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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26화 (26/184)

026화 맹주는 허울 좋은 허수아비라네.

청운은 밤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도 잊은 채 난해한 보법의 동작을 반복 또 반복했다.

처음에 너무나 어색하고 이상하던 동작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다듬어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동굴 입구에 늘어진 넝쿨 틈으로 어둠이 옅어지는 게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청운은 밤새도록 잠 대신 보법을 연습한 셈이었다.

동작을 잠시 멈춘 청운은 길게 두어 번 숨을 내쉬고는 크게 기지개를 몇 번 했다.

청운은 새로 얻은 검을 옆구리에 차고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얼굴에 닿는 첫새벽의 공기가 상쾌하면서도 맵찼다.

곧 겨울이 닥칠 모양이었다.

청운은 산길을 내달리면서 [묘묘보허]에 수록된 보법과 신법을 연습했다.

산을 벗어나 관도로 나오자, 시간은 벌써 점심때를 훨씬 지나 있었다.

허기가 질대로 진 청운은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눈앞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객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하오문도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객점 주변 곳곳에 남겨 놓았다.

청운이 오리구이와 황주 한 병을 시켜 허겁지겁 먹고 있을 때.

누군가 슬쩍 계산서처럼 청운의 앞에 쪽지를 남기고는 사라졌다.

청운은 쪽지를 펴보았다.

[일 다경 후에 서쪽 오리 밖 관제묘에서 뵙겠습니다. <하오문 섬서문도 추일호 배상>]

* * *

청운이 관제묘에 도착하자마자 지붕에서 누군가 청운에게 올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청운이 지붕으로 훌쩍 뛰어 올라가자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깡마르고 까무잡잡해 보이는 사내가 청운에게 예를 취하며 인사를 했다.

“호법사자님을 뵙습니다. 저는 섬서분타주님을 모시고 있는 홍섭이라 합니다. 무슨 분부라도 계신지요.”

“내가 없는 동안 문에 무슨 큰일은 없었는지요. 그리고 이 검은 날을 수리한 후 무고에 보관토록 해주시지요.”

청운은 홍섭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자님, 예를 거두시지요. 사자님의 명은 잘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몇 달 전 저희 분타주님께서 이곳 섬서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흑오파>에 대한 정보를 무림맹에 넘긴 적이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흑오파>에서 열흘 뒤에 그 빚을 받으러 오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홍섭은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청운을 바라봤다.

“<흑오파>는 어떤 집단이요? 그 규모와 인원, 그들의 무공수위는 어느 정도요? 그리고 무슨 정보이기에 그들이 그렇게 펄펄 뛰는지요.”

청운은 홍섭에게 재차 물었다.

“<흑오파>는 이곳의 운하로 들어오는 술을 독점해 기루에 술을 대거나 운하의 배 운영권과 선착장에서 자릿세를 받아먹고 사는 건달패거리들입니다.”

“그렇군요.”

“그들의 숫자는 겨우 수십 명 정도에 불과하고 그들의 무공수위 또한 두목인 ‘짜귀’를 제외하고는 동네 양아치 수준입니다. 두목 ‘짜귀’만이 어디서 한 수 얻어 배웠는지 무슨 이상한 권법을 구사하는데, 내공의 깊이는 별로 없지만 어릴 때부터 워낙 바닥을 굴러먹으며 익힌 싸움 솜씨가 탁월합니다.”

‘짜귀…….’

“짜귀패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그들 배후에 있는 <흑수방>입니다. <흑수방>은 이 지역의 밤을 지배하는 세력입니다. <흑수방>은 인원도 거의 오백여 명에 이르고 일류 고수도 즐비합니다. 특히 흑수방주 풍천일의 흑수장법은 무림일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

“얼마 전 짜귀가 <흑수방>의 사주를 받아 마약과 인신매매에 손을 댄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정보를 무림맹에 넘겼고,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을 알아챈 짜귀가 <흑수방>에 보고를 하자, <흑수방>의 고수들 몇몇이 지금 <흑오파>로 파견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들이 도착하면 곧 짜귀 패거리가 분타로 들이닥칠 것입니다.”

홍섭은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인지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무림맹에 들렀다 곧바로 섬서분타로 가겠소. 그럼 그때 다시 봅시다.”

청운은 말을 마치자마자 곧장 무림맹으로 방향을 잡았다.

* * *

감찰 외당주 매화절검 서일기는 청운을 반갑게 맞이했다.

서일기는 청운과 인사를 하자마자 청운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청운의 풍모가 과거와 너무 달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단지 문약한 서생으로만 보였는데, 지금은 탄탄한 근육질의 몸에 더하여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무형의 기가 청운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차를 마시다 말고 서일기는 청운에게 넌지시 물었다

“공자, 그 동안 무공을 익히셨는지요. 대단한 고수의 풍모가 느껴집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지요.”

“예, 가문에 전해 오는 양생법을 조금 익혔습니다. 하지만 아직 하수 중의 하수입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때 저희가 조사를 부탁드린 일은 하남표국 건은 어찌 되었는지요.”

청운은 조금 민망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겸손하게 서일기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곧바로 하남표국 사건과 관련된 질문을 했다.

“너무 겸손해 마십시오.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미 강 공자님은 어떤 경지를 넘어선 고수처럼 보입니다. 하남표국의 사건과 관련해서는 저희 감찰반에서 열심히 조사했습니다만 노력한 만큼의 소득은 얻지 못했습니다.”

‘아…….’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심지어 사건을 조사 중이던 외당 소곡의 칠 인의 조원들마저 실종되어 저희들도 난감할 따름입니다. 그 후 외감찰당 전체가 그 사건에 매달리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소득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추적 중이던 음산삼귀와 노산이흉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모든 정보통을 이용해 종적을 찾았지만 행방이 묘연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의 배후가 절대로 만만한 집단이 아니라는 짐작뿐입니다.”

서일기는 몹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청운을 쳐다봤다.

청운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운은 혹시나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싶어 독아방의 광산 사건과 天의 사자와 맞섰던 일이며, 진령산맥을 넘을 때 반혼시와의 목숨을 건 교전 그리고 갈의의 살수들로부터 받았던 기습에 대해 서일기에게 모두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서일기는 그런 일이 있었냐며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잠시 깊은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혼침과 쇄심장, 거기다 마객과 반혼시, 갈의의 살수까지. 각각의 사건이 서로 동떨어진 사건처럼 보이지만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지는 않고… 하여튼 지금은 도무지 뭐가 뭔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

“한 가지 분명한 건 강호에 어떤 거대한 암류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사태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나로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즉시 맹주님께 보고해야만 될 것 같습니다.”

서일기는 청운에게 잠시 실례를 구한 후 맹주전으로 갔다.

일 다경이 채 안 되어 돌아온 서일기는 맹주가 청운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청운은 차를 마시다 말고 서일기를 따라 맹주전으로 향했다.

청운이 들어서자 창밖을 보고 있던 무림맹주 사마휘가 청운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청운에게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 소협, 이리 앉으시게. 강호에 무위검이라는 대단한 신진고수가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소문을 듣고 만나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소문이 턱없이 모자란 것 같아 유감이네.”

“맹주님, 너무 과찬이십니다.”

“아니네, 도대체 어떤 문하에서 어떤 스승을 모시고 수학했기에 이런 대단한 고수를 그런 단시간에 키워 냈는지 몹시도 궁금하네.”

사마가문의 둘째인 사마휘.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무공의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가문의 기대를 단 한 번도 저버리지 않고 성장하여, 삼십 대 초반에 남해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동영의 삼 대 해적단 중 하나인 흑해무의 우두머리인 가등천천의 목을 베어 중원을 경동시켰다.

그 후로도 수많은 협행으로 강호의 신망을 얻어 드디어 오십 대 중반에 무림맹주로 추대되었다.

그 무공의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어 ‘무극검’이라는 별호를 얻은 사마휘.

청운은 최고의 예를 갖춰 맹주의 질문에 공손히 대답했다.

“특별한 스승은 없었습니다. 다만 가문에서 내려오는 양생법에 몇 가지 검법을 조금 가미했을 뿐입니다. 너무 과한 칭찬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아직 하수 중의 하수입니다.”

무극검 사마휘는 호탕하게 껄껄 웃더니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됐네, 됐네, 하며 청운의 겸양을 딴청 부리듯 물리친 후, 청운과 둘이 할 말이 있다고 서일기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서일기가 물러나자마자 사마휘는 청운 쪽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청운을 바라봤다.

“강 공자가 보기에 무림맹주라는 자리가 무림의 모든 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자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라네. 맹주는 허울 좋은 허수아비라네.”

사마휘는 조금 전과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무림맹의 실질적 권력은 열두 명으로 구성된 원로원이 틀어쥐고 있다네. 물론 맹주인 나도 어느 정도 발언권이 없지는 않지만 원로원에서 결정된 사안에 대한 나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네.”

“…….”

“이번 하남표국 사건만 해도 그렇다네. 조사하던 감찰당의 조원들까지 실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장로원의 태도는 뜨뜻미지근하다네. 사건의 전면적인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네. 그리고 天과 관련된 보고는 나도 이미 받았다네.”

그는 말을 이어 갔다.

“무림맹과 상관없는 내 사적인 정보통을 이용해 열심히 조사하고는 있지만, 나도 아직까지는 天의 진정한 목적도 실체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네. 명색이 내가 무림맹주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양 이 꼴이라네. 강 공자 보기가 참으로 부끄럽네. 나는 이미 이렇게 늙어버렸지만.”

“…….”

“강 공자처럼 의기가 있는 젊은이를 만나면 나도 젊어 한때 내가 꾸었던 원대한 꿈이 다시 생각나 기분이 너무 좋다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강 공자가 하려는 일을 내가 물심양면으로 도우고 싶네. 나도 사건의 실체를 명명백백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 강 공자도 힘써 주시게. 그리고 무림은 단지 무공만 고하에 의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곳이 아님을 명심하게.”

“네.”

“물론 무림의 일에 무공의 고하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무림은 무공 이상으로 간악한 간계와 귀계 그리고 권모술수와 음모가 난무하는 복마전이라네.”

“명심하겠습니다.”

“자, 이것을 받게. 공자가 강호 활동을 하는데 야간의 도움이 될 것이네. 이것을 중원 전역에 있는 무림맹 지부에 보이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네.”

사마휘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가운데 盟이란 글자가 돋을새김 된 은으로 된 패찰 하나를 청운의 앞으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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