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화 도대체 무슨 작당을 꾸미고 있는지.
선실과 선실이 이어지는 복도도 비싼 자단목이 덧대어져 있었다.
청운은 천장에 달라붙은 상태에서 청력을 최대한 돋우었다.
어디선가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진원지는 이십여 잘 떨어진 오른쪽 세 번째 방이었다.
그 방 앞에는 좀 전에 자신이 상대했던 흑의의 복면을 한 무사가 두 명 서 있었다.
청운은 거미가 기어가듯 천장에 찰싹 달라붙은 채 그 방 가까이 접근했다.
선실 앞에서 보초를 서는 저자들과는 어차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청운은 그자들을 사로잡아 봤자 정보를 얻는데 전혀 도움이 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곧바로 그자들의 수혈을 짚어 버렸다.
청운은 그자들이 픽 하고 옆으로 쓰러지는 순간, 소음이 나지 않도록 양팔로 떠받쳤다.
그리고는 어둠이 짙게 모여 있는 모서리에 그자들을 슬며시 밀쳐놓았다.
청운은 벽에 귀를 바짝 갖다 붙이고는 방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방 안에는 서너 명의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중원의 말과 동영의 말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중간에서 서로의 말을 통역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
“더 이상의 대가는 곤란하다는 것이 상제님과 회주님의 철석같은 생각이십니다. 우리가 귀막에 화약과 무기 그리고 노예와 창기로 쓸 애들을 제공하고, 귀막에서는 우리에게 그에 상응하는 아편과 독물을 주기로 한 것 아닙니까.”
통역하는 사람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별도의 청부가 있을 때마다 그에 걸맞은 대가를 황금으로 전부 치렀지 않았습니까. 장진도를 제작해 중원 곳곳에 뿌리는 일이 다소 번거롭고 은밀함이 요구되는 일일지라도 황금 이백 관은 너무 과한 요구입니다.”
“(&^(!%~$%&*+^*…….”
“일의 은밀성 때문에 우리가 그 일을 귀막에 요청한 것이지, 중원의 다른 청부집단에 의뢰하면 황금 오십 관으로도 충분한 일입니다. 상제님과 회주님의 견해는 황금 백관 정도가 합당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
“막주, 오해는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들을 결코 토사구팽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제님과 회주님께서는 귀막과 더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청운은 마음속에 강한 의아함이 일었다.
‘상제’와 ‘회주’라니 그들은 또 누구인가.
그들이 무엇 때문에 혈월막을 이용해 이런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것인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청운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라에서 절대로 반출을 금하는 화약을 내어 주고 절대로 반입을 금하는 아편을 들여오다니.
게다가 인신매매도 모자라 강호에 혼란을 초래하는 장진도로 장난질까지 치다니…….
청운은 당장이라도 쳐들어가 저자들을 요절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저자들을 징치하는 일보다 현성이의 생사를 확인하고 구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청운은 일단 다른 곳을 더 조사해 보기로 생각했다.
청운은 바닥을 세심히 살피며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갔다.
청운이 안력을 극도로 집중해서 구석구석을 살피던 중.
선실 복도의 맨 마지막 구석 바닥에서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의 불빛과는 아주 미세하게 다른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서 비치는 그 빛은 조금 더 붉었다.
그 빛이 새어 나오는 곳에는 선실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는 것 같았다.
청운은 조심스럽게 송판으로 된 뚜껑을 들어 올렸다.
계단은 없었다.
대신 사다리가 있었다.
그냥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 크기의 구멍이었다.
청운은 구멍의 양 귀퉁이에 양발을 걸고 마치 천장에 매달린 박쥐처럼 몸을 거꾸로 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불빛의 진원지는 창살이 쳐진 선실 앞 유등이었다.
창살이 쳐진 선실은 모두 두 개였다.
창살 속에는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금되어 있었다.
한쪽 창살 속 선실에는 여자들이, 다른 쪽 선실에는 남자들이 갇혀 있었다.
이 배를 관리하는 자들이 선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창살에 갇힌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빛이 몽롱하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생각이 모두 제거된 사람들처럼 그저 멍하니 천장이나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선실에 감금된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의 나이가 모두 십 대 중반에서 십 대 후반이라는 것이었다.
청운은 순간적으로 인신매매를 직감했다.
일순간 속에서 분기에 찬 불길이 확 일었다.
저번의 재천신교의 무리도 그렇고 이번의 혈월막의 무리도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아니,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인간말종들이라고 청운은 분노했다.
그 선실 앞에는 세 명의 인형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동영의 말로 대화를 하고 있어서 청운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두 명은 예의 그 동영의 닌자 차림이었고 한 명은 중원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청운은 바닥으로 날아 내림과 동시에 그들의 혼혈을 짚어 버렸다.
청운은 중원인의 복장을 한 자의 아혈을 짚고는 해혈해서 다시 깨웠다.
아혈이 짚인 상태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된 그자는 낚시 바늘의 미늘에 꿰인 장강의 잉어처럼 놀란 눈만 끔벅거리며 청운을 쳐다봤다.
청운은 나지막했으나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그자를 겁박했다.
“내가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한다면 너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할 것이다. 하지만 털끝만치라도 내 의도에 반하는 짓을 한다면 너는 그 즉시 한 줌 핏물이 될 것이다.”
“…….”
“내 말에 따를 의사가 있다면 지금 당장 고개를 끄덕여 보아라.”
청운은 그자가 자신의 말에 더 겁을 집어먹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창살 가운데 붙어 있는 사람의 주먹보다 두 배나 더 큰 자물쇠를 허공섭물로 뜯어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치우전륜공의 진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눈앞에서 바로 보고도 믿지 못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청운의 손에 있던 주먹보다 훨씬 큰 자물쇠가 그대로 쇳가루로 화해 모래시계처럼 바닥에 줄줄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그자는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는 온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안색은 이미 사색이 된 지 오래였다.
그자가 어버버하면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청운이 그자의 아혈을 해열해 주었다.
청운은 그자의 아혈을 풀자마자 그자의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재빨리 치우전륜공으로 주변의 공기막을 차단했다.
청운이 비수보다 더 차가운 눈빛을 빛내며 그자를 쏘아보았다.
청운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자의 눈 속을 똑바로 노려보며 또박또박하지만 나직한 목소리로 곧바로 물었다.
“이 배에서 도대체 무슨 작당을 꾸미고 있는지 아는 대로 다 말해라.”
그자가 입술을 벌벌 떨며 말했다.
“이 배는 동영의 닌자 집단 중 하나인 혈월막의 선박 중 하나입니다. 이 배는 동영에서 앵속과 독물들을 실어와 중원의 화약과 무기를 교환해 가는 밀무역 선입니다. 그리고 인신매매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야기해 보아라.”
“최근에는 상제님과 회주님의 사주를 받아 중원에 혼란을 야기하는 일도 처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순한 통역사이기에 더 상세한 내막은 모릅니다.”
청운이 다시 물었다.
“상제와 회주는 누구냐.”
그자가 대답했다.
자신은 그들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고 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말로만 몇 번 들었다고 했다.
그 정도는 청운도 이미 예상했던 것이었다.
청운은 지금 자신이 그들을 당장 찾지 않아도 언젠가 한 번은 그들과 반드시 맞부딪치리라 생각했다.
나와 그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너무나 상극이니 자신과 그자들의 부닥침은 오히려 필연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이 이번에는 그자에게 다른 걸 물었다.
“여기 감금된 사람 중에 하오문도가 한 사람 있다고 들었다. 그는 지금 어디 있느냐.”
그자가 자신의 눈동자를 굴려 남자들이 갇혀 있는 선실 감옥을 바라봤다.
청운은 그자의 팔다리의 혈도를 풀고는 선실 감옥으로 데리고 갔다.
그자가 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년을 지목했다.
청운이 그 소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몸과 얼굴이 많이 상했으나 그 소년의 얼굴과 체형이 형주 분타주 양춘호가 그려준 용모파기와 흡사했다.
청운은 통역사의 수혈을 짚어 깊이 잠재워 버렸다.
청운에게 혼혈이 짚여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영의 무사들도 아예 오랫동안 깨어날 수 없도록 수혈까지 깊이 짚어 버렸다.
청운은 저자들은 아마 내일 아침 정도는 지나야 간신히 깨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청운은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구하기로 생각하고 우선 정신줄 없는 현성이를 옆구리에 끼고 는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지하 감옥에서 선실로 올라오자 갑판 위에서 칼부림 소리가 들려왔다.
청운이 서둘러 갑판으로 올라가기 위해 막 신법을 전개하려고 했다.
그때, 갑판으로 올라가는 입구 근처의 선실에서 막 튀어나온 닌자 하나가 청운을 발견하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자의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실 문이 연달아 벌컥벌컥 열렸다.
그러더니 수십여 명의 닌자 복장을 한 자들이 노도처럼 밖으로 밀려 나왔다.
난감했다.
청운은 가능하면 조용히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한바탕 드잡이질이 벌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청운은 직감했다.
결심과 동시에 청운은 자신의 애병인 무영검을 빼 들었다.
현승이를 옆구리에 끼고 있어도 저들을 상대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이 무영검에 진기를 주입하자 무영검이 돌연 부르르 떨더니 거의 이 장에 가까운 투면한 자황색의 검기가 선실 복도에 일렁거렸다.
청운의 놀라운 무위에 화들짝 놀란 백여 명이 넘는 혈월막의 닌자들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바로 그때 그들의 뒤에 있던 닌자 중 하나가 고함을 빽 지르자 갑자기 제정신을 차린 닌자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청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청운은 그들이 중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말이 전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쾌—타—절의 초식을 연환해 그들을 짓쳐 갔다.
청운은 저들이 이곳에서 무수한 악행을 저질렀다는 걸 이미 알았지만 그래도 모두 나름 소중한 생명이기에 목숨만은 함부로 끊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청운은 손속에 사정을 좀 두고 초식을 전개했다.
앞에서 청운을 향해 돌진하던 칠팔 명의 닌자들이 무영검의 강맹한 검기에 휩쓸려 추풍낙엽처럼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그들의 몸이 처박히는 곳마다 선실의 벽과 문짝이 마치 철퇴에 맞은 것처럼 부서져 나갔다.
청운이 무영검을 몇 번 더 휘두르자 거의 대부분의 닌자들이 중한 상처를 입고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청운은 묘묘보허를 전개해 마치 한 마리 밤나비처럼 그들 사이를 누비며 모조리 혼혈을 짚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