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00화 (100/184)

100화 그리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 노인은 청운에게 주먹밥을 하나 선뜻 내밀며 먹어보라고 했다.

그 노인은 주먹밥이 보기는 이래도 맛이 꽤 괜찮다는 말을 덧붙였다.

청운은 사양할까 하다가 어르신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공손하게 주먹밥을 하나 받아들고 너럭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청운이 주먹밥을 막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오른쪽의 노인이 푸념하듯 한 소리했다.

“내 할아버지의 말로는 옛날에 저 봉우리 너머 응달진 곳에서 산삼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고 했다네. 그 당시에는 이 백두산에서 가장 큰 폭포가 거기에 있었다고 했네.”

“…….”

“그런데 어느 날 엄청난 지진이 나서 물길이 바뀌고부터는 그곳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잡풀과 넝쿨만 자라고 있으니.”

“이 사람아. 이제 그 지나간 얘기는 그만 좀 하게.”

“그때 지진이 나지 않았더라도 우리도 산삼이나 캐서 좀 더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다 전설 같은 얘기지 뭐.”

왼쪽의 노인이 비아냥거리듯이 그 노인의 말을 받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하루 이틀이지, 그 이야기는 내가 자네에게 들은 것만도 수십 번이 더 넘네.”

“하하, 그런가.”

“이미 백 년도 더 지난 아무런 쓸데없는 얘기를 뭘 하려고 자꾸 하나. 자, 얼른 밥이나 먹고 약초나 캐러 가세. 그래야 오늘 하루도 먹고 살지.”

청운은 노인의 말을 듣고 번뜩하고 머리에 스치는 어떤 생각이 있었다.

청운은 두 노인에게 그곳이 어디인지를 자세히 물었다.

노인들은 그쪽에는 아무 볼 것도 캘 것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청운이 다시 묻자 오른쪽의 노인이 뒤의 봉우리를 주름이 자글자글한 시커먼 손으로 가리켰다.

청운의 눈길은 봉우리 너머 봉우리를 넘어가는 노인의 손끝을 바늘에 딸린 실처럼 쫓아갔다.

청운은 노인장에게 밥값이라고 말하고는 은자 열 냥을 주었다.

노인들은 처음에는 한사코 그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청운이 자신의 아버지도 약초꾼이어서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하자 그제야 노인은 돈을 받았다.

청운이 노인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인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 청운은 두 노인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내려와서야 신법을 전개했다.

* * *

채 이 각도 안 되어 청운은 노인이 말한 그곳에 정확히 도착했다.

그곳은 노인의 말대로 바위와 잡풀뿐이었다.

청운은 안력을 최대한 돋우어 과거 물길의 흔적을 찾았다.

그런 곳이 있었다.

지면에서 백여 장 정도의 높이에서 물길이 흘러내린 흔적이 보였다.

청운은 머릿속으로 사라진 폭포를 상상했다.

절벽의 중간 오십여 장 정도 되는 높이에 잡풀과 넝쿨에 가려진 동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청운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청운은 땅을 박차며 그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중간중간 튀어나온 바위를 두어 번 밟고는 그대로 동굴 입구에 날아 내렸다.

청운은 무영검으로 덩굴과 잡풀을 대충 쳐낸 후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동굴의 벽면에는 말라죽은 이끼들이 듬성듬성 붙어 있었다.

이십여 장을 더 들어가자 석문이 나타났다.

사람의 눈높이 정도 되는 석벽 한쪽에 팔각패 모양으로 파인 곳이 있었다.

청운은 자신의 품속을 뒤져 산막의 동굴에서 얻은 팔각패를 그곳에 대어보았다.

딱 맞았다.

청운이 오른쪽으로 힘껏 팔각패를 돌렸다.

석문이 그—르—르—릉 소리를 내더니 손바닥만큼 열렸다.

청운이 다시 한 번 팔각패를 힘껏 돌렸다.

석문이 다시 한 번 움찔하더니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수십 번을 시도해 보았으나 매번 마찬가지였다.

청운이 왜 이러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문득 이곳에 큰 지진이 있었다는 약초꾼 노인의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청운은 그 지진 때 석문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석문이 마모되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막막했다.

문을 부수고 석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잘못되어 동굴 전체가 무너질까 두려웠다.

잠시 생각을 하던 청운은 무문적을 꺼내어 석문의 틈 사이에 집어넣고는 내공을 이용해 조심스레 이쪽저쪽으로 조금씩 젖혔다.

그제야 석문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람 몸 하나 정도 들어갈 틈이 생기자, 청운은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석실 내부는 단출했다.

책장 두 개와 바닥에는 난방용으로 쓰였을 청동화로 하나만 달랑 있었다.

책장에 있는 책들은 너무 낡아 손을 대자마자 마른 낙엽처럼 으스러졌다.

청운은 깊은 허탈감을 느꼈다.

청운이 다시 동굴 밖으로 나가려고 오른쪽으로 막 몸을 돌리다가 사람 눈높이 정도에 있는 구멍 두 개를 발견했다.

하나는 사람 엄지손가락 굵기였고, 다른 하나는 그것보다 조금 더 넓었다.

청운은 눈을 구멍에 대고 안을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청운은 혹시 하는 생각을 하다가 품속에서 삼공적과 무문적을 꺼냈다.

작은 구멍에는 삼공적을, 조금 더 넓은 구멍에는 무문적을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딱 맞았다.

손에 살짝 힘을 주자 삼공적과 무문적이 쑥 들어갔다.

드—르—르—릉.

잠시 후, 소리와 함께 벽 자체가 위로 들려졌다.

그곳은 석실 속의 또 다른 석실이었다.

커다란 석실이 다섯 군데나 있었다.

청운은 찬찬히 석실들을 모두 둘러보았다.

각각의 석실에는 에는 여러 개의 책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책장에 있는 서책들은 손만 대면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청운은 애써 이곳까지 찾아온 보람이 없어 허탈했다.

청운은 가장 안쪽의 마지막 석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사람 허리 높이의 옥으로 만든 단壇 하나가 있었다.

그 단 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커다란 향로 하나와 그 옆에 고색창연한 궤 하나가 있었다.

청운은 녹이 슬대로 슨 궤의 자물쇠를 무문적으로 툭 쳐서 떼어내고는 궤의 뚜껑을 들어 올렸다.

궤 속에는 양피지로 된 두루마리 하나와 가죽끈으로 엮어 놓은 은으로 된 세 개의 철편 뭉치가 들어 있었다.

청운은 먼저 두루마리를 펼쳐보았다.

아! 그 글자들은 [환국의 서]에 보았던 바로 그 글자들이었다.

청운은 새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별자리를 응용해 만든 그 문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환국이 망하면서 무영대도 해체되고 말았도다.

수라대는 치우천왕의 직속 특무대였다.

수라대는 천왕의 명을 받아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넣는 사기와 요기가 발호하는 걸 감시하고 제압하고 봉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무영대가 해체될 때 몇몇 탐욕에 눈이 먼 대원들이 세상의 사기와 요기를 제압하고 봉인하는 비술이 기술된 비급을 훔쳐 세상 곳곳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대주께서는 그 일에 크게 상심했다.

그 후 대주께서는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술들 몇 가지를 찾아내 이곳 동굴에 보관했다.

대주께서는 의기 있는 몇몇 대원들과 뜻을 모아 그 비술들을 바탕으로 무영문을 창건했다.

대주께서 무영문의 초대 문주가 되셨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 중원의 어느 곳에서 사기와 요기가 발호하는 것을 감지한 문주께서 다급하게 그곳으로 떠나셨다.

그리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으셨다.

문주의 실종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은 문주께서 중원으로 떠나실 때 소지한 무영문의 신물들도 모두 망실하고 만 것이었다.]

청운은 계속해서 문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 신물들은 바로 <삼재구>와 세상의 온갖 괴수와 사기를 제압할 수 있는 벽라목으로 만든 <벽라적>과 신단수로 만든<신단적>.

그리고 무영문의 상징인 무영검과 이 세상에서 가장 신기막측한 신법인 <묘묘보허> 전반부였다.

하늘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는 없으나…….

수라대의 임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대겁난을 초래하는 삼계가 열리는 것을 방비하는 일이었다.

삼계를 제압하고 봉인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삼재구다.

그 속에는 삼황과 십이지신의 공능이 들어 있다.

그 무궁한 공능을 불러내는 주문을 여기에 남긴다.

그리고 그 임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묘묘보허> 하편과 <극황지감술> 하편을 남긴다.

이것만으로 세상에 준동하는 사기와 요기를 제압하기에는 태부족함을 뻔히 알지만, 이것밖에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무영문과 연이 닿는 후인이 이것이라도 익혀 힘이 닿는 데까지 세상의 혼돈을 막아주길 바라고 또 바랄뿐이다…….

—무영문 이대 문주 환인걸 서—]

청운은 두루마리를 읽고는 세상에 이런 공교로운 일도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자신을 위해 준비한 누군가의 안배 같아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청운은 잠시 멍한 상태로 석실의 천정을 올려다보다가 궤의 바닥에 놓여 있는 은으로 만든 철편 뭉치들을 꺼냈다.

모두 세 개였다.

그 철편들에는 각각 삼재구의 힘을 끌어내는 주문과 묘묘보허 후반부와 극황지감술 후반부가 깨알 같은 글씨로 음각되어 있었다.

청운은 그것들을 품속에 갈무리해서 나갈까 하다가 아예 익혀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양무척이 챙겨 준 양식이 아직 보름치는 더 남아 있었다.

청운은 삼재구의 주문을 먼저 암기한 후 묘묘보허의 후반부가 음각된 철편을 집어 들었다.

묘묘보허는 글자 그대로 극성으로 익히면 바람의 결을 타고 노닐 수도 있을 것 같은 신법이었다.

청운은 닷새에 걸쳐 묘묘보허 후반부를 칠성 정도까지 익히고는 극황지감술이 기술된 철편을 눈앞에 펼쳤다.

어차피 이곳에서 묘묘보허와 극황지감술을 극성까지 익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머지는 강호를 주유하면서 익힐 생각이었다.

극황지감술도 묘묘보허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극황지감술을 대성하면 사물의 기감까지 샅샅이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옆에 서 있어도 상대가 자신을 감지하지 못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었다.

극황지감술의 후반부를 익히는데 거의 열흘이나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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