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35화 (135/184)

135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석가장 그 자체입니다.

한 식경 정도 그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들이 돌연 경신술을 전개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경신술로 보아 무위는 모두 절정을 넘어선 것 같았다.

청운도 곧장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청운은 일어나자마자 석 장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청운의 이른 방문에 석 장주는 적지 않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청운은 어젯밤 뒷산 중턱에서 자신이 목격한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청운의 말을 들은 석 장주는 안색이 돌변했다.

찻잔을 든 손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바로 평온을 되찾은 석 장주가 차분한 표정으로 청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협,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고언을 부탁드립니다.”

위기가 닥칠수록 스스로를 낮추며 평정심을 잃지 않는 석 장주의 태도에서 청운은 중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부유한 가문을 이끌어 가고 있는 대인의 풍모를 절실히 느꼈다.

대부호이면서도 자신의 부를 이용해 타인을 억압하거나 무시하지 않은 그의 겸손한 모습을 보면서 청운은 저런 정도의 인품을 가진 사람이 이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청운은 그를 안심시키듯이 일부러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장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 그들을 막아 보겠습니다. 그들이 두 번 다시 석가장을 넘보지 못하도록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전면에 나설 때까지 그들의 어쭙잖은 도발에 말려들지는 마십시오. 그래야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저들이 어떤 도발을 해오더라도 저를 믿고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으십시오. 섣불리 무사들을 동원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배후를 전부 끌어낼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환 없이 저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습니다. 이참에 확실히 본때를 보여야 저들이 다시는 석가장을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장주님께서 그것만 약속하신다면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석 장주는 몇 차례나 고개를 끄덕이며 청운의 말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청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석장주가 청운에게 약속을 하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협이 시키신 대로 하겠습니다.”

청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석 장주는 월동문 앞까지 따라 나와 청운을 배웅했다.

* * *

이층의 솟을대문이 제 그림자를 바닥에 늘어뜨리기 시작하는 신시申時경, 여섯 필의 말이 이끄는 화려한 마차 한 대가 석가장 정문 앞에 당도했다.

값비싼 흑단목으로 만들어진 마차는 온통 황금색의 비단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더 이상 화려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마차였다.

마차 뒤에는 얼핏 보기에도 명마로 보이는 말을 탄 수십여 명의 무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풍기는 기도가 마치 잘 벼린 칼처럼 예사롭지 않았다.

말에서 내린 무사 둘이 마차의 휘장을 걷어 올리자, 황금색과 청색의 화려한 비단 장포를 입은 두 사람과 죽립을 턱밑까지 눌러 쓴 흑의를 입은 세 사람이 마차에서 내렸다.

황금색의 비단 장포를 입은 자는 사십 대 후반 정도로 사각형의 얼굴에 눈이 호목처럼 부리부리했다.

청색의 비단옷을 입은 자는 오십 대 중반 정도로 뾰족한 하관에 염소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잔꾀가 많아 보이는 실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정문 앞으로 다가오자 석가장 안에서 수십여 명의 무사들이 달려 나왔다.

석가장의 수신대원隨身隊員들이었다.

그들이 석가장으로 들어오려는 하월보의 사람들을 막아섰다.

수신대장 비류검 막소웅이 몇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귀하들은 대체 누구이길래 이렇게 무장한 채 석가장의 영지를 침범하는 것이오. 어디서 온 누구신지 신분을 밝히시오.”

막소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청색의 비단 장포를 입은 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잠시도 쉴 새 없이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는 것이 대단히 잇속에 밝은 자 같았다.

그자가 얼굴에 느글거리는 미소를 지은 채 막소웅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막 대장, 우리가 누구인지 뻔히 알면서 왜 이러시오. 하월보의 보주께서 귀 장주님을 만나러 왔으니 어서 안에다 고해 주시오.”

굳은 표정의 막소웅이 엄중하고도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들이 누구인지는 나도 이미 알고 있소, 하지만 남의 가문을 찾아올 때는 미리 연통을 하고 방문하는 것이 관례가 아니오. 석가장은 당신들이 함부로 이런 무례를 저질러도 되는 그런 가문이 아니오. 예의를 갖추고 절차를 제대로 밟으시오.”

“…….”

“그리고 뒤에 있는 저 무장한 무사들은 뭐요. 남의 집 앞에서 말을 탄 채 위협하는 저 태도는 또 뭡니까. 모두 말에서 내려 석가장 방원 오십 장 밖으로 멀찍이 물러나시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석가장에 대한 도발로 간주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소.”

막소운의 일갈에 호월보 무사들 중 성질 급한 몇몇이 검을 빼 들고 소리를 질렀다.

“너희가 정녕 우리와 한바탕해 보자는 것이냐. 건방지게 누구보고 물러나라 마라 하느냐. 물러나고 말고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다. 알아들었으면 당장 그따위 망발은 취소해라. 즉시…….”

막소웅도 지지 않고 막 검을 뽑으려고 할 때, 청색의 비단 장포를 입은 자가 아까보다 더 능글맞은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막소웅을 제지하며 말했다.

“자, 자. 막 대장 우리는 귀장과 싸우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그러니 그렇게 검을 뽑을 필요가 뭐 있겠소. 우리 보주께서는 귀 장주님께 사업상 방문한 것이오.”

막소웅이 그자의 말을 곧바로 받았다.

“하월보의 무사들을 당장 뒤로 물리시오. 그러면 내가 장주님께 귀하의 방문을 고하겠소.”

막소웅의 말이 끝나자 청색 장포를 입은 자가 몸을 돌려 무사들에게 뒤로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무사들 무리의 맨 앞에 있던 자가 무리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총관님의 명이시다. 모두 말머리를 돌려 뒤로 물러나라.”

하월보 총관이란 자가 다시 몸을 돌려 예의 그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막소웅에게 말했다.

“자, 이제 됐소. 어서 안에다 우리가 왔다고 고해 주시오.”

막소웅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한 무사에게 턱짓을 하자, 그 무사가 다급하게 몸을 돌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로 그때 안에서 묵직하면서도 웅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세 사람이 정문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석 장주와 석가명 그리고 석가장의 총사 진소무였다.

정문에 먼저 도착한 총사 진소무가 앞으로 나서며 깍듯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하월보의 보주님과 총관을 뵙습니다. 두 분께서 무슨 일로 귀장을 방문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차라도 나누면서 말씀을 나누시지요.”

진소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월보 보주 하유선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귀장주와는 이미 몇 차례 얘기한 일이오. 굳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 없이 바로 이 자리에서 말하겠소.”

석 장주와 석가명이 문 앞에 당도하자 하유선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석 장주와 석가명도 답례로 포권을 취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하유선이 단도직입으로 자신의 말을 했다.

“석 장주님. 내 제안에 대해서 결정을 하셨는지요. 저로서는 충분히 시간을 드렸다고 생각하는데 일이 너무 더디게 진척되는 것 같아서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또 찾아왔소이다.”

“…….”

“오늘은 확실히 장주의 확답을 들었으면 하오. 황금 십만 냥이면 그 땅에 대한 대가로는 충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 정도면 시세보다는 훨씬 높은 가격 아니오.”

석 장주가 대단히 침착하고도 차분한 태도로 그의 말을 곧장 받았다.

“보주께서도 아시다시피 그 산은 단순히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우리 가문의 영령英靈들이 잠들어 계신 선산이며 우리 가문의 뿌리가 유래한 곳입니다. 보주께서 그만 미련을 버리시고 다른 땅을 알아보시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 그리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보주 하유선이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말했다.

“석 장주. 나는 그 땅 아니면 다른 것은 필요 없소. 마지막으로 칠 일의 말미를 더 드리겠소.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양보를 했소이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생기는 불상사는 전적으로 귀장이 책임져야 할 것이오. 그때까지 석 장주님이 확답을 줄 것이라 믿고 나는 이만 물러가겠소.”

“…….”

“부디 내 말을 한 귀로 흘려듣지 마시오. 나는 가능하면 서로가 좋은 쪽으로 일이 해결되기를 바라오. 그럼 칠 일 후에 뵙도록 다시 뵙도록 합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하월보주 하유선은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들이 말머리를 돌려 돌아가는 모습을 석가장의 뒷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한 흑의의 사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청운이었다.

청운은 석 장주나 하월보주가 만나는 자리에서 혹시나 무슨 돌발 사태가 벌어질까 싶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상황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청운은 하월보주가 돌아가자마자 뒷산에서 내려와 석 장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석 장주와 석가명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청운이 들어서자 둘 다 벌떡 일어나며 자리를 권했다.

청운은 자리에 앉자마자 석 장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들이 무슨 요구를 했습니까.”

석 장주가 청운의 찻잔에 차를 다르며 말했다.

“저번과 똑같은 애기를 했습니다. 칠 일 안에 선산을 양도할지 말지 가부를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는 무력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일이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저는 강 대협만 믿고 그대로 밀어붙이겠습니다.”

청운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곧장 그의 말을 받았다.

“장주님, 잘 대처 하셨습니다. 선산을 팔라는 것은 빌미일 뿐입니다. 선산을 양보하면 저들은 틀림없이 또 다른 것을 요구해 올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저들은 장주님께서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걸 계속 요구할 것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석가장 그 자체입니다.”

“…….”

“강호의 세력 중에 석가장의 부를 탐하지 않는 곳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은밀히 뭔가 큰일을 도모하려는 자들은 황금이 무엇보다 많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청운은 말을 이어 갔다.

“어차피 한 번은 부닥쳐야 할 문제입니다. 제 생각에 하월보 뒤에는 사해표국이 있고, 사해표국 뒤에는 天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天은 저의 가장 큰 적이기도 합니다.”

“…….”

“장주님, 수백 년 세월 동안 무수한 위기에도 석가장은 건재했습니다. 그 힘의 원천은 바로 민심입니다. 민심만 잃지 않으면 석가장은 앞으로도 계속 그 영화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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