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그리고, 나 대신 몸을 일으켜준 녀석이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버렸다.
이 세상에 돌아왔을 때, 나는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사실이 그렇잖아.
‘눈 떴을 때 내 기억은 천마와의 일전에서 이어져 있으니까.’
경천동지란 말이 우스울 정도로 흉악스러운 놈과의 전투.
홀로 일인 군대나 다름없었기에 전쟁이라 불러도 이상할 게 없을 그 혈전 속에서, 나는 영혼 깊이 녀석에 대한 두려움을 새겨야만 했다.
‘신공(神功)… 신공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처음 무공을 만들고자 했을 때, 나는 어설픈 심공이 아닌 곧장 신공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으로 이어졌다.
그 정도는 되어야 최소한 녀석에게 비벼볼 수 있다 싶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그 결실을 거둘 시간이었다.
* * *
거대한 어둠이 그 입을 벌렸다.
쩌억 벌려진 아가리 안으로 일대의 모든 것이 추락했다.
제단이었던 것도, 그것의 바닥이었던 것도,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던 나와 천마까지.
‘후아! 이제 살겠네.’
땅을 밟아야 걸음이 되는 것이지, 그 땅이 사라져 버린 이상 천마군림보가 짓누르던 무지막지한 압력은 자연스럽게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추락 속에 역설적으로 자유를 얻게 된 나는 그대로 고개를 들어 떨어져 내리는 녀석을 바라봤다.
‘새끼, 제법 놀랐나 보네.’
표정에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천마의 시선엔 경이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과연, 삼십 년 전과는 다르군.”
“그걸 이제 알았냐!”
등 뒤에서 호접의 날개를 펄럭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박살 났던 온 관절이 회복되기까지는 눈 한 번 깜빡일 시간이면 충분했다.
“자, 시작해 볼까.”
어둠 속에 바로 섰다.
녀석 역시 모종의 수법을 발휘했는지 허공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런 녀석을 향해 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그어어…….
- 크르르르…….
그것은 지금껏 탐(貪)이 삼켰던 것들.
마물과 마수, 인간 취급 못 받을 놈들이 검은 형체로 나타나 천마를 향해 쇄도했다.
“신공이라 부르기에는… 하잘하구나.”
그 수가 물경 수백을 가볍게 넘었음에도 천마는 살짝 인상을 찌푸릴 뿐 크게 동요치 않았다.
그저 가볍게 일수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그 모두를 박살 내버렸다.
그야말로 파멸적인 신위지만, 딱히 놀랍거나 하지는 않다.
‘저 정도는 되어야 천마지.’
하늘이 내린 마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증명하는 듯한 궤멸적인 무력.
그 모습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손을 들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박살 나버린 잔해가 다시금 하늘로 떠오른다.
그것들이 다시 뭉쳐 꾸물꾸물 뭉쳐 원래의 괴형체가 되는 기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한 형체가 된다.
독왕의 손에 쥐어졌을 때, 더할 나위 없는 재앙의 비가 된다는 암기(暗技)라는 형태로.
혼원신공(混元神功).
탐(貪).
암천멸우(暗天滅雨).
만천화우가 일만 개의 꽃비라면, 이것은 최소한 그 열 배.
만천화우가 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꽃이라면, 이것은 하늘을 무너트리며 내리는 죽음의 빗줄기.
“죽어라.”
종언의 선언과 함께 십만에 달하는 죽음의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허.”
그 모습에 천마 역시 탄성을 흘렸고, 익숙한 기수식을 보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
가슴 앞에 모은 손을 뒤바꾸는 동작.
또다시 하늘과 땅이 뒤바뀌고,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비는 역으로 치솟는 형태가 되어 그 방향을 튼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되지.”
혼원신공(混元神功).
탐(貪).
암천멸우(暗天滅雨).
또다시 죽음의 비를 퍼붓는다.
이번엔 상하좌우 구분없는 전 방위적인 폭격.
하늘과 땅을 뒤집어도, 애초부터 그 의미가 없는 어둠의 영역에서 퍼붓는 폭격은 방향 바꾸기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결국,
“어쩔 수 없군.”
천마신공(天魔神功).
건곤벽(乾坤壁).
천마는 합장하듯 두 손을 마주치며 자신을 주변으로 한 구체를 만들어 냈다.
콰콰콰쾅!!
구체는 곧 그를 보호하는 방어벽이 되었고, 수십만의 폭우를 막아냈다.
‘시발, 저게 뭐야?’
탐이 집어삼킨 것들로 만든 암기인 만큼, 하나하나가 극독이 비침의 형상으로 화한 것이다.
닿는 것들을 녹여내리는 성질이 있는 암기일 텐데, 놈이 펼친 방어벽은 비침 세례에 녹아내리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재생되며 그것들의 접근을 불허했다.
마치, 하늘과 땅을 가르는 벽처럼.
그 굳건함에 나는 허공을 박차며 직접 움직였다.
“사기 적당히 쳐라!”
혼원신공(混元神功).
겁화(劫火).
염제(炎帝).
움켜쥔 주먹으로 겁화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불꽃은 삽시간에 몸집을 불렸고, 눈 한 번 깜빡일 시간에 이 어두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자그마한 태양으로 화했다.
구우우우웅―!!!
천마가 만들어 낸 구체와 거대한 태양이 부딪치며 굉음을 토했다.
“겁화의… 불꽃이군.”
닿는 모든 것을 녹여 내릴 것만 같이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소태양이지만, 천마의 방어벽을 뚫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주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녀석의 방어벽에 작은 실금을 여럿 만들어 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흐, 고작 겁화뿐이겠냐.”
“…진정, 죽음을 각오했군.”
“이제 알았냐?”
“셋인가, 넷인가? 그대 가문에 전해지는 일곱 개의 금기가 있다 들었다. 개중 대체 몇 개를 동시에 전개하고 있는 겐가.”
얇디얇으나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굳건한 벽 너머로 천마는 나를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하도 박 터지게 싸웠더니, 이젠 거기까지 쉽게 알아보는구만.
“당연한 걸 묻네.”
그런 녀석에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소리쳤다.
“당연히 전부다!”
혼원신공(混元神功).
분열(分裂).
만다라(曼陀羅).
발을 내디딘 어둠으로부터 수천 개의 촉수가 뻗어 나왔고, 그것들은 각기 분열하며 반경 수백 장의 공간에 중첩되는 만(卍) 자의 문양을 만들어 냈다.
“부숴버려.”
수천의 촉수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고, 피어난 만다라의 위로 가공할 인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끼기긱― 끼기긱!
회전하는 업륜(業輪)이 그 속도를 올릴수록, 그 위에 존재하는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막대한 인력에 의해 우그러지기 시작했고, 그건 천마가 만들어 낸 건곤벽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파아앙―!
결국 버티지 못한 건곤벽이 부서지며 그 파편이 산산이 흩어졌다.
‘지금!’
절호의 기회.
곧장 거리를 좁히며 달려들었고, 자신의 방어벽이 무너졌음에 인상을 찌푸린 천마가 내게 손을 뻗어왔다.
천마신공(天魔神功).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
하늘과 땅을 뒤집어 버리는 수법.
언제나 상황적 우위를 만들어 내는 녀석의 건곤대나이는 압도적인 불합리함의 정수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역시.’
나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럴 줄 알았다, 이 자식아!”
혼원신공(混元神功).
탈각(脫殼).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
“…뭐?”
마주 뻗은 손에 나 역시 손을 마주한다.
손이 닿는 순간 나의 손은 순간적으로 천마의 그것과 똑같이 변모해 있었고, 다음 순간 천마와 나를 휘감은 시공간이 동시에 뒤바뀌기 시작했다.
“……!”
시공에 간섭하는 수법이 부딪치며 하늘과 땅이 순식간에 수십 번의 뒤바뀌었다. 눈 깜짝할 새에 위치를 뒤바꾸길 수십 번, 어느새 우리는 동시에 아무렇게나 허공에 내던져져 체공 상태에 이르렀다.
“흐.”
녀석은 물론이거니와 나 역시 발 디딜 곳 하나 없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부유하는 상태가 되었고, 이 순간만을 기다렸던 나는 힘껏 두 손을 휘저으며 주변의 어둠을 움직였다.
혼원신공.
암천멸우.
퍼부어지는 수십 만의 폭우.
“같은 수를…….”
천마신공(天魔神功).
건곤벽(乾坤壁).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천마는 능숙하게 그 방어벽을 재개했지만,
콰콰콰쾅!!!
“이미, 분석 완료다!”
이번은 전과 달랐다.
직전, 녀석과 직접 손을 섞으며 녀석이 펼친 방어벽에 대해 일부 해석할 수 있었고, 즉석에서 가장 상극이 될 독소를 배합해 암천멸우를 전개했다.
즉,
‘됐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던 암천멸우가, 이번엔 착실하게 그 이름값을 다하듯 녀석의 건곤벽을 녹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득한 숫자로 퍼부어지는 죽음의 폭우는 곧 물결이 되었고, 거대한 해랑의 흐름처럼 천마를 뒤덮었다.
하늘과 땅을 가르듯 견고하던 방벽마저 부질없이 녹아내리는 것이,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저 오만한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어라, 천…….’
그렇게 속으로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
“…실망스럽군.”
문득,
지금까지 몰아붙이고 있던 현실이 꿈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그 순간, 내 눈에 천천히 반장을 취하는 천마의 모습이 보였다.
“가능성은 무량하나, 그것을 만개시키는 법을 배우지 못했군.”
죽음의 물결이 목전까지 들이닥치기 직전, 녀석은 반대쪽 손을 움직였다.
그 느릿느릿한 손동작은 마치 하잘한 미물을 손으로 내리눌러, 지그시 덮는 듯했으니―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인(天魔印).
일순간 아무것도 없을 암흑 공간의 위쪽에 거대한 천장이 생기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뭐?’
그리고 나도 모르게 돌아본 위쪽.
그곳에서 나는 보고 말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정말로, 저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손을.
구우우웅―!!
퍼부어지는 죽음의 비도, 멸망의 꽃비도 모두 한순간의 꿈처럼 아스러졌다.
세상이 뒤흔들리는 듯한 거대한 격동.
경천동지란 표현이 조금도 그릇되지 않는 그 위력에, 나는 어느 순간 어둠 한복판으로 내던져지고 있었다.
“…커헉!”
뒤늦게 토한 피가 흩뿌려지고, 대체 몇백 장을 날아간 건지 헤아릴 수도 없는 아득한 거리를 내던져진 뒤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무슨…….”
아득히 떨어진 거리에서도 고고하게 서 있는 천마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의 난리가 그에겐 아무것도 아닌 듯, 옷깃 한 점 흐트러지지 않은 듯한 모습.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고?’
웃기지 마.
무슨 그런 재미없는 농담이 다 있어?
“그대여. 아직도 인간의 탈을 쓰고 흉내를 내려 하는가?”
수백 장이 넘는 거리 속에서도 천마의 두 눈빛은 또렷이 보였다.
애초부터 녀석은 한 번도 위기에 처한 적 없었다는 듯 담담했고, 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도 홀로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암흑 공간조차 결국은 아집에 불과했군.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행동하더니, 마지막까지 사람이고는 싶었던 겐가?”
녀석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날아들어 와 꽂혔다.
이미 내 모든 행동을 헤아리고 있는 녀석은 반론 따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확신하고 있었고, 나는 그에 무언가 찔리기라도 한 듯 버럭 소리쳤다.
“닥쳐!!”
다시금 어둠을 움직였다.
‘십만으로 안 된다면, 백만, 백만이 안 된다면 천만을 끌어오면 되는 거잖아!’
죽음의 비가 온 하늘을 뒤덮으며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하나를 상대하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압도적인 총공세.
하지만,
“부질없는 아집이군.”
그 속에서도 천마는 초연한 듯 읊조렸으니―
“그렇다면, 그 아집을 부숴주마.”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후(天魔吼).
천상천하, 오로지 홀로 독존(獨存)하는 천마가 나지막이 선언했다.
“부서져라.”
그리고,
………………….!!
세상이,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