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황금충의 말로
해구에서 남서쪽으로 사십여 리 떨어진 해안에 온통 흑암(黑岩)으로만 이루어진 거
대한 바위가 있다. 아니, 바위라기 보다는 절벽과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 용이 하늘
로 오르려다 굳어버린 듯한 절묘한 형상의 바위가 돌출되어 있었다.
이른바 용등대(龍登台)라 불리는 곳이었다.
절벽 위에 한 인영이 나타났다.
동방사성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용등대를 바라보았다. 절벽 끄트머리에서도 유난
히 밖으로 돌출된 곳으로 정말 용이 하늘로 오르려다 멈춘 듯한 형상의 바위가 보였
다.
동방사성의 얼굴에는 탐욕이 번들거렸다.
'흐흐, 이제 귀두암(鬼頭岩)을 찾으면 된다.'
그는 신형을 날려 절벽 끝으로 날아갔다. 용모양의 바위에 내려선 그는 면밀히 바위
를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눈을 부릅떴다.
'저것이다!'
용머리 부분에서 약간 아래쪽에 눈길이 못 박혔다. 그곳에 혹처럼 돌출한 바위가 있
었는데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바위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정작 귀두암 앞에 서게 되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이걸 부수라고?'
귀두암은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바위 전체가 그의 키를 넘길 정도로 컸던 것이다.
분명 탁노야는 귀두암을 부숴 보라고 말했었다.
그는 잠시 귀두암을 살피다가 내공을 끌어올려 쌍장으로 귀두암의 한 부분을 쳤다.
펑!
폭음과 함께 두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진동했다. 그러나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위가 너무 크다.'
동방사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그는 좋은 생각이 난 듯 허리춤에서 무엇인가
를 풀어냈다. 그것은 늘 허리에 두르고 다니는 것으로 그의 독문병기인 쌍철편(雙鐵
鞭)이었다.
내공을 주입하자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쌍철편이 뻣뻣이 일어섰다. 그것은 쇠심줄
에 철편(鐵片)을 박은 것으로 웬만한 바위쯤은 간단히 부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병
기였다.
바로북 99 101
윙!
그는 쌍철편을 휘둘렀다.
카캉!
불똥이 일어나며 귀두암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미친 듯
이 쌍철편을 휘둘렀다.
돌가루와 먼지가 자욱이 일어나며 수십 차례 쌍철편을 맞은 귀두암은 금이 가고 부
스러지며 그 크기가 점차 작아졌다.
"후후! 이제 조금만 더 치면......."
비록 힘겨운 일이었으나 황금에 눈이 먼 그는 더욱 힘을 가했다.
우르르르!
갑자기 귀두암이 기우뚱하더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오! 마침내......!"
동방사성은 기쁨에 겨워 탄성을 발했다. 귀두암이 떨어져 나간 곳에는 구멍이 뻥 뚫
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희열에 찬 표정으로 구멍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환한 금빛이 비쳤다. 놀랍게도 구멍 안에는 금괴(金塊)가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햇빛에 반사된 금빛이 그의 얼굴을 휘황하게 비치고 있었
다.
입구로부터 계단이 아래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동굴의 바닥에서 천장까지 일정한
크기의 금괴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언뜻 계산이 되지 않
을 정도였다.
"오오......!"
동방사성은 그저 탄성만 연발할 뿐이었다.
그는 굴러 떨어지듯 계단을 내려가 금괴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 이게 전부 금이란 말인가?"
그는 의심스러운 듯 금괴를 이빨로 깨물어 보았다. 별로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금괴
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생겼다. 그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금이다! 금!"
그는 실성한 듯 부르짖었다.
"으핫핫핫......! 이제 나는 거부가 되었다. 으하하......!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
동방사성은 금괴를 두 팔 가득 끌어안은 채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핫핫핫! 이제부터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음험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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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동방사성."
"......!"
동방사성은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홱 돌아섰다. 동굴 입구로
부터 일곱 개의 인영이 걸어내려 오는 것이 보였다.
선두에는 한 쌍의 남녀가 나란히 내려오면서 그를 향해 요악(妖惡)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금월과 요미!
바로 그들이었다. 두 사람의 뒤에는 인종이 모두 틀린 오 인의 인물들이 따르고 있
었다.
"너... 너희들은?"
뒷걸음질 치던 동방사성은 불길한 예감에 전신의 털이 곤두서고 있었다.
금월의 눈에 한기가 어렸다.
"검은 바람이라고 들어보았느냐? 나는 검은 바람의 두령 금월(金月)이다."
'헉!'
동방사성은 내심 비명을 질렀다. 금월은 광소를 터뜨렸다.
"핫핫핫! 동방사성, 수고했다. 이 많은 금을 그냥 얻게 해주다니 말이다."
동방사성의 얼굴에 분노가 일어났다. 그는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며 차갑게 외쳤
다.
"검은 바람... 명성은 들었다. 하지만 이 황금은 내 것이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
그가 황금더미를 가로막자 금월은 벽안에 괴이한 광채를 번뜩였다.
"흐흐, 나 금월이 일단 마음먹으면 모든 것이 내 것이다. 못 믿겠다면 곧 알게 해
주마."
츳!
예리한 음향과 함께 그의 소매 속에서 종잇장같이 얇은 면도(緬刀)가 나타났다. 면
도로부터 찌르는 듯 예리한 살기가 흘렀다.
"......!"
동방사성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무공을 믿었
다. 그는 쌍철편을 움켜쥔 채 외쳤다.
"덤벼라, 금월. 단숨에 도륙을 내주마."
쐐... 액!
동방사성은 선공(先攻)을 했다. 쌍철편이 허공을 메우자 금월의 면도가 쾌속무비하
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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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 액......!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도기가 뻗었다. 초승달과 같은 뿌연 도형(刀形)이 그려졌다
"헉! 천월도법!"
동방사성은 경악성을 부르짖었다.
"흐흐! 그래도 보는 눈은 있구나."
금월은 도를 아래로 기울이며 음산하게 웃었다.
동방사성은 초조해졌다. 불길한 예감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정말 재수 없구나. 하필 이런 고수를 만나다니...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죽는 한이 있어도 황금은 내 것이다!'
"타!"
쐐애액!
쌍철편이 파공성을 내며 금월을 향해 날아갔다. 금월은 유연하게 옆으로 미끄러지며
그의 공격을 피했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쌍철편은 금괴더미에 떨어졌다. 금괴가 박살나며 금조각이 사
방으로 눈부신 광채를 뿌리며 날아갔다. 그 광경은 실로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한편, 요미는 요염한 눈을 반짝이며 동방사성의 무공을 살피고 있었다.
'뜻밖인데? 저 자의 무공은 소문보다 강하구나. 저 채찍에 맞으면 견딜 재주가 없을
거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다섯 명의 괴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턱짓을 하자 괴인들은 일
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
금월의 입에서 짧은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는 발 끝으로 금괴 하나를 걷어찼다. 금
괴는 탄환처럼 동방사성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어딜!"
윙!
쌍철편이 금괴를 내리쳤다. 금괴는 두부처럼 깨끗이 절단나 버렸다.
"흘흘흘!"
금월의 입에서 괴소가 흘러나왔다. 그의 몸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동시에 수중의 면
도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쓰쓰쓰쓰! 츄리릿!
금월의 공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으며 달빛이 파도에 반사되듯 현란한 느낌
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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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동방사성은 급급히 뒤로 물러났다. 가슴이 화끈하는가 싶더니 선혈이 튀었다. 눈 깜
짝할 사이에 가슴 부위에 십여 군데가 넘는 도상(刀傷)을 입은 것이다.
요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녀는 꽃잎처럼 붉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훅! 하고 불어
냈다. 그녀의 동그란 입술 사이로 푸른 빛이 쏘아져 나갔다.
"윽!"
동방사성은 어깨가 뜨끔하는 것을 느꼈다. 그의 어깨에 쇠털처럼 가느다란 침(針)이
박힌 것이다.
"네... 네년이!"
그가 분노성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뒈져라!"
괴성과 함께 오 인의 괴인이 일제히 그를 공격했다.
그들의 공격은 무지막지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구환도(九環刀), 쌍절곤(雙折
棍), 귀두봉(鬼頭棒), 거치도(巨齒刀), 선인장(仙人掌) 등으로 하나 같이 잔혹하기
로 이름난 외문병기들이었다.
"비... 비겁한!"
동방사성은 일시에 협공을 받자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쌍철편을 전력을 다해 휘둘렀
으나 역부족이었다.
"으윽!"
그는 거치도에 어깨의 살점이 한 주먹 가량 떨어져 나가자 참혹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상반신은 금세 시뻘겋게 물들고 말았다.
"큿큿! 쓰러져라!
이번에는 선인장이 그의 허리춤을 스치고 지나갔다.
"큭!"
허리에서 다시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바닥에 후두둑! 핏방울이 떨어졌다.
동방사성은 고통을 참으며 급급히 뒤로 후퇴했다. 그러나 바로 뒤에 금월이 음산한
눈빛을 번뜩이며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만 잊어버리고 있었다.
슈슉!
금월의 도가 사정없이 그의 등줄기를 갈랐다.
"으악!"
동방사성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의 등줄기가 무참하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 뼈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의 중상을 입은 것이다. 그는 쌍철편을 떨구며 술에 취한 듯이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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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적 놈들이......."
그의 입에서는 불분명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금월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동방사성, 이제 그만 누워라."
그는 수중의 면도를 빙글 돌렸다.
"으악!"
동방사성의 양다리가 절단났다. 그는 금괴 위로 둔중하게 쓰러졌다. 절단된 허벅지
로부터 분수처럼 선혈이 뿜어져 나와 금괴를 적셨다.
"끄으......."
동방사성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는 이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금괴 위에
엎어진 채 눈을 부릅떴다.
'황금을... 눈 앞에 두고서.......'
그는 힘겹게 손을 뻗었다.
'내 꿈이 모두 이루어지려는 순간이었는데.......'
그는 힘겹게 금괴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금괴의 감촉을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금괴는 자신을 비웃는 듯 여전히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금괴의 표면에 참혹하게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문득 탁일비의 마지막 말
이 떠올랐다.
-아까운 청춘을 이제는 쓰지도 못하는 황금에 집착해 흘려버리고 말았지.
동방사성은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과연... 과연 그런 것인가?'
그의 뇌리에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은 동방옥의 얼굴이었다. 일찍부터 고
아가 되어 서로를 의지해왔던 남매다. 그녀가 원망스러운 듯 고개를 젓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는 손에 들고 있는 금괴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돌덩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친 듯이 동방옥이 보고 싶어졌다.
"소... 소옥."
그것으로 끝이었다.
동방사성은 금괴에 머리를 떨구었다. 그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인
생을 오직 황금에 걸었던 그답게 마지막을 황금더미 위에서 장식하게 된 것이다.
금월은 침을 퉤, 뱉으며 중얼거렸다.
"해남에서 손꼽히는 고수라던 동방사성도 별 것 아니군."
그는 고개 돌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금괴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일진광소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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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하하핫......! 이제 나는 천하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곁으로 요미가 다가왔다. 그녀는 금괴를 한 아름 안은 채 황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뻐해라, 요미. 이제 나는 제왕이 되고, 너는 내가 만든 제국의 여주인이 되는 것
이다. 으하하하핫......!"
요미는 금괴를 허공으로 던지며 깔깔거렸다.
"이게 전부 우리 건가요? 이 정도 황금이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겠지요?"
"핫핫! 물론이지. 황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지 않느냐? 원하는 게 뭐냐? 무엇이
든 들어주마, 요미."
요미는 갑자기 팔짝 뛰어 금월의 목에 매달렸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에요. 그걸 몰랐나요?"
금월은 가느다란 그녀의 허리를 껴안으며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핫! 이제야 예쁜 소리가 나오는구나. 좋아, 좋아!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
다. 황금을 얻었고 요미의 마음을 얻었으니 부러울 게 아무 것도 없다. 하하하핫...
...!"
황금의 손 탁일비의 장원은 불에 타 절반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대청(大廳)에는 불길이 닿지 않아 멀쩡했다. 석양이 비쳐드는 대청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장천린을 중심으로 그의 일행이 모두 모인 것이다.
장천린은 백연연을 안고 있었으며 반송을 비롯하여 부금진, 단위제, 동방옥, 그리고
운표와 백살대(百殺隊)의 모습도 보였다.
운표는 밀림으로 진입하던 중 장천린 일행을 만났다. 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염려했던 사람들이 모두 무사했기 때문이었다.
운표는 장천린에게 공손히 말했다.
"용대인, 이제 좀 쉬시지요."
"괜찮네."
운표는 짐을 던 듯 활짝 웃었다.
"용대인께서 무사하신 걸 알면 대주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 동안 대주의
근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표, 자네도 그 동안 수고했네."
"황송한 말씀입니다. 당연한 일인걸요."
이때 부금진에게 치료받던 단위제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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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운표. 그 동안 묘수는 생각해 두었나?"
운표는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앞으로는 바둑에 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렵니다."
"흐흐, 하수임을 인정한단 말인가?"
운표는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인정합니다. 하나, 바둑만 잘 두고 자신의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것보다야
제가 낫지 않습니까?"
"뭣이?"
단위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흐읏, 화내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상처가 터질지 모르니 말입니다요."
"운표, 지금 날 놀리는 건가?"
"놀리긴요? 제가 어찌 고명하신 단도독님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요?"
단위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운표는 더욱 짓궂은 표정으로 괴소를 흘렸다.
"헷헷! 정 화내고 싶으시면 수하들을 시켜 아예 상처를 철사줄로 꿰매 드리죠. 그럼
터질 염려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단위제는 내심 이를 갈았다.
'요, 요놈이 날 갖고 노는구나.'
그러나 단위제는 역시 단위제였다.
"헛헛, 자네 그 동안 많이 발전했군."
짐짓 너그럽게 말했으나 운표는 거기에 한 술 더 떴다.
"모든 게 단도독님 덕분이죠."
'끙!'
단위제는 이를 악물었다.
'두고 보자, 상처만 나으면 곤죽을 내주마.'
장천린은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러다 따가운 시
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동방옥이었다. 그녀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짙은 그
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동방사성을 걱정하고 있군.'
그는 연민지정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소옥, 부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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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 밤 내 옷을 손질해 주겠느냐?"
동방옥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안색은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하하, 너도 옷을 갈아입어야 되겠다. 남장도 아름답지만 너 같은 미녀는 더 예쁜
옷을 입어야 하지 않겠느냐?"
동방옥은 양뺨에 홍조를 띠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
꼈다.
이때 반송이 그녀를 불렀다.
"동방소저, 좀 도와주시겠소?"
"네! 반대협님."
동방옥은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 광경에 백연연이 입술을 가리며 나직이 웃었다.
"후훗! 용대인께선 여인의 마음을 풀어주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으시군요?"
장천린은 여전히 그의 품에 기대있는 그녀를 내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몸은 좀 어떻소?"
"많이 좋아졌어요."
"하하, 이제 다시는 억지 쓰지 마시오."
백연연은 얼굴에 엷은 홍조를 띠며 눈을 흘겼다.
"못써요, 용대인님. 놀리시면."
장천린은 고개를 들었다. 대청을 향해 다가오는 사나이가 있었다.
마도 원계묵이었다. 그의 품에는 한 구의 시신이 안겨져 있었다. 축 늘어져 있는 노
인의 시신을 보는 순간 장천린은 그가 탁일비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원계묵은 미처 장천린을 보지 못한 듯 땅만 바라보며 걸어왔다.
"원제!"
장천린은 격동을 느끼며 그를 불렀다. 원계묵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번쩍 고
개를 들었다. 그의 안색이 변하고 있었다.
"형님!"
원계묵은 탁일비의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빠른 걸음으로 대청으로 올라왔다.
"소진, 백소저를 맡아다오."
장천린은 부금진에게 백연연을 넘긴 후 원계묵을 향해 다가갔다. 이윽고 두 사람은
마주 섰다.
"원제."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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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나이는 서로를 굳게 포옹했다.
그들에게 말은 필요없었다. 굳센 포옹 속에서 사나이의 뜨거운 정이 전류처럼 오고
갔다.
평소 과묵할 뿐더러 좀처럼 감정 표현을 하지 않던 원계묵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에는 뿌연 안개가 어렸다. 장천린도 굳게 포옹한 채 감회에 어려 한동안 말을 잊
고 있었다.
단위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쯥, 부러운 사이야. 친형제라도 저 정도로 서로를 아끼진 못할 거야.'
그는 은근히 질투심을 느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고개를 돌려 운표를 향해
야릇한 음성으로 말했다.
"운표, 우리도 의형제를 맺는 게 어떨까?"
운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부자지간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이없다는 듯한 반문에 단위제의 얼굴은 그만 금빛이 되고 말았다. 운표는 그의 기
분은 아랑곳없이 비아냥거렸다.
"원, 영감님도 주책이시지, 나이를 생각해야죠."
단위제는 그만 개망신을 당한 셈이었다. 그는 이를 갈며 내뱉었다.
"운표, 내 맹세하겠다. 상처만 나으면 최소한 삼 년 동안 네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
게 해 주겠다!"
실로 무시무시한 협박(?)이었다. 그러나 운표는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며 웃었다
"헛헛! 좋습니다. 설사 백 년이라도 말입니다."
단위제와 운표.
그들은 정말로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견원지간이었다.
밀림 속.
살아 움직이고 있는 자가 있었다.
석정일랑(石井一郞)이었다.
그는 넋나간 듯 망연한 표정이었다. 얼마 전 그는 홀로 해남도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오는 도중 사백여 명의 무사들이 선박과 함께 불덩이가 되어 날아가는 것
을 본 바 있었다.
해남도에 도착한 직후 그는 계속 청산의명에게 비밀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전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여기서도 모두... 죽었단 말인가?'
110 바로북 99
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어려 있었다.
'설마 청산의명, 당신까지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서쪽 하늘을 응시했다. 핏빛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섬뜩할 정도로
붉은 빛이었다.
그는 고개 숙여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 신호용 호각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다시 석양을 응시했다. 홀연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것도 무수히 많은
얼굴들이다. 갑자기 그는 무엇에 쫓기듯이 호각을 입에 대고 힘껏 불었다.
삐이익! 삐이익!
날카로운 호각소리는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석정일랑은 눈을 감고 계속 호각을 불었
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오백 인의 무사들이 모두 죽었단 말인가? 수족과도 같던 그대들이 말인가? 청산의
명, 당신은 지금 어디 있는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오?'
삐이익......!
석정일랑은 계속 호각을 불었다. 공허하고 구슬픈 느낌을 주는 호각소리가 길게 이
어져 갔다. 마치 망자(亡者)의 넋을 달래는 진혼곡인 양.
얼마 후 그는 눈을 떴다.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마을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구나.'
호각은 특수하게 제작된 것으로 적어도 수십 리 밖까지 신호가 전달되는 것이었다.
만일 청산의명 일행이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다면 벌써 화답을 보내왔어야 했다. 대
답이 없다는 것은 생존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마
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어찌 짐작인들 했겠는가?
그가 돌아갈 마을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잿더미가 된 채 철저히 유린되었다
는 것을 그가 어찌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는가?
돌아서던 석정일랑의 몸이 굳어졌다.
석양을 등진 채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석양 만큼이나 진한 피를 뒤집어 쓴 채 장도를 지팡이 삼아 비틀비틀 걸어오고 있는
인물! 그는 한눈에 알아 보았다.
"상유(常有)!"
팍!
흙덩이가 튀었다. 그는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갔다. 석양을 등진 채 다가오던 인
물은 바로 세천상유였던 것이다.
111 바로북 99
그는 급히 세천상유를 부축했다. 그가 다가간 순간 세천상유는 무너지듯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세천상유의 외눈은 희미했다. 초점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도저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었다.
"석정일랑님......."
"어찌된 일이냐?"
"모두... 죽었습니다. 의명님도... 모두 다. 죽음의 숲에서......."
"상유!"
"하지만... 저만은 죽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생존자로... 알려야 하기에......."
세천상유는 간신히 그 말을 마치고 혼절해 버렸다.
"......!"
석정일랑은 망연자실했다. 한동안 그는 움직일 줄 몰랐다. 그는 세천상유를 끌어안
고 멍하니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양은 점점 더 붉어지더니 종래에는 검게 타버렸다. 건너편 산도, 밀림도 검게 타
고 있었다.
만경창파(萬頃蒼波).
남해바다 위를 순풍을 타고 미끄러지는 한 척의 범선이 있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
이 한가롭게 떠 있고 물결은 잔잔하기만 했다.
장천린은 뒷짐을 진 채 뱃머리에 우뚝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원계묵이 서 있었다.
그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해남도의 일은 파란만장했다."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지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구룡상선에 동승했던 인부들의 죽음이다."
원계묵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위로하듯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습니까? 황금을 얻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
다."
장천린은 탁일비가 말한 백사안(白沙岸)에서 막대한 양의 황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 백사안에 도착했을 때는 넓은 모래밭의 어느 곳에 황금이 묻혀 있을지 몰라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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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했었다. 그러나 곧 해결방법을 찾아냈다.
백살대를 동원하여 긴 죽창으로 모래밭을 찔러댔다.
결국 반나절 만에 황금이 묻혀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온 금괴는
가히 엄청난 양이었다. 황금을 모두 캐낸 일행은 곧바로 해구에서 범선 한 척을 산
후 출항하게 된 것이었다.
장천린은 원계묵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원제의 공이 컸네."
원계묵은 겸손하게 말했다.
"그저 탁노야를 우연히 만난 것이 행운이었을 따름입니다."
그는 입맛을 다셨다.
"다만 탁노야가 황금을 묻어 둔 나머지 세 곳을 다 말하지 못하고 죽은 일이 아쉽습
니다."
장천린은 빙긋이 웃었다.
"상관없네. 백사안에서 캐낸 황금만 해도 상상 이상이니까."
원계묵은 궁금한 듯 물었다.
"어느 정도입니까?"
장천린은 피식 웃었다.
"나도 쉽게 계산하지 못할 양이네. 아마도 황실의 재산 전체를 합쳐도 그와 비슷하
지 않을까 싶네."
원계묵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렇다면 탁노야의 황금을 다 얻었더라면 중원제일의 거부가 될
수 있었겠군요."
장천린은 싱긋 웃을 뿐이었다. 사실 그는 탁일비가 소유한 황금의 오분지일 만을 얻
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만일 전부 다 얻었다면 사실 그가 할 일이 사라지
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중원제일의 거상이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탁일비의 황금
을 모두 얻었다면 그 목표를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었다.
원계묵은 물론 그의 심중을 알 리가 없었다.
"형님, 동방사성은 황금을 얻었을까요?"
장천린은 담담히 웃었다.
"하하, 그가 황금을 얻었다면 머지않아 중원에 거부 한 명이 출현하겠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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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계묵은 대소를 터뜨렸다.
그는 동방사성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동방옥이 장천린을 따르는 것을
알게된 후로는 어느 정도 증오심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래서 웃을 수 있게 된 것이
다.
그는 웃음을 그친 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해남도에서처럼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말입니다."
장천린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사람, 그러다간 나중에 신방까지 따라 오겠군?"
"핫핫핫, 설마요?"
두 사람은 마주 보고 호탕하게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웃어보는 것이었
다.
잠시 후 장천린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일로 느낀 점이 많네. 앞으로는 틈나는 대로 무공수련을 할 생각이네."
원계묵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형님께서 무공만 익히신다면 장차 상계는 물론이려니와 무림계
에서도 거물이 되실 수 있습니다."
"하하하! 이 사람, 농담하지 말게."
원계묵은 정색을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농담이 아니오. 나 원계묵은 평생 누구에게도 감탄해 본 적이 없소이다. 형님이라
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소이다.'
원계묵은 장천린을 바라보다 움찔했다. 그가 눈길을 다른 곳에 돌리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갑판 끄트머리에 한 여인이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서있는 것이 보였다.
동방옥이었다.
원계묵은 얼른 포권했다.
"형님,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장천린은 눈을 찡긋했다.
"흠, 무슨 일이 있어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서?"
"하하! 하지만 때는 가려야죠."
원계묵은 동방옥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히쭉 웃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선실 쪽으
로 사라졌다.
장천린은 돌아서며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소옥, 그렇게 혼자 서 있으니 무척 외로워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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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옥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발갛게 홍조가 피어 올랐다.
"말씀은 끝나셨나요?"
그녀는 품 안에 비파를 안고 있었다. 타는 듯이 붉은 홍상(紅裳)을 차려입은 자태가
마치 한 송이의 홍매화(紅梅花)와도 같아 보였다. 특이한 것은 그녀에게서 요염함
과 정숙함이 동시에 풍긴다는 것이었다.
장천린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흐음! 그렇게 차려 입으니 정말 미인이군."
동방옥은 더욱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유난히 흰 목덜미가 한층 요염
해 보였다.
잠시 후 그녀는 낮게 말했다.
"고마와요, 용대인."
"무엇을 말이냐?"
"오라버니를 놓아주신 것 말이에요."
물론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토록 염려하고 있는 오라버니 동방사성이 황금더미 위
에서 비참한 종말을 고했다는 것을.
장천린은 부드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라버니가 보고 싶지 않느냐?"
"조금은... 하지만 그 분은 저와는 이상이 달랐어요. 어쨌든 소원대로 황금을 얻었
으니 마음의 부담이 없어졌어요. 모두가 용대인 덕분이에요."
장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꽤 오랫동안 그의 곁에는 여인이라곤 없었다. 취옥교와 헤어진 후로는 의식적으로
여인을 멀리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남도에서 만난 동방옥은 묘하게 그의 마음을 잡
아끌고 있었다.
장천린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
동방옥은 그의 시선을 느끼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앞에만 서면 자
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아니, 한 마리의 새가 된 듯, 자꾸만 가슴이 콩닥거
렸다.
지난날에 비해 그녀는 마음이 몹시 약해져 있었다. 이제는 장천린을 떠나서는 하루
도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소옥."
장천린의 음성에 그녀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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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처음 만났던 날 했던 말은 아직 유효한 것이냐?"
장천린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깨달은 순간 동방옥은 그만 홍당무가 되고 말
았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치솟았다. 그녀는 용기를 내
어 대답했다.
"네......."
"하하하핫......!"
장천린은 대소를 터뜨렸다.
동방옥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더할 수
없이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해남도를 떠나는 날 범선에 오르면서 그녀는 수없이 자신에게 다짐하곤 했었다.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용어른의 곁을 떠나지 않을 테야, 영원히!'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장천린을 훔쳐보았다. 장천린은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 창공에서 불을 뿜듯 이글거리는 햇살이 그의 전신을 비추고 있었다.
'아아! 너무도 아름다운 분.......'
동방옥은 바라볼수록 눈이 부심을 느꼈다. 이때 장천린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소옥, 비파 한 곡조 타 주겠느냐?"
"네."
동방옥은 다소곳이 대답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비파의 현을 고른 후 그녀는 손가락
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띵... 띠딩... 띵.
곱디 고운 비파의 선율이 남해바다의 파도를 타고 울려 퍼졌다.
은은히 울리는 비파음에는 사랑과 존경, 그리고 헌신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비파와 미녀, 쪽빛 바다와 가없이 높은 하늘이 하나로 어우러져 한없이 평화로운 느
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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