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문무공-22화 (22/149)

제  목: [연재] 독문무공(22)

9. 퇴보(退步)

지성룡은 안수전 정청에서 물러나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검이 아닌 다른 것도 익혀보라는 충고가 생각이 나서 일단 천하제일 신공이 아니라 천수장왕의 천수공을 운기하여 보았다. 그는 자신의 신체가 어떠한 신공을 운기하여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크게 주저하지 않고 천수공을 운기한 것이다,

천수공의 운기가 끝나자 그는 궁금하여 창령검결에 나와 있는 운기법에 의하여 운공을 하였고 마지막으로 승천심공마저 운기를 하였다.

그런 다음 천하제일 신공을 운기하다가 경악을 하고 말았다.

예전의 노도 같은 진기의 흐름이 사라지고 오로지 혈도를 따라 간신히 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천수공이나 다른 신공을 운기할 때도 이러지가 않았는데 갑자기 이러자 당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하던 운기를 갑자기 멈출 수가 없어 간신히 일주천을 하였다. 진기의 양이 절반이 아니라 사분지 일로 줄은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 곳곳을 진기를 움직여 살피다가 얼굴에 이채가 돋았다.

‘설마 네가지 다른 기운으로 서로 분산되어 버린 것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이 천하제일 신공을 운기하기 전에 시험 삼아 세가지 심법을 운기한 사실을 깨닫고 공력이 네 갈래로 나뉘어진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검토를 하였지만 그렇게 밖에는 설명이 되지가 않았다. 그는 충격에 다른 심공을 운기하며 살펴보았다. 모든 심공을 다시 운기하자 몸 안에 네가지의 심공으로 확연히 다른 네 줄기의 진기가 형성되어 융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실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네가지의 심공에 의해 몸안의 진기가 네줄기로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그가 삼화취정의 단계였으니 거의 사백년 공력에 육박하는 진기가 있었는데 네 갈래로 나뉘어 지자 고작 백년의 공력밖에는 되지 않은 것이었다. 이미 그의 혈도와 경락은 사백년의 공력이 흘러 다녔기에 그만큼 확대 되어 있으니 백년 공력도 시냇물처럼 느껴진 것이다. 같은 양의 물이 흘러도 작은 시냇물에서는 만수위요 큰 강으로 나오면 고작 바닥을 적시고 흐르는 것이나 마찬가지 원리였다.

원래 없던 것은 크게 아쉬움을 못느끼지만 있다가 없이 생활하는 것은 정말 불편한 일이었다. 내공도 그러하였다. 한순간에 사분지 일로 줄어 버린다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지성룡은 당분간 내공을 사용하는 검공보다 내공을 쓰지 않는 외공위주로 무공을 익히기로 하였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눈앞이 캄캄해 졌다.

더구나 서로 다른 네 가지 다른 성질의 진기가 몸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 그의 몸 안에 있던 진기는 천하제일신공의 연공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그의 몸 안에 있던 영약의 기운이 진기로 전환되었기에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네 가지 다른 심공을 운기하자 각기 성격에 잘 융화되는 심공을 찾아 나뉘어 버린 것이었다.

만일 그의 본신지기가 애초부터 천하제일신공의 연공으로 형성되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이미 밤이 어두워 졌어도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탐구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일순간에 자신이 약해지자 적응이 되지 않은 지성룡이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는 꿈에도 생각치 않다가 이 문제에 직면하자 그로서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나 당장 이 문제를 알려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당분간 해결책이 발견될 때까지 숨기기로 하였다. 시간을 두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지성룡이 내공의 사분지 일밖에 쓰지 못하게 된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신체 외부에서는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어찌 되었건 그의 몸 안에 사백년 공력이 존재하였기에 공력의 변화를 쉽게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음날부터 외공에 집중하여 연무를 하였다.

아침 일찍 운기조식을 하였다. 그는 천하천하제일신공만 운기하지 못하고 나머지 세가지도 운기하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후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운기가 끝나면 간단한 도인체조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그런 다음 다시 도인체조를 하고 순수한 근력을 사용하여 청명원을 다섯 바퀴 돌았다. 다섯 바퀴를 도는데 한시진 이상 소요되었다.

그런 다음 천수권의 연무에 앞서 태극권과 육합권을 다시 반시진 정도 연무하였다. 천수장왕이 그렇게 천수경에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천수권은 고급권법이라 충분한 준비 운동이 없이는 다소 신체에 무리가 있었기에 그 준비운동으로 육합권과 태극권을 권장하였다.

간단하면서도 동작이 유연한 두가지 권법을 반시진 정도 연무한 후에야 다시 한시진 정도 천수권을 연무하였다.

간단한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세가지 검술을 연무하였다. 예전에는 본신의 진기를 항상 억누르면서 연무를 하였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백년공력으로 최대한 연무를 하여 보았자 고작 이장 정도에 이르는 검기가 생성될 뿐이기에 본신지기를 억제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예전에 비하여 정확한 초식의 전개가 가능하여 위력은 훨씬 줄었지만 검에 관한 이해는 한층 더 높아 질 수 있었다.

다행이라면 사용할 수 있는 내공의 양은 줄었지만 초식의 전개는 무리 없이 가능하였다. 물론 상승의 초식도 예전에는 간단하게 전개가 가능하였지만 지금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야 한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공력이 높을 때는 간단히 전개하여 지나친 초식의 미세한 부분을 확연하게 감지할 수도 있었다. 공력이 높을 때는 그저 대충 전개하여도 위력이 강하기에 자신이 얼마나 잘 시전하였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조금만 잘못시전하여도 그 위력이 확연히 구분되어 보다 정확한 초식 구사를 하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검의 연무를 위해서는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너무 일찍 상승의 무공에 눈을 뜨게 되어 자칫 소홀히 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일찌감치 간파하여 시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성룡은 예전에는 아무리 연무를 하여도 지치지 않았는데 한가지 검법을 반시진 정도 시전하면 지쳤다. 그러나 이상하게 다른 검공을 익히면 다시 온몸에 기운이 팔팔해졌다.

천하제일신공상의 검공을 반시진정도 연무한후에 승천등룡검법과 창령검결상의 검공을 반시진씩 연무하고 마지막으로 천수장왕의 무공을 검으로 시전하는 무공을 연무하였다.

천수장왕의 무공은 근본적으로 검이 필요 없는 무공이지만 지성룡은 자신의 무공이 주로 검공이기에 적수공권의 무공을 사용하는 것은 불편하기에 검을 들고서도 전개가 가능토록 한 것이다.

그렇게 두시진 정도 연무를 마치고 나면 그의 몸은 완전히 파김치가 될 정도로 녹초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그런 변화를 알아채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런 연후에 다시 네 가지 신공을 운기하여 몸을 풀어준 연후에 마지막으로 도인체조를 하였다.

그렇게 보내면 하루 해가 저물고 다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연후에 천수권을 다시 익히고 나면 술시가 되었고 그대가 되면 천하서원으로 갔다. 그는 작은 할아버지인 지상운에게 부탁하여 서고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고 그는 그곳에서 한시진 정도 책을 읽었다.

의술에 관한 서책을 주로 보고 있었지만 가끔은 사서나 불교에 관한 서책도 보고 있었다.

천하문은 한번의 비무가 있은 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평온을 되찾았다.

그 일은 천하문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이런 심리적인 요인때문인지 외부의 방해가 있어도 술술 풀리고 있었다.

청명원의 청운각에 모인 이십명의 기재들도 초기에는 풀이 죽어 있었으나 요즘에는 오히려 투지가 높아졌는지 연무에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이런 기재들과 지성룡은 오일에 한번씩 하루종일 대련을 하였다. 처음에는 대부분이 비무를 기피하였기에 지연룡과 지장룡 만이 상대를 하였으나 지성룡과의 비무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모두가 나서게 되었다.

그들이 보기에 지성룡은 자신들보다 오히려 낮은 공력을 운용하여 초식의 정묘함으로 그들을 대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연룡과 거의 대부분을 대련하였는데 하루종일 지연룡의 힘에 밀려 간신히 버티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지성룡의 공력이 높은데도 오히려 낮은 공력을 사용하자 실전경험을 쌓으려고 그러나 보다 생각하였기에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 지성룡은 항상 일정한 공력을 사용하기에 참으로 대단한 공력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원로들도 감탄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수라고 하여도 공력 조절을 일정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공력이 높은 고수들이 하수와 맞추어서 연습대련 하는 것을 꺼려하였다. 그만큼 공력조절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지연룡과의 몇 번의 대련을 지켜본 지장룡도 나서주었다. 그리하여 오전은 지연룡과 오후는 지장룡과 몇 번 대결을 하였다. 그렇게 몇 번이 지나가자 지성룡에게 여러 사람들이 대련을 신청하였다. 그들로서는 다양한 초식을 구사하는 지성룡과의 대결에서 얻는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천하문에서 무공초식이야 뻔하였지만 지성룡은 다양한 초식을 구사하기에 타 문파의 사람과 대련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성룡이 구사하는 초식은 그들에게 생소하였기에 실전을 하는 효과도 있었고 다양한 공격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워 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당히 몰리던 지성룡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초식의 운용이 놀랍게 향상되어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네 갈래로 갈라진 공력도 시간이 흐르자 더욱 정순하게 변하면서 이할 정도 더 커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완숙한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미 삼화취정에 이르렀던 그의 무공은 절정의 공력으로도 최절정 이상의 위력을 은연중에 발휘하였기에 최절정에 이른 청운각의 기재들과 대등한 대련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일은 내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이상하게 변해 버렸다.’

제갈중명은 자신의 처소에서 나와 한동안 곳곳을 거닐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였다.

‘일황과 태을자와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그 당시의 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천하문과 무림맹과의 일도 단순히 오대문파와의 갈등 이상의 것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자세히 알아야 하는데 맹주는 이일에 대하여 아무런 말이 없다. 결국 고문서를 뒤져 그 당시의 기록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무엇인지 알아야 매듭을 풀 것 아닌가?’

제갈중명으로서는 천하문과의 일이 자신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커지고 예기치 않은 군웅회의 일로 이상한 국면으로 발전하자 자신이 너무 성급하였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왜 천하문과 오대문파가 이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지도록 서로 대립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속가이기에 독문무공이 없고 그래서 그들이 무림맹에 들어오지 못한 것은 이해가 안되었다.

‘이것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단순히 속가와 본가의 대결로 치부할 수 없는 이면의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태을자와 종수사 문제, 풍진이도와 종남, 청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용납하면 안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문제는 간단하였는데 그 이면의 심리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 이면에 숨어있는 이유를 찾아야 했다.

‘설마 천하문에 대한 어떤 열등감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 문제를 이렇게 끌고 올 이유가 없다. 그 열등감은 무엇인가?’

제갈중명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과연 이 대결은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일황이 개입하여 더욱 문제가 골치 아프게 되어 버렸다. 천하문이 조금 숙이고 들어온다면 모든 것은 해결될 텐데.’

오대문파가 숙인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오대문파에 숙이지 않으려는 천하문의 자존심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자 천하문에 대한 증오가 커지고 있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기에 증오를 하고 남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무림맹의 주축인 구파일방 출신의 모든 사람이 가지는 오만이고 독선이었다. 그도 그런 오만과 독선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천하문이 자존심을 죽이고 항복하여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에 점점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하문이 버티는 사실 자체에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일단 이렇게 하여 어느 정도 무공을 가다듬었지만 근본적으로 네 가지로 갈라진 공력 때문에 내공증진도 더디고 무공의 위력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다. 내공이야 내가 노력하여 얻은 것이라기 보다는 타고 날 때부터 있었던 것이기에 아까울 것은 없지만 이대로 계속 내공을 키워나간다면 종내에는 네 가지 기운이 충돌하고 만다. 이들을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결국에는….’

생각을 하다가 지성룡은 끔찍한 상상에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하였다.

‘생각해보면 천하제일신공도 내가 창안한 무공이 아니라 할아버지들이 창안한 뼈대에 세부적으로 보완하였다.

그렇기에 다른 세가지 신공들을 아우르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 네가지를 연결하는 다섯번째 신공을 만들어야 한다.’

지성룡은 네 가지 신공을 아우를 수 있는 신공을 반드시 창안하여야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불행한 결과가 뻔하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네 가지 신공을 아우를 새로운 신공을 골똘하게 생각하였다.

그의 처소에는 지일광을 비롯한 원로들의 배려로 그가 나가지 않는 한 누구도 함부로 출입을 하지 못했기에 마음 놓고 그는 명상에 들었다.

그는 마음속에 네 마리의 용을 다시 불러왔다. 그는 그 네 마리의 용을 한때 심상에서 지워버리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때야 이런 부작용이 있는 줄을 몰랐기에 병존하도록 하였지만 지금은 네 마리의 용을 하나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거의 매일 네 마리의 용을 마음속에 불러 명상에 들었다. 그가 명상을 하면 할수록 네 마리의 용은 더 선명하게 부각되어 있었다. 그 네 마리의 용은 거의 모두가 흰빛이 도는 청룡이었다.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심상에 그렇게 각인된 것이었다.

그 네 마리에 대항할 형상을 마음속에 만들려고 하였지만 그럴수록 더욱 강렬해지고 있었다.

‘불가에서는 반야신공등을 사용하여 성격이 다른 무공을 융화시킨다고 한다. 그 무공의 특징은 내공의 위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조화(調化)시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지성룡은 조화(調化)라는 말을 명상하면서 되뇌었다.

그러다가 조화가 서로 공존하기위해서는 화합하여야 하는 것이 떠올랐다. 결국 조화(調化)는 조화(調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런 명상의 과정에서 한달 이상 고민하면서 얻은 것은 내공을 인위적으로 하나로 합일하는 것이 아닌 조화시킨다는 원리였다. 무리하게 하나로 합일시키려고 하여서는 아무리 하여도 헛수고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찌 보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네 가지를 합치기보다는 공존하도록 조화시키면서 필요할 때 하나의 신공처럼 힘을 보태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신공(新功)을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 신공을 조화신공(調和神功)이라 하자’

조화(調和)라는 것만 생각하였을 뿐인데도 심상 속에 있는 네 마리의 용은 서로 제 각각이던 것이 다소 융화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로 충돌만 하지 않고 필요할 때 하나로 합일 할 수만 있다면 하나로 합일 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이런 방향은 잡았지만 방법은 요원하였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의 이런 명상은 지성룡에게 그가 가진 네 가지 신공을 잘 알게 해주었고 그의 성격을 보다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한데 지성룡에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으니 초식마저도 이제는 서로 엉클어져 가고 있었다. 분명히 원형을 기억하는데도 시전하다보면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이상하게 변질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저 처음에는 자신의 심리가 흐트러져서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런 현상은 심화되고 있었다.

천하제일신공상의 검법을 시전하는데 갑자기 승천등룡검법이 시전되고 천수장왕이 무공이 튀어나오기도 하였고 천수장왕의 무공을 시전하는데 창령검제의 무공이 튀어나오기도 하였다.

이런 혼동이 일어나자 그의 검공은 오히려 답보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런 것이 대련에서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만 연무를 방해받고 있으니 지성룡으로서는 답답한 문제였다.

모든 것이 혼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검공은 일정한 운기법이 있는데 이런 현상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검초가 시전되다가 끝에 이상하게 변질되어 버리니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시작은 천하제일신공의 초식으로 하였는데 끝은 창령검제의 초식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노래로 말한다면 일종의 메들리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하니 검공도 이제는 혼동으로 인하여 방해를 받자 아예 포기하고 두시진 동안 자신이 무슨 초식을 전개하는 지도 모르고 휘두르고 있었다. 간간이 자신이 무슨 초식을 전개하는지 느끼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잠시였고 검이 흘러가는 대로 휘두르고 베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어떤 운기법인 줄도 모르고 그 초식에 맞추어 운기를 하다가 깜짝깜짝 놀라고 있었다.

지연룡은 오늘따라 지성룡과의 대련이 힘이 들었다. 저번에도 느낀 것이었지만 자신이 열번정도의 대련으로 동생이 구사하는 검초는 어느 정도 익숙하여 졌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 검초가 이것인가 싶으면 끝날 때는 이상하게 다른 초식이 되어 바려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막기에 급급하여 대련시간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동생의 초식에 익숙하여 졌다고 느끼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예전의 검초의 변화를 예측하고 움직이는데 갑자기 변하니 그것이 더욱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예전의 검초가 말끔하고 변화가 경쾌하다면 오늘은 왠지 검이 흐느적거리면서도 빈틈에 대한 공격이 많고 집요하였다.

이렇게 되자 이제는 예측하는 것을 포기하고 순간순간의 변화에만 집중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심력이 소모되는 일이라서 한시진을 상대하자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어 대련을 중지하고 말았다.

“그만,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다. 나는 그만 하고 장룡이 하고 대련을 하여라.”

지성룡도 자신의 검초가 이상하게 변하여 형이 상대하는 것에 곤란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장룡에게 대련을 부탁하였다.

지장룡도 마찬가지 였다. 지성룡의 검초에 익숙하여 졌기에 오히려 더 곤란한 지경에 빠져 아슬아슬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검초가 한번 전개되면 그저 막으면 그만이었는데 이번에는 막으면 순식간에 변하여 짓쳐 들고 다시 막으면 또다시 변화를 하였다. 지성룡도 자신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검이 가는대로 맡기도 있었고 그렇게 하자 오히려 몸이 홀가분하고 힘도 훨씬 적게 들었다, 예전에는 대련 중에 검초가 막히면 끝까지 전개하였기에 상당히 힘이 들었지만 지금은 막히면 무리하게 뚫고 가지 않고 그저 편하게 흐름에 맡기니 힘이 들지 않은 것이었다.

지장룡은 지연룡보다 약했기에 일각이 지나자 숨이 막혀서 도저히 대적을 못하고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그만.”

그 소리에 지성룡도 멈추고 지장룡을 보았다. 저번에만 하여도 한시진을 버티던 지장룡이 온몸에 땀을 흠뻑 적시고 헐떡이고 있었다. 고작 일각만에 그렇게 변하자 지성룡이 오히려 이상하였다. 예전보다 검의 부딪침도 거의 없었는데 그렇게 변하자 이상한 일이었다.

지성룡의 대련은 보통 오원주들도 나와서 보고 있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하여 다가왔다.

이미 지연룡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기에 그들은 이런 현상을 이해하고 있었다.

흔히 검을 휘두르다 보면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짧지만 동작을 정지한 다음에 새로운 방향으로 휘둘러야 하는데 검초가 계속하여 변하자 그 검초에 맞추어서 변하다 보니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공력이 소모된 것이다. 오히려 검을 부딪치면 그 부딪침으로 인한 정지와 반동이 일어나는데 막으면 중간에서 변해 버리니 부딪치지 않은 검은 가려던 방향으로 가려하고 변한 검을 막기위해서는 검의 방향을 전환해야 하니 평상시의 몇 배의 힘이 소모된 것이다. 결국 예전에서 휘두르는 힘만을 쓰면 되었지만 정지하는 힘까지 사용해야 했고 거기에 방향 변화가 심하기에 짧은 시간동안 그런 일을 훨씬 더 많이 반복해야 했기에 보이지는 않지만 운동량이 몇 배 증가한 것이었다. 그러니 온몸에 땀이 흠뻑 젖어버린 것이다.

“잠시 성룡이는 여기에 와보아라.”

지일광을 비롯한 오원주는 연무장 한쪽에 앉아 있다가 지성룡을 불렀다.

“너의 검이 다소 변한 것 같구나! 어떻게 된 것이냐?”

지일광의 질문에 지성룡은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그 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사실대로 말하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갑자기 검초에 혼동이 와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아예 검초에 연연하지 않고 검이 가는 방향으로 맡기고 있습니다. 조금 지나면 나아질 것이오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성룡의 말에 오원주는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나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지성룡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문제는 지성룡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알았다. 그만 가서 계속 대련을 하여라.”

지금까지 오원주는 지성룡의 무공에 대하여는 간섭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간섭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저 현상만을 들은 것이다. 그들은 지성룡의 상태를 몰랐다. 그들이 생각하는 관점에서 상대를 빨리 지치게 만드는 것은 무공의 진보였기에 아무 말없이 지성룡을 다시 연무하도록 한 것이다.

지성룡은 다른 문도와 대련을 하였다. 그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반각을 못 견디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들은 흐느적거리는 듯이 집요하게 빈틈만을 노리고 들어오는 지성룡의 검을 막다보니 모두 지치고 말았다. 지성룡의 검은 일정한 법칙이 없이 그저 빈틈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상하여 한번씩 다 대련하였지만 그것도 두시진을 넘기지 못하였다.

자신들도 왜이러는지 이해가 안되어 대련을 마치고는 자연스럽게 모여 다른 사람과 지성룡의 대련을 지켜보며 그 이유를 알고자 하였다.

그들은 어렴풋이나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자신이 싸울 때는 못느꼈지만 지켜보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지성룡의 검은 대련 상대자가 무의식적으로 막으려고 하면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어 빈틈을 노리고 그 빈틈을 보강하면 새로운 빈틈을 끊임없이 찾아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지성룡의 움직임에 맞추다 보니 예전에 비하여 같은 시간에 서너배의 움직임을 하게되고 그것이 누적되다보니 지치고 마는 것이었다. 더구나 검이 부딪치지 않은 상태에서 방향전환을 하다보니 더욱 곤란해 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성룡의 검이 변하였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 변화가 한단계 진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그날의 대련은 아침나절에 끝이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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