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비명과 헛바람 새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청운은 자신이 무영검을 가지러 안가에 들어가는 것을 적들이 그냥 내버려둘 리도 만무했고, 이런 절호의 기회를 그들이 절대로 놓칠 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다급히 극황지감술을 최대한 운기했다.
대나무 숲속에 삼십여 명 이상의 기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대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서 아홉 명의 기감이 특히 강렬했다.
그중의 한 명의 기감은 너무 강렬해 극황지감술을 운기할 때 마치 바늘로 자신의 살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어디서 들려오는지 방향을 짐작할 수 없는 곳에서 웅후한 목소리가 대나무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대단한 육합전성이었다.
“으―하―하―핫. 드디어 날을 잡았구나. 무위검 강청운! 오늘 이 대나무 숲을 너의 무덤 자리로 만들어 주마. 나는 장담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장담한다. 너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청운은 기감이 가장 강한 그자의 목소리라고 직감했다.
청운은 최고의 방어는 최고의 공격이라는 생각에 선제공격을 감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청운은 묘묘보허를 전개해 한 마리 비조처럼 대나무 위로 솟구쳐 오른 상태에서 허공에 떠 있는 비도를 향해 전륜장을 내질렀다.
청운의 장심에 노란 섬광이 번쩍하는 순간, 맹렬한 장력이 비도를 향해 휘몰아쳤다.
전륜장의 강력한 장력에 맞은 비도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가 싶더니 돌연 다시 솟구쳐 올라 방향을 바꾸었다.
그들은 청운의 전신요혈을 노리며 쇄도해 왔다.
청운은 대나무 우듬지를 계단처럼 밟으며 한 번 더 허공으로 솟구쳤다.
수십여 개의 혈검비도가 아슬아슬하게 청운의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청운은 극황지감술을 최대한으로 운기했다.
방원 삼십여 장의 숲속 이곳저곳에 수십여 명이 매복한 채 비도를 쏘아대고 있었다.
청운은 기감이 느껴지는 숲을 향해 연속적으로 전륜지를 발출했다.
“억!”
“악!”
“허―억.”
시커먼 대나무 숲속에서 비명과 헛바람 새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단말마의 비명과 동시에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비도들이 마치 소나기가 퍼붓듯 청운의 전신을 향해 쏘아져 왔다.
청운은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비도를 쉴 새 없이 전륜장을 발출해 막아냈다.
청운은 휘청휘청하는 대나무 우듬지 위를 마치 비조처럼 날아다니며 계속해서 전륜장과 전륜지를 발출했다.
전륜지가 쏘아진 곳에서는 어김없이 대나무 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단말마의 비명이 대기 속에 솟구쳤다.
청운은 무영검 없이 너무 많은 비도를 상대하느라 군데군데 옷이 찢어지고 여러 곳의 피부가 베어져 핏물이 배어 나왔다.
혈검비도는 전문적으로 호신강기를 파괴하는 묘용까지 있는 것 같았다.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지만 시답잖은 비도에 상처를 입어 청운은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청운은 전륜장과 전륜지가 광세의 절학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혈검비도를 상대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무공 같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전륜장과 전륜지는 위력이 강렬한 만큼 공력의 소모도 너무 극심했다.
다른 효과적인 방법을 궁리했으나 어떤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으니 달리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향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혈검비도를 상대하는 급박함 속에서 혈검비도의 파훼 방법까지 궁리해야 하니 오히려 더 생각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무영검만 손에 있었으면… 무영검만 있었으면…….’
청운은 몇 번이나 속으로 웅얼거렸다.
없는 건 아예 포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전륜장과 전륜지를 전개하다 보니 극심한 내공의 소모로 인해 묘묘보허까지 갈수록 느려지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신법과 보법이 느려진 만큼 청운의 몸에는 혈검비도에 의해 더 많은 상처가 생겨났다.
청운은 아직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내공을 계속 소진하는 방식으로 가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청운이 전륜장과 전륜지를 쉴 새 없이 발출하며 악전고투를 하던 한순간.
비도 하나가 청운의 왼 손목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비도가 스친 팔목에서 한 줄기 혈화가 피어올랐다.
바로 그 순간 청운의 뇌리에 번뜩하고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아! 치우환이 있었지.’
청운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싸움할 때마다 무영검만을 사용하느라 청운은 그동안 치우환을 거의 잊고 있었다.
내력이 충분히 뒷받침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장내려면 치우환을 사용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문제는 얼마 남지 않은 내력으로 치우환으로 ‘멸환겁’을 사용하면 틀림없이 순간적으로 내력이 모두 고갈되어 자신이 큰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그 틈을 노려 다른 적이 공격을 해 온다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당장 치우환을 사용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이 너무 급하니 다음은 다음에 걱정하기로 청운은 작심했다.
청운은 마지막 남은 내공을 모조리 끌어올리며 멸환겁의 구결을 떠올렸다.
[모든 것은 유무상생하니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은 것이오, 존재하지 않는 것도 존재하는 것이니… 천지간에 원래부터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으니…….]
일순간 청운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폭갈이 터져 나왔다.
대나무 숲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멸―화―아―안―거―업!”
청운의 양쪽 손목에서 투명한 자황색의 거대한 환環의 강기가 번갯불처럼 번쩍하며 쏘아져 나왔다.
순식간이었고 찰나였다.
번쩍하며 한 줄기 거대한 원반 같은 빛이 대나무 숲을 관통했다.
기껏 한 줄기 거대한 자황색의 빛이 숲을 통과했을 뿐인데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거대한 자황색의 환이 스친 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순간 대나무 숲 이곳저곳에서 치솟던 단속적인 비명과 혈화도 피어오르자마자 곧바로 사라졌다.
대나무 숲도, 혈검비도도, 숨어서 혈검비도를 날리던 자들도, 그들이 다급하게 내뱉은 단말마의 비명도 거대한 자황색의 환에 의해 모조리 사라져 소멸하고 말았다.
방원 오십여 장 이내에 있던 대나무 숲은 마치 밤하늘을 지나던 거대한 유성이 떨어진 것처럼, 아니 거대한 번갯불에 타 버린 것처럼 온통 폐허가 되었다.
대나무 숲은 대나무와 대나무 숲을 뒤흔들던 바람 소리까지 모두 잃은 채 짙은 어둠과 적막을 단박에 회복했다.
밤은 온전한 어둠을 되찾았고 적막도 완전한 정적을 되찾았다.
청운은 극심하게 진탕된 내기로 인해 한 사발의 핏물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오려는 것을 느꼈다.
청운은 피를 억지로 되삼키며 폐허가 된 대나무 숲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중한 내상을 입은 것을 저들이 몰라야 한다.
그들이 그걸 눈치 채고 다시 공격을 감행해 온다면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이 탈진한 상태에서 강한 위기감을 느끼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백여 장 떨어진 대나무 숲의 끝자락에서 서너 명의 인형이 더 짙은 어둠을 향해 비칠거리며 달아나는 것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 손가락 하나 제대로 까딱거릴 수 없는 청운은 그들이 사라지는 방향의 밤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청운은 두어 사발의 선지피를 제 발밑에 토해 내고는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일각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간신히 다시 정신을 차린 청운은 더듬더듬 품속을 뒤져 제갈신의가 준 약병을 꺼냈다.
두 개의 환을 입에 털어 넣은 청운은 억지로 가부좌를 틀고는 급하게 소주천을 운용했다.
다시 일 다경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땅바닥에서 천천히 일어선 청운이 안가를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안가에 들어서자마자 어린 문도가 청운을 부축해 방으로 데려갔다.
어린 문도는 바람을 타는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벌벌 떨며 다급하게 이부자리를 깔았다.
너무 놀란 어린 문도는 청운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두 시진 정도가 흘렀을 때 양춘호와 어린 문도가 늙수그레한 의원 한 사람과 함께 헐레벌떡 안가로 달려왔다.
그들은 안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청운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들이 안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청운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에 몰입해 있었다.
양춘호 일행이 방문을 여는 순간, 청운도 막 운기조식을 한 차례 끝내고 안정을 찾은 직후였다.
양춘호가 어린 문도를 돌아보며 도대체 안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눈빛으로 물었다.
어린 문도가 머리를 조아리며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형주분타로 달려갈 무렵에는 부문주님이 심하게 부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신형을 잘 가누지 못했습니다. 분타주님, 사실입니다.”
청운이 곧장 어린 분타주의 말을 거들었다.
“기연청 문도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탈진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절대로 그를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
“그 후 제가 내상을 다스리는 약을 복용하고 운기조식을 통해 이 정도로 회복한 것입니다.”
갑자기 뒤바뀐 상황 때문에 뻘쭘해진 의원이 청운의 안색이 영 안 좋아 보인다며 자신이 진맥을 한번 해봐도 되겠느냐며 청운의 의견을 구했다.
청운은 그가 예까지 온 성의도 있고 해서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왼 손목을 의원에게 내밀었다.
눈을 반쯤 감고 일각 정도 청운의 맥을 짚고 난 의원이 말했다.
“소협께서는 워낙에 강골인지라 내기가 조금 진탕된 것 말고는 특별히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내상보다는 오히려 외상이 더 걱정입니다.”
“…….”
“굳이 침을 맞을 필요 없이 며칠 약을 복용하고 편하게 안정만 취하시면 곧 회복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의원은 보자기를 풀어 약병 두 개를 꺼냈다.
푸른색 약병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소협, 이것은 진탕된 내기를 다스리는 환약입니다. 하루 두 번 두 알씩 드십시오.”
다시 의원이 누런색 약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것은 외상에 바르는 금창약입니다. 세상의 온갖 귀한 약제가 다 들어 있습니다. 며칠만 환부에 바르면 금세 상처가 씻은 듯이 아물 것입니다.”
청운은 그 의원이 시골의 이름 없는 의원이지만 영 돌팔이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의원에 말에 수긍하듯이 고개를 몇 차례 끄떡이며 말했다.
“의원님, 늦은 밤에 예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시키시는 대로 약을 잘 먹고 잘 바르겠습니다.”
그러자 양천호가 곧바로 의원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마 진료비를 계산하는 것 같았다.
곧바로 양천호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