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대반전(大反轉)
"......."
사문도는 망연히 서있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개봉부의 번화가에 있는 한 꽃가게 앞이었다. 꽃가게에는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등이 활처럼 굽고 만면에 주름살이 가득한 노파가 기침을 하며 대답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이야, 콜록! 해당(海堂)은 떠났어. 꽃가게를 불쌍한 이 할멈에게 넘겨주
더군. 흘흘! 정말 좋은 처녀였지."
사문도의 얼굴에 허전한 기운이 저녁바람과 함께 흘렀다.
"왜 떠났습니까?"
"몰라."
노파는 고개를 젓다가 무엇인가를 떠올린 듯 이빨 빠진 입을 오물거렸다.
"그래 맞아, 어젯밤 누군가 찾아왔어. 여자였지. 삼십 가량 된 아주 예쁜 미인이었
어."
사문도는 조용히 물었다.
"그녀가 누군지 모릅니까?"
"몰라."
"해당이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
노파는 할말 다했다는 듯이 꽃바구니를 매만지며 마른 웃음을 흘렸다.
"흘흘, 나만 복이 터졌지. 말년에 이런 재수가 올 줄은 몰랐어. 해당은 좋은 처녀야
."
사문도는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온통 쓸쓸해 보였다.
'오늘 떠났다고?'
그는 누군가에게 묻듯이 중얼거렸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의 눈길은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그녀를 찾아왔다는 여인은 또 누구란 말인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의 눈에 고독감이 깃들었다.
운명처럼, 단 한번 그의 고독 속으로 파고 들어왔던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추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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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후훗! 당신도 해당화를 좋아하세요? 나와 똑같군요. 나는 해당화를 제일 좋아해요.
그래서 이름을 해당이라 지었죠.'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분의 이름을 알고 싶다고요? 피이! 웃기지
마세요. 엉뚱한 마음 품지 말아요. 당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훌륭한 분이니까요.
'하지만 그 분은 일 년 안에 날 찾아오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을 어겼어요. 개봉은
매우 큰 곳이니 이곳에 꽃가게를 차리면 지나가는 사람을 볼 수가 있어요. 그러니
언젠가는 그 분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 분은 아주 좋은 분이에요. 당신도 좋지만 그 분이 더 좋아요. 날 이해하거든요.
호호호! 날 더럽다고 여기지 않는 분이에요.'
'해당.'
사문도의 발걸음이 흐트러졌다.
'네가 좋아한다는 그 사람, 그를 찾아 떠난 것이냐?'
그의 눈빛은 더욱더 고독해졌다. 어느덧 개봉부의 거리에 황혼이 지고 있었다. 사문
도의 발길은 주루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주루에 올라 구석진 자리를 택해 앉았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은자 열 냥이 그에게 남은 총재산이었다.
"......."
그는 우울한 눈으로 은자를 바라보다 탁자에 내려놓았다. 점원이 다가오자 그는 가
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 만큼 술을 갖다 주시오."
"......?"
점원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은자의 액수를 계산해 보고는 내심
코웃음쳤다.
'자기가 무슨 술고래라고?'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든 술은 팔면 그만이니까.
'흥! 오십 병이나 되는 술을 어디 혼자 다 먹나 보자!'
점원은 내심으로는 비웃었으나 얼른 은자를 집어든 아첨의 웃음을 흘렸다.
"헤헤, 알겠습니다. 한데 안주는?"
"필요 없소."
"......?"
점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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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도 없이 그 많은 술을 먹겠다고? 아이고,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아무튼 좋다. 장사를 하면 그만이니까.
점원은 주방으로 달려가 버렸다.
잠시 후 술이 나왔다. 사문도는 묵묵히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물
마시듯 술을 마셔댔다. 열 병의 술이 순식간에 바닥나 탁자 아래 수북히 쌓였다.
점원은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세... 세상에! 저러다 정말 오십 병을 다 마시는 거 아냐?'
사문도는 우울했다. 그의 눈빛은 시간이 흐를수록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기만 했다.
'나라는 인간은 대체 무엇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단 말인가?'
그는 술병을 불끈 움켜쥐었다.
'양부, 당신은 왜 제 가슴에 못만 박아놓고 세상을 뜨셨습니까? 왜!'
내심 피를 토하듯 부르짖는 사문도의 입술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너는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될 놈이었다!'
'흐흐! 네 친부는 네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그것은 너의 비극적인 운명 때문이다.'
'네 친부는 널 낳았지만 결코 네 부친이 될 수 없다. 그건 모친도 마찬가지다.'
'왜냐고? 흐흐, 너는 비극의 사생아(私生兒)기 때문이다.'
'네가 비운의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뿐이다. 그건 조화성을 멸하고 염
무(焰武)를 죽이는 것 뿐이다. 알겠느냐?'
사문도는 독주를 쉬지 않고 마셨다.
탁자 밑에는 벌써 이십 병 이상의 빈 술병이 쌓이고 있었다. 이제 그는 술병 째로
입에 처박고 있었다.
'도(島)야. 나는 네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정이 많다는 것을 안다. 나는 네 인
생을 생각할 때마다 큰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돌려놓을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이다. 도야, 너는 강해져야 한다. 그것만이 네가 살길이다. 널
두고 죽는 이 순간 내 마음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묻지 마라, 네 친부가 누구인지.
네 친부는 결코 네 앞에 나타날 수가 없는 몸이다. 도야, 친부를 만날 수 있는 방법
은 오직 하나 뿐이다. 그가 공동산( 山)에 남긴 서찰대로 행하는 것 뿐이다.'
양부가 죽으면서 남긴 말은 그 뿐이었다.
양부는 눈을 감았다. 그의 늙은 눈 가장자리에는 한 방울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지
금까지도 사문도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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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도는 계속 폭음했다. 점점 더 그는 미칠 듯한 기분에 빠져들고 있었다.
'대체 나는 무슨 의미로 삶을 살고 있단 말인가?'
보통 사람이 그 정도의 술을 마셨다면 벌써 인사불성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사문도
의 얼굴은 시간이 흐를수록 백짓장처럼 창백해지기만 했다.
'해당도 떠났다. 양부... 당신도. 모두가 다 내 곁을 떠났다.'
그렇다.
그들 그들은 일생 동안 그가 정을 느낀 단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아무
도 없었다.
사문도는 고독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문득 한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 떠올랐다.
'용백군이라고 했지.......'
사문도의 몽롱한 눈 속에 준수한 흑삼청년이 떠올랐다. 긴 머리를 등뒤로 늘어뜨린
사나이였다.
'그는 처음 볼 때부터 친근감이 느껴졌었지.'
사문도는 갑자기 그가 보고 싶어졌다. 처음 금월사에서 그가 말을 걸어왔을 때부터
호감이 일어났었다.
'그는... 친형 같은 느낌을 주었었지.'
사문도는 이제 서른 병째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용백군을 떠올리자 어둡기만 했던
표정에 희미하게 화색이 일어났다.
'그는 모레 다시 보자고 했지.'
그는 계속 술을 마셨다.
한편, 점원은 처음부터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술을 마
실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는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기막히군! 저러다 진짜 다 마셔 버리겠다.'
점원은 탁자 아래 쌓인 술병들을 세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 주루가 생긴 이래 기록이 수립되는 날이야.'
이때 누군가 주루 안으로 들어섰다. 점원은 움찔했다.
들어선 사람은 관복을 입은 초로의 노인이었다. 그는 오랜 점원생활을 통해 옷차림
과 얼굴만 보아도 대충 내력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저 분은 분명 고관(高官)이시다!'
그는 지체없이 달려가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어서 오십시오. 나리!"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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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인은 주위를 둘러보다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마땅한 좋은 자리가 없었던 것이
다. 점원은 눈치가 빨랐다.
"헤헤, 나으리. 이곳은 복잡합니다. 안쪽으로 드시지요?"
관인은 고개를 끄덕이다 눈빛을 번쩍 빛냈다. 구석 자리에 앉아 술을 들고 있는 사
문도를 발견한 것이다.
'허어! 대단한 주량이군!'
관인은 탁자 밑의 술병과 사문도를 번갈아 바라보다 점원을 불렀다.
"점소이."
"네, 나리."
"흠, 저 젊은이와 합석할 수 있겠나?"
"네에?"
점원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관인은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사문도가 있는 곳을 향
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문도는 사십 병째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취하고 싶었으나 어찌된 셈인지 조금
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그는 술병을 노려보며 입술을 씰룩였다.
'쿡쿡, 요즘 술은 물로 된 모양이지?'
이때 한 가닥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젊은이, 합석해도 되겠나?"
사문도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살을 찌푸려졌다. 본래 그는 관리를 좋아하지 않았
다.
"이곳은 제 자리입니다. 다른 곳도 많습니다."
그는 억양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관인은 퇴짜 맞고도 넉살좋은 웃음을 흘렸다.
"헛헛! 사해(四海)가 모두 친구일세! 부처님 말씀에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니 않
나? 자네와 내가 이렇게 한 마디씩 주고받았으니 우린 이미 친구인 셈이네."
"......."
사문도는 고개 숙인 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흠, 관복이 그렇게 보기 싫다면 옷을 벗겠네."
놀랍게도 관인은 정말 겉옷을 벗어버렸다. 그는 관복을 의자 위에 던지며 너털웃음
쳤다.
"헛헛! 자네 술 실력이 보통이 아니군. 나 역시 술에는 져본 적이 없네. 어떤가? 한
번 대작해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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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도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마침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젊은이야. 핫핫핫!"
관인은 호탕하게 웃어젖힌 후 부드럽게 물었다.
"자네 이름은 어찌되는가?"
"사문도라 합니다."
"핫하, 난 단위제라 하네."
단위제!
바로 그였다. 그가 주루에 나타난 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는 오직 그만이 알
일이었다.
넓은 방안.
한 사나이가 엎드린 채 보고하고 있었다.
"황성마건이 아홉 번째 저지선을 통과하여 옥류향과 만났습니다."
"결국 그렇게 됐군."
태사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봉부를 정탐한 결과는?"
"아직 신산으로 보이는 인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태사독은 뒷짐을 지고 서성였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옥류향이 용문전장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일까? 열쇠는 거기에 있는데."
태사독의 눈에서 자광이 흘러나왔다.
"후후, 신산은 두뇌가 뛰어난 인물이지. 놈의 두뇌를 평범한 자처럼 생각하면 큰 오
산이야."
탁무종이 그의 말을 받았다.
"신산이 노리는 것은 용문전장의 재력이 아닐까요? 옥류향을 상관홍의 딸과 정략결
혼 시킴으로써 통째로 재산을 가로채려는 계략 말입니다."
태사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추리다. 하지만."
제삼신마전 소속이자 태사독의 직속부하인 자영구살(紫影九殺)의 첫째 탁무종은 공
손히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오래 전부터 용문전장과 신산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탁무종은 흠칫했다. 그 점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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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독은 걸음을 멈추며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무종."
"예."
"수하들에게 전달해라. 황성마건은 이제 천라지망에 들어왔다. 놈들을 몰살시켜라."
탁무종의 눈빛이 무섭게 번뜩였다.
"존명!"
"참, 상관수아를 데려오도록."
"알겠습니다."
탁무종은 즉시 밖으로 사라졌다. 태사독은 창가로 걸어가 뒷짐을 진 채 하늘을 바라
보았다. 그의 눈에 감도는 자색의 광채는 물빛처럼 잔잔해 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
가 생각에 잠길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두 명의 자의무사에 의해 끌려온 상관수아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안색이 백짓장이 된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태사독은 힐끗 그녀를 바라본 후 명령을 내렸다.
"문방사보(文房四寶)를 준비해라."
"옛!"
자의무사가 지필묵을 준비하는 동안 태사독은 뒷짐진 자세로 상관수아를 향해 다가
갔다.
"오... 오지 말아요."
상관수아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쳤다.
"흠, 상관홍은 미모의 딸을 두었군."
태사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한 개의 구슬을 꺼냈다. 구슬은 어린아이 주먹
만했는데 자줏빛의 광채를 흘리고 있었다.
"이 구슬을 보거라."
태사독은 구슬을 손바닥 위에 올린 채 상관수아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상관수아는
멍청히 그의 말대로 구슬을 바라보았다.
-이 구슬을 보거라.
그 한 마디의 말은 그녀의 영혼을 장악해 버렸다. 구슬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은
점점 몽롱해졌다.
"너는 누구냐?"
"상관수아......."
"네 아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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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홍......."
"옥류향을 아느냐?"
"네."
태사독의 음성은 상관수아의 영혼을 강력한 힘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
"옥류향을 사랑하느냐?"
"그... 그는... 좋은 분... 하지만... 하지만......."
왠지 상관수아는 더듬거리고 있었다.
태사독이 말을 돌렸다.
"제갈사를 아느냐?"
"제... 제갈......."
"제갈사다!"
"모... 몰라요."
태사독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상관홍은 딸에게까지 비밀을 지키고 있었단 말인가?"
그는 상관수아가 자신의 최혼대법에 걸린 것을 확신했으므로 그녀가 거짓말할 가능
성은 전무하다고 믿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진기를 돋구며 말했다.
"상관수아, 이제부터 너는 잠을 자야 한다. 깨어날 수 없을 정도로 깊을 잠을 말이
다."
"......!"
"주인인 나 태사독 외에는 절대로 널 깨울 수 없다. 알겠느냐? 나 태사독만이 널 깨
울 수 있다. 깊은 잠을, 아주 깊은 잠을 자거라......."
"......."
상관수아의 눈까풀이 천 근이나 되는 듯이 스르르 아래로 내려갔다. 태사독은 문득
웅혼한 음성으로 말했다.
"붓을 들어라."
상관수아는 인형처럼 움직였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탁자 위에 놓여있는 붓을 잡
았다.
"글을 쓰거라. 내가 부르는 대로."
상관수아는 붓을 쥔 손을 종이로 가져갔다. 태사독은 자광이 번쩍이는 눈으로 그녀
를 노려보며 주문을 외듯 명을 내렸다.
스슥.......
종이 위에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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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혼대법으로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상관수아였으나 태사독이 시키는 대로 붓을 놀리
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영혼도 없이, 써 갈기는 글은 분명 그의 필체였으나
내용은 그녀가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
태사독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부르는 대로 붓을 놀리는 상관수아가 무척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꼭두각시를
다루는 주인의 기분은 늘 이렇듯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최혼대법에 대
해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제삼신마전의 전주가 된 것도 그러한 능력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람들
은 그의 무공도 두려워 하지만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의 최혼대법이었다
마침내 주문이 끝났다.
상관수아는 붓을 든 채로 잠들어버렸다. 태사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신산. 네가 용문전장에 있을 것이란 가정 하에 이 글을 너에게 보내겠다. 이
글을 읽는다면 반드시 금월산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나 태사독의 손바닥 안으로
말이다.'
태사독의 얼굴에는 득의의 빛이 떠올랐다.
'후후... 이제 네가 내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한바탕 악몽을 꾼 기분이었다.
장천린은 죽음에 이르기 직전 극적으로 나타난 황성마건에 의해 구출되었다. 옥류향
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황성마건에 의해 상처를 치료받았다. 그들이 쓴 약은 놀라운 효력이 있어
상처는 급속도로 호전되었다.
장천린의 상처에는 흰 천이 감겨져 있었다. 그는 운기조식을 끝낸 후 한숨 돌린 상
태였다. 고개 돌려보니 옥류향이 나무에 기대앉은 채 황성마건 소속의 한 무사와 이
야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귓전에 옥류향의 음성이 들려왔다.
"상관소저가 용문전장에 돌아가지 않았다면 놈들에게 납치되었을 것이다."
옥류향은 황성마건의 수뇌인 육자경(陸子京)을 바라보며 지시하고 있었다.
"자경, 지금부터 그대는 금월산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방해하는 자는 모두 죽여라.
막청과 서문표를 찾아내야 한다. 단, 서문표는 죽여도 좋되 막청은 반드시 생포해
야 한다."
옥류향의 눈에서 증오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 일을 해결하고 상관소저를 찾기 전에는 절대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알겠느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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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자경은 중년인이었는데 옥류향에 대해서 한없이 공경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장천린은 옥류향의 말을 듣고 내심 고개를 젓고 있었다.
'무모하다. 이곳은 평야가 아니고 산이다. 막청이나 서문표 같은 고수들을 잡기는
어렵다. 더욱이 곧 밤이 온다. 날이 어두워지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는 옥류향을 만류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당한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이었
다. 그래서 묵묵히 기운을 되찾는 데만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옥류향이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두 명의 무사들이 그를 부축했다. 그는 장천린을 향
해 말했다.
"용형, 수하들을 딸려 줄 테니 어서 산을 내려가시오."
"옥형은?"
옥류향의 입가에 스산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나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오. 후후! 놈들에게 이 옥류향이 어떤 존재인지 똑똑히 보
여줄 것이오."
그의 눈에서는 섬뜩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는 이미 이전의 옥류향이 아니었다.
'이성을 잃었구나!'
장천린은 내심 탄식했으나 어쩔 수 없음을 느꼈다.
옥류향은 부드럽게 말했다.
"용형, 내일쯤이면 이곳 일이 마무리될 것이오. 며칠 후 용문전장으로 찾아오시오.
반드시."
장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장천린은 자신이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음을 느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칼 한 자루를 허리에 비껴 찬 후 포권했다.
"조심하시오, 옥형. 잠시 후면 어둠이 깃들 것이오."
옥류향은 그의 말뜻을 알고 미소지었다.
"염려 마시오, 이들은 오히려 어둠에 더 강하오. 나는 일부러 어둠을 택한 것이오."
장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용문전장에서 만나겠소."
"몰론이오, 용형."
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았다. 굳게 잡은 손바닥 사이로 뜨거운 사나이들의 우정이
통하는 듯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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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린은 몸을 돌렸다. 그 뒤로 두 명의 무사가 호위하듯 따랐다.
옥류향은 장천린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서 있었다. 그의 눈에는 한 가닥 아쉬움이
스쳤다. 그는 어지러운 상념을 떨치듯 황성마건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곧 해가 진다.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체력을 보충해 두도록 해라."
황성마건의 무사들은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에 주저앉더니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
수십 명이 한 장소에 있었으나 숨소리, 옷자락 스치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
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이 밀려와 금월산을 암흑으로 만들기만을 기다리며 이빨
을 갈고 있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무릇 기다리면 오지 않고, 잊어버리면 눈 깜빡할 사이에
다가오는 것이 시간이라고 한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가운데 황성마건이 웅크
리고 있는 숲속에서는 점점 더 살기만이 짙어져갔다.
마침내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사위에 어둠의 장막이 덮였다.
"때가 되었다."
낮게 부르짖는 옥류향의 음성에 살벌한 기운이 묻어 났다. 그의 앞에 앉아있던 육자
경은 눈을 번쩍 떴다.
옥류향은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자신 있느냐? 자경?"
육자경의 얼굴에 음산한 기운이 덮였다.
"흐흐, 염려 마십시오. 이보다 더 캄캄한 곳에서 살아온 우리들입니다."
그의 눈에서는 살광이 뻗어 나왔다.
"한 놈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은 결코 대인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옥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다."
스스스스슷!
마침내 황성마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동작은 굉장히 민첩했다. 숲을 가로지르는 신법은 흡사 살쾡이 같았으며, 중
무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점의 소음도 일으키지 않았다.
옥류향은 두 명의 무사들에게 부축 받으며 움직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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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일이었다. 한참을 가도 그들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금월산 전체는 텅 비
어버린 듯 적막하기만 했다.
심지어는 짐승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의 적막감이 금월산을 짓누
르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달이 떴다.
푸르스름한 달빛이 황성마건이 움켜쥔 병기에 반사되어 빛을 반짝거렸다. 그들은 벌
써 반 시진 가량 금월산 전역을 누비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옥류향은 차츰 불안을 느끼기 시작
했다.
'어떻게 된 건가? 놈들이 보이지 않다니?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그는 손바닥이 축축이 젖는 것을 느꼈다.
폭풍전야의 정적이랄까? 오히려 그 점이 더욱 그들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
한 순간 옥류향과 황성마건의 무사들은 거의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보라!
밤하늘에 세 개의 불화살이 쏘아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저건......?"
누군가 찬바람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뒤이어 난생 처음 듣는 괴이한 파공음이 고막을 울렸다. 그것은 마치 동굴 속으로
거대한 폭풍이 불어닥치는 것과 같았다. 뒤이어 그들이 딛고 있던 땅이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무섭게 요동쳤다.
꽝! 꽈르르르릉!
엄청난 폭음이 일어났다. 한순간 시뻘건 화광(火光)이 작렬했다.
옥류향은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화포다!"
꽈꽝!
이번에는 그들이 있는 지척에서 폭음과 함께 불꽃이 터져나갔다.
"조심해라! 놈들이 화포를 사용하고 있다!"
옥류향은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비록 화포가 떨어진 곳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먼 곳
이었으나 그 위력은 가공했다. 몇 명의 무사들이 화포의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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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놈들이 어떻게 화포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평소 침착하기 그지없던 옥류향도 이번만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머릿속
이 혼란스러워졌다. 일시지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꽈꽝!
이번에는 그들이 있는 지점 한가운데서 화포가 터졌다. 시뻘건 불꽃이 확산되며 처
참한 일이 벌어졌다.
"크아아악!"
세 명의 무사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놀랍게도 그들의 육신은 허공에서 갈기갈
기 찢겨지며 비산(飛散)했다. 너무나 참혹한 일이었다. 주위에는 온통 선혈이 튀었
으며, 찢기고 쪼개진 육편(肉片)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화포가 떨어진 곳에는 방원 삼 장이 넘는 커다란 구덩이가 패였다.
"으으......!"
무사들은 그 광경에 치를 떨었다.
이때 옥류향의 안색이 홱 변했다.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막청과 서문표에게 화포가 있을 리 없다. 이곳 금월산에는 그들 말고도 제 삼자가
있다!'
그는 입술을 악물었다. 비로소 영감이 작동했다.
'그렇다면 놈들은 처음부터 날 이용한 것이다. 날 미끼로 황성마건을 끌어들인 것이
다.'
옥류향의 눈까풀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당했다!'
꽈르르르릉!
그의 뒤쪽에서 폭음이 일어났다.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다. 예상
치도 않았던 화포(火砲)의 공격이 치명적인 변수를 일으킨 것이다.
장천린은 금월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두 명의 황성마건대가 호위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기분은 착잡하기 그
지없었다.
"......."
장천린은 고개 들어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천지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고 있는 것 같아 그는 섬
뜩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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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잉!
남서풍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괴이한 음향을 울리고 있었다.
'옥류향에게 아무 일도 없으면 좋을 텐데.'
그는 옥류향을 염려했다.
비록 그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왠지 끌리는 면이 있었다. 옥류향은 신산에게 절대적
으로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그 점을 제외한다면 매력적인 위인이었다.
장천린은 상념에 잠긴 채 묵묵히 걸었다.
문득 호위하던 무사 중 한 명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대인, 잠깐만."
장천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다보았다.
"느낌이 이상합니다."
무사는 안색이 굳어진 채 동료와 눈짓을 교환했다. 또 한 명의 무사도 안색이 딱딱
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제히 병기를 뽑았다.
그들은 창과 도끼를 사용했다. 왼손에는 똑같이 생긴 방패를 지니고 있었다.
챙!
방패 손잡이에 힘을 주자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톱날 같은 금속이 튀어나왔다. 장
천린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제 보니 방패도 일종의 무기였구나.'
이때 도끼를 든 무사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눈빛을 번쩍였다.
윙!
갑자기 그는 방패를 던졌다. 방패는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가 한 그루 나무를
단번에 동강내 버렸다.
"으악!"
나무 둥치가 쓰러지며 참혹한 비명이 울렸다. 놀랍게도 나무 뒤에 숨어있는 한 자의
인이 허리가 잘린 채 짚단처럼 쓰러졌다.
위이잉!
방패는 다시 눈이라도 달린 듯 무사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웬 놈들이냐?"
창을 든 무사가 우렁찬 음성으로 외쳤다. 주위는 적막하기만 할 뿐,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무사는 괴소를 흘렸다.
"흐흐, 나타나지 않겠단 말이지?"
그는 성큼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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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게."
도끼를 든 무사가 주위를 주자 그는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염려 말게."
그는 창을 꼬나 쥐고 앞으로 걸어갔다.
'.......'
장천린은 긴장을 느끼며 숨죽인 채 무사를 지켜보았다. 무사는 느릿하게 앞으로 걸
어갔다. 이때 우연히 시선을 내려 바닥을 바라보던 장천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
다.
무사가 걸어가고 있는 땅바닥 몇 군데의 흙이 젖어 있는 것이 눈에 띈 것이다. 주변
의 땅이 말라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는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 땅을 파 헤쳤다.'
그는 무사를 향해 외쳤다.
"발 밑을 조심하시오!"
"......!"
무사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였다.
파파파팍!
돌연 바닥의 흙이 튀어 오르며 다섯 줄기의 인영이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허공에
검광이 줄기줄기 뻗었다.
창을 든 무사의 이름은 오충(吳忠)이었다. 그는 녹녹한 위인이 아니었다. 즉각 반응
했다.
"핫!"
기합성과 함께 급히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간발의 사이로 허벅지에 이검(二劍
)이 스쳐 지나가며 선혈이 뿌려졌다.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며 벼락처럼 창끝을 움직
였다.
"으악!"
실로 전광석화 같은 창술이었다. 창끝은 세 인영의 몸을 여지없이 스치며 지나갔다.
참혹한 비명과 함께 자의인 세 명이 털썩털썩 쓰러졌다.
그 뿐이 아니었다. 왼손의 방패가 움직이더니 또 다른 자의인의 복부를 갈랐다. 날
카로운 톱니에 의해 자의인의 복부가 갈라지며 내장이 우두둑! 쓸려 나왔다.
"쥐새끼 같은 놈들!"
오충은 한쪽 발을 날려 마지막 한 명의 머리를 걷어차 버렸다.
퍽!
자의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머리가 으깨져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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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황천으로 가버린 것이다.
장천린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다. 저 정도면 백살대(百殺隊)의 아래가 아니다.'
이때 오충은 득의의 웃음을 흐렸다.
"흐흐, 감히......."
그때였다. 그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황은 급변했다. 그의 곁에 있는 나
무 위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덮쳐 내린 것이다.
쏴아아!
그것은 철그물(鐵網)이었다.
"억!"
오충은 급히 피하려 했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그물이 떨어지는 범위가 워낙 넓었
던 것이다. 아차 하는 사이에 그는 철그물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슈슈슉!
다시 나무 위에서 십여 줄기의 인영이 내리 꽂혔다.
"으아악!"
오충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그의 전신에 열 자루의 검이 박혀버렸다. 설사 초인이라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전신
에 열 자루 검이 박혔는데 어찌 살 수 있겠는가! 그는 사지를 경련 하다가 숨을 거
두고 말았다.
그의 동료인 강우(江羽)는 피를 토하듯 부르짖었다.
"오충!"
그의 눈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이... 쳐죽일!"
그는 도끼와 방패를 동시에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장천린은 급히 외쳤다.
"안되오!"
끼릿!
숲속으로부터 괴이한 금속음이 울렸다.
슈슈슈슉!
허공을 찢는 파공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강우는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그의 전
신에는 수십 개의 강전(强箭)이 박혀 버렸다. 그는 고슴도치가 되어버렸다.
"크으으......."
강우는 속절없이 허우적거리다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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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린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십여 명의 자의인들이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수중에 오구검을 들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당신이 용백군 대인이오?"
"그렇소."
장천린은 담담히 대답했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상황에 침착
하게 대응하는 것 뿐이었다.
자의인은 그를 노려보며 최대한 정중히 말했다.
"우리는 대인을 해치고 싶지 않소. 순순히 따라 오시오."
장천린은 내심 중얼거렸다.
'이들은 내게 살의를 품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 말만 믿고 무작정 따라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때였다. 멀리서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이 울려왔다.
'......!'
장천린은 폭음이 울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산등성이에서 화광이 충천하는
것이 보였다.
'화포다!'
장천린은 가슴이 철렁하고 말았다.
'옥류향이 있는 곳이다.'
이때 자의인이 화광이 치솟는 곳을 바라보며 음소를 흘렸다.
"후후, 과연 철마왕(鐵魔王) 사전주님이 만든 화포는 일품이군. 저 정도면 천군만마
도 불고기로 만들어 버리겠는걸."
다른 자의인도 감탄한 듯 말을 받았다.
"장관이야, 마침내 축제가 시작되었군."
장천린은 그만 전신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옥류향.......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려.'
자의인이 독촉했다.
"갑시다, 대인. 태전주께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오."
장천린은 결정을 내렸다.
'어쩔 수 없다. 이들의 무공은 먼저 인물들보다 한 수 위다. 모험을 걸다가는 개죽
음 당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이들을 물리친다 해도 다시 어떤 매복이 있을지도 모르
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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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다."
결국 장천린은 자의인들을 따라 움직였다.
두 번째 납치인 셈이다. 그는 도로 금월산을 향해 오르며 쓰디쓴 웃음을 입가에 머
금을 수밖에 없었다.
<2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