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33화 (333/350)

333화

십만대산.

모든 마교도들의 고향이자, 척박한 산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는 천산(天山)이라는 곳이 존재했다.

사시사철 녹지 않는 만년설로 덮여 있고, 그 추위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이길 포기한 이들은 그곳에서 살아갔다.

아니, 오로지 그곳에서만 살 수 있었다.

* * *

석관이 있었다.

그곳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 있었고, 그의 주변에는 만년설이 녹아내려 만들어졌다는 빙백신수(氷白神水)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빙백신수(氷白神水).

전설상에 나오는 공청석유만큼의 보물은 아니지만, 만년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부정한 상처를 정화하고 신체 상태를 가장 순순한 상태로 환원시켜주는 효용이 있었다.

모든 만년설이 녹아내린다고 하여 빙백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영약의 재료로서 그 값어치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더욱 값비싸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금 그것은 말 그대로 ‘물처럼’ 쓰이고 있었다.

오로지 한 사람의 목숨을 이 땅에 부여잡기 위해서.

부글부글.

석관 속의 물이 갑작스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물의 형상을 하고 있어도 얼음보다 더욱 차갑다는 빙백신수가 끓기 시작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괴현상.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딱딱히 표정을 굳히면서도 익숙하다는 듯 정해진 대로 움직였다.

“흉왕(凶王)의 저주가 악화되고 있다. 서둘러 움직여라.”

“마도사들은 억제 마법을 시작하라.”

“사제들은 축문 의식을 시작한다.”

지휘자로 보이는 이의 지시에 따라 마교도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들은 석관을 둘러싸고 주문을 외웠고, 누군가들은 기도를 시작했다.

그들이 알 수 없는 의식을 진행할 때마다 허공에는 각종 기하학적인 그림들이 생겨났고, 그것은 빛무리가 되어 석관 주변에서 일렁였다.

부글부글.

그럼에도 석관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심상치 않았다.

빙백신수가 끓어오르는 현상은 이제 거진 석상을 넘칠 듯한 수준으로 격상됐고, 티 하나 없이 맑던 신수는 곧 검은 진액처럼 끈적끈적해지며 오염되었다.

그 오염의 발원지는 석관 안에 든 인영.

정확히는 그의 가슴팍에 뚫린 주먹만 한 구멍이었고, 그 구멍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검은 진액이 빙백신수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수석 사제님!! 마법이 들지 않습니다!!”

“오염도가 너무나도 극악합니다!”

보다 못한 마교도들이 다급히 의식을 총괄하는 이를 불렀다.

그에 수석 사제라 불린 이 역시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비켜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 그가 석관 앞으로 나섰고, 그 모습에 마교도들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수, 수석 사제님?!”

“안 됩니다!! 벌써 이번 달에만……!”

“조용히.”

경악하는 마교도들을 제지한 뒤, 앞으로 나선 수석 사제는 품에서 의식용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푹―

망설임 없이, 자신의 심장 어림을 질렀다.

“…큭.”

‘심장’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며, 주술적 의미에서 모든 것의 핵과도 같았다.

제아무리 제한적 ‘불사(不死)’의 권능을 얻은 이들에게도 심장은 그들의 권능을 발동시키는 핵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수석 사제가 가진 불사의 권능은 심장을 근원으로 두고 있다.

즉,

그 ‘심장’의 일부를 떼어냄으로써, ‘불사’의 일부마저 떼어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울컥!

핏물이 목구멍을 역류해 토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마교도들이 이를 악물었지만, 정작 수석 사제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심장 조각을 떼어내 석관으로 떨어트렸다.

부르르…….

심장 조각이 떨어지자 끓어 오르던 석관 속 빙백신수들의 상태가 변모하기 시작했다.

검게 변했던 물의 색은 다시금 투명해지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넘칠 듯 끓어오르던 수면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 모습에 마교도들은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곧 안심할 때가 아님을 깨닫고 다급히 소리쳤다.

“수, 수석 사제님!! 어서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그제야 뒤늦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은 수석 사제.

균열처럼 벌려진 입에선 폭포수처럼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음에도 기도 의식을 멈추지 않는 그 모습에 다른 이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하지만,

“…그만. 존자(尊者)께서 회복 중이시다. 소란 피우지 말아라.”

가장 죽을 것 같은 수석 사제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면서도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시켰다.

“……!”

“…큭.”

꾸욱―

수석 사제의 지시에 따라 마교도들은 입술을 꼭 깨물며 침묵을 지켰고, 수석 사제는 입과 뚫린 심장 어림의 구멍 속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진언을 외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다른 마교도들은 결국 힘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하나둘 소리를 죽인 채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고, 그런 평사제들의 이탈에도 수석 사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도를 이어 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빙백신수가 원래의 평온함을 되찾고, 수석 사제의 체내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만이 공동을 가득 채울 때쯤 변화가 일어났다.

“…….”

석관 안에 있던 이가 눈을 떴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자신의 앞에 부복한 수석 사제를 바라보다 쓴웃음을 머금었다.

“일명아.”

“기침하셨습니까.”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수석 사제였지만, 그의 안색은 파리하기 그지없었고 온몸은 잘게 떨리며 정상이 아님을 드러냈다.

“…기어이 네 불사의 일부를 내게 바쳤구나.”

“받은 것의 극히 일부를 돌려드렸을 뿐입니다.”

공손히 고개 숙이는 모습에 석관 안에 든 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더욱 안정을 취하셔야 됩니다.”

“…괜찮다. 이것은 흉왕의 저주. 하루 이틀 안정을 취한들 해결되지 않는 게 아님을 알지 않느냐.”

존자의 심장에 뚫린 구멍.

그것은 삼십 년 전 ‘교’의 가장 극악한 대적자인 흉왕(凶王)의 흉수가 남긴 상처였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그 상처는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아 그의 불사를 지우고 끔찍한 낙인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바로 삼십 년 전부터 교를 위해 일신을 희생해 온 ‘주교’라는 증거였다.

“나의 의복을 주거라.”

“여기 있습니다.”

수석 사제, 주일명이 조심스레 건네오는 의복을 받아 입은 뒤 주교는 준비된 자신의 권좌에 몸을 누였다.

등허리로부터 스며드는 서늘한 감각.

이 역시 평범한 권좌가 아닌,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기물이었다.

“후우우…….”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이 권좌는 극한의 음기를 지니고 있기에 앉는 이들은 순식간에 얼어붙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극음지기가 주교에게는 그의 생명을 붙잡아주는 또 하나의 생명유지 장치였다.

“약을… 가져다 드립니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지만,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온몸이 생으로 얼어붙었다 녹아내리는 과정은 삼십 년의 시간 속에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고통을 줄여주는 약물을 준비할지에 대해 물어오는 수석 사제의 물음에 주교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약물에 기대어 정신이 혼탁해진다면 어찌 남은 대계를 완수할 수 있겠느냐.”

약물은 석관에 들기 전 그 괴로움을 잠시 덜어주기 위해 사용할 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그는 이 고통을 견뎌내는 것부터가 일과의 시작이었다.

“네 몸은 괜찮으냐?”

“저는 괜찮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남지 않게 될 작은 흠집에 불과할 뿐입니다.”

불사의 권능, 그 일부를 파냈음에도 남은 불사가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심장 그 자체는 몰라도 벌써 그 위에 도려내 졌던 살덩이는 전부 아문 뒤였고, 찢긴 옷가지와 그 위에 묻은 핏자국만이 그 잔재로써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잔재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린 모두 잔재일 뿐이지.’

자신을 포함한 다른 두 주교들도 모두 삼십 년 전의 성전 이후 심각한 부상을 입어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로 살아 있다.

이미 죽어버려 더 이상 뛰지 않게 된 심장이요, 메말라 버린 고목과도 같은 것.

설령 내일 죽더라도, 오늘 대계의 일부로서 과업을 다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삶이었다.

그러니까,

“그래, 그렇구나.”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교는 권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서늘한 냉기가 끊어지며 체내에는 뜨거운 열기가 차올랐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만 같은 걸음걸이로 비척이며 일어서자 수석 사제가 일어서며 그를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여기 있으라.”

주교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며 온전히 자신의 걸음걸이로 권좌 뒤편으로 난 길로 향했다.

비척비척.

그 길은 오로지 자신을 포함한 세 명의 주교만이 갈 수 있는 길.

다른 이들은 올 수 없는 길을 걸어나간 끝에, 거대한 문을 마주했다.

“…후우.”

뜨겁게 달아오른 숨결을 뱉어 호흡을 정렬하고, 흐트러졌을 복색까지 정돈한 뒤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마주한 것은 거대한 수정비. 마치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보는 것만 같은 수정비의 안에는, 놀랍게도 사지가 잘린 이의 육신이 존재했다.

“천마시여.”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며 주교는 쓰러지듯 부복했다.

“어리석은 당신의 신도가 왔나이다.”

사지가 잘린 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그들의 신(神), 천마(天魔)였다.

“…….”

간절히 기도하는 주교였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교는 개의치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줄 알았다.’

삼십 년 전, 중원에서 산맥을 넘어온 흉왕(凶王)이 그 흉성을 터트리며 그 일대를 죽음의 영토로 만들었을 때, 그곳에서 천마를 찾아낸 것은 천운에 가까웠다.

얼마나 끔찍한 대지였는지 당시 수석 사제들도 그 일대에 들어갈 수 없었고, 살아남았으되 끔찍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던 존자들만이 겨우겨우 탐색하여 그들의 신을 찾아냈다.

사지가 잘린 채 핏물 속에 처박혀 있는 모습은 절망 그 자체.

겨우겨우 빙백신수과 만년한철, 각종 보물과 마도의 힘에 기대어 괴사를 막고 가진 모든 것을 투여하여 상황을 완화시키려 했지만, 실상은 오히려 악화되기만 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갖은 마도와 지식을 총 활용해 그들의 신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이 십 년에 달했을 때 하염없이 악화되던 것들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 노력이 이십 년에 달했을 때는 파손된 신체의 일부를 수복할 수 있었고,

그 노력이 삼십 년이 되었을 때는 기적이 일어났다.

‘심장이……!!’

불과 일 년 전에 마주했던 경이로운 기적.

천마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천마시여!!”

그들은 틀리지 않았다.

천마의 잃어버린 신체를 수복하기 위해,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그의 오롯한 신체(神體)가 필요했다.

그를 위해 마인화(魔人化) 계획을 시행했다.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마수(魔獸)의 능력를 지닌 육신이라면 그분의 신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여겼고, 그 조직을 일부 일부 투여하여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렀다.

“천마시여…….”

쿵… 쿠웅…….

주교는 그의 신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바닥에 머리를 찢기 시작했다.

곧 그의 이마가 찢어지고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적셨다.

그리고 바닥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은 그 피를 흡수해 얕은 빛을 내며 수정비 속 천마에게 전달했다.

“나의…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나이다…….”

오로지 그들의 신을 부활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생명을 흘려 넣는 광신의 주교는 오늘 하루도 죽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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