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74화 (174/184)

174화 절대자가 권력의 중독에 익숙해지면 세상은 재앙을 맞이한다.

삼황자가 깊은 한숨을 몇 차례 몰아쉬고는 말했다.

“자네의 뜻을 수용하겠네. 나라를 하루라도 빨리 안정시킬 수 있도록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해야겠네. 일단 추국부터 마무리해야겠네. 나와 함께 추국장으로 가세.”

추국장에는 수천이 넘는 죄인들이 오랏줄에 묶여 곧 땅바닥에 떨어질 시든 꽃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제 곧 모든 상황이 정리될 수 있다는 생각에 청운은 추국장으로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에 힘이 실리는 것 같았다.

청운은 황궁의 일을 하루빨리 마무리 짓고 강호로 돌아가고 싶었다.

권력의 무서운 점 중 하나는 그것에 올라타는 순간, 권력자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권력에 중독된 절대자는 자신이 휘두르는 그 권력에 자신이 휘둘리는 줄도 모른 채 권력을 남용해 자신 주변을 온통 피로 물들이기도 한다.

절대자가 그런 권력에 중독돼 익숙해지면 세상은 재앙을 맞이한다.

황제 대신 추국을 주관하는 삼황제의 말과 시선은 판결의 인준과도 같았다.

주변에 있던 대소신려들은 끔찍할 만큼 겸손한 태도로 그를 일거수일투족을 조심스럽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마치 마법사를 보는 아이들의 눈빛 같았다.

삼황자는 자신이 만든 법을 자신이 지배하는 사람 같았다.

그 어떤 배려심과 조심성도 없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더할 수 없는 가혹한 판결을 내렸다.

태사의(太柌椅)에 앉은 삼황자의 오른손이 한 번씩 허공에 올라갔다 내려올 때마다 죄수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대부분이 효수형(梟首刑0으로 분류되었다.

그 중 일부는 능지처참(陵遲處斬)으로 분류되었다.

청운은 갑자기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권력의 정점에서 오랜 동안 고립된 절대자는 평소에 그가 아무리 사려 깊은 분별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결정적 순간에는 자신의 분노를 이기기가 힘들다.

무겁고 복잡한 사안을 처리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이런 일일수록 꼼꼼하고 철저하게 사정과 절차를 따져야 함에도 삼황자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그런 태도에 그렇지 않아도 참담한 기분이었던 청운은 자신이 더욱 비참해지는 것 같았다.

추국장에서 삼황자는 철저하게 그 자신답게 행동했다.

그는 위대하고 무서운 절대자의 역할을 아주 매끄럽게 잘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훌륭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

눈썹을 치켜뜨고 입술을 꽉 깨문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가혹한 판결을 내리는 삼황자의 옆얼굴을 볼 때마다 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청운은 혹여라도 삼황자에 대한 자신의 조언이 그의 분노에 더 불을 지필 것 같아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았다.

절대자의 편견은 언제든지 감당할 수 없는 분노로 작동할 수도 있기에.

그때 계단참 아래에 시비하고 있던 신료(臣僚) 중 누군가가 한 발 앞으로 나오더니 삼황자에게 아뢸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오십 대 중반의 늙수그레한 사람이었다.

한림태사 벽운엽이었다.

그는 연신 삼황자의 판결에 열심히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격하며 호들갑을 떠는 다른 신료들과 달리 줄곧 천근 바위처럼 침묵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아무리 비바람에 시달리더라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들도 있다.

폭우에 깨끗이 씻겨 더 단단해지는 바위도 있고, 세찬 바람에 부러질 듯 흔들리다가도 곧바로 다시 바로 서는 대나무도 있다.

한림태사 벽운엽은 이 시대에 몇 없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추국장에서 삼황자는 자신이 법이고 질서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그는 대소신료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질문만 받기를 원했고 자신이 원하는 대답만을 받기를 원했다.

그런 것이 바로 권력의 불공정한 특권이다.

그는 자신이 판결을 내리는 동안 줄곧 신료들의 말을 막았었다.

삼황자가 한림태사에게 의견을 말해도 된다고 허락하자 그가 삼황자에게 가볍게 예를 취하고는 말했다.

“황자님, 저는 모든 사람의 본성은 무선무악(無善無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심성은 흰 종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겪으며 성장했느냐에 따라 선(善)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악(惡)한 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들 모두가 원래부터 악의 편에 서고 싶어서 선, 자들은 아닐 것입니다.”

“…….”

“다만 저들이 처한 어쩔 수 없는 환경이 저들로 하여금 이번 반란에 가담하도록 만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원래 악(惡)은 선(善)보다 중독성이 훨씬 강한 법입니다. 그 점을 고려해 경중을 가려 선처할 사람은 선처해주시지요. 그러면 나라의 민심이 황자님 편이 될 것입니다.”

한림태사의 말에 삼황자는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무슨 의견을 구하듯 청운을 쳐다봤다.

청운이 가볍게 읍을 하고는 말했다.

“황자님,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한 사람을 내쳐서는 안 되고, 반란에 대한 응징 자체가 더 큰 재앙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한림태사의 충정을 깊이 고려하심이 마땅할 줄 사료됩니다.”

삼황자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추국을 잠시 중단했다.

그리고 청운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청운은 삼황자를 뒤따라가면서 생각했다.

시대마다 시대의 주된 다른 모순이 있고, 이를 둘러싼 여러 가지 힘들은 갖가지 갈등과 알력으로 작용한다.

그 끝에 어떤 균형이 도래할 때 평화가 온 것처럼 세상은 잠시 조용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평화는 아니다.

평화라는 착각에 가까운 것이다.

그 속에는 언제 또 다시 터질지 모르는 폭약이 잔뜩 숨겨져 있기에.

절대자가 되려고 하는 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듯이, 이미 절대자가 된 자도 자신의 절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온통 피로 씻는 것도 불사한다.

삼황자는 이 사태를 빌미로 황궁에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실히 다지고자 하는 것 같았다.

다른 어떤 누구도 자신의 권위에 맞서지 못하도록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수립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삼황자의 집무실에 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시녀가 찻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삼황자와 청운의 찻잔에 차를 한 잔씩 따르고는 곧바로 집무실을 나갔다.

삼황자가 차를 몇 모금 마시고 청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태사령. 자네도 한림태사의 말처럼 내 판결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가? 자네 의견을 기탄없이 말해보시게. 내 경청하겠네.”

삼 황자는 담백하지만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청운의 의견을 구하기 전에 귀비와 병필태감과 관련된 자들의 죄목을 조목조목 신랄하게 꼬집었다.

의심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침착하고 깐깐한 태도로 삼황자는 그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청운에게 하나하나 설명했다.

청운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태산은 단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높은 것이며,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렇게 깊은 것’이라고 진나라 재상 이사(李斯)가 말했습니다. 황자님, 한때의 잘못을 너무 가혹하게 처리하시면 민심이 돌아섭니다.”

“…….”

“이런 일일수록 관대한 아량을 베푸실 필요가 있습니다. 일을 계획하고 주도한 자들만 단죄하시고 어쩔 수 없이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야 천하가 황자님을 따를 것입니다.”

청운이 계속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고 필요 없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컵 하나만 보더라도 위에서, 옆에서 밑에서 보면 그 모양이 다 다르듯 사람도 각자 제각각입니다. 지천에 밟히는 민들레 역시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는 잡초일지 모르지만, 의원에게는 귀중한 약재이고, 옷감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염료이고, 화공에게는 색을 내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청운은 삼황자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저들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따지고 보면 저들 또한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입니다. 오늘 밤도 따뜻한 밥을 아랫목에 묻어놓고 아침에 집을 나선 가장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청운이 잠시 차를 마시며 목을 축인 후 말했다.

“생존형 가담까지 가혹하게 심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모르고 가담한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살기 위해서 그렇게 가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심판해야 할 자들은 그들에게 그런 상황에 가담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한 자들입니다.”

삼황자가 청운의 말을 곧바로 반박했다.

“태사령, 군주의 온건함은 나약함과 같은 것이네. 나약하면 누군가에게 잡아먹힐 뿐이야. 백성들은 어린아이 같아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면 그에 걸맞게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기를 바라네. 과거의 세상이 어떻든지 간에 백성들은 자신들이 앉을 방석이 새로운 것이길 바라네. 그 안에 바늘이 잔뜩 들어 있는 줄도 모르고…….”

“…….”

“백성들은 자신들이 믿는 군주 없이는 그 어떤 용기도 내지 못하는 법이네. 그러니 내가 먼저 용기를 보여주어야 하네. 세상을 바꾸다 만, 군주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죄를 저지른 자는 물론 그들에게 박수를 친 자들까지 모조리 처벌해야 하네. 내가 검을 뽑을 때 내 팔을 잡는 사람은 그 의도에 상관없이 내 적이 될 뿐이네. 그자가 과거에 나를 따랐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눈썹을 치켜뜨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주장하는 삼황자의 표정을 볼 때마다 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청운은 혹여라도 자신의 견해가 삼황자의 심기를 건드릴까 극도로 조심했다.

자칫하면 그의 분노를 자극해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 청운은 삼황자에 대한 자신의 적당한 예의가 적당한 아부로 보이지 않도록 몹시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청운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생각 또한 없었다.

그래서 청운은 확고하지만, 조심스러운 어투로 삼황자의 말을 받았다.

“황자님, 공포는 생각보다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황궁을 피로 씻는 것은 황궁에 무덤과 비석만 많이 만들 뿐입니다. 황궁의 새로운 앞날을 위해선 무덤과 비석 대신 생기와 활기가 가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황궁에 간신과 모리배 대신 충신과 현자들이 가득 찰 것입니다.”

“…….”

“그들이 죽을죄를 지은 것은 틀림없지만 한 번쯤 그들의 사정을 헤아려주는 관대함이 황자님에 대한 백성들의 지지를 더 이끌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처음에는 공포와 무서움이 백성들을 일시적으로 굴복시켜 말을 듣게 할 수는 있으나, 자비와 관대함은 서서히 백성들의 자발적인 충정을 끌어낼 수가 있습니다.”

청운의 설득에도 삼황자는 별로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삼황자는 표현만 바꾼 똑같은 의미의 말을 반복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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