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절대 天을 건드려선 안 되오.
말이 내뱉어짐과 거의 동시에 청의인이 발출한 강맹한 푸른 도기가 청운을 덮쳐 왔다.
단번에 청운의 몸을 도륙할 것 같은 도의 강기가 청운의 전신 요혈을 노리며 휩쓸어 왔다.
마치 청운의 몸을 불로 태울 기세였다.
청운도 방심하지 않고 <쾌—타—절> 세 초식을 동시에 전개해 맞받아쳤다.
검과 도가 부딪칠 때마다 도기와 검기에 의해 장내의 판석들이 깨어져 사방으로 튀어 올랐고, 주변의 사람들은 그 강기를 이기지 못해 몇 장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하지만 채 이십여 합도 지나지 않아 청운이 공력을 조금 더 끌어올리자마자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났다.
구호법의 전신에는 마치 번갯불에 맞은 듯한 상처가 낭자했다.
게다가 심한 내상까지 입었는지 연신 피를 울컥울컥 토해 내며 자신의 도로 간신히 간신히 땅을 짚고 부들거렸다.
장내의 사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부축하려 하자 구호법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한쪽 팔을 휘둘러 제지하며 소리쳤다.
“이게 도대체 무슨 무공이냐. 나도 강호에서 칼밥을 먹고 산지 벌써 수십 년인데 이런 검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네 사문은 어디냐.”
구호법은 연신 피를 토하면서도 청운의 검법이 더 궁금한 모양이었다.
“내 사문은 없소. 굳이 따지자면 내가 내 사문이요. 자, 이제 진짜로 방주를 불러오시오.”
청운이 마지막으로 다짐을 놓듯 상대를 몰아붙였다.
“나를 놀리는 것이냐. 어떤 사문도 없이 네 놈 같은 고수가 느닷없이 땅에서 솟아났단 말이냐. 좋다. 내 비록 무참히 패했지만, 오늘 새로이 안계를 넓힌 것 같구나. 이 모든 상황을 방주님에게 아뢰어라.”
구호법이 옆의 사내를 돌아보며 명령했다.
“그럴 필요 없소. 이미 내가 모든 걸 보았소.”
짱짱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형형한 눈빛을 내뿜으며 오십 대 중반의 중년인이 대전에서부터 장내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얼굴이 불처럼 붉고 신장이 거의 육 척에 달하는 그가 장내를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바로 귀하가 그렇게 찾던 독아방 방주 독비검 현청우요. 귀하의 이야기는 이미 다 들었소. 그만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말을 마진 방주가 먼저 대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걸어가면서 주변의 부하에게 말했다.
“서둘러 구호법을 의방으로 모셔라. 약재를 아끼지 말고 치료하거라. 그리고 시비를 시켜 대전에 차를 준비하라.”
청운도 방주의 뒤를 따라 대전으로 들어섰다.
대전 속 정면의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화려한 황색의 비단이 깔린 방이 나왔다.
정중앙에 붉은 비단으로 감싼 큼지막한 원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원탁을 빙 둘러 원탁만큼 화려하고 큼직한 의자들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귀빈들을 접대하는 객방인 듯했다.
방주는 그중 한 의자에 먼저 앉으면서 청운에게 자리를 권했다.
방주가 다급하게 차를 한 모금 들이켠 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청운에게 말을 꺼냈다.
“귀하의 방문 이유는 이미 다 들었소. 솔직히 말하겠소. 내가 그 광산을 관리하는 총책임자인 것은 맞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걸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오. 그 광산이 바로 그런 경우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요.”
“사실 광산은 나도 위탁을 받아서 하는 운영하고 있소. 즉 나도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야만 하오. 내 고충도 헤아려 주시오.”
방주는 마치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회한을 토로하듯 말했다.
“당신이 독아방의 최고 결정권자가 아니오. 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방주가 결정할 수 없다니, 나는 도대체 믿을 수 없소.”
청운이 의아해하며 재차 물었다.
“그건 귀하가 무림의 속사정을 잘 몰라서 그렇지요. 무림에 수백 개가 훨씬 넘는 문파가 있고 그들이 겉으로는 모두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더 큰 세력들에 의해 얼기설기 관계가 얽혀 있소.”
“…….”
“가령, 무림맹만 하더라도 표면적으로는 맹주가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맹주가 모든 걸 결정할 수는 없소. 무림맹도 알고 보면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들의 연합체인 장로원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소. 다른 군소 문파들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진 않지요. 독아방 역시 속사정은 마찬가지지요.”
방주는 다소 맥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청운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것은 같아도 내심 황당했다.
“그럼 방주가 두려워하는 그곳은 도대체 어디요.”
청운이 돌발적으로 되물었다.
방주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머리 위의 천장을 가리켰다.
“그곳을 발설하면 우리 방은 멸문이오. 우리끼리는 그냥 그곳을 天이라 부르지요. 사실 나도 그 세력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오. 내가 광산에서 한 달간 벌어들인 돈을 월말이 되면 천에서 사자가 나와 팔 할을 가져갑니다. 남은 이 할도 적지 않은 이문이지만, 하여튼 그렇소.”
청운은 어이가 없었다.
무림이란 곳이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는 단순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천과 독아방의 권리관계가 어떻든 광산 문제는 이참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고 청운은 결심했다.
“방주의 말이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소. 그래도 방주가 광산의 최종관리자이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계약서는 방주가 가지고 있지 않소. 지금 당장 그걸 가져오시오.”
청운은 다그치듯 말했다.
방주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심을 했는지 밖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 즉시 내실 금고에 가서 광산 인부들의 계약서를 가지고 오너라.”
* * *
청운은 삼매진화를 일으켜 계약서를 불사르며 말했다.
“앞으로는 힘없는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이자를 받고, 계약하며, 임금을 지불해서 광산을 운영하시오. 그리고 天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한번 해결해 보겠소. 내일이 월말이니 天에서 사자가 오겠군요.”
청운이 방주를 위로하듯 말했다.
청운의 말을 듣자마자 방주의 얼굴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의 무위가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절대 天을 건드려선 안 되오. 그들은 한 사람의 무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그런 세력이 아니오. 그들은 설사 황제라 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집단이오. 잘못 건드리면 나라가 바뀔 수도 있소.”
독아방 방주의 말은 청운도 깜짝 놀랄 이야기였지만, 만약 그들이 자신을 건드리면 자신 또한 가만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자,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오. 도대체 공자의 무공 내력이 어딘가요. 오늘 공자의 무위를 보니, 그 위력을 떠나 나도 생전 처음 보는 무공이었소.”
방주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침까지 꼴깍 삼켰다.
청운은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해도 방주가 믿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대충 둘러댔다.
“가문에서 누대로 내려오는 공부를 익혔고, 거기에다 내가 스스로 몇 가지 초식을 만들었소. 무위검이라 명명하오. 우리 가문은 이곳 중원에서 발원하지 않았소. 지금은 사라진 동이 계열이오. 조금이라도 궁금증이 해소되었으면 하오.”
청운이 대전을 나가자 독비검 현청우는 자신에게 말하듯 혼잣말을 되뇌었다.
“무위검이라. 저 젊은 고수로 인해 강호에 엄청난 파랑이 한바탕일 것 같군… 틀림없이…….”
* * *
어느새 가을이 성큼 발밑에 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와그작거리며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발바닥을 타고 귀까지 올라왔다.
아직 어디로 갈지를 정하지 못한 낙엽들이 와그르르 몰려다니며 세상의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청운은 독아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맞은편 숲속의 바위 위에 앉아서 독아방의 정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天에서 나온다는 사자를 보기 위해서다.
청운은 애초에 그냥 사자를 한번 만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개 사자가 권한을 가졌다 해도 얼마나 가졌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청운은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속한 단체의 우두머리를 반드시 만나야 할 것 같아 몰래 사자를 미행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자신이 앉아 있는 바위 주변에 시나브로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전신에 흑의를 걸치고 복면까지 한 인영이 독아방의 정문으로 땅거미처럼 들어서고 있었다.
문을 지키던 문지기들이 높은 사람을 대하듯 연신 고개를 숙이며 그를 맞이해서는 안으로 안내하는 것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청운은 돌연 눈빛을 반짝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바로 저자군.’
한 시진쯤 지났을까.
다시 그자가 독아방을 나왔다.
문지기들은 조금 전 그가 들어올 때만큼이나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배웅했다.
그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자신이 왔던 길로 되밟아 가고 있었다.
청운은 그자가 눈치 못 채도록 거의 백여 장 이상 거리를 두고서 길을 가는 길손처럼 그자의 뒤를 따랐다.
관도가 거의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인적이 드문 숲길에서의 미행은 더 조심해야만 한다.
산짐승이라도 놀라게 하면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얼마나 그렇게 미행을 했을까.
갑자기 그자가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청운도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두 갈래 길에서 갑자기 그자가 사라져 버렸다.
청운이 당황해서 어느 길인가 싶어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저음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청운이 재빨리 몸을 돌려 뒤돌아봤다.
天의 사자였다.
“나를 찾는가. 왜 나를 미행하지.”
검은 복면 속의 두 개의 칼날 같은 시선이 청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청운은 단도직입으로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신이 바로 天의 사자요? 궁금한 게 있어 당신을 미행했소. 天은 도대체 뭘 하는 곳이요. 그리고 본거지는 어디에 있소.”
“네 놈은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고 말았고,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고 말았다. 대답은 죽음뿐이다.”
말을 마치자마자 天의 사자는 한 손을 들어올렸다.
공력을 운용하는지 그자 주변의 공기가 요동을 치고 흑의가 찢어질 듯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그의 장심에는 보기에도 섬뜩한 붉은 심장 모양의 반점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또한 눈빛마저 완전히 붉게 충혈되었다.
청운은 저게 도대체 무슨 무공인가 싶어 바짝 긴장했다.
청운도 치우천결을 운용하면서 검을 빼 들었다.
청운이 공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양 팔목에서 솟아난 투명한 자색의 기가 청운의 전신을 감싸며 오르락내리락했다.
청운의 모습을 본 그자도 몹시 긴장을 하는 것 같았다.
잠시의 대치 후 그자가 먼저 소리치며 청운을 향해 쌍장을 떨쳐냈다.
천의 사자의 장심에서 방금 몸속에서 꺼낸 것 같은 붉디붉은 심장이 청운의 가슴을 향해 곧장 쏘아져 왔다.
“쇄심장은 살아 있는 모든 걸 가루로 만든다. 죽어라. 이놈.”
살을 찢어발길 듯 강맹한 강기 속에서 한 줄기 붉은 실 같은 또 다른 강기가 섬전처럼 청운의 심장으로 곧장 육박해 왔다.
청운은 어설프게 대적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절—> 초식으로 강기 속 또 다른 강기인 붉은 강기를 잘라 내고 <쾌—> 초식으로 강하게 맞받아쳤다.
장영과 검기가 허공에서 부닥치자 주변의 나무들이 우지끈 부러져 나갔고, 여진에 휘말린 작은 관목들과 풀들이 뿌리째 뽑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대여섯 번의 손을 섞고 나자 점차 승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청운은 몇 군데 옷만 찢어졌을 뿐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상대는 가슴과 허리 그리고 허벅지 여러 군데가 베어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심지어 심한 내상까지 입었는지 입가에도 한줄기 피를 흘리며 부리를 후들거리며 간신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