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화 그것은 곧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청운이 검을 뽑기 위해 잠시라도 진기의 운행을 흩트리면 저들의 음공이 여지없이 그 찰나를 파고들어 자신을 짓이길 것이다.
청운은 자칫하면 치명상을 넘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산장 주변에 다른 누군가가 또 있는 것 같았다.
청운은 점점 초조해졌다.
이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어떻게 오는 저녁에 내가 적벽으로 올 줄 알고 미리 함정을 파고 있었단 말인가.
청운은 최근에 자신의 행적을 추적하거나 미행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天과 관련된 자들인가 아니면 내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하는 곳에서 온 자들인가?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은 둘째로 치더라도 일단 이 함정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굴뚝같았다.
그러나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청운은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내력으로 저들의 음공에 저항하는 것도 곧 한계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음공의 결계만 벗어나면 일검으로 저들을 쳐죽일 자신이 있었으나 당장은 무영검을 빼 들 찰나의 시간도 없었다.
청운은 점차 자신의 내력이 소진됨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제 정말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이렇게 손 놓고 당하느니 차라리 모험을 걸어보기로 했다.
산장 밖에서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는 자와의 문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저들의 음공은 혼자서 전개한 것이 아니라 합연으로 펼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틀림없이 서로의 음률이 교환되는 찰나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저들 또한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이기에 그 순간 한 번쯤 호흡도 가다듬을 것이다.
저들의 음이 서로 교차하는, 서로의 한 호흡이 어긋나는 바로 그 찰나의 바늘 틈 같은 순간을 노려야 한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청운은 바로 그 순간이 오면 치우전륜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멸환의 초식을 펼치듯 사자후를 터트려야 한다고 작심했다.
고통스럽고도 지루한 견딤의 시간이 지속되었다.
움직일 수도 안 움직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시간이 청운의 피를 말리고 있었다.
청운은 치우천륜공으로 상대의 음공에 대항하면서 단 한 순간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온몸의 감각을 최대한 일깨운 상태로 음공에 대항했다.
자신들의 맹렬한 음공의 공세에도 청운이 계속 꿋꿋이 버티자, 먼저 초조해진 쪽은 그들 부부였다.
그들이 음에 변화를 주기 위해 서로의 호흡이 한순간 어긋났다.
음과 음 사이의 틈새였다.
청운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청운은 자신의 목젖에 응축해 두었던 치우전륜공의 기를 멸환을 전개하듯이 그 빈틈을 향해 내질렀다.
기와 음이 방안에서 충돌하자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 파음의 결과로 산장의 지붕과 벽이 반 이상 날아가 버렸다.
청운과 그들 부부는 기와 음이 충돌한 반발력에 의해 산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청운은 휘청이는 신형을 바로잡자마자 무영검을 빼 들고 그들 부부를 찾았다.
하지만 산장에는 산장의 잔해만 낭자할 뿐, 그들 부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청운이 너무 허탈한 기분에 순간적으로 온몸의 맥이 탁 풀렸다.
그제야 청운은 왜—액 하고 한 사발의 피를 발아래 토해 냈다.
그리 심하지는 않았으나 그들 부부의 음공에 내상을 입은 것이다.
피를 토하고 나니 진탕되던 조금 속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칠흑처럼 깜깜한 왼편 솔숲에서 으스스한 괴소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누군가를 책망하는 듯한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새어 나왔다.
“거봐라. 적음쌍마, 내가 안 된다고 그랬지. 내가 뭐라고 했느냐. 네놈의 그 잘난 앙천지독과 적음공이면 충분히 무위검을 작살낼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해 놓고 그 결과가 고작 이따위냐. 내가 저놈은 이미 괴물이라고 했지.”
“…….”
“저놈은 이미 어지간한 독에도 끄떡없는 백독불침에 내공도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내가 누차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는 이 형님 말을 듣지 않고 쓸데없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일만 꼬이게 만들고 말았다.”
누군지 모를 그는 말을 이어 갔다.
“진즉에 우리 둘이 합공을 했다면 벌써 끝났을 일을 네놈의 어설픈 계책으로 말미암아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래도 저놈이 오늘 밤 죽는다는 결과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너희는 이제 그만 뒤로 물러나 내상이나 치료하거라.”
청운은 토해 낸 피를 바라보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이 형님이 저놈을 어떻게 아작을 내는지 똑똑히 두 눈 부릅뜨고 봐두거라. 내 귀여운 천강혈시가 저놈을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다”
청운은 대경실색했다.
적음공과 천강혈시라니!
‘그럼 저자들은 마련의 팔대천왕 중 다섯째인 적음쌍마와 셋째인 천음혈사란 말인가.’
‘마련도 이미 天과 손을 잡고 있었구나.’
‘하긴 강호의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걸 마다할 리가 없지.’
청운은 그리 생각하고 피식 헛웃음을 내뱉었다.
청운은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그 음공이 그렇게 독날했구나.’
아직도 적음공에 당한 내상이 기경팔맥의 기혈을 뒤흔들고 있었다.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게다가 천강혈시라니!
천강혈시는 죽은 지 사십구일이 안 되는 시체만을 골라 수백 가지 독물에 천 일 동안 제련과 정련을 거듭해 만든 강시 중의 강시가 아닌가.
그리고 오십여 년 전 수천의 생목숨이 죽어 나간 정마대전 후 무림맹과 마련은 서로 합의하에 천강혈시의 제련을 금하기로 약정을 했었다.
그 대가로 무림맹은 철기사자대를 해체했다.
그 둘은 너무나 많은 상대의 인명을 살상한 마물들이었다.
천강혈시의 무서운 점은 수백 가지 독물로 천 일 이상을 담금질해서 피부가 강철 같다는 것에 있다.
어지간한 창칼로는 천강혈시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성치도 않는 몸으로 이제는 또 천강혈시를 상대하게 생겼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한 가닥 핏물이 묻은 청운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연이어 새어 나왔다.
생각할수록 청운은 오늘 밤은 일진이 사나워도 너무 사납다고 생각했다.
청운이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할 것 같은 내상을 치우전륜공으로 간신히 억누르고 있을 때 요사하고 사이한 요령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사방의 숲에서 끼—끼—끼—르—렁—끼—르—렁 하는 사람의 생속을 긁어내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우지끈우지끈 나뭇가지들이 부러져 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곧이어 백여 구가 넘는 천강혈시들이 청운을 에워쌌다.
갑자기 요령 소리가 커지더니 천강혈시들이 우르르 청운에게 달려들었다.
청운은 자신을 덮쳐 오는 천강혈시들을 향해 치우전륜공이 가득 주입된 무영검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아주 심각하지는 않지만 작지 않은 내상을 입은 상태의 청운이 칠팔 성 이상으로 내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 정도가 최대치였다.
물론 청운이 내력을 더 끌어올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천강혈시를 도륙하기도 전에 청운 자신이 먼저 치명적인 상태에 직면할 수가 있었다.
청운은 천강혈시가 아무리 단단해도 그 정도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운은 일검을 전개하자마자 그것이 엄청난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즉시 깨달았다.
청운은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자신을 향해 사방에서 벌떼처럼 달려드는 천강혈시들을 쾌—타—절—변을 연환해 사정없이 도륙했다.
청운의 몸에 거의 다 다다르던 수십 구의 천강혈시들은 청운의 강맹한 검기에 마치 세찬 노도에 밀리듯 와그르르 뒤로 나자빠지거나 주변의 나무 둥치에 처박혔다.
와—지—끈 우—지—끈.
소나무 둥치와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고요하기만 하던 밤의 적막을 사방에서 뜯어냈다.
하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천강혈시들은 다시 하나둘 벌떡벌떡 일어나 청운에게 덤벼들었다.
청강혈시들은 청운의 매서운 검기에 피부가 좀 상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청운은 대경했다.
천강혈시의 무서움에 대해 말로는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맞닥뜨린 청강혈시들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은 청운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청운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무영검에 이성 정도의 진력을 더 주입했다.
청운은 자신의 몸 가까이 근접한 천강혈시를 향해 쾌—타—절—변—회 초식을 연환해서 벼락이 치듯 무영검을 내질렀다.
천강혈시들은 실 끊어진 연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나뒹굴었다.
우—지—끈—쿠—구—쿵.
천강혈시들이 땅바닥에 처박히는 둔중한 소리가 마치 바위가 터지는 듯한 소음을 불러일으켰다.
청운은 기경팔맥에 은은한 통증을 느꼈다.
내상을 입은 속도 심하게 울렁거리며 뒤틀렸다.
청운은 자신이 너무 무리하게 내력을 끌어올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한 줄기 침음을 베어 물었다.
이번에는 하고 다시 사방을 휙 둘러보던 청운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머리가 깨지고 피부가 너덜너덜하게 터진 천강혈시들이 또다시 벌떡벌떡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운의 검기에 격타당한 천강혈시들은 마치 불사의 괴물처럼 쓰러졌다가는 또 일어나고 쓰러졌다가는 또다시 벌떡벌떡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청운은 이 싸움이 내력만 갉아먹는 소모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강혈시들을 한순간에 박멸할 다른 수단을 찾아야만 하는데 청운의 머리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청운의 내력은 점점 고갈되어 갔다.
이 지독한 소모전에 청운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상황을 반전시킬만한 다른 수단이 퍼뜩 뇌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청운은 자신이 얼마 정도 더 견딜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서서히 자신의 한계가 다가옴을 청운은 느끼고 있었다.
청운은 자신의 한계를 뻔히 인식하면서도 당장 자신을 향해 지옥의 마귀처럼 달려드는 천강혈시들을 그냥 방치할 수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곧바로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천강혈시의 공격에 의해 청운도 이미 여러 군데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천강혈시의 강철 같은 손톱에 앞가슴과 등이 무수히 할퀴고 긁혔다.
다행히 청운은 천강혈시의 손톱에 발라진 부시독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것은 천빙열화과를 복용한 덕분인 것 같았다.
문제는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었다.
적음쌍마에게 입은 내상은 그래도 충분히 견딜 만했었다.
하지만 직후 천강혈시들을 상대하느라 무리해서 계속 내력을 끌어올린 나머지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 상태였다.
어느덧 청운의 앞가슴은 청운 자신이 토한 선혈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막막함과 암담함을 넘어 아득한 절망감과 두려운 공포가 자신의 내면을 스멀스멀 엄습해 들어와 들쑤시는 것을 청운은 강하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