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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349화 (349/350)

349화

총천연색의 우주.

더 이상은 암흑의 공간이라 부를 수도 없게 된 빛무리 속에서도 천마는 독보적인 위상으로 서 있었다.

“자, 끝을 내보도록 하지.”

녀석의 손짓에 따라 별들의 운행이 시작됐다.

천마의 의지에 감응하듯 쏟아지는 유성우(流星雨)의 광경은 실로 아름답고도 장엄했지만, 단순히 그에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별들은 하나하나 한 명의 인간이 평생을 바친 정수가 담겨 있었다.

생의 끝자락에서 깨달음을 얻은 무인의 일 초식이, 죽음을 불사하고 연마를 거듭한 끝에 각인시킨 마도사의 깨달음이, 자신의 평생을 바쳐 오로지 구주의 영광을 원했던 성자의 숙원이.

그 하나하나가 내게는 너무나 위협적인 살초(殺招)가 되어 퍼부어졌다.

- 크르르릉!!

그때, 탐이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쏟아지던 유성우는 탐의 포효에 부딪치며 산산이 깨지며 흩날렸다.

“네놈만 등에 짊어진 짐이 한 가득인 게 아니거든.”

“뭐, 그런 것 같군.”

천마는 자신의 첫수가 물거품이 되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음을 준비했다.

“다만, 그 짐을 짊어질 자격이 되는지 한번 볼까.”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인(天魔印).

녀석의 손이 움직였다.

그러자, 거대한 우주 공간조차 갈라지며 내리꽂히는 거대한 대수인(大手印)이 모습을 드러냈다.

“버텨내 보도록.”

한 손으로 반장을 취한 천마는 반대쪽 손을 가슴께까지 들어 올려 무언가를 내리누르는 듯한 손동작을 취했다.

그에 따라, 그 길이만 수백 여장에 달하는 거대한 대수인이 우주를 가르며 내게 내리꽂혔다.

‘더럽게 크네.’

그것은 마치 부처의 손바닥과 같았다.

내가 아무리 내달려도 결국 자신의 손바닥 위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고, 그것은 거대한 벽이 되어 그 이상의 전진을 불허(不許)하고 있었다.

‘웃기고 있네.’

여기서 멈추라고?

여기서 물러서라고?

마치 이 우주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만 같은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재밌네. 마침, 우리 애들 중에 그런 것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놈이 있거든.”

길지 않은 생애를 살았다지만, 그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던 녀석.

어떤 난관을 마주한다 하여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항상 가장 선두에 섰던 녀석.

무공을 만들라고 던져 줬더니, 결국 자기 자신 같은 것만 만들어낸 녀석.

우웅…….

별 파편 하나가 흘러내려 내게 깃들었다.

오른 주먹에 깃든 그 따스함을 느끼며 나 역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일권(一拳)을 내뻗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구구구궁!!

하늘을 향해 내뻗은 주먹은 하늘을 가르며 나아갔다.

천상(天上)의 의지를 대변하듯 내려앉던 거대한 일장(一掌)이, 사람의 의지를 담은 주먹과 맞부딪치며 천상천하를 뒤흔들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 냈다.

“제법이군.”

총천연의 우주를 뒤흔드는 떨림 속에서 천마는 미소 지었다.

“미친놈.”

질기디질긴 놈과의 악연.

그 속에서 저놈의 미소를 본 것이 과연 몇 번이나 있던가 생각하다가 지금이 그 처음인 것을 깨달았다.

“네놈을 따르는 이들에게 그리 미소 지어준 적이 있긴 했냐?”

단언컨대, 그런 적이 없을 것이라 확신하며 던진 질문에 녀석은 딱히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내디뎠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녀석이 내디디는 한 걸음에 별들의 운행이 정지했다.

녀석이 내디디는 두 걸음에 별들이 일제히 정렬했고,

녀석이 내디디는 세 걸음에 별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야말로, 별들 위에 군림하는 자의 신위(神威).

“흐, 물량전이라 이거냐?”

그렇다면, 나도 질 수 없지.

화악―

크게 펼친 두 팔을 따라, 내 의지가 그물망처럼 퍼져나갔다.

뻗어 나간 의지는 한 녀석이 꿈꾸던 무예가 궁극에 달할 미래를 이루어냈다.

‘영광인 줄 알아라, 이 미련한 녀석아.’

타고난 재능이 미천함에도 평생 자신을 따르는 동생들을 지키려 했던 녀석.

시간이 흘러, 뛰어난 재능을 지닌 동생들이 자신을 앞지름에도 열등감 대신 스스로 더 강해져 그들을 지키려 했던 녀석.

그 답을 찾기 위해,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 스스로의 무(武)를 재정립하려 했던 녀석.

결국 그 녀석은 훗날 자신의 무(武)를 완성시킬 것이고, 대사천당가의 방계들을 이끄는 당주로서 발돋움할 것이다.

그것을 나 역시 확신하기에, 그 미래를 지금 여기서 끌어다 쓴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차양십이지명(遮陽十二之命).

구우우웅!!

수많은 별들의 운행에 맞서, 열두 별자리의 별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 여파로 다시 한번, 우주 공간이 떨리며 거대한 폭풍이 사방을 몰아쳤다.

“과연, 질기디질기구나.”

천마는 껄껄 웃었다.

조금씩 다가가는 내 걸음이 녀석의 목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이제 녀석은 더없이 즐겁다는 듯 웃어젖히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더욱더 본좌를 즐겁게 해보아라!!”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후(天魔吼).

“부서져라.”

녀석이 선언이 온 우주에 퍼져 나갔다.

탐(貪)이, 내 심상 공간을 빌어 만들어 낸 세계를 부쉈던 녀석의 설법이 이제는 이 현실마저 부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 역시 두 눈을 부릅뜨며 안광을 토했다.

부서지는 현실을 마주하며, 이 현실에 맞서 싸운 한 녀석을 떠올렸다.

‘자, 보아라.’

어찌 보면 방계 녀석들 중 가장 뒤떨어지는 무재(武材)를 타고난 녀석이었다.

한 놈 빼고는 어지간해선 형 아우를 가리지 않는 방계들이지만, 그래도 막내나 다름없는 녀석이었다.

가장 몸이 덜 여물고, 그 무예가 뒤떨어지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 현실에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 현실이 너를 제약할 때, 너는 그 현실을 부수려 했었지.’

철저히 당가답게 싸웠다.

독과 암기, 당가에 전해지는 온갖 방술과 내가 알려준 모든 것을 동원해 현실 그 자체와 맞서 싸우려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과를 이루어 냈으니, 대형인 나 역시 같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필연(必然)이요, 자연(自然)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혼원신공(混元神功).

환현붕괴(幻現崩壞).

---------------!!!

두 현실을 부수는 힘이 부딪쳤으니, 자연스러운 쌍소멸(雙消滅)이 발생하며 거대한 혼돈을 만들어냈다.

“……!”

그에 휩쓸린 내 몸은 우주 공간 한편으로 내던져졌고, 마침 그곳에 생겨난 구멍을 통해 저 아래의 인세(人世)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삑삑.

“삑삑아.”

삑삑?

“대형은 어디 가셨을까?”

익숙한 녀석이 보였다.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지는 지붕 위에 누워 배나 벅벅 긁고 있는 녀석.

그 모습에 아기 새 한 마리가 삑삑 걸어와 덥석 올라탔다.

삑삑!

“응? 걱정되면 찾아보라고?”

삑삑.

“뭐… 그게 맞긴 한데……. 음, 그럴까?”

삑삑!

“왜 진작 안 찾아봤냐고? 그야… 괜히 또 대형 바쁘신데 번거롭게 했다고 혼날까 봐…….”

삑삑?

“쪼, 쫄? 얌마! 당연히 혼나는 게 무섭지! 네가 대형한테 안 맞아 봐서…….”

삑삑.

“…아니, 그래도 찾아볼 거지.”

아기 새 한 마리한테 갈굼받던 당불퇴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사실, 어쩌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나 누군가 그렇게 말해 주길 바랐을지도 몰랐다.

삑삑.

“가보라고? 흐흐. 알아, 인마. 사실, 말 안 해도 갈 생각이었어.”

대형의 소식이 끊긴 지 벌써 한 달쯤 지났다.

그 위대한 대형이 어디선가 위험에 빠졌을 일은 없겠지만, 그게 여기 평화로운 지붕 위에서 배나 긁고 있을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래, 찾다가 괜한 일을 만들었다고 혼내면 혼나면 되지. 혹시 모르잖아? 어디서 대형이 우리의 도움을 바라고 있을지.”

삑삑?

“…알아, 인마. 우리가 나선다고 뭐가 큰 도움이 될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말이야. 나는 도저히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을 성격이 못 되거든. 무엇보다도 말이지.”

웃차―

지붕 위에서 뚝 떨어져 땅바닥으로 내려앉은 당불퇴는 기지개를 켜며 소리쳤다.

“이 당가의 푸른 야수, 당불퇴 님의 야성적인 감각에는 느껴진다. 어디선가, 대형이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삑?

진심으로? 라는 표정으로 아기 새가 고개를 갸웃거려 왔지만, 당불퇴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는 이미 가주전으로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 딱 기다리십쇼! 제가, 우리가 갑니다!!”

* * *

“…미친놈.”

정신을 차렸다.

웬 이상한 구멍 속에 빠져 들어가 정신을 놓을 뻔했다가, 소름 끼치는 광경 속에 헐레벌떡 몸을 일으켰다.

“즐거운 꿈이라도 꾼 모양이군.”

어느새 다가온 천마가 내 앞에 섰다.

“아니, 엄청나게 무서운 꿈을 꿨어.”

그러니까, 그 꿈이 현실이 되기 전에 서둘러 움직여야지.

- 크르르…….

내 뒤편에 선 탐이 그르릉거렸다.

녀석은 더 이상 거대한 뱀의 형상이 아닌, 완연한 흑룡(黑龍)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녀석의 진체(眞體)겠지.

“그래도, 마지막이니 하나만 묻자.”

“말하게.”

“왜 진작 날 죽이지 않았던 거냐?”

“악취미군.”

천마는 피식 웃었다.

“몰라서 묻는 건가?”

“네 입으로 말해, 이 쓰레기야.”

“한결같이 심한 말을 하는군.”

생각해 보면 녀석은 이미 날 죽일 기회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녀석은 날 몰아붙이기만 할 뿐, 최후의 한 수를 두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치, 내가 무언가를 깨닫길 바랐던 것처럼.

“그래, 그렇다면 말하지. 이 모든 것을 끝낼 것이, 내가 아니라 자네라는 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네.”

“…미친놈.”

“원하는 답을 해줘도 그러는군.”

천마는 웃었다.

그 웃음은 실바람과 같아서, 불어오는 바람이 있다면 그에 흩날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흐릿했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도 그러했다.

내게 걸어온 천마는 이미 넝마가 되어 소멸하기 직전이었다.

“…왜 하필 나였냐? 네가 직접해도 된 거잖아.”

“나는 그럴 자격이 없었으니까.

이제 와서야, 녀석이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녀석은, 그저 모든 은원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만, 그 자격이 스스로에게 없다 여겼을 뿐.

“나는 포기했었다. 복잡하게 응어리진 은원의 실타래를 풀 자신이 없어, 삼십 년의 시간을 방관하며 지냈었다. 그리고 그런 포기마저 제대로 하지 못했지. 나를 찾는 부름에 매정하게 눈 돌리는 것조차 하지 못해서, 결국 삼십 년째에 그들의 부름에 응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여파로 기다렸다는 듯 함께 부활하는 자네를 보고 깨달았지. 그 삼십 년간, 자네는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녀석의 미소는 마치 달관한 듯 꽤 편해 보였다.

등에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이제야 벗어 던지게 되었다는 걸까?

“미친놈. 누구 멋대로 남에게 짐을 떠맡기려는 거냐? 나라고 너를 믿고 따르는 광신도 놈들을 쉽게 용서할 것 같아? 도망친 녀석들을 뒤쫓아 서방 세계까지 추격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겠지.”

“뭐?”

“그게, 자네들이잖나.”

천하제일협의지문(天下第一俠義之門).

사천당가(四川唐家).

“협의(俠義). 그것이 자네들이 지켜온 가치이며, 그대가 직접 삼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후손들에게 전달한 당가의 혼(魂)이 아닌가.”

“…미친놈. 누구 멋대로 착각하고 지랄이야?”

“글쎄. 그 답은, 설령 자네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이 들어주겠지.”

녀석의 시선이 나를 넘어 뒤편에서 똬리를 펴고 일어선 흑룡에게 가 닿았다.

더 이상 흉포한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 흑룡(黑龍)은 그저 담담한 시선으로 천마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난날의 모든 과오는 내가 안고 가려 한다네. 완성된 육신과, 완성된 술법을 지닌 정신은 그 청탁을 위한 뇌물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 크르르…….

흑룡은 나지막이 울음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녀석의 안에 있던 사명이의 의지가 녀석을 용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빌어먹을.”

더럽게 얽힌 악연.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할 천상의 혈투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고, 괴로웠음에도, 이 끝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으리라.

하지만 어찌할까.

‘그래, 이게 네가 줄기차게 말한 협의겠지.’

협의란 원래 이런 것임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않음에도 굳세게(武) 의기로운(俠) 길을 걷어나가는 것.

“…부탁하네.”

천마는 두 눈을 감았다.

그제야 녀석의 만면에 깃든 지친 기색이 그 편린을 드러내는 게 보였다.

“나 역시, 이제는 쉬고 싶다네.”

수천 년이 넘는 긴긴 시간.

손을 내밀었던 이들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하며, 칼을 맞아 결국 스스로를 죽였던 녀석은, 또다시 바보처럼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또다시 절망에 부딪친 녀석이었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최후의 순간까지 발버둥 쳤다.

스스로의 힘으로 안 된다면, 자신을 대신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이를 찾아낸 것이다.

‘그게 하필 나라는 게 짜증 나지만.’

“…하, 그래 어쩌겠냐. 이런 천하제일 호구 가문에 태어난 게 내 죄겠지.”

어쩌겠냐.

내게 흐르는 혼(流魂)이, 이 빌어먹을 호구 가문의 혼(魂)이 도저히 그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하는 것을.

“착각하지 마. 나 아직 완전히 허락한 거 아니다.”

“그렇겠지.”

“사명이 녀석이랑, 삼십 년 전의 머저리 같은 녀석들은 호구 같아서 결국 너희들을 용서하기로 결정했지만… 아직 네놈들이 용서받아야 할 이들이 남아 있으니까.”

과거의 이들은 용서했다지만, 현재의 이들은 아직 모르는 일이다.

녀석들까지 용서를 해야, 이 긴긴 은원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 잘 부탁한다네.”

눈을 감은 천마는 여상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조금의 걱정도 보이지 않으니, 나는 결국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꼭 남겨진 놈들만 개고생이라니까.”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총천연색의 오색찬란한 별들이 눈을 감은 녀석에게로 몰려들었다.

그 마지막을 녀석과 함께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고, 나는 부릅뜬 채 그 모습을 뇌리에 단단히 각인했다.

“미안하네.”

마지막으로 천마는 그리 유언을 남겼다.

“알면 다행이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게, 긴긴 전쟁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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