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장 초연무공(初演武功) (31/87)

제7장 초연무공(初演武功) 

천기병점(天器兵店). 

개봉부에 있는 병기점으로 개봉에서는 물론 하남성(河南省)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이름난 만큼 규모도 커서 병기점은 삼층의 전각으로 되어 있었으며 일하는 사람만도 

백여 명이 넘었다. 

포군락(葡君樂)은 천기병점의 책임자였다. 

그는 이곳에서 수십 년을 종사했으므로 손님의 얼굴만 보아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맞힐 수가 있었다. 

그는 오후 무렵 찾아온 손님에게 유난히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그 자는 흑삼을 입 

은 청년이었는데 전신에서 고독한 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기이한 것은 두 손을 

흰 천으로 감싸고 있다는 점이었다. 

흑삼청년은 병기점에 들어온 후 오랫동안 병기를 고르고 있었다. 

바로 사문도였다. 

"......." 

그는 천기병점의 병기고를 다 뒤졌으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듯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포군락은 계산대에 앉아 줄곧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사문도에게 다가 

가 공손히 말했다. 

"손님, 어떤 병기를 원하십니까?" 

사문도는 힐끗 그를 쳐다본 후 분명하게 말했다. 

"중병기(重兵器) 입니다. 무게는 오십 근 이상이어야 하고, 크기는 작을수록 좋습니 

다." 

포군락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내심 중얼거렸다. 

'까다롭군.'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따라와 보시지요, 손님." 

그는 사문도를 이층으로 안내했다. 아래층에는 일반적인 병기들을 진열하고 팔고 있 

었지만 이층에는 좀더 비싼 병기류가 전시되어 있었다. 

포군락은 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검을 원하십니까?" 

바로북 99 103

사문도는 담담히 말했다. 

"무엇이든 관계없습니다." 

포군락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관계가 없다니? 그럼 어떤 병장기든 다 다룰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묻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손님이 왕이니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되는 것이 

다. 그것이 포군락의 장사철칙이었다. 

이층에 오르자 과연 아래층과는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고급스런 병장기들이 즐비하 

게 진열되어 있었다. 종류도 다양하여 없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포군락은 전시대를 둘러보다가 한쪽 검가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특이하게도 검집이 

백색가죽으로 된 장검이었다. 

"이 검은 저희 병점에서는 가장 무거운 검입니다. 무게는 오십사 근, 길이는 넉자 

다섯 치입니다. 값은 은자 삼백 냥입니다." 

"......." 

사문도는 말없이 검을 받더니 뽑아보았다. 그러나 반쯤 뽑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무게는 알맞으나 너무 약하오. 다른 것은 없습니까?" 

포군락은 눈썹을 찡그렸다. 

'아니, 이 검이 약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웬만한 사람은 제대로 들지도 못할 정도로 무거운 검이었다. 그런데 

도 약하다면 대체 어떤 검을 원한단 말인가? 그는 은근히 반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한 자루의 언월도를 가져왔다. 

"이 칼은 무게가 육십 근, 길이가 여섯 자이며 값은 삼백오십냥입니다." 

이번에도 사문도는 고개를 저었다. 

"길이가 너무 깁니다. 다섯 자 안쪽이어야 합니다." 

이쯤 되면 포군락도 오기가 치밀었다. 그는 계속 다른 병기들을 집어들며 설명했다. 

그러나 사문도는 모두 고개를 저었다. 무게가 맞으면 길이가, 길이가 맞으면 무게가 

덜 나간다든가, 아니면 너무 얇다, 너무 두껍다, 도무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마침내 포군락은 짜증이 났다. 그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손님은 너무 까다로우셔서 본점에서는 원하시는 물건을 찾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사문도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이곳에서는 주문하는 병기도 만들어 줍니까?" 

포군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104 바로북 99

"물론입니다." 

사문도는 잠시 망설이더니 등에 메고있던 짚단으로 감싼 물건을 꺼내 풀었다. 

잠시 후 나온 것은 일월쌍극(日月雙戟)이었다. 그것은 길이가 넉자 가량 되었다. 그 

런데 겉모양만 일월쌍극을 닮았을 뿐이지 조금도 날이 서있지 않았을 뿐더러 형상조 

차 불확실했다. 일견하기에 상당히 어설픈 병기였다. 

포군락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병기와 함께 살아왔다. 그래서 사문도가 내놓은 기형병기를 본 

순간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좀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허락을 받은 그는 일월쌍극을 들어 올렸다. 순간 손끝에 감촉 되는 것은 뼈를 찌르 

는 듯한 한기였다. 

"음!" 

그는 신음을 흘렸다.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일월쌍극은 보통 철(鐵)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보기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무게가 나갔다. 대충 손대중만으 

로도 족히 팔십여 근은 나갈 것 같았다. 

일월쌍극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보던 포군악의 눈에 점차 경이의 빛이 떠올랐다. 

잠시 후 그는 쌍극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것은 대설산(大雪山:히말라야) 남쪽의 곽이객(廓爾喀:네팔) 지방에서만 나는 용 

천은사(龍天銀砂)로 만든 것이군요!" 

사문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안목이 대단하시군요." 

"정말... 놀랍습니다. 과거 소량의 용천은사를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큰 용천은사 

덩어리는 본 적이 없습니다." 

포군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용천은사는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쇠이기는 하나 그 성질이 까다로워 잘 합쳐지 

지 않는 것입니다. 모양을 보니 녹여서 부은 것이 아니라 달구어 단련시킨 것 같습 

니다." 

"그렇습니다." 

"놀랍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모양을 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사문도는 담담히 물었다. 

"날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모양은 관계없습니다만." 

포군악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105 바로북 99

"불가능하군요. 저희 집에는 용천은사를 달굴 c만한 화로가 없을 뿐더러 기술도 미 

흡합니다." 

사문도는 실망한 듯 가늘게 신음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사문도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포군악은 일월쌍극을 살펴보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궁금하군요. 대체 이 정도나마 모양을 낸 병기점은 어디입니까?" 

사문도는 담담히 말했다. 

"호북(湖北)의 대철조사(大鐵造社)입니다." 

"아!" 

포군락은 탄성을 발했다. 

"역시 그렇군요. 대철조사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손님, 웬만하시면 날을 세우는 것은 포기하십시오. 자칫 실수하여 쇠를 다루면 아 

예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만일 정 날을 세우고 싶다면 한 곳이 있기는 합니다만." 

사문도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산동(山東)의 황가철장(黃家鐵莊)에 가보십시오." 

사문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곳도 작년에 가보았습니다. 하지만 안 된다고 하더군요." 

포군악은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가철장이 경영하는 철공소는 모두 네 곳입니다. 그 중에 철계(鐵溪)에 있는 철공 

소로 가서 천일학(千一鶴)이란 노인을 찾아보십시오." 

"천일학?" 

"그 노인의 병기를 제련하는 기술은 천하에서 으뜸입니다. 연세가 구순이 넘었지요. 

그 분이라면 충분히 용천은사를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워낙 나이가 많으 

니... 이미 돌아가셨다면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사문도는 두 손을 모아 공수했다. 

"감사합니다." 

그는 돌아서려다 한쪽 구석의 병기가에 비스듬히 놓여있는 삼첨극(三尖戟)을 발견했 

다. 

106 바로북 99

포군락은 눈치를 채고 빠르게 설명했다. 

"그 삼첨극은 이곳에서는 가장 단단한 것입니다. 바로 황가철장의 천일학 노인의 제 

자들이 만든 것이지요." 

사문도의 눈에 관심의 빛이 떠올랐다. 

"무게는 칠십이 근에 길이는 넉자 반입니다. 값은 은자 팔백 냥입지요." 

사문도는 움찔하는 표정이었다. 병기 하나의 값으로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포 

군락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황가철장의 무기는 본래 비쌉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사문도는 말없이 삼첨극을 집어들었다. 손에 묵직한 감각이 전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과연 좋은 병기로군.' 

사문도는 삼첨극을 들고 돌아서며 말했다. 

"좋습니다. 이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포군락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정말 다행한 일이군요. 하하! 소인은 공자님께서 빈손으로 나가실까봐 사실 불안했 

었습니다. 뭐, 장사를 못해서가 아니라 천기병점의 명예가 달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문도는 전표(錢表)를 끊어 삼첨극의 값을 지불했다. 

포장을 해준다는 것을 마다하고 그는 한 장의 천을 갖다달라고 했다. 그 천으로 삼 

첨극을 둘둘 만 후 어깨에 둘러메었다. 잠시 후 더 이상 볼일이 없는 듯 천기병점을 

빠져나왔다. 

어느덧 신시(申時)가 되어 있었다. 

그 시간이면 개봉부는 한참 붐빌 시각이었다. 사문도는 번잡한 거리를 가로질러 걸 

어갔다. 

두두두두두! 

문득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 

사문도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의 뒤쪽으로 당황한 행인들이 좌우로 갈라지고 있었 

다. 어떤 자는 황급히 물러서다 넘어지기도 했고, 어떤 자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거리는 그 바람에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사문도는 눈살을 찌푸렸으나 조용히 옆으로 몸을 비켰다. 저만치 앞쪽에서 수십 기 

의 기마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두두두두두! 

기마대는 폭풍과 같은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상의 인물들은 머리에 황색 두건

107 바로북 99

을 묶고 있었으며, 말허리에는 한결같이 긴 창이나 방패, 또는 도끼 따위를 매달고 

있었다. 

마상인들의 눈빛은 모두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안색은 무섭게 굳어져 있 

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사문도의 앞을 지나쳐 성밖을 향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자욱한 황사가 눈을 뜨지 못하게 할 정도로 휘날렸다. 

사문도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팔십 일 명이다. 모두가 일류고수들이다. 저들의 형형한 눈빛과 안정된 기도로 미 

뤄볼 때 실전경험이 풍부한 자들인 것 같다. 대체 어디에 소속된 자들일까?' 

사문도는 의혹을 느꼈으나 이내 가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금쯤 가면 그 소녀가 있겠지.' 

그의 눈빛이 부드럽게 변했다. 그 순간에는 전신에 배어있던 고독한 기운이 스르르 

녹아버린 듯했다. 

사문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직도 날 기억할까? 일 년 전 이곳 개봉을 지날 때 우연히 만났을 뿐이지만 잊을 

수가 없었지. 그녀는 마치 들꽃과도 같았지. 이름이 아마 해당이었지?' 

장천린은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산로를 걷는 그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금월사의 참변이 계속 머 

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정말 잔인한 놈들이다. 스님들을 모두 죽이다니.......' 

얼마쯤 갔을까?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앞에 한 구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사냥꾼인 듯 시체의 허리에는 꿩 대여섯 마 

리가 매달려 있었고, 어깨는 활과 전통이 매달려 있었다. 

사냥꾼 차림의 사나이는 칼에 맞은 듯 가슴이 쩍 갈라진 참혹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 

다. 

'아니, 이 사람은?' 

정천린은 눈썹을 불끈 치켜올렸다. 사냥꾼은 그가 알고 있는 자였다. 

장일수(張日需)이란 이름을 가진 사냥꾼이었다. 그는 금월산에서 사냥으로 밥을 먹 

는 자로, 며칠 전 장천린이 금월사를 찾기 위해 길을 물은 적이 있었다. 

장천린은 분노가 치솟았다. 

'대체 누가 이 선량한 사나이를 죽였단 말인가?' 

그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이것도 조화성의 짓이란 말인가?' 

108 바로북 99

장천린은 눈을 가늘게 한 채 장일수의 시신을 내려보았다. 그는 쉽게 흥분하는 사람 

이 아니었다. 금월사의 참변으로 일시적으로 감정이 흩어지긴 했으나 다시 예의 날 

카로운 분석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떠올렸다. 

조화성의 인물들은 분명 금월사로 몰려들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상관수아를 노리고 

있었다. 

장천린은 의혹을 금치 못했다. 그는 한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었다. 

'상관홍과 제갈사가 모종의 밀약을 맺었다면? 조화성에서는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 

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설명된다.' 

장천린은 한숨을 쉬었다. 어쨌거나 죄없는 사냥꾼 장일수의 시신을 산기슭에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데나 묻을 수는 없지. 집을 알고 있으니 시신이나마 데려가야겠구나.' 

그는 시체를 안아 들며 고개를 흔들었다. 

'집에는 부인과 아이들이 있는데 얼마나 상심할까.' 

장천린은 사냥군 장일수의 집으로 향했다. 길을 물을 때 그의 집을 들른 적이 있었 

던 것이다. 

반식경 후에 그는 장일수가 살고 있는 산중의 모옥에 당도했다. 그런데 모옥에 접근 

하는 순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냄새는......?' 

코끝에 훅 끼쳐드는 냄새는 역겨운 피비린내였다. 

장천린은 급히 모옥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고 뛰어들던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 

고 말았다.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 방안에 벌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네 구의 시체가 방안에 뒹굴고 있었다. 장일수의 세 아이들은 구석에 처박혀 머리가 

부서진 채 죽어 있었다. 더욱 비참한 것은 침상 위에 사지를 벌린 채 누워있는 여 

인이었다. 

장일수의 아내였다. 오관이 제법 뚜렷해 예쁘장해 보이는 장일수의 아내는 알몸으로 

죽어있었다. 그것도 난행(亂行)을 당한 듯 하반신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이럴 수가......." 

장천린은 그만 피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느낌이었다. 

장일수의 아내는 눈을 부릅뜬 채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원한과 증오가 

여실히 떠올라 있었다. 얼마나 침상을 긁어댔는지, 열 손가락에는 손톱이 모두 빠 

져 있었다. 

109 바로북 99

그녀의 사인(死因)은 복부에 뚫린 피구멍이었다. 뭔지 모를 날카로운 무기가 그녀의 

복부를 관통해버린 것이었다. 

장천린은 넋을 잃은 채 중얼거렸다. 

"힘없는 여인을 이렇게 죽여도 된단 말인가?" 

그는 이를 갈며 나직하게 외쳤다. 

"조화성!" 

이때였다. 밖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일이면 태사독 어른께서 이곳에 오신다구. 그 전에 시체를 치우고 집안을 정돈해 

놔야 해." 

"흐흐! 그야 물론이지."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잠시후 문이 열리며 두 사나이가 들어섰다. 그들 

은 모두 흑의를 입고 있었다. 

"억!" 

"누구냐?" 

두 사나이는 방안에 우뚝 선 채 무서운 안광을 발하고 있는 장천린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외쳤다. 

장천린은 간신히 분노를 억누른 채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너희들의 짓이냐?" 

그의 손가락이 방안의 시체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 흑의인은 눈을 희번덕이다가 장천린이 혼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음산한 웃음 

을 터뜨렸다. 

"흐흐! 부인하지 않겠다. 그런데 네놈은 누구냐?" 

장천린은 눈빛이 차가워졌다. 

"또 한 가지 묻겠다. 네놈들은 조화성의 개냐?" 

두 흑의인의 안색이 싹 변했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욕설을 퍼부었다. 

"이... 건방진 놈... 감히......." 

그러나 그들의 욕설은 장천린의 입에서 터져나온 사자후에 억눌리고 말았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놈들이다! 지옥으로 가거라!" 

장천린의 몸이 움직였다. 그는 흑의인들을 향해 덮쳐갔다. 

"흥!" 

두 흑의인은 냉소 치더니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그러나 검은 반도 채 뽑히지 못했 

다. 장천린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사라진 것이다. 귀영비마보(鬼影飛魔步)가 전개된 

110 바로북 99

것이다. 

그들은 그저 눈앞이 뿌연 느낌을 받았을 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헉!" 

두 사람은 동시에 다급성을 발했다. 갑자기 허공에서 새하얀 손바닥 하나가 떠오른 

것이다. 

"단금옥수(斷金玉手)!" 

짤막한 외침이 터졌다. 개벽신수 전붕의 비장의 절기가 펼쳐졌다. 흰 손바닥은 소리 

없이 그들의 심장을 동시에 뚫고 들어갔다. 

"끄아아악!" 

흑의인들은 무엇이 어찌된 줄도 모른 채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들의 가슴에서 피분 

수가 터져나왔다. 

"무슨 일이냐?" 

문득 밖에서 컬컬한 외침이 울렸다. 잠시 후 방문이 벌컥 열리며 또 한 명의 흑의인 

이 뛰어들어왔다. 

장천린은 벽에 걸려있는 도끼를 잡았다. 

도끼를 잡는 순간 그대로 던져버렸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도끼는 흑의인의 이마 한 

가운데 정통으로 떨어졌다. 

"크아아아악!" 

막 방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던 흑의인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뒤로 벌렁 

쓰러졌다. 

장천린은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무슨 소리냐!" 

사방에서 외침 소리가 들리며 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속속 모옥으로 날아왔다. 

"웬놈이냐?" 

"앗! 저놈이......?" 

흑의인들은 방문 앞에서 이마에 도끼가 박힌 채 죽어있는 동료를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살기등등해져 장천린을 포위했다. 

한편 장천린은 피가 끓고 있었다. 금월사의 참변을 목도한 이후 조화성에 대한 증오 

심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조화성! 

그들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혀 왔다. 그들로 인해 신선루를 잃었으며, 사랑하는 연인 

마저 잃었다. 그들은 금월사를 불태웠으며 스님들을 도륙했다. 어디 그 뿐인가? 죄 

없는 사냥꾼 집안을 몰살시켰으며 사냥꾼의 아내를 간살(姦殺)하기까지 했다. 

111 바로북 99

장천린의 차갑던 이성은 이 순간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솟구치느니 살심(殺

心) 뿐이었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나는 무림인이 아니다! 상인일 뿐이다! 따라서 무림의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을 어찌 두고 볼 수 있단 말인가? 용납치 않으리라! 

인간이기를 포기한 저 악마의 무리들을 결단코 도륙하고 말리라!' 

장천린의 입술에 피가 맺혔다. 그는 점점 더 살심이 깊어지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공력을 끌어 올렸다. 

한편 흑의인들은 그를 포위한 채 거리를 좁혀왔다. 

장천린은 허리를 굽혀 흑의인의 이마에 꽂혀있는 손도끼를 뽑아냈다. 

"......."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아니, 핏기가 가신 그의 얼굴은 이미 살신( 

殺神)- 그것이었다. 

그는 피묻은 도끼를 치켜들며 내심 중얼거렸다. 

'신부절육참(神釜絶六斬)을 보여주마. 자부이십사마예(紫府二十四魔藝) 중에서 가장 

잔인한 초식이다. 이것으로 너희들을 지옥으로 보내주마.' 

피가 끓었다. 

손도끼를 잡은 팔뚝에서 심줄이 지렁이처럼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상인으로 호화로운 생활과 금전 계산에만 익숙해 있던 팔뚝이 지금은 야성(野性)과 

살기로 부르르 진동하고 있었다. 

이때 한 흑의인이 탁성으로 외쳤다. 

"네놈은 무슨 이유로 우리 형제를 죽였느냐?" 

장천린의 입술이 열렸다.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는 네놈들은 어째서 죄없는 양민을 죽였느냐?" 

"미친 놈!" 

흑의인은 욕설을 터뜨렸다. 그는 검을 뽑으며 사납게 외쳤다. 

"볼 것 없다, 저놈을 죽여라!" 

두 명의 흑의인이 앞으로 나서며 일제히 도를 휘둘렀다. 그들은 처음부터 살수를 전 

개해왔다. 장천린은 도끼를 꽉 움켜쥐었다. 

'비록 한번도 실전에서 펼쳐본 적은 없지만 너희들을 지옥으로 보낼 수는 있을 것이 

다.' 

도끼가 호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카... 앙! 

112 바로북 99

두 자루의 도가 도끼에 맞아 불똥을 퉁기며 밀려나갔다. 장천린의 입에서 폭갈이 터 

졌다. 

"제 일참(第一斬) 대혈홍(大血紅)!" 

도끼가 움직였다. 도끼의 날을 따라 혈광(血光)이 광선처럼 뻗어 나갔다. 

쐐애애액! 

혈광은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두 마디의 처절한 비명이 들린 것은 그 직후였다. 

퍼퍽! 퍽! 

섬뜩한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머리가 박살났다. 

"허어억!" 

남아있는 여덟 명의 흑의인들은 이 참혹한 광경에 대경실색했다. 장천린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뇌리에는 자부마경에 적혀있던 글귀가 떠오르고 있었다. 

-선공(先攻)이야말로 필승의 요결이다. 적이 자세를 가다듬기 전에 공격해라. 

"제 이참 천월회(天鉞廻)!" 

위이이잉! 

손도끼가 그의 손을 떠나 날아갔다. 도끼는 빙글빙글 돌며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명 

의 목을 날려버렸다. 실로 가공할 초식이었다. 세 명의 목을 쳐버린 도끼는 아직도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장천린은 귀영비마보를 펼쳐 도약했다. 그는 허공에서 도끼를 낚아챘다. 

다시 자부마경에 적혀 있는 글귀가 떠올랐다. 

-손속에 정(情)을 두지 마라. 언제나 필살(必殺)의 신념만을 가져라. 

허공에 뜬 채로 그는 구전신공(九轉神功)을 운용했다. 구구팔십일주천(九九八十一週

天) 중 삼십주천(三十週天)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의 전신에 엄청난 힘이 솟아올 

랐다. 

장천린의 입에서 으스스한 음성이 떨쳐 나왔다. 

"제 삼참 천절륙(天絶戮)!" 

콰아아아! 

도끼가 그의 손을 떠났다. 

남아있는 다섯 명은 공포로 인해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그들은 너무나 잔혹 

한 장천린의 공격에 그만 싸울 의지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장천린이 날린 도끼는 가공할 위력으로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퍼퍼퍼퍽! 

도끼는 다섯 명의 심장을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관통해버렸다. 실로 하늘도 놀라고 

113 바로북 99

땅도 전율할 광경이었다. 

결국, 열 명의 흑의인은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 지옥으로 가고 만 것이다. 

"......." 

장천린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도끼를 든 채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휘이잉!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왈칵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장천린은 치를 떨었다. 갑자기 구토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꿈에서 깨어난 듯 바 

닥에 피를 뿌린 채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썹이 부르르 경련 

했다. 

'이것이 과연 내가 한 일인가?' 

그는 소름이 쭉 끼쳤다. 

'내 피 속에도 이렇게 잔인한 일면이 있었단 말인가?' 

그의 손에서 도끼가 툭! 떨어졌다. 그때였다. 

"대단한 실력이다. 친구!" 

문득 등뒤로부터 한 가닥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 

장천린은 몸을 빙글 돌렸다. 저만치서 두 명의 사나이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특징이 있는 인물이었다. 한 명은 백색의 죽립을 쓰고 백의에 백발 

백미, 신마저도 백색이었다. 손에는 한 송이의 백장미를 들고 있었다. 또 한 명은 

고검(古劍)을 손에 쥔 채 무심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독로장미(禿路薔薇) 서문표와 사검(邪劍) 막청이었다. 

장천린은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형언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 심장을 짓누르는 듯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두 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강한 무예를 지니고 있음을 느꼈다. 

잠시후 두 사람은 그의 앞에 와 섰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서문표였다. 그는 수중의 백장미를 손가락 사이로 빙글빙글 돌리 

며 온화한 음성으로 물었다. 

"무척이나 독랄한 수법이군. 귀하는 신산(神算)의 친구인가?" 

장천린은 내심 중얼거렸다. 

'이들 역시 조화성의 고수들이로구나.' 

그는 차갑게 말했다. 

114 바로북 99

"나는 신산이 누군지 모르오. 다만 이곳을 지나던 중 죄없는 양민을 죽이는 것을 보 

고 분노하여 손을 썼을 뿐이오." 

그 말에 막청의 입꼬리에 스산한 미소가 흘렀다. 

"아, 이제 보니 정의의 협객이셨군." 

곁에 있던 서문표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친구, 이들이 누군지 아시오? 불행히도 내 수하들이라오. 그들이 무슨 짓을 했건 

내 수하란 말이오. 그런데 친구 손에 죽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 

장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서문표는 싱긋 웃으며 자못 친절하게 말했다. 

"친구, 피에는 피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소? 친구는 각오해야 할 것 같소?" 

그는 손에 쥐었던 백장미를 입술에 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봄바람과도 같은 미 

소가 흘러나왔다. 

장천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쩔 수 없구나. 부딪쳐 보는 수밖에.' 

그는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뜨렸던 도끼를 집어들었다. 

"훗훗훗훗!" 

서문표의 입에서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음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휙! 

그는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어 양손을 칼날처럼 세워 곧바로 장천린을 공격했다. 장 

천린은 즉각 대응했다. 그는 수중의 도끼를 돌리며 신형을 떠올렸다. 

쐐액! 

신부절육참 중의 제 일참(一斬)이었다. 도끼는 가공할 혈광을 뿜으며 뻗어 나갔다. 

그러나 방금 전의 싸움으로 공력이 크게 감소된 상태였다. 

서문표의 눈에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그는 양손이 현란하게 움직여 도끼 공세를 육 

장(肉掌) 만으로 차단시켜 버렸다. 

한편, 막청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저 자의 초식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초식에 비해서는 위력이 보잘 것 없다. 어 

째서지?' 

물론 그가 알 리가 없었다. 현재 장천린의 내공수준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을. 

장천린은 신부절육참을 연속 제 사참까지 펼쳤다. 

그러나 서문표는 계속 피하기만 했다. 따라서 장천린은 그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115 바로북 99

못한 채 숨이 턱에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그는 이를 악물고 공격했다. 

문득 서문표의 입에서 음침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흣흣흣! 독로장미 서문표가 어떤 인물인지 똑똑히 보여 주지, 친구." 

순간 그의 왼쪽 장심(掌心)으로부터 계란 모양의 백색 반점이 떠올랐다. 

스스슷! 

동시에 그의 신형이 세 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닌가? 

장천린은 눈을 크게 떴다. 어느 것이 진짜 인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세 개의 

인영 중 하나가 그를 향해 공격해 왔다. 

장천린은 즉각 도끼로 내리쳤다. 그러나 도끼는 허공을 때렸을 뿐이었다. 

'아차!' 

순간적으로 손목에 무서운 통증이 느껴졌다. 

쿵! 

어느덧 도끼는 그의 손을 벗어나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가 다시 잡으려 했으나 마치 

끈이라도 달린 듯 너울거리며 서문표의 손으로 들어가 버렸다. 

"흣흣! 이제 각오하시지, 친구." 

서문표는 우수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손바닥 한 가운데 생긴 백색 반점이 더욱 뚜렷 

해졌다. 

"가거라!" 

우우우웅! 

서문표는 장심을 뻗으며 몸을 풍차(風車)처럼 회전시켰다. 그러자 가공할 소용돌이 

기류가 장천린을 향해 쇄도해 왔다. 그 기류는 두 개에서 세 개로, 다시 수십 가닥 

으로 나뉘어 쇄도해 왔다. 

장천린은 다급해진 나머지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바닥으로 굴렸다. 

'이 길밖에 없다.' 

비록 치욕스런 일이기는 하지만 피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 땅 

에 두 바퀴 굴렀을 때 회오리 기류가 그의 가슴을 스쳤다. 

"윽!" 

가슴이 화끈하는 느낌과 함께 선혈이 푹 치솟았다. 장천린은 이를 악문 채 열두 바 

퀴나 굴러갔다. 

삼 장 밖에서 멈춘 그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서문표는 입에 물고 있던 백장미를 손으로 옮겨 들더니 음침하게 말했다. 

"아주 가거라.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어떤 일이든 함부로 끼여들지 마라!" 

116 바로북 99

슉! 

장미가 일직선으로 장천린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이것이 내 생의 끝인가?' 

장천린은 번연히 눈을 뜬 채로 장미가지가 화살처럼 이마 한복판으로 쏘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눈앞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누군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장미를 낚아챘다 

서문표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뜻밖에도 장미를 낚아챈 인물은 사검 막청이었던 것이다. 서문표의 백미가 꿈틀 움 

직였다. 

"막형, 대체 무슨 뜻이오?" 

서문표의 음성은 다시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몹시 화가 났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막청은 그에게 백장미를 던져주며 담담히 말했다. 

"서문노제, 잠시만 기다려 주게." 

서문표는 장미를 받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좋소. 막형의 변명을 들어보겠소." 

말인즉 변명이 합당치 않으면 즉각 공격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막청은 더 이상 대 

꾸하지 않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천린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장천린의 발치 어림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하나의 둥근 영 

패였다. 

<구룡(九龍)> 

영패의 전면에는 양각으로 그와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뒷면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음각되어 있었다. 막청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장천린을 내려보며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귀하는 구룡상선(九龍商船)의 인물인가?" 

장천린은 입가의 선혈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용백군이오. 구룡상선의 선주(船主)이기도 하오." 

막청은 물론 서문표까지도 크게 놀란 듯했다. 한참 후에야 막청은 여전히 경악이 가 

시지 않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럼 귀공께서 바로 산동 제남의 용대인이란 말이오? 제남 구룡장원(九龍莊院)의 

주인이란 말이오?" 

117 바로북 99

"그렇소이다." 

장천린의 말에 두 사람의 안색이 다시 변했다. 

용백군이란 이름은 상계(商界)에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불과 몇 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그의 이름은 급부상했다. 그는 산동제일의 거부인 황학산(黃鶴山) 

과 쌍벽을 이룰 뿐더러 강북 상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오대거물로 부상했던 

것이다. 

오래 전부터 무림인들에게는 불문율이 두 가지 있다. 

그것은 관부(官府)와 상계(商界)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관부를 건드리면 골치를 앓게 된다. 또한 상계는 한번 틀어지게 되면 그 막대한 금 

력(金力)으로 무림계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지금으로부터 육십 년 전, 강북의 한 문파가 섬서(陝西)의 거부인 사공세가(司空勢

家)를 모욕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사공세가는 수백만 냥 들여 낭인무사 천 명을 고 

용하여 단 하룻밤 사이에 그 문파를 궤멸시킨 적이 있었다. 

비록 조화성이 천하제일의 문파긴 하나 상계를 건드리는 것은 삼가하고 있었다. 현 

재도 그들이 만금산장과 적대시하는 것만으로도 호적수인 신산에게 큰 이득을 주고 

있는 셈이었다. 

따라서 조화성은 되도록 수하들에게 상계를 자극하는 일은 금지시키고 있었다. 

장천린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막청은 정중히 포권했다. 

"용대인인 줄도 모르고 실례했습니다. 미리 신분을 밝히셨다면 결코 이런 일은 일어 

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때, 서문표는 입가에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는 오늘 무척 재수가 없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막청이 다시 정중하게 말했다. 

"용대인께 한 가지 송구스런 부탁이 있소이다." 

장천린은 옷을 털며 물었다. 

"무엇이오?" 

"잠시 우리를 따라 갔으면 합니다." 

장천린은 흠칫 그를 바라보았다. 막청의 눈에서 괴이한 광채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소생은 용대인의 곁에 마도(魔刀) 원계묵이란 자가 있다고 알고 있소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이오." 

118 바로북 99

장천린은 순순히 대답했다. 막청은 여전히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소생은 용대인께 피해를 입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원계묵은 소 

생의 친구와 깊은 원한을 맺고 있는 바 지금도 그 자를 찾고있는 중입니다." 

그가 말하는 친구란 무정도 모용초를 말하는 것이었다. 장천린은 대뜸 금방 알아들 

을 수 있었다. 막청은 스산한 음성으로 말했다. 

"원계묵을 불러 주십시오. 단, 용대인께는 절대로 피해를 입히지 않겠습니다. 원계 

묵과 소생의 친구간의 문제는 무림계의 은원이므로 용대인도 양해하시리라 믿습니다 

." 

장천린은 내심 염두를 굴렸다. 

'거절할 수가 없겠구나. 그렇게 되면 이들의 잔혹한 성품으로 볼 때 살인멸구(殺人

滅口)의 수단을 쓸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판단을 내렸다. 

'지금으로써는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나는 상인이오. 무림의 일에 휩쓸리고 싶지 않소." 

막청의 입가에 실처럼 가느다란 미소가 그어졌다. 

"과연 천하의 거상 용대인 다운 생각이십니다." 

그는 다가오며 부드럽게 말했다. 

"소생이 대인을 부축하겠습니다." 

"필요 없소이다. 혼자서도 충분히 걸을 수 있소." 

"좋습니다. 그럼 저희들을 따라 오십시오." 

일은 묘하게 되었다. 장천린은 원치는 않았으나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장천린으로서는 극적으로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위기를 넘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좌우의 두 사나이 사이에 끼여 있었다. 

'쯧, 어쩌면 지금부터 진짜 호구(虎口)로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군.'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막청은 비록 공손하게 그를 대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었다. 결국 그는 두 사람의 인질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용대인은 상인이면서 언제 그렇게 놀라운 무공을 

익히셨습니까?" 

막청의 질문에 장천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는 법이오." 

119 바로북 99

막청은 내심 끙! 하고 신음을 발했다. 왠지 아니꼽다는 느낌이 든 것이었다. 

이때 서문표가 물었다. 

"대인께 무공을 전수한 사람은 어떤 인물이오?" 

장천린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오.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까. 나 역시 그에게 관심이 없었소. 다만 그는 황 

금을 무척이나 좋아했었소." 

서문표와 막청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황당하다는 표정이 

똑같이 떠올라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얘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윽고 

삼인은 입을 다문 채 산중으로 깊숙이 들어서고 있었다. 

바로북 99 12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