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연재] 독문무공(83)
제갈중명은 자신이 총사로 있던 무림맹에 다시 와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총사에서 물러난 이후에 처음으로 와보는 무림맹은 그에게는 못다한 야망이 숨쉬는 곳이었다.
한때 짧은 기간이지만 호령을 하였던 기억이 그를 아예 무림맹에 발걸음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림맹에 와서 예전에 같이 일했던 자들을 만나거나 하면 괜한 오해를 살수도 있고 자신이 무림맹에서 쫓겨난 듯한 시선을 받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었다.
“어서오십시오.”
인자기가 그가 머문 곳으로 오자 제갈중명은 먼저 아는 체를 하였다.
“아니 용소협도 같이 왔구만. 자 들어갑시다.”
제갈중명은 그들을 반갑게 맞아 안으로 들어갔다.
제갈중명도 그들을 만나서 향후의 일을 논의하려던 참이라 반가웠다.
“일이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바람에 주군과 이야기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논의 하는 것이 적절치 않아 장례가 끝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보려던 참이었습니다.”
인자기는 제갈중명이 궁금해 하는 것을 먼저 말하였다.
“그렇겠습니다. 병석에는 누워계셨지만 너무나 돌연한 하직이라 당황스럽소이다. 인학사의 생각은 어떻소?”
제갈중명은 내심으로 인자기의 말이 기대되어 물어 보았다.
지금이 무림맹주가 되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있어서는 천하문에서 모든 열쇠를 쥐고 있었고 그들의 협조를 얻는 자가 무림맹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거의 은거에 들어 있던 지성룡이 장례식에서 전면에 나서는 것을 보아도 천하문에서 이후의 일에 대하여 관여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천하문에서 소외되어 보이는 지성룡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의 일이 단지 때가 아니기에 참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십시오?”
제갈중명이 다소 모호한 말로 탐색하려 하자 오히려 되물었다.
인자기가 제갈중명의 생각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대답을 하는 것은 확실한 입장을 표하라는 의사였다.
“좋소이다. 인학사는 주공에게 향후의 일에 대하여 어떻게 주청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오?”
제갈중명은 인자기가 말하는 바가 자신의 입에서 지성룡을 주공이라고 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따라주었다.
이 문제는 제갈중명에게 상당히 미묘한 문제였다.
일개 세가의 가주를 하고 있는 자신이 지성룡의 동업자가 아닌 수하가 되는 것에 대하여 상당히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였고 그 것을 인자기는 항상 문제를 삼았다.
지성룡은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고 있는데 인자기가 악역을 자처하여 이것을 지난 오년간 문제삼고 있었다.
인자기의 생각은 천하제패라는 것은 동업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제갈중명은 그 것에 대하여 거부를 하였다. 그렇게 삼년이 지나자 주공이라는 말은 이제 어느 정도 나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자기는 제갈중명의 입장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인자기가 이것을 재차 확인하자 제갈중명은 인자기가 자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에 따라준 것이다.
“내 생각은 천하문이 무림맹에서 한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공도 이점은 알고 있을 것이고 천하문의 수뇌에 있는 분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인자기의 말에 제갈중명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인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략적으로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에도 천하문에서 잡고 있다면 천하 곳곳에서 반대에 직면하고 천하문이나 주군에게도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 맡겨야 하는데 그 맡기는 곳이 어디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자기가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끊자 제갈중명은 그 대상이 어디냐고 묻고 싶은 것을 참느라고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용소명은 인자기와 제갈중명의 심기대결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가 있어 조용히 두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한치 양보도 없는 머리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고를 하여 주군께서 판단을 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제갈중명은 인자기가 끝내 자기를 천거한다는 말을 하지 않자 내심 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었고, 인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제갈중명이 스스로 무림맹주가 되겠다고는 함부로 말을 할 수는 없고 누군가가 천거하여 적당하다고 설득을 해주어야 했다. 그 일은 오직 인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용소명은 이미 인자기와 나눈 말이 있기에 제갈중명에게 인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것을 지금 제갈중명은 맞추어야 했다.
“제 생각에는 지금의 상황에서 주공이 무림맹주는 될 수는 없고 주공을 대신할 사람이 맹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소명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들이 서로 자존심 때문에 말을 못하기에 보다못해 정리를 하기로한 것이다.
용소명이 나서자 둘은 아무런 말이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따라서 제 생각에는 주군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 맹주와 총사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소명의 말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렇게 본다면 제갈가주님은 예전에 무리맹의 총사를 하셨기에 맹주의 자리에 나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한 인총관님은 이십여년간 무리맹에 계셨고 한때 부총사까지 오르신 분이니 마찬가지로 총사가 되어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두 분이 이번에 주공을 대신하여 나서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용소명이 그렇게 정리를 하자 그들은 서로 미소를 짓고 말았다.
무림맹에서 나온 후에 인자기와 제갈중명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 그것은 서로간에 누가 위인가 하는 것이었다. 제갈중명은 인자기를 한단계 아래로 보고 있었고 인자기는 이제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용소명은 그런 갈등을 알기에 여기서 정리를 한 것이다. 이들이 이 자리에서 심기 싸움을 하다가 의가 상하면 나중의 일이 틀어질 것이기에 화해를 하도록 만든 것이다.
만일 이들이 싸운다면 대계가 흔들리는 것이다.
“두분이 협력을 하여야 합니다.”
용소명이 정리를 하자 둘은 멋적은 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린 용소명 앞에서 자신들의 치부를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님, 향후의 일을 어떻게 했으면 하십니까?”
지일광은 지청현을 보자 의중을 물었다.
“먼저 자네 의중을 먼저 말해보게. 이제 나도 늙어서 기력이 예전만 못하네.”
지청현은 지일광의 의중을 먼저 물었다.
“제 생각에는 이제 한발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물러서는 것도 방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문제 같구나.”
지일광의 말에 지청현도 동의를 하였다.
결국 그렇게 생각하면 누구에게 맹주와 총사를 넘기느냐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성룡이의 의중도 들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지일광이 지성룡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었다.
“음, 그 아이가 지금에 있어서는 맹주의 후계자이니 의견을 들어는 보아야 하겠지.”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예전의 제갈중명과 인자기를 불러들이는 것도 방법일 수가 있습니다. 그 애들이 성룡이 근처에서 여태 맴도는 것을 보건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지일광도 현실적으로 가장 무난한 방법이었기에 그렇게 말하였다.
타문파의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나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겠지. 우선은 장례를 아무런 변고 없이 치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례 후에 이 문제는 신중하게 논의를 해보도록 하자.”
지청현은 그렇게 말하고 언급을 회피하였다.
사마와 영소혜가 빈소에 들어오자 지성룡은 오년만에 그들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는 그들에게 개인적인 친분을 말할 자리는 아니었다.
영소혜는 예전에 소녀 같은 모습 대신에 이제는 성숙한 여자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사마도 이제는 나이는 이기지 못하는지 추스레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어서오십시오.”
“자네도 상심이 클 것이네.”
“이렇게 먼길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마와 짤막하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사마와 영소혜를 보자 지성룡은 무안하였다. 영소혜도 지성룡과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아래로 눈을 내리깔아 호감을 표시하였다.
“제가 조금 있다가 찾아 뵐 것이오니 먼저 가 계십시오.”
“아닐세. 내가 자네의 내자를 보아도 되겠는가?”
지성룡은 갑자기 사마가 황영지를 만나다고 하자 내심으로 찔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영소혜의 혼사를 말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셔도 문제는 없지만 굳이 어르신께서 만날 이유는…..”
지성룡은 이유를 알기에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그렇게 알게.”
사마의 말에 지성룡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소녀가 만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소혜는 지성룡이 곤란해하자 그렇게 말하여 곤혹스러움을 덜어주었다.
그렇게 말하고 그들은 다른 사람이 대기하자 물러갔다.
황영지는 아이를 돌보느라 바깥의 출입을 자제하고 있었다.
영소혜가 찾아왔다는 말에 황영지는 내심 껄끄러웠다. 이미 영소혜가 도착하였다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의 정리를 못하고 있었다.
영소혜의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외면하였지만 이제는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영지는 찾아온 손님이기에 맞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영소혜는 다소곳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녀는 그동안 많이 변한 듯 하였다.
영소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가 안고 있는 아이와 방안에서 아장거리며 걷다가 기어 다니고 있는 아이에게로 옮겨갔다.
“아드님들이 건강한 것 같네요.”
영소혜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이에 대하여 말을 하였다.
“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황영지는 먼저 자리에 앉았고 영소혜도 앞에 앉았다.
“오년이 지났네요.”
“그래요. 제가 강남에 갔을 때 뵈었으니 그 정도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영소헤는 막상 찾아는 왔지만 말을 하려니 할 말이 없었다.
“제가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였고 용기가 필요하였습니다.”
영소혜의 표정은 말을 하는 순간에도 곤혹스러운 빛이 역력하였다.
“상공과의 관계를 암중에서 오년동안 이어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뭔가 해결을 해야 하겠지요.”
남녀관계에서 수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과년한 처자가 오년이상 수하를 자처하며 기다린 것은 이미 그 본심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일에 대하여 지성룡이 마무리를 하지 않고 있지만 이제는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전에는 사파의 여인이라고 기피를 하였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사파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사파라는 굴레를 벗고 당당하게 무림맹의 일원이 된 것이다.
“영웅성의 소성주이나 이제는 명실상부한 주인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황영지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아무런 말이 없이 조용히 듣고 있었다. 황영지도 영소혜의 처지가 이해는 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질투심이 일고 있었다.
“상공의 집안은 다처를 별로 흉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이미 위의 두 형님들은 삼처, 이처를 두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나 여자인 저는 그것이 좋지 않아요. 아마 그 것은 어떤 여자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황영지는 자신의 본심을 말하고 있었다. 영소혜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미 영소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증거였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상공이 영웅성에 가지는 못한다는 것이고 영소저도 영웅성을 떠날 수는 없다는 것이예요. 그것에 대하여 나에게 약조를 해주어야 해요.”
황영지의 말은 절대 지성룡을 영웅성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하지 말라는 다짐이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또한 어디까지나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상공의 수하인 영소저이지 애첩으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점을 항상 유념해 주세요.”
황영지의 말은 다소 가혹한 말이었다.
그 것은 황영지와 영소혜와의 관계가 처첩의 관계가 아니라 주모와 시녀의 관계라는 것이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는 상공과 의논하여 처리를 할 것이니 추후에 통보가 가면 따라주세요.”
영소혜는 황영지의 표정이 싸늘하기에 묵묵히 듣기만하였다.
“사마가 왔는데 나를 봤으면 한다고?”
지청현은 사마가 만나기를 청한다는 지한성의 물음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알았다. 내가 찾아가서 만나는 것이 무림의 선배에 대한 도리이다. 가자.”
지청현은 사마를 오라고 하여 만나는 것은 선배에 대한 도리가 아니기에 직접 찾아나섰다.
지청현보다 선배인 사람은 고작 삼마정도였다. 그중에 하나가 사마인 것이다.
지청현은 사마가 만나기를 원하자 지성룡의 문제인 것을 알았지만 사실 그문제는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문제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만나기를 원한다면 만나는 것이 도리였다.
“안에 계시는가?”
“예. 그러하옵니다.”
지청현이 오기 전에 이미 지한성이 전갈을 넣었기에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사마도 나오고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사마는 지청현을 보자 반갑게 맞이 하였다.
“이렇게 뵙는 것은 처음이오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한때 가는 길이 달라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마는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지청현을 이끌었다.
“어르신을 뵈옵니다.”
영소혜도 옆에서 인사를 하였다.
지청현은 영소혜가 인사를 하자 유심히 보았다. 지성룡이 혹하여 일을 저질렀다는 말으 들었기에 궁금하던 참이었고 결국 영소혜는 지씨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음, 말로 들었지만 직접보니 실로 소문이 헛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도다.”
지청현이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뵙기를 청한 것은 청이 있어서 입니다.”
사마가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시작하였다.
사마도 자신의 수명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영소혜의 문제에 대하여 정리를 하여야 눈을 감을 것 같아 마음이 급하였다.
“저에게 청이라니 그런 가당치 않은 말씀은 마십시오.”
“불민하지만 여식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성혼을 못하고 있습니다. 식구로 받아 주십시오.”
지청현은 사마가 이미 명을 다하여 잦아들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사마가 이렇게 사정을 하는 것이 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청현도 이제는 기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내 그간의 사정은 알고 있습니다. 허나 이일은 어른들이 관여하지 못할 일이 되었습니다. 내가 손부에게 말을 넣어 보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선배님의 뜻은 제가 손부에게 전해보겠소이다.”
지청현이 말하는 바는 황영지와 지성룡이 결정할 문제이니 쉽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저 그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전달한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가부장적사회에서 어른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떠냐고 말한다는 것이 명령이나 다름이 없기에 그 말은 승낙이나 다름이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이제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간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아니오이다. 다 내 업보인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사마의 모습을 보면서 천하를 호령하던 늙은 영웅의 모습에 비감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소혜가 찻물을 들고 들어왔다.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거라. 이제 집안 어른으로 모셔야 한다.”
사마의 말은 혼사를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지청현도 사마의 심정을 알기에 그저 가만히 하는대로 두었다.
영소혜는 이미 예상한 일이기에 삼배를 하였다.
“승천검황의 장례식에 조문사절은 보냈지만 앞으로의 일이 걱정입니다.”
율사청은 기력이 쇠잔한 천지쌍마의 모습을 보면서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승천검황이 자리에 누웠다는 소리를 듣자 그들도 점점 기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율사청은 둘에게 보고 겸 문안을 들어와서 말을 건네었다.
오년전의 분란은 승천검황이 맹주가 되면서 모든 것이 수면아래로 들어가고 말았다. 자칫 잘못하여 승천검황의 심기를 거스리면 멸문을 각오해야 했기에 그저 조용히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승천검황이 사라진 마당에 이러한 안전장치는 이제 사라졌다고 보아야 했다.
“무엇이 문제이냐? 승천검황이 사라지면 되는 것이 아니냐?”
천마는 승천검황이 사라진 마당에 무슨 걱정이냐는 말로 되물었다.
율사청은 최근에 갑자기 천지쌍마가 총기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승천검황은 우리를 억제하기도 하였지만 사황성과 천하문을 억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승천검황도 사라진 마당에 우리를 가만히 둘리가 없지 않습니까?”
율사청의 말에야 그들은 그 사실을 깨달은 듯 하였다.
“음, 참룡검객의 동태는 어떠하느냐?”
“지금 장례식의 정식 상주가 되어 빈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년간 조용히 있다가 이렇게 나서는 것을 보아도 이후의 무림은 그가 주도한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음, 결국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구나. 우리는 이제 잘 모르겠다. 너에게 문주 자리도 물려주었으니 네가 잘 판단하여 결정을 하여라.”
천마는 모든 것을 율사청에게 미루고 말았다.
율사청은 돌아와서도 내내 이후의 일이 걱정이 되었다.
“들어오게.”
무영루주 밀기신작 조충이 자리에 앉았다.
“알아보라는 것은 알아보았는가?”
“예, 알아는 보았습니다만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율사청은 천하문과 천지문의 밀착에 대하여 조사를 지시하였다.
“영소혜가 천하문 뿐만이 아니라 지성룡과도 밀착이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지성룡의 수하들에게 더 편의를 봐주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일례로 비슷한 시점에 천하상단의 당주가 영웅성을 찾았을 때는 외당당주만을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하나 지성룡의 수하인 용소명이라는 자가 왔을 때는 오히려 독대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영소헤가 천하문보다 지성룡을 더 중히 여긴다는 증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무영루주의 보고에 율사청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음, 그러면 지성룡과 영소혜가 어떤 밀약을 나누었다는 것인데 그 밀약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느냐?”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소문만 무성할 뿐입니다. 영웅성이 정파로 돌아선 것은 영소혜가 참룡검객에게 시집가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고, 참룡검객이 강남에 왔을 때 그들을 도와준 공을 생각하여 영소헤가 수청을 들었다는 말도 돌고 있지만 모두 근거가 없는 세간의 헛소문 수준이라 유의할 것은 못됩니다. 문제는 이번에 무리맹에 조문을 가면서 사마도 같이 갔는데 기력이 쇠잔한 사마가 굳이 가야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들과 지성룡의 동태에 대하여 더 자세히 관찰하고 파악하여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