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불가살이 부활했다.
아니, 천마가 부활했다.
불가살이라 불리던 녀석은 이제 천마가 되었고, 나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째서 불가살이 천마가 되어 버렸는지는 알 수 없어도, 녀석이 가진 그 특유의 기질은 몰라볼 수 없었다.
텅 비어 있는 듯하고, 또 아득히 넓은 것도 같은 공활함.
저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을 사람에게 똑같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천마였다.
“오랜만이구나. 굳이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아직은 시기가 좋지 않다 여겨 만남을 조금 미뤄두고 싶었음인데 말이야.”
“왜, 축일이라도 정해 놓고 부활할 생각이었나?”
내 조소에 천마는 굳이 답하지 않고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무결존자의 시신이 서서히 떠오르더니 천마의 눈앞까지 날아들었다.
“…….”
녀석의 눈은 반개한 채 감기지 않은 상태였다.
죽어서도 다 이루지 못한 것에 한이 맺힌 듯, 한참이나 어딘가를 보려 하고 있는 그 모습에 천마의 입가에 진 처연한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고생하였구나.”
천마는 직접 손을 뻗어 무결존자의 눈을 감겨 주었다.
그제야 눈을 감게 된 그를 바라보던 천마는 이내 반대쪽 손을 들어 빙산 쪽을 향해 뻗었다.
쩌저적―
그러자, 이번엔 빙산이 갈라지더니 그 속에서 시체 한 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혼몽존자’.
만화경에서의 혈투로 혼이 갈기갈기 찢겨 죽은 그녀의 시체 역시 눈을 감지 못한 상태였고, 백색으로 텅 비어버린 동공을 내려다보던 천마는 같은 동작으로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다.
완전히 연소되어 버린 겁화존자를 제외한 다른 둘을 한 번씩 일견한 그가 작은 목소리로 진언을 외웠고, 그에 존자들은 발끝 손끝부터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축문을 외우는 것과도 같은 그 모습이, 한때 무림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이들에 대한 장례라면 실로 소박한 것이지만, 그것을 진행하는 자가 천마라면 저들에겐 이보다 더한 호사도 없을 것이다.
“…기다려 주어서 고맙네.”
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작은 송별식을 끝낸 천마가 작게 고개를 숙여 왔다.
“흥, 진심으로 고마워한다면 하나만 묻자.”
“말하시게.”
“대체, 왜 그랬는지 이유나 들어보자.”
온갖 미친놈들이 다 모인 곳이 마교요, 천마란 놈은 그런 곳의 수장인만큼 제정신을 바라는 게 멍청한 짓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럼에도,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그 녀석들이 죽게 놔둔 거냐? 그렇게 눈물까지 흘릴 것이면서.”
하늘이 내린 마(魔).
진정 그 이름이 아깝지 않던 녀석이, 처연히 울고 있었으니까.
“네게 소중한 녀석들이 아니었나?”
“그렇다네.”
“그럼, 대체 왜 끼어들지 않았던 것이지?”
“그럴 이유가 있었으니까.”
“큭… 이유?”
처연한 표정으로 슬피 우는 주제에 녀석의 어조는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저 모든 게 다 가식이라면 좋으련만, 하필 속에 깃든 슬픔만은 진심이라는 게 절절히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따지고 싶었다.
“그래, 한번 들어나 보자. 대체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으면 네놈 좋다고 따라다니던 저 녀석들이 하나씩 죽어 나자빠지는 걸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있지? 그리고 그걸 당연히 여기는 이유가 대체 뭐냐?”
“이유라…….”
주교들의 시신이 완전히 가루로 바스러져 흩날리고, 이젠 그들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천마는 입을 열었다.
“말해 주겠네. 하지만 그전에 자리를 옮기도록 하세.”
녀석이 그 말을 뱉는 순간 어느새 거대한 마법진이 발밑에 그려져 있었다.
기이한 감각과 함께 우리는 공간을 뛰어넘었고, 주변을 돌아보았을 땐 눈 덮인 설산이 얼어붙은 빙산의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공동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여긴…….”
“내가 이 세상에 발을 디딘 이후 처음으로 눈을 뜬 곳이라네.”
“…태어난 곳이란 거냐?”
“글쎄. 다른 이들에겐 그리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자네와 내게는 다른 의미이지 않겠나?”
“뭔 소리야?”
왜 나까지 엮는 거야?
“역겹게 엮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냐.”
“모른 척하는 것인가? 이미 자네도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으면서 말일세.”
“무슨 개헛소리를…….”
“자네, 태어났을 때의 기억이 있나?”
“이 자식이 진짜. 하다 하다 사이비 교주 아니랄까 봐 별 헛소리를 다 하려는군. 그딴 것을 기억하는 놈이…….”
“없을 것 같나? 억지로 인간의 규격에 남고 싶어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답해 보세. 자네는 진정, 그때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나?”
“…뭐?”
녀석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
‘이놈…….’
그 시선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고, 무욕(無慾)하기 그지없는 눈이란 실로 투명하여 사람의 마음을 반추하는 거울과 같다 여겨졌다.
그 사실에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말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그딴 기억이 있을 리…가…….’
그리고 깨닫고 말았다.
‘…없다.’
내게는 태어났을 때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그 말은 결코 그때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따위의 말이 아니었으니.
‘녀석의 말이 맞아……. 나는, 나는 눈을 떴을 때 이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고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하나하나 떠올리기 시작하자 바스러진 파편과 같은 기억들이 하나씩 부상하고, 먼 과거의 순간들이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천마 놈과 처음 만났을 때는 물론. 더 이전, 사유와 사명이를 만났을 때는 물론이고, 당가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의 기억도 있다.’
고아였던 내 손을 잡아주며 당가로 함께 가자고 말해 주었던 전전전대의 가주, 그를 만난 기억조차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의 기억은… 없다.’
마치, 애초부터 그런 기억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텅 빈 상자의 바닥처럼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대체…….’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상할 것은 없네. 따지고 보면, 이번 시대에 태어난 그대 역시 어미의 배 속에서 나고 자란 기억이 없지 않나.”
“…너, 뭔가를 아는 거냐?”
“물론일세.”
그리고 녀석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우리 중에서 나만이 알고 있다네.”
“우리 중? 너와 나를 말하는 거냐?”
“아니, 여기 하나 더 있지 않나.”
천마는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입고 있는 육신을 가리켰다.
“설마…….”
“불가살(不可殺). 그가 육체(肉體)일세.”
“육체?”
“나는 그 안에 깃든 정신(精神)이네.”
잠깐만.
설마.
“그리고.”
당황 속에 빠져 미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를 기다리지 않고 녀석은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덤덤히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고하듯 선언했다.
“자네는 영혼(靈魂)이라네.”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
“알겠나?”
그것은,
“우리는, 애초에 하나 된 존재였다네.”
어쩌면 내가, 끝에 끝까지 미루고 있던 불편한 진실이었다.
* * *
옛날, 아득한 옛날에 한 초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존재는 진정으로 아득한 저 너머에 있던 존재로, 손을 뻗어 산을 가르고, 발을 디뎌 하늘에 닿는 것을 어렵지 않게 여기던 존재였다고 한다.
생로병사에 초월하였기에 아득한 세월을 살아왔고, 그런 존재를 기려 상위 마수와 상위 영수, 심지어 대마수와 대영수들까지 그를 경애하였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단순히 그렇게 엄청나게 강한 놈이 있었구나, 정도의 이야기겠지만.
‘놈의 관점으로 돌아가면 상당히 따분한 이야기가 되겠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남들은 고난이요, 난관이라 부르는 것도 그에게는 문지방만도 못할 만큼 하잘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다.
그 존재에게는 깊은 혜안이 있어 타인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타인은 그 존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그 사실까지 지독하게도 이해해 버렸다.
- 나는, 영원불멸토록 다른 이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겠구나.
그 사실은 일종의 진리와 같았다.
단순히 홀로 생각해 낸 망상 따위가 아니라, 실제로 수천 년 살아온 세월이 그것의 방증이었고, 그의 예측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에 그 존재는 평범하게 절망했다.
-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남들이 다 가질 성취욕도, 향상심도 그에게는 없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나아갈 이유가 없다.
미래가 없는 존재, 그렇다면 그에게 현상을 유지할 이유는 있는가?
- 아니, 내게는 그마저도 없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린다.
자신을 시샘하고, 자신을 질투하는 이들의 존재가.
사랑으로 품어 안으려 하여도, 자신이 가진 것을 질투하고 뺏으려 들며, 어떻게든 이용해 보려는 이들의 의지가 그에게는 선명히 느껴졌다.
- 실로, 괴롭구나.
처음 일천 년은 참을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존재가,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시샘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수십 년이 지나고, 수백 년이 넘어, 일천 년의 시간에 다다른다면 어떻게 될까?
- 또다시… 반복인가.
호의로 내밀었던 손이 비수로 되돌아오고.
웃음으로 다가갔던 발걸음에 족쇄를 채우려 든다.
- 하여, 자네들은 내게서 무엇을 탐하길 위해 왔는가?
그가 거두어주고 힘을 내려주었던 이들이 자신의 목전에 칼날을 들이밀길 구백구십구 회.
일천 번째 배신을 당하기 직전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 그래, 원하는 것들이 있으면 전부 내어주겠네. 이 부질없는 영육이라도 필요하다면 가져가시게.
현재도 미래도 없는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의지를 잃었다.
아니, 존재할 의지를 잃었다.
사실 자살 기도라면 이미 이전에도 몇 번이나 해보았던 그였지만, 초월에 이른 육신은 어떠한 극독에도 심장이 멎지 않고 잘 벼려진 칼날에도 헤지지 않았으니, 그는 스스로를 찢어발겼다.
그렇게, 하나였던 존재는 셋으로 나뉘었다.
* * *
“그것이 하나의 초월자였던 존재가, 육체와 정신, 영혼으로 나뉘게 된 결과지.”
천마는 덤덤히 ‘정신’이 기억하는 과거를 말했다.
“혼과 정신을 잃은 육체는 지상을 전전했네. 처음에는 약했지. 스스로의 힘을 다룰 줄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초월자의 육체는 죽음 역시 몰랐기에 계속 강해졌네. 누군가들에겐 수백 번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상처를 입더라도 기어코 되살아났지. 그렇게 계속해서 강해졌네. 반대로 정신은 천상에 올랐네. 저 천상에서 별과 같은 흐름을 바라보며 존재했다네.”
육체와 정신이 각각 지상과 천상을 차지하였으니, 남은 것은 영혼뿐.
그리고 그것이 머물 것도 한 곳뿐이었다.
“영혼은 그사이. 지상과 천상의 사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로 남았네. 그래, 인간(人間)으로서 남았다네.”
육체와 달리 죽음을 맞이하고, 정신과 달리 탄생을 반복하며.
인간으로서 반복하여 윤회를 계속해 온 존재.
“그것이 바로, 자네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