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세상이 부서진다.
그 말이 아닌 다른 어떠한 표현으로 이 광경을 묘사할 수 있을까?
------------------------!!
규격을 뛰어넘은 굉음은 이미 청각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간단히 짓밟아 버려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지 못하는 상태였고, 그러한 현상을 일으킨 거대한 붕괴는 내 감각이 닿는 전역에서 동시 진행 중이었다.
지평선의 끝에서 끝까지.
어둠으로 가득 찬 세계에 금이 가고 쪼개진다.
밤하늘의 어둠이 개벽을 맞이하며 찢어발겨지듯, 탐이 삼켜낸 세계가 붕괴하며 전혀 다른 세계로 내던져졌다.
‘큭!’
그렇게 내던져진 또 다른 세계.
그 세계는…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여긴…….’
전체적으로 암흑이 들어찬 공간이란 것은 탐에게 집어 삼켜진 공간과 비슷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면, 이전에 있던 곳에 존재하는 게 탐이 삼켜왔던 것이라면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저 하늘에 박혀 있는 듯한 무수한 별빛이란 점이었다.
‘지난번, 그곳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 와본 적이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인상을 찌푸렸고, 곧 한 가지 사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렇구나. 여기가, 저놈이 지금까지 머물던 곳이구나.’
십만대산 깊은 곳의 마교도 놈들이 성스럽게 여기던 천산 어딘가가 아니라, 진정 천마란 놈이 존재하던 요람과 같은 곳.
그러니까,
“눈치챘는가? 이곳이 바로, 천상(天上)이라네.”
천상(天上).
진정한 의미로 하늘 위에 존재하는 세계였다.
뚜벅, 뚜벅.
녀석이 어둠 속을 걸어왔다.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이 어둠 속에서 그런 소리가 날 리는 없지만, 그만큼이나 녀석의 걸음걸이는 여유롭고 안정된 상태였다.
“수천 년, 어쩌면 그 이상.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된 시점부터, 나는 이곳에서 기거하며 별들의 운행을 바라보며 존재했다네.”
별의 운행.
은은한 빛을 발하는 별무리들은 저마다가 결코 가볍지 않은 세월은 간직한 채 빛나고 있었고, 천마는 그중 하나에 손을 뻗어 빛무리 하나를 받아냈다.
스르르…….
별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의 손아귀 위로 안착했다.
“어떤가.”
망연히 별빛을 바라보던 내게 문득, 느껴지는 따스함이 있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맹렬히 타오르는 작은 불씨?’
서로 조화롭지 않은 단어의 배열인 듯하지만, 마음속에 느껴지는 바를 구술하자면 딱 그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한때 이것은 겁화(劫火)라고 불렸지. 죽음 속에서도 스스로의 죽음을 장작 삼아 불타올라 끝없이 싸우던 그런 사내의 운명을 간직한 별일세.”
‘겁화…….’
그제야 저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겁화존자, 그것의 유해가 저렇게 은은한 빛무리가 되어 천마에게 귀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빛무리는 수없이 많아 이 어둠뿐인 공간을 찬란히 빛내고 있었다.
“말했듯, 나는 오랜 시간 이 빛들을 보아왔다네. 그 빛들엔 하나의 존재가 평생 동안 고련해 온 결과가 담겨 있지. 그들이 내게 귀의하며 맡긴 업(業)에는 그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만큼, 일대 종사라 불릴 만한 이들이 일평생 궁구하여 온 무(武)에 깨달음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네.”
말을 마친 천마의 등 뒤로 수천만의 빛무리가 떠올랐다.
저것 하나하나가 누군가들이 살아온 경험이요, 그들의 기억이라면 천마란 놈은 일개 개인이 감당하기엔 절대적으로 무리라 할 수 있을 세월을 쌓아왔다는 뜻이 된다.
“알겠나? 천마신공이 신공(神功)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신(神)의 힘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은, 고작해야 개인이 만들어 낼 수가 없지. 하나하나가 벽을 넘어 초월(超月)을 바라보던 무인들이 평생에 걸쳐 남긴 한 자락 깨달음을 엮어서 겨우 만들어낸 그릇이기에 겨우겨우 담을 수 있었던 거야.”
그런가.
녀석은 무인이라고만 말했지만, 녀석을 믿고 따르며 자신의 평생을 귀의하였던 이들이 비단 무인에 한정될 리 없다. 그 경지에 비견할 만한 술법사들과 사제들이 자신의 평생을 바쳐 얻은 깨달음 한 자락을 최후의 순간 천마에게 공양하였을 것이고, 천마는 그것들을 엮어내 천마신공을 만든 것이다.
‘처음부터 답도 없는 싸움이었군.’
뭐야 이거, 완전 불공평하잖아?
땡중 놈이 일평생 남긴 대환단 하나 얻고 좋아라 히히덕 웃었더니, 저놈은 그런 거 수천 개를 처먹고 살았던 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열이 뻗쳐 올랐다.
“빌어먹을 놈. 금수저도 보통 금수저가 아니었잖아?”
“이제 말이 나오나 보군.”
“어. 누가 쓸데없이 주절주절 헛소리나 늘어놔 준 덕분에.”
금방이라도 죽어 나자빠질 것 같았지만,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가칠대금기를 동시에 펼친 대가로 이 창대한 암흑 공간에 분해돼 흩날릴 먼지가 될 줄 알았다.
‘내가 바친 대가가 그거였으니까.’
수명을 넘어, 내 존재 자체의 소멸을 대가로 먼 미래의 힘을 끌어왔다.
내가 어느 이름 없는 야산 토굴에 틀어박혀 일백 년은 수련했을 때야 얻을 수 있는 힘을 당장에 끌어다 쓰는 대신, 전투가 끝났을 시 소멸을 각오한 것이다.
그렇기에 언제 죽어도, 아니, 소멸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 여겼지만-
“다행히 내가 뒤질 때가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거든.”
꽈악―
주먹을 쥐며 다짐했다
우주에 흩날릴 먼지가 되기 전에, 네놈 아구창 한 번 정도는 돌려주고 가야겠다라고.
“네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관심 없지만, 어쨌거나 진짜 부럽기는 하구만.”
“내가 말인가?”
“그래. 네놈의 그 정신 나간 과거사가 진정 진실이라면, 나는 기억 하나 없이 이 땅을 전전하며 땅이나 파고 흙이나 먹으면서 일평생 거지처럼 돌아다녔는데, 네놈은 이런 전망 좋은 곳에서 호의호식하며 남들이 일평생 바친 수천의 깨달음을 날로 먹었다는 것 아냐?”
다시 생각하니 진짜 열 받네?
“이 금수저 새끼. 이 땅의 정의가 전부 땅바닥에 나려타곤을 시전해도, 나는 너에게 그 정의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줘야겠다.”
힘을 모았다.
사실, 그게 썩 쉽지는 않았다.
‘아, 젠장.’
애써 힘주어 말해 보고는 있지만, 사실 예정된 소멸은 지금도 시시각각 진행되고 있었다.
‘더럽게 안 모이네.’
자꾸만 손끝부터 분열되어 흩어지려는 기이한 감각이 전신을 휘몰아쳤다.
혈관 속을 수십만 마리의 개미가 기어 다니며 갉아먹는 듯한 불쾌감.
그러한 감각 속을 부유하며, 남은 힘을 짜내 혼원신공을 발동시켰다.
“자, 받아라. 초식명은 흙수저의 권(拳)이다!”
타닷―
우주 공간을 달음박질하며 녀석을 향해 주먹을 내뻗는다.
타악―
당연하지만, 손쉽게 막혔다.
“정말 흙 같은 주먹이군.”
흙을 잘 뭉쳐 수저로 만들어 봤는가?
나는 수저까진 안 만들어 봤지만, 그릇까진 만들어 봤다.
당연하지만, 잘 부서진다.
파스스…….
녀석에게 잡힌 주먹이 힘없이 분해되었다.
이 공간에 가득 찬 빛무리처럼, 나란 존재가 형체를 이루지 못하고 분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건 어떠냐?”
흙수저의 각(脚).
분해되었기에 더 이상 잡히지도 않아 자유로운 몸을 움직여 발차기를 갈겼다.
당연하게도,
“정말 흙 같은 발차기군.”
녀석은 어렵지 않게 막아냈고, 그 역시 분해되어 빛무리로 화했다.
“최후의 순간에, 이딴 장난질인가?”
녀석은 내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 간지럽지도 않게 되자 어처구니없다는 듯 따져왔다.
“장난은 무슨. 넌 곧 뒤져가면서도 장난칠 수 있겠냐?”
죽음이란, 아니, ‘끝’이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르고, 또 스스로 가속하는지 이젠 휘두르지 않았던 반대쪽 주먹과 반대쪽 다리조차 저 알아서 분해되고 있었다.
‘역시, 여기까지구만.’
이제 나는 곧 별무리로 화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그 영혼이 뜯겨 저놈의 육신으로 화해버릴지도 모를 일이지.
존재의 소멸도 두려운데, 그것이 양분이 되어 저놈에게 흡수될지 모른다니.
‘많이많이도 두렵구만.’
공포가 물밀듯 밀려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게 소중한 녀석들에게, 내게 베풀어 준 녀석들에게 그 채무를 채 반도 상환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죽어야 하다니.
무섭지 않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두려운가?”
어둠과 빛무리, 그 상반되면서도 절묘하게 어울리는 풍경 속에 홀로 독존하는 녀석이 물어왔다.
“그야 당연하지.”
그리고 나 역시 당당하게 답했다.
“곧 뒤지게 생겼는데.”
“…죽음이 두려운가? 어울리지 않는군.”
“세상에 죽는 거 안 두려워하는 녀석이 어딨어.”
지금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젠 사지라고 만신창이 상태로 붙어 있던 것들이 완전히 빛가루가 되어 흩날려, 삼십 년 전 핏물 웅덩이 속에 빠져 있던 저 녀석처럼 몸통과 머리만 남게 되었다.
“그런 것치곤, 너무나 당당하군.”
“안 당당하면, 네가 살려주기라도 하려고?”
어차피 곧 갈 목숨인데, 어찌 나오든 알 바냐고.
나는 툭 하고 쏘아지며 마지막 남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땡중. 마지막 깨달음 한 자락 빌린다.’
입멸(入滅)이란 경지가 존재한다.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을 이르는 말로, 번뇌와 육신이 함께 소멸된 평온한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이른다.
하지만 그 말은 참 의미심장하다.
‘번뇌도 소멸하고, 그것을 느낄 육신도 소멸한다면 어떻게 평온의 상태로 들어설 수 있을까?’
원래의 나는 모를 일이다.
무소유(無所有)를 설파하던 땡중 놈들의 무도(武道)는 내가 걸어본 적도 없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길이니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깨달음의 한 자락을 분명 쥐고 있다.
‘대환단.’
녀석이 열반의 경지에 들며 내게 남긴 것.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에 들며 남긴 한 자락 깨달음이 내가 행할 마지막 한 수가 되어주었다.
‘자, 가자.’
파스스…….
사지를 잃고 부유하던 마지막 몸뚱이도 결국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야말로 완전한 소멸의 상태.
내가 있었던 흔적은 그 어느 하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소리로 들을 수도 없으며, 코로 맡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분명 이 세상에 남아 있다.
아니, 내가 남긴 ‘의지’만이 한 자락 이 세상에 남아 유(有)도 무(無)도 아닌 공(空)으로서 잠깐 세상에 그 흔적을 남긴다.
혼원신공(混元神功).
공(空).
- 받아라.
입멸과 함께 남긴 나의 의지가 우주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 의지는 형체 없이 날아들어 천마를 덮쳤고, 녀석 역시 이마저 예상치 못했는지 눈을 부릅떴다.
“이건……!!”
녀석의 형체가 서서히 흩어지고 소멸한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을 공(空)으로 만드는… 실로, 천하에… 아니, 천상(天上)에도 없을 극독(劇毒)이구나.”
공(空)이라는 이름의 독(毒)에 중독된 녀석은 서서히 죽어 갔다.
하늘이 내린 마(魔)조차 저항할 수 없는 독에 중독된 녀석은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끝끝내, 비장의 한 수를 남겨 놨을 줄은…….”
삼십 년 전과 같은 동반 자살.
아무도 찾아올 일 없을 십만대산부터 더더욱 고독한 암흑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삼십 년 전의 반복.
마지막까지 남은 녀석은 허탈하듯 단말마를 내뱉었지만,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이미 소멸해 버렸으니까.
그렇게, 모든 것이 끝을 향해 달려갔다.
* * *
그리고,
- 크르르르……!!
아무것도 없는 암흑 공간.
아니, 별빛이 촘촘히 박혀 빛을 발하는 우주 공간.
그 속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포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