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삼백 년 전 검의 절대자였던 바로 그 ‘검선’ 말입니까?
“세상에! 마도제일검 마련주와의 비무라니! 부문주로부터 직접 듣고도 믿지 못하겠군요. 그래,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청운이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마련주는 무승부라고 했지만 사실은 제가 한 푼 정도 밀렸습니다. 마련주께서 저를 실제보다 더 높이 평가를 한 것이지요.”
청운의 말에 너무 놀란 문주와 총사는 입을 딱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문주와 총사는 숭배라고 할 만큼의 경탄의 눈초리로 청운을 바라봤다.
먼저 흥분을 가라앉힌 총사가 물었다.
“그래, 제혼마검은 황금면객의 무공에 대해 뭐라고 말하던가요.”
청운이 총사를 바라보며 즉시 대답했다.
“마련주는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황금면객이 사용한 무공이 아무래도 검선의 <자전십이파검>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문주와 총사는 거의 경악할 정도로 놀라며 두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문주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자칫 마시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문주는 탁자에 쏟아진 찻물을 흰 천으로 훔치며 말했다.
“삼백 년 전 검의 절대자였던 바로 그 ‘검선’ 말입니까?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일 년쯤 전에 그의 장진도가 나타나 강호를 한바탕 혼란에 빠트리더니, 이미 누군가 익히고 가짜 장진도를 강호에 고의로 흘려보낸 것이군요.”
“…….”
“일이 그렇게 된 것이군요. 부문주님, 어찌되었건 조심하세요. 마련주가 그렇게 말했다면 아마 거의 틀림없을 겁니다. 검선의 <자전십이파검> 이라니.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문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총사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는 청운에게 다시 물었다.
“부문주님, 혹시 황금면객의 정체에 대해서 짐작하시는 바가 있습니까.”
청운은 모용세가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황상 모용성이 황금면객 같다고 말했다.
문주와 총사는 더 이상 놀랄 힘도 없는지 멍한 표정으로 그냥 청운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청운은 밥을 먹자마자 곧장 근처에 있는 야산으로 올라갔다.
밤새 서책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익힌 치우전륜공을 시험해 볼 참이었다.
특히 새로운 장법과 지법을 하나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서책의 마지막 장에 전륜공을 장법과 지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도해로 그려져 있었다.
청운은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십여 장 밖에 둘레가 십여 장 되는 적당한 바위를 발견했다.
청운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바위 앞에 버티고 섰다.
청운은 밤새 새롭게 뚫은 경락과 맥에 치우전륜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청운의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 이어지는 경락과 맥에서 투명한 자황색의 서기가 일기 시작했다.
청운이 양손을 서서히 가슴 앞에 들어 올렸다.
잠시 후, 청운의 양손에서 보고도 믿지 못할 놀라운 장면이 나타났다.
청운의 장심에 투명한 자황색 빛무리의 환이 층층이 뭉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청운이 양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찰나의 순간 청운의 장심에서 번쩍하는 빛의 광휘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놀라운 광경은 연이어 다른 놀라운 광경을 불러왔다.
조금 전까지 청운의 눈앞에 있었던 거대한 바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텅 빈 하늘만 남긴 채.
청운은 입가에 한 자락 만족의 미소를 베어 물었다.
청운은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바위를 찾았다.
왼쪽으로 이십여 장 밖에 집채만 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청운은 곧장 그 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청운은 장력을 발출할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치우전륜공을 운기했다.
공력을 오른쪽 검지에 집중시키고는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었다.
투명한 자황색의 빛이 청운의 검지에서 번쩍하며 발출되었다.
바위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청운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바로 앞까지 다가가자 바위에 작은 구멍 하나가 보였다.
청운이 그 구멍에 눈을 갖다 댔다.
바위 맞은편의 푸른 하늘과 구름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청운은 바위에서 눈을 떼고는 산을 내려왔다.
청운은 하산 중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뜻밖의 인연으로 인해 청운은 자신의 무위가 최소 한 단계는 더 격상된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청운은 푸르디푸른 드넓은 저 하늘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끽하고 있었다.
* * *
얼핏 보면 난삽한 것 같은 장강의 저 장대한 물결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묘하게 높낮이를 유지하면서 흐르는 거대한 질서 같았다.
걸림돌을 만나면 소용돌이치고, 벽을 만나면 시간을 두고 모였다가 먼저 도착했던 물부터 벽을 뛰어넘고는 뒤에 있는 물에게 뒤따라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서로 몸을 합쳐 연대하고 협력하는 물결의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다.
시시각각 보이던 것을 보이지 않게 했다가 어느 순간 다시 보여주면서 한숨 쉬고 꾸짖고 부르짖는 물결의 다양한 표정.
그 의미가 너무 많아 인간이 절대로 해독할 수 없는 무수한 문장 같았다.
그 어떤 물길도 다른 물길에게 자신의 길을 묻지 않고 흐른다.
물은 제 갈 길을 오직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헤져나갈 뿐이다.
청운은 유장하고도 고고한 저 흐름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는 사람의 정신을 때리는 죽비 같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자신의 길 역시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제 갈길을 유유히 흐르는 저 물길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단단한 바위를 만나면 어루만지듯 돌아가고 거대한 벽을 만나면 함께 모였다가 기어코 그 벽을 넘어버리는 물의 참을성과 끈기가 삶의 위대한 스승 같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모든 걸 스스로 하나하나 헤쳐 나가다 보면 강둑에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듯 자신이 원하는 길이 자신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두르지 않는 차근차근함으로 자신 앞에 놓인 삶의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다 보면 왜 자신이 그런 길을 걸어야만 했는지.
자신이 걸어온 길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상에 언젠가는 틀림없이 우뚝 서리라고 확신하며 청운은 자신을 태운 채 흘러가는 장강의 물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있었다.
청운은 지금 화산에 다시 오르기 위해 장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그는 장강의 뱃머리에서 장강의 유장한 물결을 바라보면서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회상이 아니라 자책이었다.
天과 육검자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뒷일의 처리에 너무 태무심해서 결국 육검자를 天의 손에 죽게 만들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자신의 경솔함과 안일함을 스스로 책망하고 있었다.
멀리 웅장한 화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그 자책과 책망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그것 한 번이면 족하다고 청운은 자신을 다잡았다.
그래서 청운은 天과의 문제에서 눈앞에 닥친 일뿐 아니라 그 뒷수습 또한 철두철미하게 처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고인에 대해 최소한의 예를 갖추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지난번의 화산행이 가슴이 두근거리는 두려운 것이었다면, 지금의 화산행은 초조한 조바심과 다급함이 가득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天과 화산의 관계를 끊어내기 위한 승부 때문이었으나, 오늘은 육검자의 사인을 통해 天의 악행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다.
더군다나 자신이 겪어 보지 않은 미지의 공포는 실체보다 더 빨리 퍼지는 법이다.
청운은 황금면객에 의해 강호에 급격히 확산되는 불안과 공포를 시급히 저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강호의 여러 군소 문파와 방파들이 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天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거나 은근히 기우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天의 행보에 관해 소극적 입장으로 돌변해 묵인하거니 방관할 게 뻔했다.
화산의 상징인 연화봉은 여전히 우뚝했고 상上宮은 여전히 고색창연하게 화산의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상궁 앞 옥녀지는 오늘 밤에도 하늘의 옥녀가 머리를 감기 위해 내려올 만큼 투명한 옥빛으로 맑았다.
“얏—얏—하—합.”
그때 어디선가 기합 소리가 들렸다.
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소리의 진원지는 상궁의 왼편에서 돌계단을 한참이나 내려가야 나오는 연무장이었다.
연무장에서 화산의 어린 제자 수백 명이 열을 지어 사형의 지도에 따라 검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사형들은 어린 사제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었다.
어린 사제들은 사형의 늠름한 모습에 미래의 자기 모습을 투영하며 매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청운은 어린 제자들이 검술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직 세상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수한 어린 제자들이 명문정파라는 허울에 갇혀 야망과 야욕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 문파의 엉뚱한 용기와 아집을 배우고 내면화하지 않을까.
우려 아닌 우려를 했다.
청운은 앞으로의 강호를 책임져야 할 저 순수한 어린 제자들이 명문정파라는 허울뿐인 허명과 잘못된 자존감에 사로잡혀 약자에게 그악스럽게 위악을 부리는 거대 문파의 그런 구습과 관행을 제발 배우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정파인들은 늘 자신들이 마도나 사파보다 더 공명정대하고 정의롭게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물고기가 물속에 있기 때문에 물을 모르는 것과 같은 엄청난 착각이다.
물론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정파나 사파, 양쪽 다 똑같이 자신들의 이득을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집단들일 뿐이다.
두 쪽 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문규를 만들고 규율을 정하지, 자신들보다 못한 약자의 입장을 반영해 문규를 만들지는 않는다.
양쪽 다 자신이 속한 문파를 기준으로 협의와 정의를 외칠 뿐, 자신들이 입에 달고 사는 바로 그 협의와 정의가 진정 누구를 위한 협의이고 정의인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들은 강호의 질서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태가 발발해도 항상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선에서 사태를 대충 마무리하려고 할 뿐이다.
저들은 혁신과 개혁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자신들 문파의 잘못된 전통과 구습을 확 뜯어고치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저들은 자신들 문파의 안위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 고정관념을 강호의 정의라 생각하고, 그런 강호를 산다.
저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 ‘강호의 정의’가 거꾸로 강호에 불평등과 불공정을 악화시키고 심화시킨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문파가 완벽하다고 믿는 것만큼 자신의 문파를 완벽하게 망가뜨리는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