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34화 (134/184)

134화 저들의 그릇된 야욕을 막아 보겠습니다.

“나도 그 점이 전혀 이해되지 않네. 자네 말은 한 치도 틀리지 않네. 하월보가 산서에서는 제법 떵떵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는 석가장에 비할 바는 아니네.”

“…….”

“인적 구성이나 영업장의 숫자나 규모로 따져 보더라도 하월보는 석가장의 반의반도 되지 않네. 게다가 초가보와의 혼인을 통해 석가장의 실질적 영향력은 두 배는 더 증대되었다고 할 수 있네.”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그걸 뻔히 아는 하월보에서 무얼 믿고 그렇게 안하무인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일세. 하월보 뒤에 다른 거대 세력이 있다면 모를까. 석 장주는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강호 전역에 파견되어 있던 무사들을 석 가장으로 소환하고 있다네.”

“음…….”

“그것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은지 석 장주는 초가보에도 도움을 요청한 상태라네. 오늘 중으로 총순찰 양소보가 수십여 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석가장으로 올 것이네.”

청운이 다시 제갈신의에게 물었다.

“석가장은 이곳 관청에 세금도 엄청나게 많이 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관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요.”

제갈신의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 그것도 참 이해가 안 되는 점일세. 석가장이 평소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과 아주 긴밀한 관계였지. 그런데 이번 사안에 대해 석 장주가 관에다가 중재를 요청하자 관에서는 석가장과 하월보의 다툼은 관에서 개입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며 나 몰라라 한다는군.”

“…….”

“참으로 이상한 일일세. 아무래도 이 일의 근저에 내가 모르는 어떤 흑막이 더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청운은 마시던 차를 마저 마시고는 곧장 석 장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무래도 사건의 진상을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뭔가 심상찮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에는 석가장과 하월보라는 두 가문의 이권 다툼 같아서 청운은 가능하면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제갈신의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사태는 단순한 두 집안 간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하월보 뒤에 관까지 주무르는 거대한 검은 세력이 있다면, 아무리 석가장과 초가보가 힘을 합쳐 대항하더라도 역부족일 것이 불을 보듯 명확했다.

혹시라도 그 검은 세력이 강호의 무력 집단이라면 석가장이 입을 피해는 막대할 것이다.

청운은 그냥 모른 채 눈 감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석 장주의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시비에게 자신이 왔다고 아뢰라고 했다.

잠시 후, 집무실에 들어갔다 나온 시비가 곧바로 청운을 집무실로 안내했다.

청운이 들어서자 석 장주와 석가명이 동시에 일어서며 청운을 반겼다.

석가명이 의자를 빼주며 자리를 권했다.

석 장주가 청운에게 차를 따를 때 청운이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장주님, 제갈신의님으로부터 대충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월보의 진정한 저의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청운의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당황하던 석 장주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능하면 대협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감추려고 했는데 이미 알고 오셨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제가 생각하기에 하월보는 일개 하수인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

“하월보 단독으로 저희 석가장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리가 없습니다. 세상 천지에 아무리 막돼먹은 가문이라도 다른 가문의 사당이 있는 선산을 팔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석 장주는 말을 이어 갔다.

“그들은 그 요구가 뻔히 거절될 걸 알고 생트집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제가 개방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하월보 뒤에 사해표국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해표국이요?”

“네, 사해표국이 하남에서 우리 석가장을 밀어내고 이곳의 상권을 장악하려는 시도 같습니다. 다만, 사해표국 하나만으로는 그리 겁이 나지 않으나 그들 뒤에 어떤 세력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걸 짐작할 수 없는 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

“저희 석가장은 대대로 상인의 가문이었지 무력을 숭상하는 가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우리 가문은 그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에다 적절한 중재를 요청했었지요.”

“네…….”

“저희 가문에서 관에다 워낙 많은 세금을 내다 보니까 지금까지는 저희가 따로 요청을 하지 않아도 관에서 먼저 알아서 일을 해결해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성주를 찾아가 독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두 가문이 알아서 하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습니다. 저들이 하월보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아마 사해표국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뇌물을 관에다 바친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럴 수가 없지요. 관에서도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걸 보면 일이 벌어져도 크게 벌어질 것 같습니다.”

“…….”

“저는 그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야 당사자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 죄 없는 석가장의 식솔들이 난데없는 화를 입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청운이 마시던 차를 마저 마시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처음에는 남의 가문의 일이라 가능하면 저는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섣부른 판단으로는 이 사태는 단순히 두 가문 간의 문제가 아닌 듯싶습니다.”

“…….”

“하월보를 사태의 전면에 내세운 것은 어떤 암중 세력이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가리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고 실상은 하남 상권의 상징인 석가장을 하남에서 멸문시키겠다는 수작 같습니다.”

석 장주는 말이 없었다.

청운은 이내 말을 이어 갔다.

“장주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들이 어떤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일이 완전히 마무리 될 때까지 제가 석가장에 머물겠습니다.”

“허…….”

“장주님, 이럴 때일수록 장주님께서 중심을 잡고 식솔들에게 위엄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아랫사람들이 동요를 하지 않습니다. 너무 심려 마시지요. 제가 힘닿는 데까지 저들의 그릇된 야욕을 막아 보겠습니다.”

청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 장주는 청운의 두 손을 꼭 쥐고는 연신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

청운이 석 장주의 집무실을 나와 전에 자신이 석가장에서 머물 때 거처로 사용했던 연못 근처에 있는 별채로 향했다.

석가명이 그 별채를 깨끗이 치워 놓았다며 청운에게 숙소로 사용하라고 했다.

그때, 별채 앞 연못가에서 왠 소녀가 서성거리는 게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가영이었다.

청운은 예전에 가영과 함께 놀던 추억이 떠올라 입가에 한 가닥 은은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청운이 가까이 다가가자 가영이 쪼르르 앞으로 달려오더니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청운은 가영의 그런 모습에 약간의 애잔함을 느꼈다.

과거의 어린 가영이었으면 다짜고짜 자신의 품으로 뛰어들며 애교를 부렸을 것이다.

삼 년이란 세월이 철없는 아이를 여자로 만들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는 가영의 성장이 대견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그때의 귀여운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청운의 가슴 한쪽이 아슴푸레하게 아려 왔다.

가영이의 양팔에 두꺼운 책들이 한 가득이었다.

청운이 무슨 책이냐고 묻자 가영이는 그동안 자신이 혼자서 공부한 책인데 모르는 것이 많아 오라버니에게 물어보려고 가져 왔다고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거짓말 같았다.

석가장에 훌륭한 글 선생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자신에게 물어보려고 한 아름이나 되는 서책들을 들고 자신을 기다리다니, 아마도 가영이가 청운을 만날 핑계를 스스로 만든 것 같았다.

청운은 가영의 그런 말도 안 되는 꾀를 낸 것이 너무 귀여워 괜한 헛웃음이 나왔다.

청운이 가영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가영이는 책은 내팽개치고 주머니에 넣어온 과자를 탁자 위에 내놓았다.

이것저것 집어서 청운에게 먹어 보라며 내밀었다.

청운이 일부러 가영이를 골려 주기 위해 그래,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빨리 물어보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가영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공부는 내일부터 하겠다고 말했다.

가영이는 청운의 처소에서 거의 두어 시진 이상을 놀다가 내일 또 오겠다고 하고는 돌아갔다.

가영이의 수다를 들어주는 것은 일종의 노동이었다.

가영이가 돌아간 후 청운은 가볍게 목욕을 하고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앞으로 할 일을 생각했다.

석가장에는 인사차 잠시 들렀다가, 바로 하오문 형주 분타의 안가로 가서 상단전을 뚫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청운은 뜻하지 않게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확실하게 석가장의 일을 마무리를 짓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청운은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 * *

얼마나 잤을까.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청운은 벌떡 일어났다.

가영의 목소리였다.

청운이 밖으로 나가자 가영이 청운의 소매를 당기며 식사하러 가자고 했다.

안 그래도 조금 허기가 졌던 청운은 가영이를 따라 석가명의 처소로 갔다.

청운이 들어서자 석가영과 초서서가 탁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청운도 깍듯하게 예를 갖추자 석가명이 서둘러 의자를 빼주며 청운에게 자리를 권했다.

생전 처음 보는 요리들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청운은 자신을 위해 일부러 준비한 밥상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청운은 과식 아닌 과식을 하고 말았다.

술까지 두어 병 마시고 나니 아주 기분 좋은 상태가 되어 처소로 돌아왔다.

청운은 그들의 대접에는 석가장을 책임지고 지켜주겠다는 자신의 약속에 대한 감사 인사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극황지감술을 끌어올려 석가장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석가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뒷산 중턱의 암봉에서 세 사람의 기감이 느껴졌다.

청운은 묘묘보허를 전개해 그들이 위치한 암봉에서 오십여 장 더 위쪽에 있는 노송의 우듬지에 올라서서 그들의 동태를 주시했다.

정확하게 세 명이었다.

밤이 너무 깊어 아무리 안력을 돋우어도 그들의 얼굴이 명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오른쪽에 있는 자는 청색의 장포를 입고 있었고, 왼쪽에 있는 자는 검은 색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가운데 있는 자는 핏빛 전포를 입고 있었다.

청운은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엿듣기 위해 청력을 최대한 키웠다.

“총관, 보주, 대주…….”

“며칠 집적거리다… 칠 일 후…….”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청운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청운은 저들을 당장 제압해 무슨 작당을 꾸미는지 즉시 캐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정작 저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 세력이 꼬리를 감출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청운은 일단은 가만히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청운이 자신들을 주시하는 줄도 모른 채 석가장의 이곳저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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