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38화 (338/350)

338화

불가살이 마교도 놈들을 쥐어패는 동안, 나 역시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녀석들에게 내가 불구대천지수이듯, 나에게도 마교도 놈들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관계.

나 하나 잡겠다고 떼거지로 몰려와 쇠뇌를 갈겨대고 온갖 저주와 성법을 부려대는 놈들에게 온화하게 대할 정도로 나는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그래, 분명 시초는 그랬는데―

‘이게 이렇게 되네.’

사실 처음 마교도들을 중독시켰을 때는 당연 그들이 등장하자마자였다. 쇠 구슬로 쇠뇌를 요격함과 동시에 역으로 무형지독을 흩뿌려 그들의 체내에 잠복시켰다. 그 즉시 독살시킬 수 있음에도 굳이 잠복 상태로 대기했던 것은 ‘혹시 몰라서’.

‘마도와 저주술 중에는 시전자의 죽음을 매개로 부리는 것들이 많으니까.’

무공과 달리 현상과 인과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술법 계열은 시전자가 죽을 시, 그 시전자를 죽인 대상에게 즉발되는 저주 등이 수없이 존재했다.

정말 답도 없는 술법을 부릴 때 발동시켜서 술법 자체를 취소시키는 게 아니라면 일단 두고 보고 있었는데, 불가살이 먼저 나서서 마교도들을 때려죽이고 인질로 잡으려다 통하지 않자 그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히 녀석은 마교도들의 체내에 잠복시켜 두었던 독에 중독됐다.

“크헉!”

피를 토하며 거꾸러지는 모습이 딱 과식하다가 체해서 켁켁거리는 삑삑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날 너무 우습게 보이는 것 아니냐? 천하의 천마도 나랑 싸울 땐 중독될까 무서워서 숨도 제대로 안 쉬었는데.”

천마와의 일전은 진짜 인간을 벗어난 전투였다. 대기를 전부 독소로 바꾸고,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시체에 극독을 배치해 뒀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죽은 아군의 시체를 부활시킬까 싶어 체내에 독물을 넣고 일정 조건 시 자폭시켜 버리는 수법까지 준비시켜 두고 싸웠었다.

‘그런 노림수들 대부분이 통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지만.’

마교와의 전쟁이 지속되며, 내가 녀석들을 아는 만큼 녀석들도 나를 잘 알게 됐다.

천마 그 괴물 같은 놈은 내가 할 수 있는 행위에 한계를 두지 않았고, 사흘 밤낮의 전투를 치르고 그 정도가 극에 달했을 때는 호흡조차 멈춘 채 격전을 치렀다.

그런데 그에 비해―

“네 녀석은 너무 안일하잖냐.”

시체를 먹고 회복한다?

무림에선 비인륜적인 행위라 지탄받기 짝이 없겠지만, 마교도 놈들과 전투를 치러보면 그건 차라리 애교로 보일 지경이다.

‘우리 때는 자신의 시체를 먹고 적이 체력을 회복할까 봐, 저 알아서 폭약을 두르고 가는 놈들도 많았는데.’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은 기본이고, 독하지 않으면 자신의 죽음조차 적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온몸에 독약과 화약을 둘러가던 이들이 수두룩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거쳐온 내게, 겨우 삼십 년 지났다고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먹고 되지도 않는 인질극이나 벌이는 불가살의 행동은 정말, 진심으로 같잖기 그지없었다.

“크아아!!”

하지만 그런 내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녀석은 발악하듯 소리치며 등 뒤로 사이한 눈동자를 만들어냈다. 당연 녀석이 가지고 있던 술수는 아니고, 상위 마수 놈이 부릴 수 있던 저주 계열일 게 분명했다.

“사아!!”

두 눈에선 피눈물을 흘리고, 입으로는 핏물을 토해 내면서도 불가살은 내게 필살(必殺)의 저주를 걸어왔다.

하지만,

“빵실아.”

“헥헥!”

어림도 없지.

품속에 얌전히 숨어 있던 빵실이가 옷깃 사이로 머리를 빼내며 우렁찬 포효성을 내질렀다.

[크허어엉!!]

귀엽게 헥헥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성체 영수의 포효였다.

“내가 마교도 놈들 족치러 오는 데 저주 대책 하나 안 챙겨왔을 것 같냐?”

소림에서 그 원본을 모방해 만들어낸 무공이 아니라, 상위 존재라 불리는 영수들이 가진 진정한 파마(破魔)의 권능.

사자후(獅子吼)가 터져 나온 것이다.

쩌어엉―!

사이한 눈동자가 부릅뜨이더니, 안쪽에서부터 균열이 생기며 깨져 나갔다.

파사(破邪)와 파마(破魔)의 공능을 지닌 사자후가 저주의 주언을 핵에서부터 깨트려버린 것이다.

- 크르르…….

중심핵이 부서져 버린 저주는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불길한 덩어리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아래로 탐이 모습을 드러내 입을 쩍 벌렸으니―

“남은 저주는 탐(貪)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불가살이 펼친 저주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소멸했다.

‘아니지.’

아직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다.

저주 술식이 부서지며, 그 여파가 역류해 불가살을 덮쳤다.

술사들이 부리는 술법이란 무인들이 감히 사용할 수 없는 힘을 부리는 대신, 그 대가 역시 거대했다.

“크륵?!”

가뜩이나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녀석이 갑자기 급살(急煞)이라도 맞은 것마냥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작살에 꿰뚫린 물고기마냥 경직된 불가살의 몸뚱이가 바닥으로 거꾸러졌다.

“이게 끝이냐?”

엉망진창의 몰골로 녹아내리는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혹시 뭐가 더 있을까 봐 준비해 둔 것들이 몇 수 더 있지만, 눈에 보이는 모습을 보자면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을 듯했다.

그 모습은 참,

“실망스럽기 짝이 없구나.”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약하잖아.

“아니, 어쩌면 예상 그대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검천을 그 꼴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경악하면서도, 어쩌면 이렇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삼십 년의 세월이 네게도 꽤 길었던 거냐?”

삼십 년 전.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가 넘치고, 설령 자신보다 더 약하다 해도 목숨을 빼앗을 수단 서너 개쯤은 우습게 쥐고 있던 시대.

동료의 목숨마저 이용하는 것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던 그런 시대.

내일 아침 해를 바라볼 수 있길 기약하는 것보다도, 오늘 저녁 달을 바라보는 것을 기약하는 게 더더욱 빠르던 시대를 살아가던 우리에게, 다른 이들이 만가쟁패라며 가장 혼잡하다 불리던 시대는 사실 그 이전 시대를 헤쳐나가던 마음속 도끼날이 무뎌지고, 그 자루가 썩어서 뚝 떨어져 버리기에 충분한 평화로운 시대였다.

“하기야.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너를 제외한 모두가 약해지고, 몰락하며, 죽어 갔을 테니까.”

숨만 쉬는 것만으로도 힘을 회복하고 남들보다 월등히 강해졌으니, 녀석은 점점 중독되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일함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독에 말이다.’

“크르르…….”

이제는 그저 으르렁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어진 불가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핏물로 엉망진창이 된 녀석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나를 비웃는 거냐?”

입꼬리 끝에 조소가 매달려 있었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 주제 녀석은 나를 비웃으려 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죽일 수 없을 것 같아서?”

“크륵… 큭큭… 킥… 킥킥…….”

확실히, 이 모양 이 꼴이 돼서도 끊임없이 재생하는 불가살을 죽일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맞는 말이긴 한데… 너 뭔가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

애초에 말이지.

“나는, 널, 편히 죽여줄 생각이 없었는데.”

“킥… 키… 키이……?”

피를 토하면서도 조소를 흘리던 불가살은 내 답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기이한 표정을 지어갔다.

“죽어보지 않은 녀석이라 그런 건지, 누구보다 죽음에 동떨어진 녀석이라 그런 건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나 보구나.”

외딴 세상에 남겨진 이들.

이미 떠나버린 이들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있는 이들.

안식조차 취하지 못한 채, 고독한 길을 걸어가야만 했던 이들.

그들이 겪지 못했던 죽음이란, 이미 떠나가 버린 이들이 받아들인 죽음이란, 사실은 안식의 다른 말일 뿐이었다.

“진정 괴로운 것은 죽지 못한 이들이지.”

이제는 하나둘 떠나가버린 이들의 면면을 떠올린다.

정작 죽어 나자빠진 것은 그 자신들인 주제, 오히려 내게 미안하다 말하고 고맙다고 말했던 그런 녀석들.

그러니까,

“네놈 따위에게, 그런 사치를 누리게 해줄 리가 없잖아.”

죽을 자격도 없는 놈이, 어디서 멋대로 피안(彼岸)으로 도피하려 한단 말인가.

“크… 크륵?!”

본능적으로 불길함이 다가온 것인지 녀석은 녹아내리는 몸뚱이를 움직여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몸부림치는 녀석은 한 걸음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단순히 수북이 쌓인 눈밭이 녀석의 발목을 붙잡은 게 아니었다.

“늦었어.”

어느새 녀석과 나의 발밑은 검푸른 늪이 주변 일대를 잠식한 이후였다.

“크르르…….”

검푸른 어둠으로부터 흉포한 살기를 지닌 눈동자가 안광을 발했고, 모든 것을 포식하는 입이 쩌억 벌어졌다.

이대로 녀석을 꿀꺽 삼키고 내 내면에서 영원한 투쟁을 벌여도 괜찮겠지만―

“그조차, 네게는 사치겠지.”

그러니까,

“네게는 다른 형벌을 선사하마.”

촤르륵!!

그곳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촉수가 쇠사슬처럼 녀석의 전신에 휘감겼다.

“크, 크윽!!”

도망치려는 녀석을 단단히 붙잡고, 또 다른 촉수들이 녀석의 체내에 박혔다.

푹― 푸욱!

“크, 크아아악!!”

본디 탐식종의 그것이었으나, 탐(貪)에게 먹혀 재탄생 된 촉수에는 내 독이 가득했다.

“크에엑!!”

불가살은 체내에 침투하는 불순물의 존재를 느끼고 저항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침투시킨 독은 오히려 녀석의 저항을 잡아먹으며 몸집을 불렸다. 그것들은 불가살의 신체를 변화시키며 뿌리를 내렸고, 끝끝내 꽃처럼 피어났으니―

당가칠대금기(唐家七大禁忌).

사화(死花).

인외식(人外式).

“크… 엑…….”

비명 한 점 내지를 수 없게 완전히 녀석을 뒤덮어버린 죽음의 꽃이 만개해, 녀석에게 영원을 선사했다.

“죽음에서 가장 머나먼 네 녀석은, 영원토록 죽음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녀석의 특성이 무한한 부활이라면, 사화의 특성은 무한한 죽음.

무한하게 부활하는 불가살의 특성을 양분 삼아 무한하게 피어나는 사화가 끊임없이 피어나며 영원토록 녀석을 구속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내리는 형벌이다.”

불가살을 봉인하고 세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삼십 년간 가두었던 검천처럼.

영원 속에 녀석을 가두는 것이 내 친우에 대한 복수의 결론이었다.

“크… 르…….”

마지막 단말마와 같은 소리가 꺼트려 지고, 그 위를 하얀 눈꽃이 뒤덮었다.

사화(死花) 위에 피어난 설화(雪花).

망연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차가운 감촉이 얼굴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게 느껴졌다.

“…첫눈이네.”

생각해 보니, 이 세상에 눈을 뜨고 바라본 첫눈이 이것이었다.

‘삼십 년 전에도, 이러했던가.’

결사대를 꾸리고, 마교를 향해 떠나가던 그 날에도 이런 눈이 내렸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떠나던 날, 떨어져 내리는 첫눈을 보며 다른 녀석들과 다짐했던 것도 같았다.

“에잉, 날씨도 지랄 맞군. 왜 하필 지금 눈이 내리는 거야?”

“왜 그러십니까, 좋지 않습니까?”

“이 눈발이?”

녀석들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눈이 내리면 눈덩이를 만들어 던지고는 하며 눈싸움이란 것을 한답니다.”

마치, 저 새하얀 순백의 눈처럼 아무런 걱정 없이.

“그러니, 우리도 돌아가면 눈싸움이나 하도록 합시다.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한번 놀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흥, 누가 그런 걸 하느냐? 유치하게.”

“…유치하게.”

어느새 멍하니 뻗은 손에 쌓인 눈이 수북이 쌓인 게 보였다.

손으로 꼭 쥐어보니 스르르 녹아내려 물기가 되어 사그라지는 것.

이제 쥘 수 없게 된 눈덩이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쓸데없이 감상적이게 되고 지랄이네.”

나이 먹으면 느는 것은 주책뿐이라더니.

새삼스레 웃으며, 손을 털어내고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나오지 그러냐?”

한 놈을 족쳤지만, 그건 이제부터 시작될 일의 서장에 불과할 뿐.

쿠쿠쿵!

이윽고 저 하늘에서 세 명의 인영이 나를 포위하듯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역시, 아직들 안 뒈졌구나?”

하나하나가 익숙한 얼굴들.

내가 익숙한 얼굴들이 얼마 있을 리가 없음에도 다들 익숙한 걸 보면 참 지독한 악연이리라.

“요즘은 삼대존자라 불린다지?”

녀석들은 이제 마교의 최고 수뇌부가 되어 그 잔존 세력을 이끄는 이들이었으니,

“이 망령 같은 놈들. 이제는 칠대 주교라 불리기에 그 공석이 너무 크다는 거냐?”

하나하나가 천마와 동급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여겨지던 이들―

주교(主敎)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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