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79화 (79/184)

079화 그 노인네가 자신에게 속았구나.

청운은 급히 대나무 숲을 빠져나와 곧바로 안가로 되돌아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청운은 일성의 치우천륜공을 운용해 피리를 힘껏 불어 제쳤다.

귀청을 찢는 듯한 엄청난 소리와 함께 피리에서 뭔가가 툭 튀어나왔다.

피리에서 나온 것은 얇은 양피지였다.

바로 그때 이 안가에서 자신의 시중을 들라고 양 분타주가 안가에 기거시킨 어린 하오문도가 자신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다급히 뛰쳐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문도가 청운이 있는 방에 대고 말했다.

“호법사자님, 갑자기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별일 없으신지요.”

청운이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뭘 잘못 건드려 그런 것이니 괘념치 마시게. 나는 아무 일 없으니 돌아가 쉬시게.”

어린 문도가 다시 제 방으로 되돌아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청운은 바닥에 떨어진 양피지를 주워 찬찬히 살펴보았다.

악보였다.

악보의 이름은 [단천파혼]이었다.

악보에 쓰인 글자는 갑골문자와 본격적인 한문 사이의 시대에 사용되었던 고대 문자였다.

그것은 한 곡으로 구성된 세 개의 악보였다.

달리 말해 하나의 곡을 세 개로 분절해 놓은 것이면서, 전체를 하나의 곡으로 연주할 수 있는 악보였다.

한 곡씩 따로 연주해도 되고 연결해서 한 곡으로 연주해도 되는 것이었다.

각각의 악보를 분리하면 [단천일보], [단천이보], [단천삼보]였지만 하나의 악보로는 [단천파혼]이었다.

그래서 그 악보는 한 곡이면서 세 곡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분명 악보이기는 한데, 일반적인 악보의 상궤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일반적인 악보의 음률은 사람의 오감을 부드럽게 자극해 사람의 내면에 잠재된 정서를 환기시켜 감동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이 악보는 그 반대였다.

[단천파혼]은 일반적인 악보와는 반대로 사람의 가장 취약한 오감을 들쑤시고 파헤쳐 인간이 가진 정서뿐 아니라 오감마저 파괴하는 음률과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간 내면의 근본을 파괴하는 무서운 음공이었다.

청운은 이것을 익혀야 할지 그냥 버려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 악보를 꼼꼼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미 청운은 그 내용을 모두 암기해 버린 상태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청운은 그것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청운은 천성적으로 유달리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청운은 악보를 삼매진화로 태워 버린 후 피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청운은 아예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산정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바람이 시원했다.

청운은 널찍한 너럭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청운은 눈을 감고 곧바로 일성의 공력으로 [단천파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청운이 피리를 불기 시작하자, 피리의 음파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청운이 부는 피리에서 나온 음이 가닿는 곳마다 그게 나무든 바위든 모조리 파괴되었다.

나무는 가지가 꺾여 날아가고 밑동이 분질러졌다.

주변의 바위는 쩍쩍 실금이 갔다.

청운이 [단천파혼]을 모두 연주하고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본 청운은 너무 놀라서 입을 딱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음파가 스치고 간 방원 오 장 이내의 모든 것이 벼락에 맞은 듯 파괴되어 있었다.

청운은 [단천파혼]의 위력에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건 알아도 사용을 할 수 없는 것이로구나. 일성의 진력을 이용해도 이 정도인데, 만약 전력으로 연주를 한다면 피리의 음파가 미치는 범위에 있는 모든 것이 말살되겠구나.”

청운은 피리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무게를 제외하고는 여느 피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청운은 오른손에 피리를 들고서 한 아름 정도 되는 소나무 앞에 우뚝 섰다.

청운은 피리에 이성의 진력을 실어 나무를 후려쳤다.

나무의 밑동이 그대로 부러졌다.

아니, 검을 휘두른 것처럼 깨끗하게 잘려져 나갔다.

청운은 이 장 앞에 있는 자신의 몸집만 한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바위 앞에 버티고 선 청운은 이번에도 피리에 이성의 진기를 주입해 바위를 힘껏 찔렀다.

피리의 반 이상이 그대로 바위에 푹 꽂혔다.

그 위력에 청운은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부터 이 피리의 이름은 아무 무늬도 없다는 의미인 <무문적>이다.

청운은 피리를 품속에 갈무리하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천기만전>의 주인장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그 노인네가 자신에게 속았구나.”

* * *

청운이 양 분타주에게 요청한 서류는 정확히 신시쯤에 부분타주 진소구가 싸들고 왔다.

청운은 내심 양 분타주가 일 처리 하나는 아주 똑 부러지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진 부분타주가 돌아가자마자 청운은 서류를 탁자 위에 펼치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天에 관한 사항은 청운이 짐작하는 것 이상의 다른 특이한 내용은 없었다.

하긴 그들의 은밀함이야 청운도 익히 알고 있었다.

재천신교와 검선의 장진도에 관한 것 중에는 좀 눈길이 가는 내용이 있었다.

장진도는 재천신교가 발호한 곳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다.

청운은 그렇다면 이건 틀림없이 누군가가 강호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획책한 암계라고 확신했다.

청운은 그 둘의 관계를 좀 더 엄밀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년화리에 관한 것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장 최근에 만년화리가 잡힌 곳은 적벽 근처라고 적혀 있었다.

삼십 년 전의 기록이었다.

육십 년 전에도 그 근처에서 한 마리가 잡혔다고 적혀 있었다.

누가 잡았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적벽의 절벽 근처는 수량이 많고 유속이 느리다고 서류에 적혀 있었다.

서류를 다 훑어본 청운은 안가에 기거하는 어린 하오문도를 불렀다.

그에게 서류를 다시 형주분타에 갖다 놓으라고 시켰다.

청운은 저녁도 먹고 산책도 할 겸해서 안가를 나왔다.

청운은 안가에서 오십여 리 떨어진 적벽으로 향했다.

갑자기 시원한 강바람을 쐬고 싶어서였다.

태곳적부터 사람들은 강에 기대어 삶을 영위해 왔다.

사람들은 강의 흐름에 순응하면서 강을 이용해 삶을 영위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착한 강의 성격에 맞는 삶의 방식을 발명하고 그 질서에 조응하며 자신들의 삶을 누대로 이어 왔다.

강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은 강의 유속과 깊이 그리고 물길에 각각 다르게 적응하면서 제각기 서로 다른 문화를 발아시켰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다.

적벽은 호사가들이 호들갑스러운 묘사처럼 그렇게 웅장하지도 거창하지는 않았다.

그 대단한 명성에 비해 오히려 약간은 초라할 정도였다.

청운은 호사가들이 원래 과장하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적벽은 수심이 깊고 수량이 엄청나서 그만큼 유속도 느렸다.

얕은 물은 유속이 빠른 만큼 가볍고 경쾌하다.

빠르게 흐르는 물은 제 수면에 얹힌 것들을 순식간에 어디론가 데리고 사라진다.

그 속도는 수면에 비친 풍경마저 수시로 뒤바꿔 버린다.

그래서 빠른 물은 종종 그 수면을 바라보는 사람의 평정심마저 잃게 한다.

반면에 깊은 물은 느리지만 깊고 무겁다.

느린 물은 제 수면에 얹힌 것들을 한참이나 머물게 한 후 서서히 하류로 데려간다.

그래서 느리게 흐르는 물은 수면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자신과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부여한다.

그렇다.

깊고 느리게 흐르는 물에는 얕고 빠르게 흐르는 물이 줄 수 없는 성찰의 순간을 사람에게 준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물가에서 살아왔는지에 따라 사람의 심성도 다르다.

사람과 물의 관계는 서로가 조응하면서 서로를 이루어 가는 상관물이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인다.

그 물결은 물의 것인가 아니면 바람의 것인가?

바람과 물이 청운에게 묻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청운은 자문자답했다.

강호의 질서도 유장하게 흐르는 저 적벽의 물과 같이 도도하게 흘러야 한다고.

사람이 기대어 사는 저 도저한 물길 같은 세상의 질서를 자신의 탐욕을 위해 인위적으로 비틀고 왜곡하는 자들은 저 강물처럼 함께 흘러갈 자격이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나는 그런 자들이 막아 버린 물길을 다시 트고 막힌 곳은 다시 뚫을 것이다.

나는 그 일을 할 것이다.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청운은 적벽의 절벽 위에 서서 유구한 역사를 가로지르며 도저하게 흐르는 깊은 강물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바라보았다.

아마 제갈량도 이 근처 어딘가에서 저 강물을 바라보며 적벽대전의 계책을 구상했으리라 하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그때의 제갈량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갈량이 저 세찬 강물을 바라보며 조조의 선단을 수장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청운은 천산에서 맞닥뜨렸던 그 시체 얼굴의 파황군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자의 천녀혈수를 생각하면 아직도 두려움이 앞선다.

청운은 그 당시에 비해 비록 자신의 무공이 몇 단계는 더 격상되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자를 확실히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했다.

청운은 그자를 확실히 꺾으려면 지금보다 자신의 무공을 더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자가 청운에게 준 인상은 강렬한 것이었다.

그자와 다시 맞붙으려면 최소한 멸환을 극성까지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자신의 몸속에서 각기 따로 놀고 있는 네 가닥의 힘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융합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멸환을 극성까지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더 나아가 멸환겁의 초입에라도 진입하면 더 바랄 나위가 없지만, 그것은 거의 꿈같은 일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멸환겁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청운은 자신의 양쪽 팔목에 잠복해 없는 듯 있는 치우환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단순한 기록적 사실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만년화리는 삼십 년을 주기로 적벽으로 회귀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내년 봄이 바로 삼십 년째다.

장소는 바로 저기 근처다.

청운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적벽 중앙의 바위를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상념에 잠겨 있던 청운은 허기가 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서류를 살펴보는데 정신이 팔려서 점심도 걸렀다는 걸 이제야 문득 생각해냈다.

청운은 저녁을 해결할 적당한 객점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변에 객점이라고는 단 한 곳밖에 없었다.

왼쪽으로 이백 여장 앞 적벽의 물굽이가 한결 잔잔하게 휘도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그리 크지 않는 소담스런 객점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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