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화 간신히 기억해 냈다
치우천결을 중심으로 나머지 힘들을 하나로 융합한다면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갈신의는 장담했다.
그러면서도 제갈신의는 자신의 말에 하나의 단서를 달았다.
그런 경지는 인세에 둘도 없는 대단한 신외지물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도달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청운의 몸속에 있는 네 가닥 기운이 개별적으로 워낙 강해서 만년화리의 내단이나 만년삼왕 정도의 양기로도 그 기운을 하나로 녹여 내기에는 미흡하다고 그는 명확히 확언했다.
제갈신의는 그래도 만년화리의 내단이나 만년삼왕의 도움을 받는다면 네 가닥 힘을 칠할 정도까지는 충분히 융합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 경지만 되어도 중원 천지에 거의 적수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도 그는 덧붙였다.
청운은 제갈신의의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혹시 적곤의 내단이라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할지 물어보려고 생각하다가 도중에 그만두었다.
적곤의 내단으로 그 경지에 올라서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자신의 치료가 우선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그리고 보나마나 제갈신의가 정색을 하고 말릴 게 틀림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나중에 기회가 오면 자연스럽게 물어볼 기회가 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모든 걸 잊고 오직 치료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청운은 오랜 시일이 소요되는 긴 치료 시간에 내심 속이 타들어 갔다.
그리고 소림행은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접어 둘 수밖에 없다는 생각했다.
청운은 가능한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작정했다.
마음이 편하게 가져야 치료 시기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우주의 원리를 그대로 모방한 인간의 몸과 마음은 원래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에 청운의 생각이 미쳤다.
먼저 마음이 편해야 몸도 치료를 더 잘 받아들일 것이라 청운은 믿었다.
그리고 몸이 완벽해도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힘든 치료를 불편한 마음으로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제갈신의 탁월한 의술과 자신의 부단한 치료 의지가 합쳐진다면 치료시일을 상당히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제갈 신의는 매일 하루 중에서 양기가 가장 강한 미시에 청운에게 침을 놓고 하루 세 번 온갖 영약을 넣은 탕약을 처방했다.
석가장주 석호원은 청운이 기거하는 방을 찾아와 청운이 초가보의 초서서를 구함으로써 두 집안을 모두 살려냈다고 청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그는 청운이 석가장에 얼마나 머물러도 상관없고 아니, 더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치료에 들어가는 약재는 천금이 들어가더라도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에는 초가보주 천성검 초우람도 청운을 찾아와 석가장주와 똑같은 말을 하고 갔다.
아마 두 집안은 이참에 은혜를 갚는다는 핑계로 청운과 단단히 인연을 맺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뿐 아니었다.
석가명의 형제들도 뻔질나게 병문안을 핑계로 청운의 거처를 드나들었다.
어떤 날은 너무 자주 찾아와서 청운이 조금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이제 겨우 열두 살인 석가장주 석호원의 금지옥엽인 석가영은 청운에게 오라버니, 오라버니 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청운의 처소를 제 방처럼 드나들었다.
그녀는 청운의 처소에 올 때마다 청운이 생전 처음 맛보는 희귀한 음식과 선물을 들고 왔다.
심지어는 장주의 밀실에 있는 금고에서 주먹만 한 야명주를 가지고 와서 청운이 그것을 다시 돌려주는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장주 석호원은 그건 이미 딸이 청운에게 선물로 준 것이기에 받지 않으려고 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아무도 못 말리는 꼬마 아가씨였다.
* * *
청운은 제갈신의가 처방한 탕약과 침을 시술받으면서도, 틈이 날 때마다 치우전륜공을 운용해 혈화제천이 청운의 몸속에 침투시킨 음한지기를 몸 밖으로 배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음한지기가 품고 있는 사기와 요기가 너무나 사이하고 요사하고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청운이 치우전륜공의 진기로 그 사기와 요기를 몰아내려고 시도할 때마다 그 음한지기는 마치 뱀을 본 쥐처럼 점점 더 깊은 혈맥으로 숨어들었다.
치우전륜공의 운행을 멈추면 그 사기와 요기는 다시 서서히 혈맥을 침범했다.
청운의 치우전륜공과 혈화제천의 혈화현음장은 서로 상극이었다.
치우천륜공으로 혈화현음장의 음한지기를 몰아내기 위해 애를 먹고 있던 청운은 문득 혈화제천의 혈화현음장과 파황군의 천녀혈수가 서로 유사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 두 사람의 장력에 깃든 음한지기는 모두 사람의 모공으로 침투해 외부보다는 내부를 먼저 상하게 하는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치료가 무척 힘들고 그 기간도 아주 오래 걸리는 것도 유사했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파황군의 천녀혈수에 당했을 때에도 청운은 거의 백일 가까이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했었다.
청운은 천하의 신외지보인 빙혼대의 영험함이 아니었으면 자신은 벌써 송장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의 부상 정도가 지금의 부상보다는 훨씬 더 심각했다.
그리고 장력의 강력함에 있어서도 조금 차원이 다르기는 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운은 재천신교의 혈화제천도 天과 연결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모든 의문이 저절로 밝혀질 것이라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이 석가장의 별원에 머물면서 하는 일은 딱 세 가지였다.
그것은 제갈신의로부터 받는 치료.
치료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청운 스스로 하는 치우전륜공의 운기.
그리고 얼마 전 목운서점의 황 노인인 준 [악학천보]라는 서책을 해독하는 일이었다.
제갈신의의 금침대법이 끝나자마자 청운은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치우천륜공으로 대주천과 소주천을 번갈아 운기했다.
그런 다음에는 황 노인에게서 얻은 서책을 독해하는데 하루를 거의 다 바쳤다.
범어로 쓰인 그 서책은 상, 하권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상권은 주로 여러 악기에 대한 설명과 그 악기의 음률이 사랑의 오감을 어떻게 자극하는지에 묘용이 쓰여 있었다.
반면, 하권은 그 악기를 손과 호흡으로 실제로 다루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악기를 다룰 때 진기도 같이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진기를 어떻게 다루고 조절하는가에 따라 음율은 말 그대로 천상의 선율이 되기도 하고, 인마를 살상할 수 있는 놀라운 음공이 될 수도 있었다.
청운은 석가영이 자신에게 놀러 오면 주로 그 책에서 익힌 악기를 만지작거리며 놀았다.
다행히도 석가장에는 없는 악기가 없었다.
당장 없는 악기들도 어디서 구하는지 청운이 말만 하면 이삼일이 채 안 되어 가영이 들고 왔다.
청운은 그걸 보면서 황금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일이 정말 무궁무진하구나 하고 감탄했다.
가영이의 악기에 대한 호기심은 정말 대단했다.
무엇보다 가영이는 악기를 다루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청운은 진기를 이용하는 방법만을 쏙 뺀 서책을 가영에게 따로 한 질 만들어 주었다.
가영과 함께 악기를 가지고 놀다 보면 청운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금세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청운이 그 서책을 해독할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피리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 이유는 산속 노인이 가르쳐 준 동굴에서 얻은 ‘삼공적’ 때문이었다.
설산의 빙하계곡에서 백무기와 싸울 때 이해되지 않은 하나의 장면이 자꾸 청운의 머리에 떠올랐다.
자신이 백무기의 공격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극순간적이었지만 왜 백무기는 석상처럼 굳어졌을까.
그 찰나의 순간이 없었다면 자신은 틀림없이 백무기의 한 입 거리 먹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설산을 떠나온 후, 여유가 있을 때마다 그 순간을 계속 곱씹어 보았다.
그 순간을 계속 되짚어 보다가 청운은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절체절명의 급박한 순간에 자신이 삼공적을 백무기를 향해 던진 것을 간신히 기억해 냈다.
청운은 아무래도 삼공적에 자신이 모르는 어떤 대단한 묘용이 있을 것 같다는 의심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서책에서 피리와 관련된 부분을 더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서책을 통해 여러 가지 피리를 다루는 법과 진기를 주입해 피리를 부는 방법도 익혔다.
청운은 결론적으로 결국 ‘삼공적’을 가지고 시험을 해보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제 석가장의 뒷산을 산책할 때 청운은 초지에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수백 마리의 명마들을 보았다.
석가장에서 키우는 말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대단히 비싼 말들 같았다.
그 말들을 대상으로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조심스러웠다.
혹시 자신이 삼공적을 잘못 사용해 말들이 죽어 버린다면 어찌하나 걱정이 앞섰다.
며칠을 고민하던 청운은 결국 석가명에게 말 한 필을 자신에게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청운은 자신이 기마술에 능숙하지 못해서 심심할 때 말 타는 기술을 좀 연마했으면 좋겠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마술이 많이 미숙해서 혹시라도 말이 다치더라도 이해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청운의 부탁을 받은 석가명이 껄껄껄 웃으며 그게 뭐 그리 어려운 부탁이라고 그렇게 뜸을 들이느냐고 오히려 청운을 조금 타박했다.
석가명은 어떤 부탁이라도 자신에게 다 하라고 했다.
청운의 부탁이라면 어떤 힘든 것도 자신이 다 들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운은 며칠 동안 석가명에게서 얻은 말을 대충 길들인 후 한가한 저녁에 뒷산의 중턱으로 말을 끌고 올라갔다.
이마와 콧등에 스치는 봄밤의 바람이 포근하고도 상쾌했다.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는 온갖 꽃들의 향내가 뒤섞여 숨을 내쉴 때마다 콧속을 향긋하게 했다.
산 중턱에 오른 청운은 길게 두어 번 심호흡을 했다.
한순간 산과 나무와 바위들이 몸속으로 고스란히 들어오는 것 같았다.
봄밤의 심호흡이 청운에게 어릴 적 서당에서 개울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던 봄밤을 문득 생각나게 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봄밤의 정취였다.
멀리 어두운 산정 위에는 보름달에 조금 못 미치는 반달보다 훨씬 큰 달이 두둥실 떠 있었다.
달빛에 비치는 주변의 구름이 달을 떠받치는 꽃잎 같았다.
그런 달을 배경으로 대오를 이룬 한 무리의 기러기 때가 달무리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멀리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 광경이 봄밤과 달이 서로 합심해 그리는 한 폭의 묵화 같았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그림 같은 광경이었다.
한순간 청운은 사람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매일 이런 풍경만 바라보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