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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25화 (25/184)

025화 생각할수록 기기묘묘한 보법과 신법이었다.

노인이 아이와 함께 앞장서 방으로 들어갔다.

청운이 뒤따라 방으로 들어오자 노인이 청운에게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청운이 정좌하자마자 노인이 감자와 부엌에서 가져온 삶은 고기까지 내밀며 말했다.

“많이 드시게. 며칠 전에 덫으로 잡은 멧돼지 고기네. 사람 사는 게 별것 있는가. 서로 힘든 사람의 사정을 봐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지.”

노인은 낯선 사람에게 음식을 내주는 일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청운은 노인의 소탈하고 대범한 마음 씀씀이에 감복한 나머지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왜 이런 깊은 산속에서 손자와 단둘이 사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운의 질문을 받은 노인은 길게 한숨을 푹 내쉰 후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게 말일세. 공자는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지역은 다섯 개의 소국이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네. 그래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질 않는다네. 땅이 아무리 넓어도 곡창지대는 한정되어 있으니 서로 좋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사흘을 멀다 전쟁을 한다네.”

“그렇습니까.”

“아이의 부모도 그만 그 난리 통에 잃었다네. 나야 뭐 살 만큼 살아서 대를 이을 손자라도 어떻게 살려 보려고 전쟁이 없는 산중으로 들어와 약초 캐고 사냥도 하며 산다네.”

“…….”

“하늘이 그것마저 허락해 주지 않으려는지 저 놈이 몸이 너무 약해 걱정이라네. 어릴 적 너무 일찍 엄마를 잃어 젖을 못 먹어서 그런지…….”

노인은 그새 잠든 손자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돌아보며 지난 회한을 토로하듯 나지막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청운은 어릴 적부터 약초꾼인 아버지 덕택으로 간단한 병과 약초에 대해서 어릴 적부터 제법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무공을 익히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체의 맥과 혈에 대해서도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해서 인체의 생리적 현상에 관한 지식도 제법 풍부했다.

특히 하오문의 비고에서 의학에 관한 많은 책을 접하면서 이제는 어지간한 병에 대해서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청운은 노인에게 자신이 손자의 맥을 좀 짚어 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손자의 팔을 끌어당겨 청운에게 건넸다.

청운이 맥을 짚었다.

기의 흐름이 너무 미약했다.

특히 위와 장으로 통하는 기혈이 몇 군데 막힌 듯했다.

청운이 손자의 팔을 다시 이불 속에 집어넣고는 노인에게 말했다.

“음식을 먹으면 자주 토하고 설사도 자주 하고 무엇보다 음식을 많이 가리지요.”

노인이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 워낙 입이 짧고, 아무거나 잘 먹지 않으려 한다네. 무엇보다 억지로 먹이고 나면 자꾸 토한다네. 혹시 고칠 수 있겠나.”

노인은 어떤 기대감에 들뜬 표정을 지으며 청운을 쳐다봤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손자는 아마 위와 장으로 통하는 혈이 태어날 때부터 몇 군데 막힌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완전하게 고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막힌 혈을 뚫어 주고 제가 처방한 약을 꾸준히 먹인다면 아마 반 년이면 거의 완치가 될 것입니다.”

청운은 이불을 들추어 아이의 상체가 위로 향하도록 반듯하게 눕혔다.

그리고는 단전에 손을 얹고는 치우천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두 식경 정도 지난 후 청운은 아이를 엎드리게 한 후 등 전체를 추궁과혈의 수법으로 한 식경 정도 주물렀다.

그러자 잠에서 깬 아이가 갑자기 상체를 세우더니 저녁에 먹은 것을 다 토하듯이 한동안 급하게 켁켁 거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축 늘어졌다.

청운은 노인에게 아이의 상체를 반듯하게 붙잡게 한 후, 하오문의 비고에서 가져온 약병을 품속에서 꺼냈다.

그리고 기를 다스리는 환약 세 알을 꺼내 아이의 입에 넣은 후 아이가 약을 쉽게 삼킬 수 있도록 목 주변의 혈을 손가락으로 두어 번 자극했다.

아이가 약을 삼키자마자 양손을 아이의 등에 댄 후 따뜻한 진기를 불어넣었다.

아이가 편안한 얼굴이 되자 청운은 아이를 다시 요 위에 눕히고는 노인에게 말했다.

“막힌 혈은 다 뚫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뚫린 혈이 다시 막히지 않게 꾸준히 약을 달여 먹이는 게 중요합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청운은 노인에게 처방전을 상세하게 써주었다.

그리고는 은자 스무 냥을 노인에게 내밀며 다시 말했다.

“대부분의 약제는 이 산에서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삼은 동방에서 건너온 것이라야 효과가 있습니다. 이 돈은 인삼을 사는데 쓰십시오. 그리 많은 양은 필요하지 않으니 이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밥값이니 사양치 마십시오. 그리고 손자를 살리는 일입니다.”

청운은 돈을 다시 돌려받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노인은 너무나 미안한 나머지 돈을 청운의 앞으로 내밀면서, 돈은 자신이 사냥하고 약초를 내다 팔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운은 다시 돈을 노인의 앞으로 밀며 꼭 손자를 살리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인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금방 한자 정도 되는 낡은 목함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곧장 목함을 청운에게 건네며 말했다.

“공자는 무림인이지. 이건 내가 몇 년 전에 저 봉우리 너머로 사슴을 사냥하러 갔다가 비를 피한다고 동굴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웬 유골 옆에 이것이 있었다네.”

“…….”

“뼈만 남은 유골은 내가 묻어 주고 이 목함만 약초를 넣으려고 가지고 온 것이라네. 그런데 안에 낡은 양피지가 들어 있었다네. 자 한 번 보시게. 그리고 내가 약도를 그려줄 테니 그 동굴에 한 번 가보게. 다른 것들도 몇 가지 더 있었는데 나는 필요가 없어 그냥 놔두고 왔다네.”

청운이 목함을 열었다.

과연 그 속에는 몇 겹으로 접힌 양피지 낡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묘묘보허] — ‘신선이 허공을 밟고 노닌다.’

양피지에는 아주 특이한 보법과 신법이 기술되어 있었다.

청운은 처음에 양피지에 쓰인 보법과 신법의 명칭이 너무 거창한 게 아닌가 하고 픽 웃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읽을수록 그것이 엄청난 보법과 신법임을 알아챘다.

무엇보다 청운은 강적을 상대로 몇 번의 격전을 치르면서 자신의 보법과 신법이 신통치 않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얻게 된 [묘묘보허]는 자신의 검법에 새로운 날개를 달 수 있을 정도로 신묘한 것이었다.

청운은 노인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청운은 몇 번에 걸쳐 양피지를 완전히 암기한 후 삼매진화로 태워버렸다.

혹시나 이런 무공이 악인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에 엄청난 해를 끼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청운은 시간이 날 때마다 머릿속에서 하나씩 꺼내어 그 보법과 신법의 묘용을 조금씩 익힐 참이었다.

청운은 자고 가라는 노인의 청을 물리치고 노인이 가르쳐 준 동굴로 향했다.

오늘 밤은 거기서 잘 작정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을 추적하는 적에게 발각된다면 애꿎은 노인과 손자가 다칠지도 모를 일이기에 청운은 서둘러 노인의 집을 나왔다.

노인이 약도를 워낙 상세하게 그려 준 덕분에 청운은 어렵지 않게 동굴을 찾을 수 있었다.

청운은 동굴 입구에 하오문의 삼호로부터 받은 부적을 이용해 간단한 진법을 설치하고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입구는 관목과 덩굴이 빽빽하게 얽히고설켜 있어서 밖에서 그냥 보아서는 그곳에 그런 동굴이 있는지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동굴의 입구는 간신이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정도로 좁았으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졌다.

안에는 몇 사람이 동시에 쉴 수 있을 정도로 제법 규모가 있었다.

청운은 안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동굴 안쪽의 구석을 살펴보았다.

과연 그곳에는 몇 가지 물건이 있었다.

묵빛의 나무로 된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팔각형의 패 하나와 녹슨 열쇠꾸러미.

한 뼘 정도 크기의 묵빛의 피리.

그리고 검집이 낡은 검 하나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청운은 먼저 검을 집어 들고는 검집에서 빼보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질이 좋은 철로 만들어졌는지 검은 전혀 녹이 슬지 않았다.

검날의 상태도 멀쩡했다.

얼마 전부터 청운은 수중동굴에서 얻은 <구무자>의 검이 자신에게 조금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곤과 반혼시와의 싸움으로 인해 검날이 많이 상했다.

청운이 검에 진기를 주입하자 은은한 자광이 검날에 은은하게 감돌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바위를 슬쩍 내리치자 마치 무처럼 바위가 잘려 나갔다.

예사로운 검이 아닌 것 같았다.

구무자에게서 얻은 검도 제법 괜찮았으나, 청운은 이 검이 더 맘에 들었다.

청운은 애검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구무자에게서 얻은 검은 검날을 수리해서 하오문의 무고에 보관하면 될 터였다.

청운은 묵빛이 나는 팔각형의 패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패의 앞면에는 [무영문]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고, 뒷면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상과 절벽 그리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대한 폭포가 새겨져 있었다.

이상한 것은 탈속한 풍모의 노인이 오른손을 들어 그 웅장한 폭포의 물줄기 뒤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곳이 어디인지 청운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청운은 팔각패와 열쇠꾸러미를 품속에 집어넣고는 기름먹인 양가죽을 바닥에 깔자마자 벌렁 드러누웠다.

패와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피리는 특이하게도 다른 일반적인 피리와 달리 구멍이 세 개밖에 없었다.

그것은 삼공적이었다.

피리를 만지작거리던 청운이 한 번 불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혹시 피리 소리에 어떤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나중에 불어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청운은 자신에게 왜 이런 기연이 자꾸 생기는지 의아해하며 깊은 잠 속으로 떨어졌다.

노인의 말로는 봉우리 두 개만 더 넘으면 관도가 나오고 그 관도를 따라 백여 리만 가면 무림맹의 총단이 있는 섬서라고 했다.

청운은 내일 동틀 무렵에 출발하면 맛있는 점심을 객점에서 먹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노인에게서 받은 양피지에 적혀 있던 보법과 신법을 떠올려 보았다.

생각할수록 기기묘묘한 보법과 신법이었다.

아무리 공력이 정심해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바람의 결을 타며 노닐 수 있단 말인가.

달마대사가 갈대로 황화를 건넜다는 소리는 수없이 들어봤지만 사람의 몸으로 바람의 결을 탄다니, 이건 정말 직접보고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청운은 궁금한 걸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을 타고났다.

잠을 청하려고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청운은 양피지에서 읽은 내용을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되새김하면서 천천히 보법을 밟아 보았다.

처음에는 자꾸 발이 엉키고 꼬여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만약에 공력을 끌어올려 시도를 했다면 틀림없이 어딘가에 부닥쳐 중한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수백 번을 비틀거리면서도 청운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보법을 연습했다.

청운은 평생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과 혈에 기를 돌리느라 밤새 진땀을 뻘뻘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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