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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22화 (22/184)

022화 절대로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마물일 뿐이다.

죽음의 잔치판에 초대한 자에게 마객이 펼치는 것이 바로 지금 청운이 목도하고 있는 ‘귀혼진’이었다.

마객이 부리는 귀혼진은 죽은 지 채 사십구일이 안 된 혼이 아직 육체를 완전히 떠나지 않은 시체를 파내어.

온갖 사악한 약물과 주술로 그 혼을 시체에 강제로 들러붙게 만들어, 죽어도 죽지 못한 그 한을 이용해 만든 사악한 진이다.

시체이면서도 완전한 시체가 아니고 그렇다고 절대로 온전히 산 것도 아닌.

시체를 반혼시를 이용해 만든 귀혼진은 진이 뿜어내는 독무만으로도 어지간한 고수들을 마비시켜 죽여 버린다.

최악은 혼이 반쯤 붙어 있는 그 반혼시들은 생전에 자신이 알고 있던 무공을 그대로 사용해 공격한다는 점이었다.

반혼시들은 어떤 상처와 충격에도 전혀 통증과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에 팔다리가 잘리고 심지어 목이 달아나도 그대로 상대를 공격한다고 <무림편람>에 기록되어 있었다.

청운은 몹시 의아했다.

오늘 자신이 눈앞에서 겪고 있는 이 사태는 분명 마객에 의해 펼쳐지는 귀혼진일진데, [무림편람]의 기록에 의하면 마객과 귀혼진은 그 잔인성과 극악함으로 인해 이미 백여 년 전 무림공적으로 공표되었다.

또한 마객과 귀혼진의 본거지인 ‘귀혼곡’이 구대문파의 연합 공격에 의해 완전히 궤멸되고 사멸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누가 다시 이 사악한 사법을 오늘날 다시 되살렸단 말인가.

청운이 한동안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이미 수천 구가 훨씬 넘는 반혼시들이 청운이 올라가 있는 나무를 첩첩이 포위하고 있었다.

죽어도 듣기 싫은 소음을 강제로 귓속에 밀어넣는 것 같은 괴이한 요령 소리와 소고 소리가 점점 커졌다.

급기야 반혼시들이 끄—으, 끼—익, 꺼—꺼—꺽 하는 기분 나쁜 괴소가 청운의 바로 발밑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요령 소리와 소고 소리가 갑자기 급박하게 돌변하자, 청운이 올라서 있는 나무를 타고 반혼시들이 서로의 몸을 사다리 삼아 서서히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수천 구의 반혼시들은 서로의 어깨를 디딤돌 삼아 거대한 탑을 쌓으며 청운을 향해 느리지만 멈춤 없이 꾸역꾸역 낫 같은 이상한 무기를 맹렬히 휘두르며 쇄도해 왔다.

청운은 괴이한 반혼시들의 모습도 너무 징그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반혼시의 역겨운 냄새가 싫었다.

청운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반혼시를 향해 검을 뽑아 들고 인정사정없이 휘둘렀다.

청운은 닥치는 대로 그들을 베어 나갔다.

반혼시들의 팔과 다리가 무기를 쥔 채 그대로 몸에서 분리되고 목이 통째로 떨어져도 반혼시들의 기세는 전혀 주춤거림이 없었다.

반혼시들은 베어진 다른 반혼시의 몸통을 계단처럼 밟으며 청운을 향해 밀물처럼 밀려왔다.

어떤 육체적 아픔과 통증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감정과 인성도 전혀 없는 반혼시들.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다른 반혼시들이 목이 떨어지고 몸통이 두 동강 나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끝도 없이 꾸역꾸역 청운을 육박하며 올라왔다.

청운이 다른 나무의 우듬지로 옮기자마자 반혼시들은 곧바로 그 나무를 에워싸고 연기처럼 밀려 올라왔다.

아무리 베고 베어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건 싸움도 뭐도 아니었다.

반혼시들은 잔혹한 사술에 영과 육이 제압당해 오직 시전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져 애초부터 이 세상에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마물일 뿐이었다.

자신이 오늘 여기서 생을 마칠지언정 저런 마물을 만든 자는 절대로 이 세상에 살려두어선 안 되겠다고 작심한 청운이 치우천결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자색의 투명한 강기가 마치 갑옷처럼 청운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청운은 치우천결로 자신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반혼시들을 도륙했다.

청운은 잠시도 쉴 틈 없이 반혼시들을 베고 또 베면서 청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리고 시전자가 은신할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한 요령소리와 소고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고 있어서 그 위치를 전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청운이 검으로 강시들을 벨 때마다 잘려진 강시의 몸에서 뿜어진 부시독이 청운의 온몸에 흩뿌려졌다.

반혼시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부시독이 청운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치우천결의 강기와 부닥칠 때마다 마치 벌겋게 단 쇠에 찬 물을 끼얹는 것 같은 치—익, 치—지—직, 치—지—지—직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연신 청운의 귀에 들렸다.

온전한 생명을 가진 인간과 생명도 없고 통증과 고통도 없는 마물의 싸움은 길어질수록 인간이 불리하기 마련이었다.

인간의 정신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인간은 정신적 지침과 육체의 죽음이라는 분명한 한계를 가졌다.

반면, 마물은 이미 한 번 죽었던 정신과 육체이기에 그 어떤 한계도 없었다.

소모전도 이런 소모전이 없었다.

청운이 베고 또 베고 계속해서 베어도 반혼시의 공격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숫자가 더 늘어나는 것 같았다.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청운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다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면 죽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했다.

청운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쓰며 반혼시들을 도륙했다.

달리 다른 도리가 없었다.

청운이 잠시라도 도륙을 멈추면 그 즉시 청운의 몸은 반혼시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 것이다.

진퇴양난, 악전고투.

청운은 자신이 반혼시를 얼마나 베었는지, 얼마나 더 이런 식으로 버텨야 이 상황이 끝나는지도 생각하지도 않은 채.

아니, 생각도 못한 채 자신의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반혼시들을 닥치는 대로 베고 또 벨 뿐이었다.

청운은 이제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잃은 채 반혼시들을 계속 베어 왔던 관성으로 그냥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하룻밤이 이렇게 긴 줄 청운은 태어나 처음으로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여태까지 청운은 그냥 푹 자고 나면 지나가는 것이 밤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이렇게 지긋지긋 밤이 존재하리라고는 청운은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했다.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었다.

무슨 지랄 같은 악몽이 밤새도록 깨지도 않고 계속 꾸어진단 말인가.

청운은 점점 기력이 쇠해졌다.

청운은 자신의 한계가 곧 닥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수중동굴에서 생사현관이 타통된 이후 끊임없이 샘솟던 진기도 점점 고갈되고 있다는 걸 청운은 느끼고 있었다.

사실 청운은 얼마 전부터 자신이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검이 자신을 휘두른다는 걸 절실히 감지하고 있었다.

흐느적흐느적 청운은 이제 더 이상 검을 휘두르기는커녕 검을 쥐고 있을 힘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청운이 걸친 옷은 반혼시가 뿜어낸 부시독에 의해 벌써 시커멓게 젖을 대로 젖어 있었고, 온몸에는 반혼시의 손톱과 괴검에 당한 자상이 셀 수도 없이 낭자했다.

무엇보다 최악인 것은 이제 아무리 치우천결을 끌어올려도 청운의 몸을 보호하던 자색의 강기가 거의 빛을 잃고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청운은 이제 끝인가 하고 생각했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만 할 일도 산더미고, 시작만 하고 채 끝내지 못한 일도 지천인데, 자신이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을 하니 모든 것이 부질없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 청운은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고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세상에 백해무익한 저 악귀들을 하나라도 더 베고 자신도 죽을 작정을 하면서 치우천결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청운이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기로 결심한 바로 그 순간.

—사자님, 저는 사자님의 뒤를 몰래 뒤따르라고 문주님이 보내신 사자님의 보표입니다. 제가 지금 곧 반혼시들을 조종하는 법기가 있는 곳을 부적이 있는 화살로 공격할 것입니다. 그 순간 잠시 귀혼진에 틈이 생길 것입니다.

청운의 귀에 가늘지만 또렷한 전음이 들려왔다.

—사자님은 그 틈으로 탈출하자마자 곧바로 계곡이 있는 남쪽으로 달리십시오. 한 십 리 정도 가면 아주 커다란 아름드리 노송이 두 그루 있고 그 바로 뒤 칡넝쿨을 헤치면 동굴이 있습니다. 그곳은 저희 하오문도들이 진령산맥을 넘을 때 노숙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동굴 주변을 부적이 보호하고 있어 반혼시들이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사자님, 몸조심하십시오.”

전음이 끝나자마자 불화살 몇 대가 밤하늘을 가르며 서쪽으로 날아갔다.

아마도 그쪽에 진을 조종하는 자들과 법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요령소리와 소고소리가 잠시 주춤해졌다.

청운을 공격하던 반혼시들이 갑작스레 우왕좌왕했다.

청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귀혼진을 벗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방금 보표가 전음으로 일러준 대로 남쪽을 향해 달렸다.

계곡에 도착하자마자 청운은 아름드리 노송부터 찾았다.

청운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보표가 전음으로 알려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바닥에는 기름먹인 양가죽이 깔려 있고 나무 궤짝도 몇 개 놓여 있었다.

동굴 속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지만, 청운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청운은 마음이 다급했다.

서둘러야 했다.

반혼시들의 공격에 의해 베이고 뜯긴 외상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급한 내상부터 치료해야 했다.

반혼시들이 뿜어낸 부시독을 치우천결의 공능으로 대부분 차단하기는 했지만, 싸움 말미에 치우천결의 공능이 미약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많은 독을 들이키고 말았다.

빨리 운기조식으로 혈과 세맥에 누적된 독기를 한곳으로 몰아넣어 태워버려야 했다.

청운은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바로 좌정에 들어 치우천결을 거듭 운용하기 시작했다.

청운이 운기조식을 거듭할수록 처음에는 희미하던 자색의 기운이 시간이 갈수록 짙어졌다.

몇 식경이 지나자 짙은 자색의 기운이 청운의 전신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몇 식경이 더 흐르자 청운의 전신을 둘러싸고 있던 자색의 운무가 투명환 환이 되어 청운의 몸을 오르락내리락했다.

투명한 자색의 환은 전부 일곱 개였다.

잠시 후 청운은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빛에는 이전의 청운의 눈빛에서 볼 수 있었던 맑고 청아한 서기가 다시 어려 있었다.

청운은 눈을 뜨기 한참 전부터 누군가가 자신이 운기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청운의 바로 앞에 얼굴을 검은 복면으로 가린 한 인영이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조금 전 청운에게 전음을 보낸 보포 같았다.

청운은 키나 몸매로 보아 아무래도 여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청운과 눈빛이 마주치자 그 흑의인이 먼저 목례를 한 후 말을 건넸다.

“사자님, 제가 사자님께 전음을 보냈습니다. 저는 제 직책상 신분과 이름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사자님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만 사자님 앞에 나타나는 사자님의 보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냥 삼호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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