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54화 (54/184)

054화 당장 네놈들 방주를 나오라고 해라.

삼호는 온몸이 학질에 걸린 듯 벌벌 떨며 말했다.

“사자님, 아무리 명령이라도 그건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흑수방은 방도들만 해도 천여 명이 훨씬 넘어서고 섬서 지역의 밤을 지배하는 방파입니다.”

“…….”

“이미 그 규모가 군소방파의 수준을 넘어서 있습니다. 특히 흑수마장을 극성으로 익힌 흑수방주는 구파일방에서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절정 고수입니다. 사자님이 혼자 흑수방에 가겠다는 건 섶을 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입니다.”

삼호의 설득이 이어졌다.

“특히 내일이 흑수방주의 생일이라 지금 흑수방에는 다른 마두들도 여럿 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절대로 안내할 수 없습니다. 먼저 문주님을 뵙고 적절한 방안을 찾는 것이 순리입니다.”

삼호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리며 청운이 단호하게 말했다.

“좋소. 그러면 이제 삼호님은 제 갈 길을 가시오. 흑수방 문제는 나 혼자 처리하겠소. 여기서 섬서까지는 한나절 반이면 충분하니까. 그럼 다음에 봅시다.”

청운이 혼자서라도 반드시 가겠다는 뜻을 단호하게 밝히며 몸을 돌리자 삼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앞장섰다.

* * *

흑수방은 어지간한 성을 방불케 했다.

대단한 규모였다.

고래등 같은 고루거각이 즐비했다.

청운은 직접 흑수방의 본단을 보자 분노가 더 치솟아 올랐다.

청운은 삼호에게 흑수방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으라고 명령했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사태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청운자신이 모든 것을 직접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위기에 처하더라도 절대로 나서지 말라고 삼호에게 신신당부했다.

청운은 흑수방의 정문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정문에서 보초를 서던 무사 네다섯이 청운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이 청운을 가로막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청운이 그들에게 무위검이 빚 받으러 왔다고 방주에게 통보하라고 말했다.

그들이 일제히 장창을 청운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이놈이 실성을 했나. 야밤에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냐. 행패를… 방주님이 누구 집 똥개도 아닌데 다짜고짜 방주님을 찾아. 썩 꺼져라 이놈! 경을 치기 전에.”

청운은 말로 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예 초장부터 무력을 사용하기로 작정했다.

청운은 자신의 오른손을 허공에 번쩍 치켜들었다 아래로 내리며 장력을 발출했다.

청운의 강맹한 장력에 휘말린 경비병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연이어 청운은 곧장 대문을 향해 오성의 내공을 실은 장력을 떨쳐냈다.

쿠콰콰콰―앙.

청운의 장력에 박살 난 대문이 천둥 치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 순간 깊은 어둠에 잠긴 채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전각 곳곳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그러더니 창검을 든 무사 수십 명이 우르르 대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 나오는 것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나와 청운을 빙 둘러쌌다.

맨 앞에선 흑의인이 청운을 당장에라도 쳐죽일 듯이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네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야밤에 쳐들어와서 행패냐. 흑수방에 무단으로 침입한 대가는 오직 죽음뿐이다. 간이 배 밖에 나온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너무나 분노가 치밀어 오히려 모든 감정을 죽여 버린 싸늘한 목소리로 청운이 일갈했다.

“너는 자격이 없다. 당장 네놈들 방주를 나오라고 해라. 나는 필요 없는 살상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다치기 전에 썩 물러나 윗전에 보고해라. 셋을 셀 시간을 주겠다.”

“…….”

“하~ 나, 두~ 울, 세~ 엣.”

청운이 세는 숫자를 귀넘어듣던 흑의의 사내가 비아냥거리며 청운의 말을 받았다.

“네놈은 숫자를 너무 느리게 세는구나. 숫자고 나발이고 간에 방주님은 네놈이 만나고 싶다고 아무 때나 만날 수 그런 분이 아니다. 어디 겁대가리 없이 함부로 방주님을 입에 올려.”

흑의의 사내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얘들아! 저놈을 찢어 죽여라. 흑수방이 어떤 곳인지 단단히 본때를 보여줘라.”

무리의 앞에 선 흑의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청운을 둘러싸고 있던 자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청운을 덮쳐 왔다.

청운은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자신의 오른손을 허공에 치켜들었다.

청운은 아예 초장부터 본때를 보여 더 이상 저런 조무래기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할 요량이었다.

청운은 삼성의 치우전륜결을 끌어 올려 가볍게 몸을 한 바퀴 회전하면서 장력을 내질렀다.

천빙열화과를 복용하고 높아진 청운의 무위는 실로 대단했다.

“으, 으악!”

“윽, 커헉!”

청운을 향해 달려들던 수십 명의 장한이 청운의 단 일 장에 태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웩웩거리며 피를 토하는 자들과 자신의 창검에 다친 자들로 인해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청운이 그들을 무시한 채 대전을 향해 뚜벅뚜벅 다가가자 왼쪽 가슴 한가운데 흰색의 흑(黑)자가 새겨진 일군의 무리가 청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리를 이끄는 자의 왼쪽 가슴 한가운데에 은색의 흑(黑)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자가 청운을 비수로 찌르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네놈의 무위가 비록 대단하다만 이곳은 섬서의 밤을 지배하는 흑수방의 총단이다. 네놈이 무슨 연유로 이런 야밤에 흑수방에 난입해 되먹지 않은 시비를 거는지 당장 그 내막을 밝혀라.”

사내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청운이 조금 전과 똑같은 말을 하며 그대로 앞으로 걸어갔다.

“당신은 자격이 없다. 당장 방주를 내 앞에 불러오라.”

왼쪽 가슴 한가운데에 은색의 黑자가 새겨진 사내가 자신의 뒤에 도열해 있는 무사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말로 해서는 도저히 안 되는 놈이구나. 얘들아! 놈을 당장 쳐죽여라.”

사내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왼쪽 가슴 한가운데 흰색의 黑자가 새겨진 일군의 사내 수십 명이 한꺼번에 청운을 공격했다.

청운은 이번에는 사성의 치우전륜공을 끌어 올려 일장을 휘둘렀다.

결과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였다.

왼쪽 가슴 한가운데에 은색의 黑자가 새겨진 자를 비롯해 천지도 모르고 청운에게 달려들던 자들이 한꺼번에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청운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면 그들은 모조리 즉사했을 것이다.

청운이 그들을 무시한 채 다시 대전을 향해 뚜벅뚜벅 다가갔다.

바로 그때, 또 한 무리의 사내들이 청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청운은 그들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무리의 맨 앞에 있던 자가 소리쳤다.

그는 사십 대 초반쯤의 중년인이었다.

그자는 몸집이 우람했고 눈빛이 형형했다.

제법 고수다운 풍모를 풍기는 기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금색의 黑 자가 새겨져 있었다.

“멈춰라. 나는 흑수방의 ‘무력전’을 책임지고 있는 무력당주 허삼교다. 네놈이 이 야밤에 왜 이런 짓거리를 저지르는지 이유를 당장 밝혀라.”

청운은 아까와 똑같은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자격이 없소, 방주를 내 앞에 불러오시오.”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청운의 태도에 무력당주 허삼교는 표정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리며 청운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분노의 일성을 토했다.

“네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자격 운운하다니… 오라, 네놈이 정녕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내가 네놈 소원을 들어주마. 오늘 내가 네놈에게 흑수방 무력당의 무서움을 단단히 가르쳐 주겠다.”

흑수방의 무력단주 허삼교는 자신의 검을 가슴 앞에 비스듬히 세우고는 청운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기세로 은근히 청운을 압박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청운은 검도 뽑지 않은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허삼교를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청운의 태도에 극도의 분노와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 허삼교는 초장부터 자신의 최고 절초인 흑오검법으로 청운을 짓쳐 갔다.

무력단주 허삼교의 검에서 까마귀 울음소리와 같은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의 검기가 청운의 전신 요혈을 노리며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그제야 청운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영검을 뽑음과 동시에 ‘쾌’ 초식으로 일검을 휘둘렀다.

청운의 검에서 발출된 번개 같은 자황색 강기가 허삼교가 발출한 검은 색 검기를 순식간에 무화시켜버렸다.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허삼교의 전신을 휩쓸어갔다.

“으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동시에 허삼교의 검을 든 오른팔이 검과 함께 몸에서 분리되어 땅바닥에 떨어졌다.

허삼교의 오른손은 아직도 팔이 몸과 분리되었다는 걸 모르는지 여전히 검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잘린 어깨 부위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허삼교의 뒤에 도열해 있던 사내 중 하나가 재빨리 허삼교에게 달려갔다.

그는 서둘러 허삼교의 어깨 부근의 혈을 짚어 재빨리 지혈을 하고는 그를 부축했다.

단 일검에 자신들이 모시는 당주의 팔이 무참하게 잘리는 걸 바로 눈앞에서 목도한 사내들은 청운이 다가오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 광경을 보면서 청운은 다시 한 번 자신을 둘러싼 사내들에게 빙굴에서 불어나오는 것 같은 냉랭한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

“함부로 나서지 마라. 나는 타인의 목숨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지만 오늘 밤은 다르다. 나는 오늘 내가 원하는 만큼의 빚을 꼭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당신들의 구차한 목숨은 아무리 많아도 내가 받을 빚에 포함되지 않는다. 당장 방주를 나오라고 해라.”

청운의 일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여 명의 사내들이 청운 앞에 표표히 내려섰다.

그들은 청운을 몇 겹으로 포위했다.

그들 하나하나가 잘 벼린 칼 같았다.

무리의 앞에 선 자가 청운을 비수처럼 노려보며 향해 말했다.

“우리는 흑수방에 반기를 드는 자들을 단죄하는 ‘흑풍대’다. 바로 너 같은 놈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의 주 임무다.”

그 사내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사내들에게 소리쳤다.

“저놈을 죽여라. 흑풍대의 매서운 맛을 저놈에게 보여줘라.”

앞에 선 흑의인의 명령과 발등에 떨어지기도 전에 청운을 둘러싸고 있던 자들이 청운을 향해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앞에 선 자들이 먼저 검으로 공격해서 청운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면 뒤에 있던 자들이 긴 장창으로 청운을 찔러 왔다.

수시로 공격의 순서를 뒤바꾸면서 청운을 혼란에 빠뜨렸다.

청운이 앞에 있는 자들을 공격하면 순식간에 뒤로 사라지고 뒤에 있는 자들이 청운을 공격했다.

청운이 뒤에 있는 자들을 공격하면 돌연 그자들이 사라지면서 허공에서 창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다수가 하나의 적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합벽진이었다.

청운의 검에 심한 중상을 당한 자들은 순식간에 다른 자들로 교체되었다.

청운은 그들의 이상한 진에 갇혀 하마터면 몇 차례 작은 상처를 입을 뻔했다.

과거의 청운이었다면 틀림없이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운은 과거의 청운이 아니었다.

청운은 그들과 검을 나누면서 그들의 진세를 자세히 관찰했다.

일정한 규칙이 보였다.

사상팔괘진에 생문을 없앤 진이었다.

지독한 놈들이었다.

아예 생문을 없애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만 공세가 멈추는 진이었다.

청운은 가능하면 상대를 해하지 않고 이 싸움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가 반드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상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 곳에도 생문이 없다면 모든 곳을 생문 아니면 사문으로 만드는 수밖에는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치우전륜공을 거의 십 성 가까이 끌어올렸다.

그러자 무영검이 우우웅, 하는 검명을 토하더니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검끝에서 거의 이장이나 일렁거렸다.

청운의 무위를 일별한 흑풍대의 사내들이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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