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18화 (118/184)

118화 빛의 바퀴인 전륜을 타고 천하를 오시하리라.

개구리가 파리를 노리고, 그 개구리를 뱀이 노리고, 또 그 뱀을 매가 노리는 강호의 생리상 자신들이 비무에 집중하는 사이에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에, 어떠한 대적에서도 최소한의 힘을 남겨 두는 것이 강호인의 자연스런 습성이었다.

제혼마검의 검은 청운이 난생처음 접하는 대단한 것이었다.

청운은 그의 마지막 초식인 ‘제혼암천’을 극황지감술을 운기해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물방울 하나가 수면에 떨어져 무수한 파문을 만들 듯이 그의 검은 더할 나위 없이 변화무쌍하면서도 묵직했고 유연하면서도 가공했다.

그의 검은 대상과 접하는 순간, 대상의 상태와 성격에 따라 강약의 결이 바람을 타는 대나무처럼 변화무쌍했다.

강한 대상을 만나는 순간에는 그 대상보다 더 강하게 돌변했고 부드러운 대상을 만나면 그 대상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급변했다.

세찬 바람과 부드러운 물결이 그러하듯 그의 검은 강한 장애물을 만나면 돌연 검기가 하나로 뭉쳐 장애물을 파괴했다.

또한 여러 장애물이 동시에 나타나면 하나의 검기가 순식간에 그 장애물의 숫자만큼 갈라지며 각각의 장애물을 무화시켰다.

그의 검은 자신의 의지로 상대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검의 의지가 저절로 상대에 맞춰 대적하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상황에 대처했다.

그가 대상을 이해하고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검이 스스로 대상을 파악해 적응하는 것 같았다.

청운은 자신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날개가 완성된 새로 태어나는 새는 없다.

검의 완성도 마찬가지다.

창공을 마음대로 활강하는 새의 우아한 날갯짓이 알의 어둠 속에서 축척한 시간과 힘의 총화이듯이.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자유자재로 빛이 산란하고 노을이 번지는 것 같은 화려하고 우아한 검로는 과거에 존재했던 검로를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깨우치면서 그 과거를 탈피하는 무수한 변태를 거쳐야 간신히 얻어지는 것일 것이다.

진정한 검은 지금과 다른 검로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이해하고, 수정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상상할 때 겨우 얻어지는 것이다.

그냥 얻어지는 것은 말 그대로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혼란과 혼돈에 단독자로 맞서는, 부단한 변태의 과정이 없는 검은 모두 허위 아니면 가짜다.

열심히 거친 땅바닥을 기어 다닌 벌레일수록 완벽한 변태를 한다.

화려한 비상은 그 과정이 누적된 결과일 뿐이다.

깨달음의 궁극은 결국 부단한 각성과 자각을 통해 우주 속의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다.

청운은 나의 성취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만이 내 검을 더 정확하고 완벽하게 완성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느긋하게 목욕을 끝낸 청운은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때 옷 속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양촌댁에서 가져온 서책이었다.

밖으로 나가려던 생각을 접고 청운은 고대 범어로 쓰인 책을 펼쳐 들었다.

표지는 헤져 떨어지고 없었다.

황윤 노야로부터 얻은 [다라패엽경]에 쓰인 것과 같은 문자였다.

청운은 첫 장에 쓰인 첫 구절을 해독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 내용이 너무 광오하고 황당했다.

급기야 청운은 서책을 집필한 작자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인체와 정신의 하단전과 중단전, 상단전이 모두 열리면 빛의 바퀴인 전륜을 타고 천하를 오시하리라—]

단전은 원래 하나밖에 없는 것인데 중단전과 상단전이라니.

그것은 인체에 관해 연구된 기존의 의학상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었다.

청운은 도대체 이 사실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대체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지나칠 정도로 강렬한 호기심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청운은 이 작자가 거짓말을 얼마나 더 하는지 끝까지 살펴보기로 작정했다.

서책을 해독할수록 더 가관이었다.

터무니없이 황당해서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통상적으로 지금까지 연구된 경락과 맥은 임맥과 독맥을 중심으로 한 십이 경락과 팔 맥이었다.

이 책에서는 이십사 경락과 십이 맥이 도해로 그려져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혈에 대한 설명이었다.

여타의 다른 의학 서적에서 설명된 기존의 혈은 쌍혈 백이십칠 개와 단혈 이십삼 개를 포함해 모두 백오십 개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인체의 혈이 모두 삼백육십 다섯 개나 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기존의 상식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제 청운은 그 서책의 진위를 떠나서 도대체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서 끝까지 훑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묘한 매력이 있었다.

다른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 논리가 마치 바늘로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꿴 것처럼 치밀하고 정연했다.

청운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쩌면 이 서책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새로운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에 호감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맨날 자신의 좁은 세상만을 최고라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청운은 창에 어슴푸레한 여명이 비치는 새벽이 될 때까지 몇 번이나 거듭 책을 읽었다.

그 바람에 청운은 책을 거의 외우다시피 암기하고 말았다.

눈을 감아도 책의 글자와 도해들이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글자와 도해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청운은 속는 셈치고 책에서 설명하는 대로 한번 운기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청운은 침상에 올라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서책에 표기된 도해를 따라 운기를 하기 시작했다.

서책에 도해된 새로운 경락과 맥으로 치우전륜공을 운기하자, 처음에는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태어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맥과 혈을 뚫느라 진땀을 뻘뻘 쏟아냈다.

청운은 통증이 너무 심해 원래 인체에 존재하지도 않은 혈을 있다고 그 작자가 거짓말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특히 책이 시키는 대로 중단전과 상단전을 열려고 시도할 때마다 거의 기절할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유발되었다.

청운은 몇 번이나 중도에 그만 포기할까 생각했다.

이미 자신의 성취가 강호에 거의 적수가 없을 정도의 경지에 도달했는데 굳이 이것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청운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시작한 이상 중도에 그만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여태껏 자신이 추구해 온 삶의 신조와도 맞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운은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자신의 모든 기를 중단전을 열기 위해 맹렬하게 돌리던 어느 순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가슴이 빠개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청운은 침상에서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하기 바로 직전 청운은 뭔가가 가슴에 쾅 하는 부닥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 * *

청운은 채 일각도 안 되어 다시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청운은 깜짝 놀랐다.

온몸에 끈적끈적한 진땀이 배어 있었고 악취가 진동했다.

그동안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경락과 맥에 쌓인 경락과 맥을 막고 있던 탁기가 한꺼번에 땀구멍으로 배출된 것 같았다.

청운은 곧장 목욕탕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미 식어도 한참이나 식은 물로 목욕을 했다.

그러자 악취가 좀 가시는 것 같았다.

청운은 아침을 먹기 전에 아무래도 뜨거운 물로 한 번 더 목욕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청운은 자신의 몸이 뭔가는 모르게 이전과 상당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고 온몸의 세맥 구석구석까지 힘이 충만한 것을 느꼈다.

특히 명치 부근에 또 다른 힘의 근원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단전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내공이 명치에 있는 또 다른 힘과 수시로 소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청운은 즉시 침상으로 올라가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치우전륜공을 최대한 운기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애를 써도 잘 융화되지 않던 치우천결과 전륜공이 마치 가족을 만난 듯 서로 감응했다.

기가 운용되는 방식이 마치 [다라패엽경]의 후편 같기도 했다.

청운은 뛸 듯이 기뻤다.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닌 밤중에 자다가 완전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청운은 어린 문도가 조찬 때문에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새로운 방식으로 치우전륜공을 계속 운기를 했다.

청운이 운기할 때마다 투명한 자황색의 둥근 서기가 청운의 전신을 오르락내리락했다.

환의 숫자는 모두 아홉 개였다.

내친김에 청운은 상단전마저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중단전까지가 한계였다.

더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

청운은 심부름을 온 어린 문도에게 목욕부터 해야 하니 목욕물부터 데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

청운은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어린 문도가 안내하는 조찬장으로 갔다.

태어나서 평생 사용하지 않아 막혀 있던 경락과 맥을 뚫어서인지 그냥 걷는 발걸음조차 날아갈 듯 가벼웠다.

청운이 조찬장에 들어서자 입구에 도열해 있던 십여 명의 문도들이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이사를 했다.

“부문주님을 뵙습니다!”

청운도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에 답례를 했다.

청운은 문도들로부터 부문주님이란 호칭을 들을 때마다 어색하고 민망해서 안절부절못했다.

청운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문도들이 입을 가리며 킬킬거렸다.

아예 대놓고 킥킥거리는 문도들도 있었다.

문주와 총사 그리고 삼호 명명은 한참 전에 조찬장에 도착해 청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운은 자신 때문에 그들의 아침이 많이 늦어진 것 같아 미안해했다.

문주와 총사가 손사래를 치며 괘념치 말라고 했다.

그래서 청운은 더 미안해졌다.

밥을 거의 다 먹을 때쯤 문주가 얼굴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청운에게 다음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왔다.

청운은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에, 문주님. 곧바로 화산에 한번 가 볼 생각입니다. 육검자와 황금면객의 비무에 대해 좀 더 소상히 알아볼 생각입니다. 두 사람의 비무를 가까이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을 통해 황금면객이 당시에 사용한 무공의 특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파악을 해야 그자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주와 총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문주가 마시던 차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한마디 했다.

“도대체 황금면객이란 자의 무위가 얼마나 가공하길래 육검자와 무여대사 같은 화경의 고수가 채 이십 합도 버티지 못하고 절명을 했단 말인가. 그자가 사용하는 검법이 대체 어떤 것이길래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

“혹시 부문주님은 그자의 무공에 관해 조금이라도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까?”

청운이 제혼마검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문주에게 전했다.

청운의 말에 문주와 총사는 황금면객의 일보다 청운이 제혼마감과 비무를 했다는 사실에 더 놀라며 불신의 눈초리로 청운을 쳐다보던 문주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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