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44화 (344/350)

344화

“…어이가 없군.”

갑자기 출생의 비밀을 들은 기분이다.

“그러니까, 네놈과 내가 처음엔 하나였단 거냐?”

“그런 셈이라네.”

정확히는, 내게서 자네가 떨어져 나간 거지만.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이는 천마의 얼굴을 보자니, 역시 미친놈과는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진리가 떠올랐다.

“그래, 놀랍지도 않네. 아니, 충분히 놀라운 이야기이기는 하네.”

아닌 척하려다가, 억지로 허세부려 봐야 저놈은 그저 같잖다고 비웃을 게 뻔했기에 느낀바 감상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늘 저 위에 있었다네. 천상에서 정신으로서 존재했고, 그렇기에 나만이 유일하게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었지.”

“그래서, 거기 잘 있다가 여기 내려온 이유가 뭐야? 가지고 있던 것을 다 잃고 나니 그제야 후회라도 됐나?”

“그럴 리가 있나.”

녀석은 담백하게 답했다.

“나는 내가 가지게 된 불완전함에 감사했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땐, 그 어떤 것도 갈망하지 않았던 내게 무언가 갈망이 생겼으니까. 그것은 곧 움직일 동인(動因)) 되어 주었고, 삶의 목적이 되었다네.”

“미치겠군. 그렇게 가지게 된 목적이란 게 너를 우상 숭배해 주는 광신도 놈들이냐?”

“광신이라… 자네에게는 그들이 오로지 그리만 보이나 보군.”

“네놈 눈에야 귀엽고 깜찍하게 보이겠지. 그런데 보통의 눈에는 끔찍하기 짝이 없거든.”

천마만을 외치며 미친놈들처럼 몰려드는 광신도 놈들의 물결.

솔직히, 그 자리에 천마가 아니라 당유혼 이름 석 자가 있었어도 나라면 소름이 끼쳤을 것 같다.

“아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게 아닐세. 다른 면을 볼 수는 없냐는 거야.”

하지만 천마는 오해를 정정해 주듯 말했다.

“대체, 어째서. 그들은 나를 믿는 것 같은가?”

“뭐? 그야…….”

그러고 보니.

‘…저놈들은, 왜 이 녀석을 믿는 거지?’

마교도 놈들의 광기 어린 사상은 나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수없이 싸우다 보면 놈들이 떠들어대는 헛소리를 싫어도 외우게 되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딱히 천마란 놈은 예언된 구세주도 아니고, 그들의 경정에 수록된 정통성 가득한 옛 신도 아니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그들의 숭상을 받게 된 초월적 존재일 뿐.

“생각해 본 적이 없나 보군.”

“그딴 거, 생각해 본 적이 있겠냐?”

“그래, 그렇겠지.”

천마는 날 선 대답에도 그저 그러함을 받아들이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선 자리를 내려다보며 씁쓸히 웃었다.

“그들은 소수 민족 출신이었네. 그들의 역사에서 그들의 숫자는 언제나 천을 넘지 않았지.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들이 미약하고 힘없는 이들은 아니었네. 오히려, 다른 민족보다 강건한 육체와 뛰어난 신력, 방대한 그릇을 타고났다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일족에 내려오는 숭고한 사명을 따름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네.”

“숭고한 사명?”

“그들의 일족이 가진 역사보다 더욱 오래된 옛이야기라네. 과거 어느 초월적 존재의 이야기지.”

“초월적 존재라면… 네놈 이야기냐?”

“후후, 어디 세상에 초월적 존재가 한둘이겠나. 자네 역시 알고 있지 않나. 세상은 아득히 넓고, 그만큼 꽤 여럿의 초월적 존재가 존재함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헥헥이를 분양해 준 존재도 그랬던가?’

스스로를 최초의 연금술사라 칭하던 이는 지금 생각해도 초월적인 존재감을 내재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때 평화롭게 끝나서 다행이지, 대화로 안 끝나고 전투가 벌어졌다면 내 일대기는 거기서 끝을 맺지 않았을까?

내가 가만 그때 기억을 회상하고 있자, 천마 놈은 무언의 긍정으로 여겼는지 하던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 존재는 강대한 힘을 지녔으니, 그를 세상은 ‘세상의 모든 악’이라 칭했다네.”

“상당히 오만한 이름인데?”

“그만한 자격을 지닌 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와선 크게 중요하지 않다네. 그는 그의 대적자인 ‘성(聖)의 원리’에게 봉인되었고, 그 봉인은 대대로 그들 일족이 지키게 되었다는 옛이야기의 잔재일 뿐일세.”

갑자기 역사 공부를 한 기분이다.

그것도, 전혀 내게 쓸모없는.

“그들은 봉인을 관리하는 일족으로서 역할을 맡게 되었네. 애초에 그것이 그들 역사의 시작이었고, 수없이 오래 이어졌어야 할 그들의 숙명이었지. 하지만 그 숙명은 타의에 의해 흔들리게 되었네.”

“…딱 봐도 좋은 결말을 맺지 못했나 보군.”

“생각보다 비극이 흔해 빠진 세상이 아닌가.”

그 뒤의 이야기는 굳이 녀석이 알려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꼭 그런 힘에 대한 소문은, 누가 알리지도 않았는데 빠르게 퍼져 나가는 법이니까.’

강한 힘을 탐낸 이들이 그들을 습격했음은 이상하지도 않은 이야기다.

굳이 인간이 아니더라도, 강대한 힘을 봉인했다면 그에 영향받은 요마(妖魔)가 나타나 그들을 위협했을 것도 뻔한 이야기고, 그 사이에서 일족 간 내분이 일었음을 보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

“제아무리 강대한 힘을 지닌 이들이라도 역사 속에서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네. 그래도 한때는 일천에 달았던 부족민의 숫자가 그 반으로 줄어들고, 이탈하는 이들이 생겨 그 반조차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은 사무치게 통곡하며 소리쳤다네.”

대체 어째서, 자신들이 이 꼴을 당해야 하냐고.

“세상을 지키기 위해 일족 전체가 희생당했던 그들은, 그들이 지켰던 이들에게 가족과 소중한 이들을 잃어야 했네. 힘을 위해서라면 사공이든 마공이든 가리지 않는 이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거대한 힘을 봉인하고 지키려는 이들은 매력적인 먹잇감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이들의 목소리가 마침내 내게 닿았다네.”

모든 것은 우연이었다.

그들이라고 딱히 천마라는 존재를 알고 기도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들의 활동 범위는 겹치지 않은 이억만 리의 타지였으니, 같은 초월자끼리라도 어지간해선 데면데면한 이상 ‘세상의 모든 악’을 봉인했던 일족들은 천마의 존재를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천운으로 그들의 목소리가 천마에게 닿았을 때, 천마는 차마 그들을 저버리지 못했다.

“어찌 그들의 괴로움을 모른 척할 수 있겠나. 어찌 그들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고통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천상천하에 오로지 나뿐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이 난리를 일으켰다고?”

“인류의 역사란 곧 피의 역사라네. 이미 무수한 혈업으로 엮여,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복잡한 실타래와도 같은 것. 그것을 어찌 내가 시작했다 할 수 있겠나.”

나는 단지 그들을 도와 정당한 복수를 이루어주고 싶었을 뿐.

“…정신 나간 놈. 그딴 게 정당한 복수냐? 암만 우리 이전에 있었던 과거가 그 무엇 하나 피로 점칠되지 않은 게 없다고 해도, 거기다 더해 끔찍한 혈채와 은원으로 세상을 뒤덮어?”

그것은 말 그대로 끝을 짐작할 수 없는 것.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는 것은,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보지 않아도 알 만큼 당연한 진리였다.

“그래, 그것은 나의 패착이네.”

그리고 천마 역시 그걸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피로 피를 씻으려 하여도 실로 끝이 없더군. 억눌린 분노를 풀어주려는 내 시도는 실패했다네. 그리고 깨달았지. 나는 실로 불완전한 존재라고.”

그는 자신의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쌓인 분노가 한 번은 표출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네. 끝없이 참아온 그들이,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지 않기를 바랐네. 그렇기에 그들의 마지막 복수가 끝난 뒤 나는 떠나려 했다네. 하지만 내가 미처 몰랐던 게 하나 있더군.”

그것은 실로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

“불완전해져 버린 나는, 차마 그들을 저버릴 수 없었다는 것이지.”

“…미친놈, 그 난리를 일으켜서야 그 당연한 걸 깨달았다는 거냐?”

“…그래,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지. 내게 있어서 그들이, 더 이상은 쉽게 떠날 수 없는 이들이 돼버린 것을.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이 사랑이… 너무나 커져 버렸다는 것을.”

사랑이란 무엇인가?

감히 그것을 단언할 수 없지만, 단순히 이성 간의 뜨뜻미지근한 관계라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이며, 그 행위의 끝은 스스로가 결정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코 길지 않은 세월을 살아가는 이들이 수십 년 세월 동안 오로지 나만을 찾아 헤매는 모습에 차마 떠나갈 수 없었다네. 그리고 그렇게 돌아왔음에도 고민했네. 저들은 아직도 나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풀 수 없는 증오의 연쇄에 얽매여 있음을.”

그에 삼십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네. 모두가 상처뿐인 이 은원의 사슬을 어찌 끊어야 할지. 불완전해진 나는 그 답을 속단할 수 없어 지난 삼십 년간 계속하여 고민했고, 그 끝에 깨달았다네.”

애초부터, 답은 하나뿐.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고.”

“…하, 결국 그 이야기의 끝이 너 잘났다는 거냐?”

“적어도,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지. 해서, 나는 과거의 잔재를 지우기로 결정했다네. 차마 저들을 내 손으로 지울 수 없어 자네의 손을 빌린 것은 미안하지만……. 그래도 그 역할을 해준 자네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한다네.”

천마는 그 자리에서 내게 허리를 숙여 왔다.

그 속에는 거짓 없는 감사가 담겨 있었다.

자신들의 부하를 죽인 나에게 저런 마음을 가졌음에 역겨움이 치솟았고, 덕분에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아주… 무책임하기 짝이 없군.”

결국 자신의 과거와 마주할 자신이 없으니, 남의 손을 빌려 정리했다는 뜻이잖아.

심지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이들을.

“부정하지 않겠다네.”

녀석 역시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듯 얼굴에 수치심 가득한 낯빛을 띠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이제 고개를 숙이지 않고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남은 것을 치워 내야겠지.”

“마지막 남은 과거의 잔재가 나라는 거냐?”

“그렇다네. 또한 자네를 흡수함으로써 나는 완벽해질 수 있겠지.”

육체와 정신은 모였으니, 이제 남은 것은 영혼뿐.

“미친놈. 지가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자기가 수습하겠다?”

“흘린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면, 닦는 노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더군다나, 완벽해진 나는 흘린 물을 다시 담을 수 있다네.”

“…그래, 기억났다. 왜 네놈만 보면 사지가 뒤틀리며 헛구역질이 목 끝까지 치솟았는지.”

묻어뒀던 기억이 떠오르며 저놈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의 원인을 깨달았다.

“네놈은 항상 다 안다는 듯이 말한단 말이야. 심지어 지가 못한 것도.”

흘린 물을 다시 담을 수 없으니 닦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 맞는 말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해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자식아, 네가 그게 할 말이야?”

결국 좀 참았으면 되는 거잖아.

그놈의 자기 분해만 안 했으면 이 일도 안 일어났을 텐데, 이제 와서 자기가 수습할 테니 얌전히 영혼을 내놓고 꺼지라고?

“역시 넌 좀 처맞아야 돼.”

암만 생각해도, 저 녀석에겐 이게 특효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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