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품속에서 수백 개의 비침이 스르르 떠올랐다.
“역시, 만나서 안 반가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당가칠대금기(唐家七大禁忌).
만천화우(萬天花雨).
첫인사는 묵직하게.
시작부터 초필살기를 갈겼다.
파파팟!!
날아가던 수백 개의 비침이 중간에 허공에서 수천 개로 나뉘며 하늘을 수놓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황할 일격이지만, 보통도 아닐뿐더러 하물며 사람 새끼도 아닌 천마는 가볍게 걸음을 내디뎠다.
손을 들어 올린 것도, 다른 방어 동작을 취한 것도 아니다.
정말, 단순히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단순하지 못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쿠웅!
한 걸음.
단순한 한 걸음에 날아들던 비침이 거인의 발걸음에 짓밟힌 듯 바닥에 거꾸러지고, 내 신형 역시 균형을 잃고 땅바닥에 처박혔다.
“큭!!”
“오랜만이군. 하지만 자네와 길게 싸울 생각은 없네. 거기 그대로 있게.”
녀석의 언령이 내 심령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녀석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빠지고, 녀석의 걸음걸이에 내 두 다리는 그대로 주저앉으려 들었다.
‘이 개사기 무공…….’
이것이 바로 천마신공(天魔神功).
마공이되, 신공의 영역에 도달한 절대적인 무공이었다.
“…까고, 있네!”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을 이겨내기 위해, 단전이 터질 듯 내공을 뽑아내 전신을 휘감고 땅을 박차며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앙!!
폭음이 일었다.
이 정도면 높이 치솟은 빙산조차 일격에 무너트릴 만한 힘이 담겼다 생각하지만,
“흠.”
덤덤히 그 일격을 막아낸 천마의 표정에는 미동 한 점 없다.
한쪽 손을 뻗어 내 주먹을 잡아챈 녀석은 흘깃 내 전신을 일견하더니 곧 고개를 주억거렸다.
“심장 박동이 빠르게 뛰는군. 흥분한 척하는 건가?”
“뭐?”
“근접전은 자네의 주력이 아니지. 그렇다면 수단일 텐데, 흥분한 척해서 내게 달려든 이유라면 하나뿐이지.”
쩌엉―
어느새 와 닿은 것인지, 녀석의 손이 내 복부에 닿자마자 거대한 반탄력과 함께 내 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끄으으…….”
내장이 파열된 듯,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피를 퉤 하고 뱉으니 덩이진 내장 조각이 토해졌다.
“엄살 부리지 말게나.”
“시팔… 이게 엄살로 보이냐?”
“이미 독인지경(毒人之境)을 발동시킨 상태가 아닌가? 독으로 내장 조각을 흉내 내는 수법은 이미 한번 당한 것 같은데, 내가 또 속아줄 것 같나?”
“…이 무시무시한 새끼. 어떻게 삼십 년 전 기억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거냐?”
끔찍한 새끼.
혹시나 싶어 파두었던 함정이 들통 났음에 짜증스레 입에 묻은 피를 닦았다.
‘내장이 터진 건 사실이긴 한데…….’
굳이 덩이진 것을 뱉은 것은 독으로 위장한 것이었다.
이미 독인지경을 발동시킨 나에겐 인간의 내장 기관은 반쯤 의미가 없는 것이었기에, 녀석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천마는 삼십 년도 전에 딱 한 번 시도했던 그 수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작 수십 년이지. 나는 수천 년 전 기억도 아직 간직하고 있다네. 그리고.”
천마는 한쪽 손을 들어 올리더니, 그곳에서 검은 구체를 뽑아냈다.
말 그대로, ‘체내’에서 ‘무언가’를 뽑아냈다.
“이게 자네가 준비해 둔 함정인가?”
“하…….”
그 정체는 독.
천마 저놈이 눈을 뜨기도 전, 불가살의 육신에 심어두었던 극독이었다.
“조금 전 타격과 동시에 새로운 독을 주입하여 공명시킬 생각이었나? 이미 내가 이 육신에 부활할 것이라 확신하고 준비한 듯한데… 아쉽게 됐군.”
그것을 통째로 뽑아낸 녀석은 겁화의 불길을 소환해 독소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렸다.
겁화존자가 일으켰던 겁화의 불꽃과 같은 유의 것이 맞긴 할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저게 저렇게 쉽게 소멸될 게 아닌데…….’
최대한 오래 잠복시켰다가 필요할 때 터트리기 위해 치사율은 떨어져도 생존력을 긴 놈으로 만든 것이거늘.
단번에 일소시켜 버리는 겁화의 불꽃을 보며 새삼스레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 눈빛은 내가 과거를 회상할 때의 기억과 같군. 그래, 그때 그대가 이끌고 왔던 결사대 이백 하고도 스물여덟은 자네가 나에게 닿기 위해 일 초에 하나의 생명을 바쳐 왔지. 그렇게 자네가 얻었던 이백이십팔 초의 여유가 지금은 없거늘, 내게 어찌 대항할 생각인가?”
“이 자식이, 어딜 역겹게 동질감을 형성하려 들어?”
역겹기 그지없다.
“정곡인가 보군.”
“그래, 덕분에 두 배로 역겹다.”
과거에 저놈의 팔다리를 다 뜯어버리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던가.
특히, 저 겁화의 불꽃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에만 예순 하고도 다섯의 목숨이 타올라야 했다.
‘이번엔, 그때와 같은 조력이 없다.’
물론, 지금도 십만대산 입구에는 함께 왔던 백팔나한들이 대기하고 있다.
권천 그 녀석이 굳이 그들을 부활시키고 내게 안배했던 이유는, 그들이 삼십 년 전 결사대의 역할을 대신해 주길 바랐겠지.
하지만,
‘미안하지만, 이젠 더 이상 네게 빚질 생각 없다. 땡중.’
가뜩이나 등에 진 빚이 포화 상태다.
여기서 더 빚을 져버렸다간 파산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너도 한번 역겨워 봐라.”
손을 뻗어 녀석의 심장을 움켜쥐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흡?”
잘 서 있던 천마 녀석이 눈을 부릅뜨더니 자신의 심장 어귀를 부여잡고 피를 토했다.
“쿨럭! 어느새… 하독을?”
“새끼. 난 그동안 놀았냐!”
이미 이 일대에 무형지독을 전부 퍼트려 놨다.
녀석이 반응함과 동시에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고, 일장을 뻗어 녀석을 후려쳤다.
콰아앙!!
이번 일격엔 천마 역시 제자리서 막아내지 못하고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제단 벽을 부수며 박힌 천마.
후두둑 떨어지는 돌덩이 사이에서 몸을 일으킨 녀석이 잠깐 인상을 찌푸리더니 곧 알겠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자네, 진정 살아 돌아갈 생각이 없군.”
“그걸 이제 알았냐?”
“어느 정도 짐작은 했네. 하지만 진정 놀랐네. 스스로의 육신을… 독강시(毒僵尸)로 개조했을 줄이야…….”
녀석의 눈이 그사이 진화를 끝마친 내 육신을 훑었다.
“눈치 한번 더럽게 빠르네.”
그래, 천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널 상대할 수 있어야지.”
나는 나 스스로를 칠대금기 중 하나인 독강시로 개조했다.
‘만독불침은 기본. 거죽은 강철보다 질기고, 뼈대는 금강석보다 단단하지.’
어떤 보검을 가지고 와도 비교할 수 없을 최악최강최흉의 병기로 육신을 개조했다.
그 정도쯤은 되어야 저 녀석을 상대할 수 있다 여겼고, 실제로도 유의미한 효과를 보고 있었다.
‘독을 조달하는 것이야 문제가 없었지.’
제조하기 위해 수백 수천의 약재가 필요하다고 알려진 독강시지만, 이미 내 몸 안의 독들이 그것을 대신할 정도는 되었기에 망설임 없이 육신을 변화시켰다.
그 덕분에 얻은 이 단단한 주먹.
그것을 꼭 쥐며 씨익 웃었다.
“어떠냐, 우리 집안 비기가.”
“…집문서 훔쳐 들고 나와서 하는 행동치고는 당당하군.”
“집안의 존망을 걸고 싸우는데 뭐 어때?”
필요하다면 기둥뿌리라도 뽑아서 휘둘러야지.
“자, 그런 김에 한 대 더 맞아라!”
콰앙!!
땅을 박차고 뛰쳐나가며 돌진했다.
천마를 위해 엄선한 극독이 듬뿍 담긴, 유혼특선 삼백칠십이 종의 극독 주먹이 간다!
“거절하겠네.”
그러나 내 주먹이 녀석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
녀석은 가볍게 두 손을 가슴팍에 모았다가 회전시키는 것만으로 하늘과 땅의 위치를 바꿨다.
쿠당탕―
‘큭?!’
무결존자가 사용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그 수법에 내 몸은 바닥으로 처박혔다.
“이 자식이!”
“일어서지 말게.”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벌떡 일어서려는 내게 녀석은 또다시 천마군림보를 발동시켰고, 내 몸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크악!!”
단순한 걸음이 아니었다.
거인의 발걸음이 나라는 소인(小人)을 붙잡아 온 관절을 박살 내는 짓밟음이었다.
“제아무리 인간으로서 닿아서는 안 될 금기를 범했다지만, 결국 그 역시 인간이 닿을 수 있는 필멸의 영역. 내가 사용하는 것은 진정 초월의 힘이라네.”
녀석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에 군림의 기운이 담겨 있었기에 그때마다 독강시가 된 내 육신은 비명을 질러댔다.
‘빌어… 먹을… 놈…….’
어느새 내가 하독시킨 독은 전부 깨끗이 소멸시켜 버렸는지, 입가에 묻은 핏자국까지 전부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개, 소리하지 마. 너네 부하도 잘만 쓰더만…….”
건곤대나이.
비록 그 효과가 이놈이 사용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무결존자도 분명 그것을 사용했었다.
“그렇군. 자네는 천마신공이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했나 보군.”
“…뭐?”
“신공이 신공인 이유가 무엇이겠나. 말 그대로, 신(神)의 무공이기 때문이라네.”
바로 앞까지 다가와 멈춰 선 녀석이 반장을 취했다.
그 모습에는 사특한 마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영험해 보일 지경이었다.
“초월자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찢어 셋으로 나누었지만, 그 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 정신과 함께 대부분 저 천상으로 흘러들었고, 그때의 힘을 무공으로 구현한 것이 바로 천마신공이라네.”
애초에 말일세.
“나를 따르는 이들이 사용하는 성법이란 게 어디서 온 것이겠나. 다, 저 천상에서 받아쓰는 것이라네.”
“…진짜, 말 그대로였냐.”
중단전을 다루는 이들이 상위 존재의 힘을 빌려 쓴다는 것쯤이야 붉은 바위 일족에서 볼 수 있듯 쉬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마교도 놈들이 사용하는 힘이란 결국 같은 맥락이 될 수밖에 없다.
“전부… 네놈의 힘이라 이 말이지?”
“그렇다네. 다만 그 힘을 얼마나 더 잘 다루는지는 차이가 있겠지. 본디 나는 내 힘이었기에 숨 쉬는 듯이 자유롭게 다룰 수 있네. 삼십 년 전에도 그것이 그리 자연스러웠는데, 원래 내 육신까지 갖춰 입게 된 지금은 그 자연스러움이 얼마나 되겠나?”
‘어쩐지, 더럽게 세진 것 같더라니…….’
나도 더 어려지고 젊어지고, 대환단까지 복용해서 그때보다 더 나은 조건이라 생각했건만, 이 녀석은 그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뜻이었다.
“…야, 그럼 하나만 묻자.”
“호오, 이 와중에도 질문을 할 여유가 있나?”
“그럼, 처음에 네가 입고 있던 육신은 뭐냐?”
“…그를 말하는 것인가.”
여유롭던 녀석의 얼굴에 그늘이 씌었다.
“설명했듯, 교의 시초가 되는 일족은 그릇의 의무를 지닌 이었다네. 정확히는, 일정 주기로 강해지는 ‘세상의 모든 악’을 자신의 육신에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제단에 불살라 정화하는 의무였다네.”
“그럼…….”
“나는 ‘세상의 모든 악’을 대신해, 그의 육신에 강림하였다네. 한낱 정신에 불과한 내가 세상에 그 의지를 발하기 위해선 생육할 육신이 필요했으니까.”
즉, 원래 그가 사용하던 육신이란 당대의 그릇이자 희생양으로 소모되었어야 할 마교도의 후신이 되는 일족원이었다는 것.
“그는 내 존재를 알고 기꺼이 자신의 존재를 바쳤다네. 나는 이후 그의 육신에 강림하여, 그 시대에 강림했어야 할 ‘세상의 모든 악’을 토벌하고 그들의 일족이 억눌렸던 원한을 대신 갚아주기로 했지.”
그것이 천마신교의 시작.
차마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그 육신의 주인되는 존재의 행동에 한숨을 쉬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네놈이 부리는 힘은 중원의 무공과는 결이 달랐다는 뜻이구나.”
“신공(神功)이 괜히 신공(神功)이겠나.”
천마는 담담히 긍정했다.
말 그대로 사실을 논하는 답에 나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신공이라 불릴 만하겠지.’
천하무공의 원류라 불리는 소림의 것조차 이 녀석의 천마신공에는 비할 수 없다.
그것이 신공이니까.
한낱 인간의 무공 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신의 무공.
하지만 그 얘기는 달리 말하자면 이렇게 된다.
“그렇다면, 같은 신공(神功)이면 괜찮다는 거지?”
“…뭐?”
“집어삼켜, 탐(貪).”
아직 몸을 일으킬 수 없어 땅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주먹을 쥔다.
혼원신공(混元神功).
탐(貪).
개(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