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수라마공은 마교의 수많은 무공 중에서도 파괴력으로 두 손 안에 드는 무공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대성하여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겁륜파멸옥은 그 파괴의 정화였다.
콰아아앙!!
괴인에 적중한 파괴의 구체는 괴인의 우측 반신을 갈아버렸을 뿐 아니라, 주변 반경 십여 장에 달하는 구멍을 뚫어버렸다.
“이놈!!”
어깻죽지부터 옆구리까지를 완전히 뜯어버린 주일명이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엔 반대쪽 손에 내공을 끌어모았다.
‘단숨에 끝낸다!’
유효타를 먹였을 때 이 괴물 같은 놈을 찢어발겨야 했다.
그런 생각으로 다음 초식을 전개하던 중―
흠칫!
“……!!”
그의 직감이 강렬하게 경종을 울렸고, 주일명은 다른 것은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재빨리 뒤편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콰콰쾅!!
그가 있던 자리로 붉은 궤적이 내리꽂혔다.
‘손톱?’
그 궤적의 정체는 어느새 붉게 변한 괴인의 왼손이었다.
우측 상반신이 날아갔다 싶은 괴인이었으나, 어느새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왼팔을 휘둘러오고 있었고, 직감적으로 위기감을 느껴 그 궤적에서 몸을 빼내지 못했다면 분명 자신의 머리통이 터졌을 것이다.
그 사실에 식은땀을 느낀 주일명이 뒤로 물러설 때, 괴인의 왼팔이 다시 한 번 휘둘러졌다.
파파팟!!
‘암기?’
괴인은 단순히 왼팔을 휘두를 뿐 아니라 무언가를 투척해 왔다.
그에 반응한 주일명은 재빨리 호신강기를 두르며 두 팔을 겹쳐 방어했고,
퓨퓨퓩!
끔찍한 격통과 함께, 겹쳤던 팔들 중 바깥쪽 팔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것을 보았다.
‘크으윽!! 이, 이건……!!’
자신의 팔에 구멍이 뚫리는 순간 주일명은 그 암기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들은 놀랍게도 뼛조각.
저 괴인은 자신의 부서진 팔에서 뼛조각을 뜯듯이 긁어 투척한 것이었다.
‘이런 괴물 같… 아……!’
그에 당황하던 주일명은 순간적으로 괴물의 신형을 놓쳤고, 그 대가는 참혹하게 찾아왔다.
콰드득!!
“크악!!”
어느새 다시금 나타난 괴물의 신형은 어느새 주일명의 앞에 있었고, 내리 휘두른 팔은 부상 입은 팔뚝을 끊어냈다.
“킥!”
화끈한 감각이 들이닥치고, 주일명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분명 상대방이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목을 물어뜯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큭?’
그에게 치명타를 입힌 괴물은 정작 그 이상 주일명을 쫓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무얼 하나 싶어 보니,
“킥킥… 킥…….”
괴물은 주일명의 오른팔을 보더니 비죽 웃으며, 자신의 잘린 어깻죽지 단면에 가져다 대었다.
꾸물꾸물.
그러자 어느새 회복된 우반신으로부터 촉수 같은 게 생겨나더니 주일명의 오른팔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킥… 키히히히…….”
잘린 단면과 잘린 팔의 연결은 순식간에 끝났다.
괴물은 만족스럽게 웃더니 제자리에서 오른팔을 붕붕 휘두르며, 마치 새로운 병장기의 상태를 확인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이놈…….”
기이한 광경이지만, 주일명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애초에 저런 수법이 있었으니 마을에서 어린아이의 팔을 뜯어 자신의 육신에 붙여 놓는 만행을 저질렀겠지.
‘그래, 그 자체는 놀랍지 않은데.’
주일명은 그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인상을 찌푸렸다.
‘오른팔이, 수복되지 않는군.’
수석 사제의 위에 오르며 그 역시 제한적 불사의 권능을 얻은 상태였다.
팔다리쯤은 찢겨나가도 재생시킬 수 있는 권능이 몇 있는데, 그 어떤 권능도 잘린 오른팔에 한해서 작동하지 않았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괴물은 오른팔은 얻은 이후 더 이상 자신을 쫓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를 시험하듯 몇 가지 동작을 펼치는데, 이미 자신은 다 잡은 물고기요 저 팔을 구한 것 자체가 원래의 목적이었던 것마냥 정신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때,
타타탁!!
“수석사제님!!”
“괜찮으십니까!!”
모두 소개(疏開)시켰다고 생각했건만, 그의 휘하에 있던 평사제들이 장내에 난입해 들어왔다.
“너, 너희들?”
그 모습에 주일명의 눈이 부릅뜨였다.
“내 분명 특급 경보를 발령했을 텐데!! 너희가 왜 여기 있느냐!”
특급 경보는 수석 사제를 제외한 모든 사제들을 천산 내에서 탈출시키는 명령이었다.
즉, 여기 있는 이들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수석사제님을 보필하겠습니다.”
“죄를 물으실 것이라면 이 자리를 벗어나신 뒤 하명하십시오.”
장내에 난입한 평사제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리 답했다.
“이 녀석들!!”
울컥―
가슴 어림이 먹먹해졌다.
그분을 향한 믿음. 오로지 그것 하나에 인생을 다 바치기로 결심한 주일명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살아 있는 인간일진대 오로지 그것만이 있을 리 없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이들이 있을 것이고, 어릴 때부터 그가 직접 키워온 이들이 있다.
비록 그의 피붙이 자식들은 없다 할지라도, 그보다 더 진한 인연들은 있는 법.
여기 그의 자식과도 같은 이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에 주일명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흉왕멸진(凶王滅陳)을 전개한다.”
흉왕멸진(凶王滅陳).
이름 그대로, 천마신교 역사상 최악의 대적이었던 흉왕을 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법이다.
필살(必殺)을 넘어 필멸(必滅)을 전제로 두는 진법인 만큼, 시전자의 죽음이 최소 조건이 되는 진법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 명령을 내리는 주일명의 두 눈에선 피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지만, 정작 그 명을 받은 평사제들은 힘차게 소리쳤다.
“존명(尊命)!!”
“존명!!”
동시에 그들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주일명이 그러했듯, 그들 모두가 잠력을 격발시킨 것이다.
“쇄(鎖)!”
촤르르륵!!
주일명의 외침이 터져 나오자 평사제들은 일제히 거리를 벌리며 품에서 꺼낸 쇠사슬을 투척했다.
열 개도 넘는 쇠사슬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들어 괴인을 결박했다.
‘오만한 놈.’
흉왕멸진은 발동하는 순간부터 대상자에게 작용하는 중력을 다섯 배 이상 가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때문에 그 안에 갇힌 이는 철갑을 두르고 물속에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받게 되지만, 이렇게 쉽게 쇠사슬 세례에 적중된 것은 저 괴인이 그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즉, 맞아준 것.
‘시험해 보겠다는 것이냐?’
괴인에게는 타인의 신체를 뜯어내 자신의 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듯했다.
아까부터 새로운 검을 구한 검객마냥 이리저리 휘둘러보는 것이 그 성능을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도 괴인은 십수 개의 쇠사슬에 결박된 상태임에도 당황하긴커녕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좋다. 한번 버텨봐라.’
“열(裂)!”
쇠사슬을 쥔 마교도들이 내공을 폭발시키며 각자 다른 방향으로 힘을 주었다.
덕분에 가운데에 낀 괴인의 육체는 마치 맷돌에 갈리는 것처럼 곤죽이 되었다.
하지만―
“킥… 킥킥…….”
제 몸이 갈려 나가면서도 웃음을 흘리는 괴인이 새롭게 얻은 오른팔로 무언가를 쥐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설마…….’
어딘가 익숙한 행동,
“물러서라!!”
다급히 소리친 주일명이었지만, 그보다 괴인의 오른손에 파괴의 구체가 생성되는 게 더욱 빨랐다.
“저, 저건?”
“이런……!!”
파괴의 구체는 급속도로 팽창하며 그 크기를 불렸고, 평사제들은 경악하면서도 재빨리 반응했다.
다만, 그 반응은 주일명이 내린 명령과 달랐으니―
“수석 사제님!! 피하십시오!!”
“막아라!!”
수라마공(修羅魔功).
겁륜파멸옥(劫輪破滅玉).
그들의 눈앞에서, 그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수석사제의 독문무공인 겁륜파멸옥이 펼쳐졌을 때, 그들은 최대치로 내력을 전개해 괴물의 몸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한계치까지 도달한 겁륜파멸옥이 그 자리에서 폭발을 일으켜 온 주변을 휩쓸어버렸다.
“크으윽!!”
단번에 흉왕멸진이 파괴되고, 그 여파에 주일명을 저 멀리 나가떨어져 십여 장을 데굴데굴 굴렀다.
“끄으으…….”
온몸이 부서지는 격통이 닥쳐왔고, 그런 그의 머리 위로 후두둑 무언가가 떨어졌다.
“아… 아아…….”
질척질척하고, 또 추적추적한 것.
액체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으니,
“아아… 아… 아아……!!”
부릅뜬 눈에 비추어진 풍경이 수십 장의 구덩이와 그 안에서 킥킥거리며 몸을 떨고 있는 괴인 하나뿐임을 알았을 때, 주일명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비명을 내질렀다.
“이… 더러운 이교도 놈이!!”
떨어져 내린 것은 그를 지키기 위해 대신하여 죽음을 맞이한 평사제들의 피와 육신 조각.
어릴 때부터 그가 키웠던 이들이 장렬히 전사했음에, 그것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맞이했음에, 주일명은 생전 느낀 적 없던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으아아아아!!”
그의 내면에서 활화산 같은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머릿속에 남은 이성 한 점까지 전부 불살라버릴 것 같은 불길이 그의 심장으로부터 피어올랐으니, 피눈물을 흘리며 몸을 일으킨 주일명이 갈라진 목으로 소리쳤다.
“너를… 너를 죽이겠다……. 맹화(猛火)의 이름 아래, 내 모든 것을 걸고 너를 죽이겠다!!”
불꽃이 피어올랐다.
비유상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피어오른 불꽃이 주일명의 전신을 장작 삼아 타오르기 시작했다.
쾅!!
굉음과 함께 땅을 박차고 나선 그가 한 손을 갈퀴처럼 휘둘러 괴인을 향해 박아 넣었다.
“키킥!”
이번에도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보란 듯 맞아주던 괴인이 자신의 어깻죽지에 박힌 손을 바라보았다.
꾸국… 국…….
애초에 파내리는 게 아니라 박아 넣는 게 목적인 듯 깊게 쑤셔 넣어진 손, 그로부터 서서히 피어오르는 불길이 자신의 새로운 오른팔을 태우기 시작했을 때 괴인은 손을 뻗어 주일명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숨이 턱 하고 막혀 왔지만 주일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에 힘을 주어 부릅떴다.
‘이놈!!’
화르륵!!
피어오른 불꽃은 괴인의 육신에 박힌 손아귀를 기점으로 더더욱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킥?”
곧, 그것이 자신의 육신마저 태우기 위해 피어오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괴인의 인상은 찌푸려졌다.
“킥…….”
제아무리 고통에 익숙하다 해도 살을 직접 태우기 시작하는 작열통(灼熱痛)은 결코 유쾌할 수 없는 것.
이제는 조금 짜증스래 주일명을 밀쳐 내려 한 괴인이었지만,
“…크륵?”
밀리지가 않는다.
“크… 크흐흐…….”
그에 의문을 느낄 때, 주일명에게선 어느새 목이 붙잡혀 억눌린 신음 대신 조소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절대… 놓치지 않는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괴인은 재빨리 몸을 재생시키며 다른 팔로 주일명이 붙잡은 팔을 후려쳤다.
그런데,
화르르륵!!
“크륵!!”
주일명의 팔을 뜯어버리기 위해 지나친 손이, 그 팔을 뜯긴커녕 불꽃에 손을 집어 넣은 것마냥 타오르기 시작했다.
“…늦었다.”
그 순간 주일명이 괴인의 몸을 와락 껴안았다.
“……!!”
그와 함께 괴인의 전신에 끔찍한 작열통이 퍼부어졌다.
“크흐흐… 흐흐하……. 놓칠 것 같으냐? 이것은… 연옥의… 업화(業火)… 업(業), 그 자체를 불태우는 불꽃이니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주일명은 불꽃으로 화해 사라졌다.
스스로의 존재를 태우는 불꽃이기에, 가장 먼저 발원지인 주일명이 소멸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발화하기 시작한 업화는 괴인의 전신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이것만큼은 괴인도 도저히 답이 없었는지 온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크… 크으아아아아……!!”
짐승의 울음소리가 온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신체를 재생하는 것과도 맞먹는 속도로 불꽃이 피어올랐고, 제아무리 용을 써도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
결국, 괴인은 그 자리에서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하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온몸이 다시금 타오르고 재생되길 아흔아홉 번을 반복했을 때.
“크으… 크… 르…….”
마침내 괴인의 전신을 불태우던 업화가 사라졌다.
아흔아홉 번의 업을 태워버리는 것으로 업화가 사그라든 것이다.
“크르르…….”
그것은 주일명의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괴인이 아흔아홉 번의 타오름을 버텨냈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괴인의 입장에선 아흔아홉 번의 목숨이 소실되었음을 뜻했다.
“크…….”
몹시 고통스러운 허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에 무한한 것은 없듯이, 그의 목숨 역시 한계가 존재했다.
지금 여기서 그것을 아흔아홉 번이나 날려 먹은 만큼, 먹어서 생명을 채우는 괴인은 지독한 허기에 몸부림쳐야만 했다.
“크르르…….”
먹을 게 필요하다.
찢고 발기고 뜯어서 배 속에 채워 넣을 그런 것!
당장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괴인은 희번득 눈을 뜨고 오감을 확장시켰다.
그런 그때,
“이야, 이게 뭐야?”
괴인의 귓가에 들려오는 여유로운 목소리.
온 주변이 파헤쳐지고 불타올라 난장판인 주변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비루한 곳에, 더 비루한 새끼가 계시네?”
콰직―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괴인의 육신을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