은 이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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