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존자(尊者).
달리, 주교라 불리는 이가 부활의 성소에 들어선 뒤 홀로 남겨진 주일명은 그 자리에서 부복하며 기도했다.
‘주교시여…….’
그가 갓난아기일 적부터 ‘교(敎)’를 지켜온 세 명의 존자.
그분들께선 신실함의 상징이자, 그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어둠 속 횃불과 같았다.
한 치 앞을 알아볼 수 없어 헤매는 교도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고 앞서 어둠과 맞서 싸워주시는 분들이며, 평생 끔찍한 고통을 품에 안고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고작해야 심장을 조각내는 것만으로도 이리 괴롭거늘.’
교를 지키는 세 명의 주교, 삼대 존자라 불리는 이들은 삼십 년 전 성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매일같이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성전 당시, 교를 위협했던 사특한 이교도들과의 결전에서 존자들은 천마께서 내려주신 은총, ‘불사’가 파괴되는 수준의 부상을 입었었다.
불사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은, 그들의 모든 것이 부서진다는 것과 같았다.
실제로 주일명이 모시는 존자의 경우 ‘교’의 가장 끔찍한 대적이었던 흉왕(凶王)의 마수에서 살아오는 대가로 심장에 뚫린 구멍이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완치되지 않는 것이면 낫지.’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상처는 매일매일 회복되고 있었다.
단지, 그만큼 똑같은 속도로 파괴되고 있을 뿐.
‘매일매일 심장이 부서지고 또한 회복되는 끔찍한 고통이 반복되는 삶.’
그것을 삼십 년이나 버텨온 것이 주일명이 모시는 존자였다.
‘그에 비해… 내 고통은 아주 일부일 뿐이다.’
심장을 조각낸다 해서 전체가 파괴되지는 않는다.
권능의 일부에 금이 가지만, 그 정도야 시간이 지나면 수복된다.
그렇기에 주일명은 아직 낫지 않는 심장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억누르며 자리에 부복했다.
고작해야 심장이 조금 뜯겨 나가는 정도의 고통으론, 감히 그가 모시는 분의 신앙심을 발끝만큼도 따라갈 수 없으니까.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
그분께서 의식을 마치고 나오시기 전까지, 이 장소를 지키는 것.
수석 사제로서 스스로의 의무를 떠올리며 부복하는 주일명이었고, 그런 그에게 외부에서 이쪽으로 다급히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수, 수석 사제님!”
“조용. 신성한 의식이 진행 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주일명은 답했다.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평사제의 그것.
감히 신성스러운 의식을 행하고 있는 시기에 이리 소란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불경함이지만, 그것 역시 안아줄 수 있는 것이 그분께 배운 은혜이기에 화내기보다는 좋은 말로 타일러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스, 습격입니다!!”
감히 수석 사제의 말을 자르기까지 하며 소리치는 평사제의 외침에는 그 역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습격이라고?”
“그렇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 십만대산에서 습격이 벌어졌다고?
“적의 숫자는?”
주일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존자께서 의식을 진행하시는 동안, 그 역시 부복하며 자리를 지킬 생각이었지만 들려오는 말이 그의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게 했다.
‘감히 신성한 본산을 더러운 흙발로 짓밟는 이가 있다니!!’
신성한 의식은 오로지 신성한 본산에서만 이루어진다.
십만대산 중에서도 이곳 천산에서만 이루어지는 신령한 의식은 엄중히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수석 사제인 자신의 의무.
흐드러진 의복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어 저주받을 침입자들의 숫자를 물었다.
그런데,
“하, 하나입니다…!”
“…한 명?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것이더냐?”
들려온 숫자가, 고작 하나였다.
“아… 아닙니다!! 저, 정말로 하나입니다. 아, 아니… 한 마리라고 해야 할지…….”
“한 마리?”
“그렇습니다. 그, 그 자의 행동이 워낙 괴이하여… 그, 그래도 그 위험도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다, 다른 사제들이 그놈을 막아섰으나…….”
“됐다. 당장 안내해라.”
주일명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었다.
“예… 예!”
“가자.”
평사제는 고작 하나를 막지 못해 이 난리를 피웠다 치도곤을 들을 거라 생각했지만, 주일명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고작 하나가 십만대산의 엄중한 감시를 뚫고 소동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그 하나는 결코 평범한 이교도가 아닐 것이다.’
그가 수석 사제는 물론이요, 평사제 이전인 수습 사제일 때부터 살아온 십만대산이다.
비록 교의 사정이 좋지 않아 그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었으나, 그럴수록 본산의 방비만큼은 더더욱 강화되었다.
감히 자신조차 단신으로 그 방비를 뚫을 수 있으리라 자신하지 못하건만, 그 방비를 뚫는 와중의 소동이 자신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침입자가 이 근방까지 도달했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뜻했다.
평사제를 앞세운 주일명은 보법을 발휘해 서둘러 침입자가 있는 장소로 향했고, 그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안색은 더더욱 딱딱히 굳기 시작했다.
“…잠깐.”
“예? 조, 조금만 더 가시면…….”
“안다. 그래서 멈추라고 한 것이다.”
평사제는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지만, 수석사제인 주일명은 저 앞에 펼쳐졌을 참상을 지독하리만큼 느끼고 있었다.
‘피 냄새가…….’
온갖 마도 의식을 진행하며 질릴 정도로 맡은 혈향이지만, 저 앞에서 풍겨오는 혈향은 그 질이 달랐다.
참혹한 학살 현장이 벌어졌을 때나 풍겨올 만한 혈향이었고, 그 안에는 그런 참상을 만들어낸 흉수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 사실을 직감한 주일명은 품에서 자신의 목패를 꺼내더니 수석사제에게 건네며 말했다.
“물러나라. 그리고 나의 이름으로 특급 경보를 내려라.”
“트, 특급 경보를 말씀이십니까?!”
교에 비상 상황이 발생 시 내리는 경보에는 각 계층마다 내릴 수 있는 제한이 있다.
그중 특급 경보는 수석 사제가 되었을 때 발령할 수 있는 것으로, 교에 심대한 위기가 닥쳤을 때 내리는 경보였다.
“그렇다. 두 번 말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떠나거라.”
여기서 평사제가 같이 가봐야 개죽음일 뿐.
두 번 말 않고 다시금 멈췄던 발걸음을 옮기는 주일명의 모습에 평사제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침을 꿀꺽 삼키더니 재빨리 본단이 있는 곳을 향해 경공법을 발휘했다.
젖먹던 힘까지 발휘해 멀어지는 평사제의 기척을 느끼며, 주일명은 단전에서 서서히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느껴진다. 감히, 나조차 대적할 수 없는 지독한 살기가…….’
삼대존자를 제외한 교의 정점에 오른 주일명이었으나, 그런 자신조차 감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응어리진 살기가 저 앞에 존재했다.
그 사실에 주일명은 처음부터 잠력을 격발시키며 자신의 한계를 무너트리고, 너머의 힘을 끌어냈다.
‘어설프게 탐색전을 벌이면 무조건 필패다.’
저 너머의 살기를 탐지해 내는 순간, 진작에 승리라는 선택지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오로지 시간을 번다는 생각뿐이었고, 그 생각에 도달하는 순간 스스로의 생명을 불태우며 그 담보로 잠력을 끌어올렸다.
- 아해야.
그 순간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의지.
그것은 ‘교’를 수호하는 또 다른 위대한 존재, ‘대마수’의 부름이었다.
- 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감히 나조차 경계할 흉수로다.
“…알고 있습니다.”
- 미안하구나, 나는 즉시 자리를 이탈하여야 한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다른 삼대 존자가 그러하듯, 현재 ‘교’를 수호하는 상위 마수(魔獸) 역시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이루어야 할 과업이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 위치가 이 근방이었다.
- 아직 어린 마수들을 안전한 곳으로 전이(轉移)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너를 도울 수가 없다. 하여, 네게 작은 가호를 내리도록 하마.
대마수(大魔獸)조차 경계하여 자리를 피해야 할 침입자였고, 그것을 알면서도 죽으러 가는 주일명에게 대마수는 축복을 내렸다.
“…흡!”
- 네 생명을 유예하였다. 적어도, 이번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 너는 허무하게 쓰러지지 않으리라.
전신을 휘감는 힘이 느껴졌고, 대마수는 곧 공간 전이의 술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진정으로 홀로 남게 된 주일명은 넘쳐흐르는 힘과 심장 어림의 부상이 전부 회복되었음을 느끼며 살기의 근원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런!”
온 세상을 붉게 칠한 듯한 시산혈해의 중심에서 웅크리고 있는 괴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놈이…….”
괴인은 짐승처럼 웅크려 앉은 채 무언가를 질겅이고 있었다.
우득, 우드득…….
고막을 두드리는 불길한 소리.
살아 있는 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주일명은 괴인과 눈이 마주쳤다.
히죽―
‘웃어?’
괴인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물고 있던 것을 툭,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손가락.’
그것의 정체는 사람, 아니, 사람이었던 것의 한쪽 팔이었다.
“…웬 놈이냐.”
이리저리 씹고 뜯어서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팔을 바라보며 주일명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킥킥…….”
당연하게도 괴인에게서는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낮은 소리로 웃을 뿐.
어차피 주일명 역시 딱히 답을 기대하지는 않았기에 천천히 괴인을 살폈다.
어설픈 탐색전은 필패로 직결됨을 잘 알고 있기에, 단기전으로 끝내기 위해 괴인의 약점을 찾으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응?’
그러다 문득, 무척이나 괴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쪽 팔이… 왜 저렇게 작지?’
괴인의 몸은 웅크리고 있음에도 그 기골이 장대하고 비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런 의복도 걸치지 않아 온몸의 나신이 다 드러나 있었기에 더더욱 숨길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 육신은 외공의 극한까지 단련한 이마냥 강건하여 사람의 육신이 아닌 조각품을 보는 듯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강건한 육신이 오른쪽 어깻죽지부터는 굉장히 왜소하고 초라하였다.
아니, 애초에 다른 몸뚱이를 보는 것 같았다.
‘마치, 거구의 성인에게 아직 덜 자란 소년의 팔을 붙여놓은 것 같은… 잠깐.’
흠칫―
생각을 이어 가던 주일명의 머릿속에 문득 끔찍한 상상이 피어올랐다.
“이놈!! 어디서 왔느냐!!”
“킥… 킥킥…….”
별안간 떠오른 불길함에 주일명은 버럭 소리쳤고, 괴인은 그에 답하듯 왜소한 팔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온 주변이 이미 붉게 물들어 있지만, 그중 특히 붉으며 그가 걸어온 방향을 알리듯 혈로(血路)가 그려진 방향.
“아…….”
그곳에 있는 것은,
“이놈! 감히, 감히… 교의 양민들을 건드린 것이냐!!”
아무런 무공 한 자락 배우지 못한, 그저 믿음으로 살아가며 교를 위해 농사짓고 살아가는 양민들의 마을이 있는 방향.
“킥킥… 킥…….”
기괴한 웃음소리가 긍정이 되어 돌아왔고, 그 모습에 주일명은 머릿속에 무언가가 뚝 하고 끊기는 것을 느꼈다.
“이 더러운 이교도가!!”
단번에 공간을 뛰어넘은 주일명이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수라마공(修羅魔功).
겁륜파멸옥(劫輪破滅玉).
가공할 기운이 그의 손위로 몰려들었고, 그 자리에 파괴의 구체가 생성되었다.
그것을 움켜쥔 주일명은 냅다 괴인의 상반신에 파괴의 구체를 박아 넣어 버렸고,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괴인의 반신이 통째로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