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진짜 더럽게 넓네.”
십만대산.
봉우리가 십만 개나 존재한다는 전설이 실화 기반인지, 아니면 과장 섞인 소설인지 모르겠지만 넓다는 사실 하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특히, 세상의 천장이라 불리는 천산(天山)의 험준함은 이전 것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막말로 이게 하늘에 닿을 만큼 신령스러워서 천산인지, 아니면 진짜 산을 오르다 하늘까지 올라가 버릴 게 뻔하기에 천산인지 구분이 가야지.
‘음침한 놈들 아니랄까 봐. 살아도 이딴 곳에서 살고 있냐.’
어차피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절취선 따라 이쁘게 목을 잘라줄 텐데, 왜 바쁜 사람 여기까지 불러들이는 거지?
“진짜… 내가 여길 다시 올 줄은 몰랐다.”
과거, 천마의 목을 따기 위해 올랐던 이곳.
다시 한번 놈을 장사 지어 주기 위해 이곳에 오다니.
“…이게 맞는 건가 싶다.”
하아…….
구슬비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폐부에 가득 찬 열기를 식혔다.
‘옛날에는 대충 이 방향이 맞았던 것 같은데.’
함께 왔던 백팔 명의 나한들은 산맥 입구에 대기시켰다.
그들과 함께한다면 참 든든하기는 하겠지만, 닭 잡는 칼, 소 잡는 칼은 따로 있는 법.
막말로 소속만 절이요, 신분만 중인 그들이지, 실상은 인간 분쇄기와 다를 바 없기에 이곳에 데려올 수가 없었다.
“혹시, 은신술 좀 쓰실 줄 아십니까?”
“어째서 그러십니까?”
“목격자가 있으면 안 됩니다.”
“허허. 목격자가 없다면 목격자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그쵸.
평생 사파에서 자라난 꿈나무도 쉽게 떠올리기 힘든 발상을 보이는 그들에게 감탄 또 감탄했다.
사람이 산에 틀어박혀 삼십 년간 목표만을 바라보고 살아오면 어떻게 되는지 훌륭히 보여준 그들은 십만대산을 통과할 수 없었다.
‘수틀리면 전부 다 갈아버려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건 상황을 살피고 난 뒤에나 내릴 결론이지.’
백 하고 여덟 명이나 되는 준 초절정 고수들이 단체로 십만대산에 들어오면, 마교 놈들이 아니라 정천맹의 모지리 놈들도 진작에 이변을 감지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홀로 들어온 십만대산이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상황이 안 좋나 보군.’
사람은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기 마련이다.
일 년 전, 이 세상에 처음 눈을 뜨고 마교에 대해 항시 최악의 상황만을 가정하며 대비해 왔다.
삼십 년 전에도 흉악했던 놈들이, 삼십 년이나 지난 지금에서는 얼마나 흉악무도해졌을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당장 무림 온 전역에 뿌리를 뿌리고 있으니 걱정 안 할 수가 없었잖아.’
나름 근거가 있는 의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과대망상에 가깝다는 것을 하나둘 느끼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개박살을 내고 왔는데.’
우리 집이 쫄딱 망할 만큼 거대한 싸움이 있었다.
내가 있을 때 당가는 천하제일가라고 당당히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역대급 성세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그게 당시 무림이 빈집이라서 이룬 성세는 결코 아니었다.
무당에는 검천(劍天)이 있었고, 소림사에는 권천(拳天)이 있었다.
장강에는 용왕(龍王)이 있었고, 하오문에는 신투(神偸)가 있었다.
오히려, 당시 무림은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던 곳이었으니, 마교는 그런 무림에 무식할 정도로 들이박아 버린 것이다.
‘그러고도 그 전력이 온존하다 못해 성장했다면, 애초에 그리 동반자살을 할 이유도 없었겠지.’
걔네가 그렇게 강했다면 이미 전 무림이 천마앙복 마도천하를 외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까지 강하지는 않았으니까, 우리와 함께 공멸한 것이다.’
그럼 당연히 마교 역시 죽기 직전까지 처맞아서 저승이 눈앞에 어른거릴 때쯤까지 갔다가 부활을 획책하고 있었을 것이란 게 가장 가능성 높은 경우의 수가 된다.
‘애초에, 무림에 간자를 뿌린 것부터가 의심스러운 요소였다.’
자고로 광신도들이란 순혈(純血)에 열광하는 법이다.
이교도란 더러운 오물과도 같은 것이요,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면 당장에라도 경기를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놈들이다.
그런 이들이 굳이 머나먼 무림까지 와서 뿌리를 박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만큼, 내부에서 답이 없으니 외부로 눈을 돌린 거지.’
천하의 광신도 놈들마저 현실과 일부 타협하고 순응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끔찍한 상황.
그런 놈들이니 그 예전 상시 천라지망을 유지, 가동하던 십만대산의 경비가 그 삼엄함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 분명 거기까진 예상했는데,
“암만 그래도… 진짜 아무것도 없을 줄은 몰랐지.”
적당히 산을 뒤지다 보면 야생의 마교도 놈들이 한둘 정도는 튀어나오겠지, 싶었고 그놈들 또 족치면 더 강한 놈들이 튀어나오는 식으로 해서 정보를 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십만대산을 횡단해서 놈들이 성산(聖山)으로 모시는 천산에 도달할 때까지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실화인가?”
결국 이 무식하게 넓은 산을 중턱까지 오를 동안 어떤 마교도도 만나지 못했다.
아니, 중원에선 수풀에서 튀어나오는 야생쥐 야생비둘기마냥 마주치던 놈들이, 왜 여기선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건지.
“이건 뭔가 잘못된… 응?”
그렇게 눈발만 겁나게 날리는 설산을 둘러보던 중,
“…이거, 선객이 있었던 건가?”
저편에서, 거대한 기운의 유동이 느껴졌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느껴지는 규모는 최소한 초절정 고수 셋 이상이 부딪쳐야 벌어질 만한 전투였다.
그것도 단순 대련 따위가 아니라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생사전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른 곳도 아닌 천산에서 이 정도의 전투라…….’
순간 떠오르는 가정에, 곧장 경공법을 발휘했다.
산능선을 넘고, 산봉우리 세 개 정도는 넘어서 달린 결과 화끈한 열기가 산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맹화(猛火). 분노종의 사제… 아니, 이 정도면 못해도 수석 사제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맹화(猛火)는 분노종의 상징.
그중에서도 이 정도 열기를 뿜어내려면 못해도 수석 사제 정도의 급은 되어야 했다.
‘그런 놈이 생사결을 벌이고 있다라…….’
불어온 열기 덕분에 더욱 정확해진 방향을 잡고 달리자, 과연 그 열기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분노종의 사제 같은 게 아니었으니―
“이야, 이게 누구야?”
거대한 파괴흔에 흉포한 울음소리를 터트리는 이가 있었다.
“비루한 곳에, 더 비루한 새끼가 계시네?”
문답무용.
곧장 산봉우리에서 뛰어올라, 녀석을 짓밟으며 착지했다.
콰직!!
“여기서 만나자고는 했지만, 이렇게 먼저 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반갑게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호명했다.
“불가살(不可殺).”
“크… 크아악……!!”
“오랜만이야?”
내게 깔리며 반신이 찢겨나간 녀석이 괴로운 듯 버둥거렸다.
“괴로워?”
“크라아……!!”
“그것참 다행이야. 죽여도 죽여도 부활하는 녀석이라서, 고통도 못 느끼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콰아앙!!
땅이 무너져 내렸다.
어째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녀석은 내게 짓밟히는 상황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자, 아예 지면을 후려쳐 지각을 붕괴시킨 것이다.
덕분에 산봉우리 하나가 무너지며 수십 장 아래로 추락했지만, 나태종의 날개를 꺼내 추락 속도를 지연시키며 천천히 지면으로 착지했다.
콰아앙!!
그런 내게 녀석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크르르라라라!!”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나태종의 이동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달려드는 녀석은 어떤 마수보다도 더욱 마수 같았다.
그러니까,
“멍청한 놈.”
“크르… 크아아악?!”
참, 짐승 같다는 소리였다.
“크으… 크아아아……!”
내게 달려들던 불가살은 약 삼 장을 앞두고 그 자리에서 멈추며 괴로워했다.
숨이 막힌 듯 목을 움켜쥐며 벌벌 떨었지만, 곧 그 손을 포함한 온몸이 녹아내리며 바닥에 너부러졌다.
“무형지독(無形之毒). 본가의 칠대금기 중 하나다.”
무색무취무미(無色無臭無味).
당하기 전까진 그 존재조차 감지할 수 없는 극독을 반경 십여 장 안에 흩뿌려 놓았다.
“네놈은 확실히 빠르더군. 검천, 그 녀석이 말한 대로 외공을 극한까지 익힌 몸뚱이와 같아.”
그냥 두 다리로 달리는 것뿐인데 쾌속의 칠대종이라 불리는 나태종의 마수보다 더욱 신속하다.
내 하독 실력이 암만 뛰어나도 그런 놈을 잡아서 중독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잡아서 입을 벌리고 독을 집어넣을 필요 있나. 그냥 뿌려놓으면 되지.’
어차피 날 잡아 죽이겠다고 오는 놈이다.
주변에 함정을 설치하고 기다리면 그뿐.
“크아… 아아!!”
“형체도, 맛도, 색도 없을 뿐, 효과는 어떤 독에도 밀리지 않지.”
무형지독이 달리 궁극의 독(毒)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그것이 완전무결의 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독이 그 성분에 따라 특성이 있고, 때문에 반대되는 상성과 그를 이용한 해독제가 있는 반면, 무형지독에는 그딴 게 없다.
‘아무런 성질도 없다는 것. 그것은 곧 모든 상성을 없앴다는 뜻이니까.’
한번 중독된 이상 살아남는 법은 그냥 독성이 사라질 때까지 버티는 것뿐이다.
무형지독은 사화(死花)처럼 알아서 증식하는 놈이 아니니까.
그리고,
“크르… 크아아!”
그 독에 무식하게 당한 이놈은, 또 그게 가능한 놈이었다.
“한 여섯 번쯤 죽었냐?”
여섯 번 죽고 여섯 번 되살아나는 것으로 무형지독을 버텨낸 녀석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며 온몸에서 뭉클거리는 마기를 피워 올렸다.
“그사이에 마공을 익혔을 것 같지는 않고.”
삼십 년 전 녀석이 마공을 사용했다는 정황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팔의 주인이냐?”
녀석의 다른 부위와는 부자연스러운 오른팔.
그 팔의 원주인 되는 놈이 부리던 마공이겠지.
“크아아아!!”
불꽃처럼 타오르는 마기가 불가살의 전신을 뒤덮으며 갑옷처럼 변모했다.
“극열갑주마공(極熱甲胄魔功). 역시, 분노종의 수석 사제를 삼킨 거냐?”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열기의 주인은 분노종의 수석 사제인 게 확실했고, 그 녀석을 불가살이 잡아먹은 듯했다.
극열갑주마공을 불꽃을 피워 올려 호신강기처럼 두르는 마공으로, 독을 태워 버리는 화공의 특성상 저렇게 둘러 버리면 어지간한 독에는 전부 내성이라 할 수 있었다.
“크르아아아아!!”
거기서 그치지 않고 녀석은 한쪽 손아귀에 마기의 구체를 생성하기 시작했으니,
“얼씨구. 수라마공(修羅魔功), 겁륜파멸옥(劫輪破滅玉)?”
파괴력만 따지면 마교의 마공 중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마공이 펼쳐졌다.
“크아!!”
초열의 갑주를 두른 녀석이 최강의 창까지 꼬나쥐고 달려들었다.
거기다, 녀석의 타고난 신체 능력까지 더해져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내달렸으니, 눈 깜짝할 새에 파괴의 마옥(魔玉)이 눈앞에 들이밀어 졌다.
최강의 육신.
최강의 갑주.
최강의 창.
그것이 합일되어 달려드는 모습,
“이거…….”
그건 참,
“나한테 죽여 달라는 거지?”
자살지망 그 자체.
수라마공(修羅魔功).
겁륜파멸옥(劫輪破滅玉).
역회전(逆廻轉).
다가오는 파괴의 구체를 향해 나 역시 손을 들이밀었으니,
콰과과과과곽!!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