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장 재회(再會) (54/87)

제2장 재회(再會) 

장천린이 보광사를 나왔을 때, 사문도는 팔장을 낀 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천린은 그의 어깨를 쳤다. 

"뭘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사문도는 아! 하고 놀라더니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금진이란 소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장처린은 흠칫했다. 

"소진?" 

"그가 왔었습니다." 

장천린의 얼굴이 활짝 개었다. 

"소진이 돌아왔다고?" 

가슴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부금진은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준 바 있었다. 그를 생 

각하면 꾀주머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부금진이 떠난 이후로 그는 늘 허전한 느 

낌이 들곤 했었다. 

"지금 어디 있나?" 

"갔습니다." 

"갔다고?" 

"내일 중으로 태진궁으로 찾아 뵙겠다고 했습니다." 

"오!" 

장천린은 나직이 탄성을 발했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변했나? 이 년씩이나 못 보았는데 그 동안 무척 달라졌겠지?" 

사문도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제는 처음 만났는데 과거의 모습을 알 리가 없지요. 하나 대단히 미려한 모습이 

었습니다." 

장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년 전에도 아름다웠지. 미소녀처럼 말이야." 

사문도는 보광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곳의 일은 끝났습니까?" 

장천린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만족하게 됐네. 이제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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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도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보광사를 등지고 북경성을 향해 떠났 

다. 

한데 그들이 떠난 직후, 보광사의 담장 모퉁이로부터 그림자 하나가 홀연히 나타났 

다. 

그림자는 두 사람이 떠난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놀랍게도 그에게는 얼굴이 없었 

다. 아니, 얼굴에 탈을 쓰고 있었다. 초승달 모양의 눈구멍 두 개만 뚫려 있는, 덕 

지덕지 흰 칠이 조잡하게 칠해진 그런 탈이었다. 

탈을 쓴 위인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용백군, 의부는 널 죽이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내 목적 

을 위해서라도......." 

그는 그 자리에서 빙글 몸을 돌렸다. 

"당분간은 네가 그대로 살아있어 주는 것이 좋다." 

그가 한 바퀴 돌았을 때! 

놀랍게도 그의 의상이 바뀌었다. 회의가 청의(靑衣)로 감쪽같이 바뀐 것이다. 그는 

고개 돌려 보광사의 담을 바라보며 뇌까렸다. 

"해우... 대신 네가 죽어줘야겠다." 

힘없는 그의 음성에는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의 살기가 배어 있었다. 그는 손을 들 

더니 얼굴의 탈을 벗었다. 

한데... 드러난 그의 얼굴은! 

해우선사는 좌정한 채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그는 건성으로 염불하면서 깊은 상념에 잠겨들고 있었다. 반개(半開)한 눈까풀 사이 

로 보이는 눈동자가 이따금 흔들리고 있었다. 

문득 그는 눈을 뜨며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어차피 곪은 종기라면 일찍 터뜨리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 

그는 몸을 일으키며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허허... 애당초부터 피냄새 나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은 맡는 것이 아니었는데..... 

.." 

해우선사는 벽을 향해 걸어갔다. 벽에는 족자가 걸려 있었는데 족자를 가볍게 아래 

로 당기자 바로 옆의 벽면에 구멍이 나타났다. 구멍 속에 손을 넣은 그는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아미타불... 영원히 이것을 꺼내지 않게 되기를 바랬건만......." 

해우선사는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무겁게 중얼거렸다. 그러던 그의 눈빛이 갑자기 굳 

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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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 

그의 흰 눈썹 끝이 파르르 떨렸다. 

'지척에 다가오도록 느끼지 못했다니.......' 

해우선사는 빙글 몸을 돌렸다. 돌아서는 순간 그의 몸이 흔들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한 명의 청의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청수한 용모에 위엄이 물씬 

풍기는 노인이었다. 

해우선사는 합장을 하며 물었다. 

"아미타불... 시주는 뉘신지?" 

청의노인은 너털웃음을 쳤다. 

"허허헛! 우린 구면인데 새삼 물어볼 필요가 있소? 노선사." 

해우선사는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이곳까지 어인 일이시오? 엽시주." 

청의노인은 바로 금의위의 대영반인 엽천우였다. 그는 해우선사의 손에 들려있는 상 

자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노선사가 지니고 있는 그 물건을 가지러 왔소이다." 

해우선사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입을 벌렸다. 

"설마 시주가......." 

그의 눈에는 의혹이 가득 떠올랐다. 엽천우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흘렀다. 

"후후... 그 동안 백방으로 찾아 헤맸는데 선사께서 가지고 계신 줄은 미처 몰랐소 

이다." 

해우선사의 음성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미타불! 이제 보니 전하를 시해한 범인은 엽시주 그대였구려?" 

엽천우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물론. 연관이 있소." 

불현듯 해우선사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흉적이로고!" 

순간 합장했던 손이 일제히 떨쳐지며 웅후한 장력이 뻗어나갔다. 

우웅! 

"흐흐흐! 삼천불엽기(三千佛曄氣) 정도로는 날 어쩌지 못 할 것이다!" 

쾅!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엽천우의 손바닥이 순간적으로 뒤집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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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할 폭음과 함께 사방의 창문이 박살나 날아갔다. 

해우선사는 휘청거리며 뒤로 일 보 가량 물러났다. 반면 엽천우는 가볍게 어깨를 흔 

들었을 뿐이었다. 해우선사의 안색은 딱딱히 굳어졌다. 

츄릿! 

엽천우는 허리춤의 연검을 뽑았다. 백광(白光)이 승천하는 용처럼 허리춤에서 빠져 

나오는 듯했다. 그의 연검은 종잇장처럼 가늘어 바람에도 휘청거릴 정도였다. 

해우선사는 불호를 외치며 합장했다. 마주친 그의 손바닥이 담황색으로 변했다. 그 

를 본 엽천우의 입가에는 다시 가느다란 미소가 그어졌다. 

그는 연검을 중하단으로 늘어뜨린 채 방심한 듯 허허로운 자세를 보였다. 그것은 지 

극히 엉성해 보이는 자세였다. 

"갈!" 

해우선사는 노갈을 터뜨리며 장력을 뻗었다. 

우우웅! 

담황색 장경(掌勁)이 선방을 가득 메우며 회오리쳐 나갔다. 엽천우는 아직 검을 늘 

어뜨리고 있었고, 장경은 그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한순간 번뜩! 하고 백광이 반짝였다. 

"윽!" 

해우선사의 입에서 참담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뒤로 급격히 물러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의 앞가슴 승포가 일직선으로 찢어져 나가 있었다. 그 사이로 핏물이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해우선사는 눈을 부릅뜬 채 손가락으로 엽천우를 가리켰다. 

"그... 그 검법은......." 

엽천우는 여전히 검을 늘어뜨린 자세 그대로였다. 마치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는 

듯했다. 

"서래(西來)... 범음(梵音)... 달마제일검(達磨第一劍)......?" 

해우선사의 음성은 점점 잦아들었다. 엽천우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제법 안목은 있군. 선사." 

해우선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뜬 채 중얼거렸다. 

"오래 전 실전된 불문의 검법이... 악마의 손에서 재현되다니... 이럴 수는......." 

쿵! 

선방이 흔들렸다. 해우선사의 육중한 몸이 고목처럼 쓰러진 것이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불문의 숨은 고수 한 명이 어이없이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사백조님! 무슨 일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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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의 소음이 밖으로 흘러나갔는지 밖으로부터 누군가의 조심스런 외침이 들려왔다 

. 엽천우의 입가에 실낱같은 미소가 그어졌다. 그는 피묻은 연검을 해우선사의 승포 

에 문질러 닦으며 말했다. 

"아미타불... 아무 것도 아니니 상관 말고 물러가거라." 

아!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음성이야말로 영락없는 해우선사의 것이 아 

닌가? 

"참, 내일 저녁까지는 아무도 노납의 방에 들어와서는 안되니라. 알았느냐?" 

"알겠습니다. 사백조님." 

문 밖에서 공손한 음성이 들리더니 곧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갔다. 

엽천우는 무심한 눈으로 해우선사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선사, 내일 저녁에 올 손님을 관 속에서 맞이할 수는 없지 않겠소?" 

그는 기묘하게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집어들었다. 잠시 후 가볍게 어깨를 흔 

들자 그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침의 투명한 햇살이 태진궁의 후원을 비추고 있다. 화원의 꽃들이 앞다투어 꽃잎 

을 벌리며 현란한 향기를 토해내고 있다. 

"......." 

백연연은 소복(素服)을 입은 채 바퀴 달린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시선은 꽃을 향하고 있었으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저 방심한 듯이 망연히 동공을 열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꽃은 아름답다. 예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꽃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던가? 

실상 꽃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식물에 불과할 따름이다. 여인은 다르다 

. 여인의 아름다움을 꽃에 비유하곤 하지만 여인은 스스로 아름다움을 가꿀 줄 알 

뿐더러 누군가에게 자신의 미를 자랑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보아주는 이가 없어도 여인은 스스로의 미를 가꾸게 될까? 

꽃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가꾸어주는 이가 없다면 그 꽃은 저 

홀로 피었다 지는 들풀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연연... 너는 지금 존재할 가치가 있느냐?' 

백연연은 화원에 만개한 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서글픈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바퀴를 굴렸다. 혼자 힘으로 의자를 밀고 가기에는 가냘프기 

만한 그녀에게 벅찬 듯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그녀 주변에는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었다. 태진왕이 죽은 

후 그녀는 자신이 망망대해에 던져진 고주(孤舟) 같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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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새삼 태진왕의 생전 모습이 떠오르면서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그녀는 글썽이는 눈 

물을 훔칠 생각도 않고 느릿느릿 전각을 향해 들어갔다. 

이때,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눈길이 있었다. 

장천린이었다. 

그는 백연연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전각 안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 세상 누구도 저 여인의 슬픔을 위로하진 못할 것이다.' 

그는 주먹에 힘을 주었다. 

'저 여인을 아프게 만든 인물... 결코 용서치 않겠다.' 

그는 고개 들어 한동안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객사까지 걸어가는 동안 곳곳에 무장을 한 금의위와 동창의 고수들이 시종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감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씁쓸한 느낌을 금치 못했다. 

그가 막 한 채의 대전을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사문도가 나타나더니 공손히 보고했 

다. 

"형님, 부금진이란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오! 그래?" 

장천린의 얼굴은 활짝 밝아졌다. 

"가 보세." 

그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객사로 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사문도는 내심 질투심을 느꼈으나 곧 실소하고 말았다. 

'그 계집애 같은 작자에게 무슨.......' 

"소진이 용대인 님께 인사드립니다." 

부금진은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했다. 장천린은 그에게 달려가 덥석 손을 잡아 일으 

켰다. 

"소진! 이게 몇 년 만이냐?" 

장천린은 부금진을 뜨겁게 포옹했다. 그의 환대에 부금진은 콧날이 시큰해짐을 느끼 

며 얼굴마저 붉어졌다. 

"그 동안 연락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장천린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아니다. 네게 사정이 있었겠지. 어쨌든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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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새삼 부금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쾌활하게 말했다. 

"무척 많이 변했구나. 소년 티를 벗고 의젓한 청년 티가 나는구나." 

부금진은 이제 과거의 장난꾸러기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키가 부쩍 커졌으며, 태도 

도 의젓해졌다. 게다가 준수한 얼굴에는 풍류의 기질이 은은히 풍기고 있었다. 장천 

린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더욱 준미해졌어." 

"부끄럽습니다." 

장천린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 안으로 들어가자.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장천린은 부금진을 끌고 내실로 들어갔다. 사문도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래,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의자에 앉자마자 질문이 떨어졌다. 부금진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연후 아버님과 함께 변경을 다녀왔습니다. 너무 멀리 

가는 바람에 미처 연락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다시 중원에 돌아온 지 불과 한 달밖 

에 안되었습니다. 뭘 별로...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왠지 부금진은 말꼬리를 숨기는 듯했다. 장천린은 내심 중얼거렸다. 

'흠, 속사정을 말하기 싫은가 보군.' 

장천린은 본래 남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굳이 추궁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화제 

를 돌렸다. 

"얘기는 천천히 듣기로 하지. 우선 두 사람이 인사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 

부금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저 분 사형님의 소문은 귀가 따갑게 들었지요. 자칫 소제가 겁없이 까불다 그만 

세상을 하직할 뻔했지요." 

장천린은 어리둥절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제 부금진과 사문도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지 못했던 것이 

다. 부금진은 히죽 웃으며 비로소 어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했다. 

"하하하하핫......!" 

장천린은 대소를 터뜨렸다. 사문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제도 저 친구의 손에 하마터면 당할 뻔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비도술이었습니다. 

부금진은 양손을 흔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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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 같았으며 몰라도 생사집혼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오히려 절 조롱하는 것 

으로 알겠습니다." 

부금진의 표정이 워낙 익살스러웠기 때문에 방안의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 졌다. 

그러나 장천린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으나 여전히 태진왕의 죽음으로 인해 가슴 한 

구석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석양 무렵. 

보광사로 향하는 관도(官道)를 세 필의 말이 나란히 달렸다. 마상에는 장천린과 사 

문도, 부금진이 타고 있었다. 삼인은 별로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달렸다. 

장천린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해우선사가 내게 보여준다는 것은 전하께서 작성한 비밀 서류일 것이다. 그것을 노 

리는 부류는 많다. 그것이 그 자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황실의 질서와 기강은 크 

게 어지러워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조급한 마음이 들어 좀 더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에 전면을 바라 

보았다. 순간 그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삼십여 장쯤 떨어진 곳에 한 그루 고목나무가 있었다. 

나무 아래 거지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남루한 차림의 인물이 죽립을 눌러쓴 채 주저 

앉아 무엇인가를 먹고 있었다. 보자기에 싸인 음식물은 떡인 듯했다. 

'.......' 

장천린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죽립인은 어찌 보면 걸인 같고, 어찌 보면 강호인 

같았다. 

마침내 세 필의 말은 고목나무 아래에 다다랐다. 그들이 막 나무 아래를 지나치려 

할 때였다. 

"거기 계집애 같은 사내아이야! 잠깐 말에서 내려봐라." 

홀연히 들려온 소리는 죽립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부금진은 그 말을 듣고 눈살 

을 찌푸렸다. 

세 사람은 말을 세웠다. 죽립인은 그들을 바라보며 괴소를 흘렸다. 

"흐흐흐! 노려보는 모습이 깨물어 주고 싶도록 귀엽구나. 흘흘! 진짜 사내인지 바지 

를 한 번 내려보고 싶어지는군?" 

부금진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실로 엄청난 모욕을 받은 것이다. 곁에 있던 사문도는 

눈살을 찌푸리며 냉랭하게 말했다. 

"친구, 지금 시비를 거는 것이오?" 

죽립인은 한 술 더 떴다. 

"응? 웬 아이가 또 끼어 들어? 너는 기생의 기둥서방쯤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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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날씨가 더우니까 가끔 미친놈도 다 있군." 

사문도의 장갑 낀 손이 움직이려 했다. 한데 이때 죽립인을 자세히 바라보던 부금진 

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장천린을 향해 말했다. 

"용대인, 저 거지영감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천린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누굴 말하는 거냐? 소진." 

"헤헤! 욕심 많고 심술 많고 욕 잘하고 술 잘먹고 계집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거북이 

사촌영감 단위제 어른하고 비슷하지 않습......." 

부금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죽립인이 벌떡 일어서며 고래고래 고 

함쳤다. 

"듣자듣자 하니 못 참겠다! 이 꼬마 놈! 감히 이 단어른을 그렇게 욕할 수 있단 말 

이냐?" 

휙! 

하고 죽립이 날아갔다. 그 바람에 죽립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과연 단위제였다 

"하하하하! 단도독님!" 

마상에서 부금진의 몸이 솟구쳤다. 단위제는 두 팔을 벌렸고, 부금진은 그의 품에 

담쑥 안겼다. 두 사람은 서로를 굳세게 포옹했다. 

"헤헤! 단도독님!" 

"이놈! 용서 못한다. 버릇없는 꼬마 놈!" 

단위제의 음성은 비록 거칠었으나 분명 기쁨이 충만 되어 있었다. 온갖 기행과 괴행 

을 일삼아온 단위제!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한편 장천린과 사문도도 황급히 마상에서 뛰어내렸다. 

"단도독......!" 

장천린의 음성도 약간 격앙되어 있었다. 

"용대인!" 

단위제의 음성도 은근히 떨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여러 차례 흔들 

어댔다. 곧이어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껴안았다. 

사나이의 포옹! 그 사이로 뜨거운 우정이 넘치고 있었다. 

재회의 기쁨은 컸다. 

일행은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보광사로 동행했다. 말은 고목나무 아래 버려두고 도 

보로 걸어갔다. 

장천린은 사뭇 궁금한 듯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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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 동안 어디 가 계셨소? 그리고 그 모습은 또 어떻게 된 것이고?" 

단위제는 동창의 대영반이란 지고무상한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기행을 일삼 

는다 해도 그는 늘 단정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 의외 

였다. 

단위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꽤 심각하게 말했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생의 고뇌에 대해 느끼던 중이었습니다." 

부금진이 이죽거렸다. 

"생이 아니라 술에 대한 고뇌겠지요." 

단위제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잡아먹을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놈! 어른이 말하는데 끼지 마라." 

부금진은 혀를 쏙 내밀다가 그의 표정이 지난날과는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얼른 표정을 바꾸어 버렸다. 아닌게 아니라 단위제의 미간에는 그늘이 드리 

워져 있었다. 

"아무튼 노부의 문제는 사적인 것이니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겠소이다. 그 보다는... 

...."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사흘 전 선화(宣化)에 있던 중 전하의 승하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런 

데 이런 꼴로 태진궁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망설였지요. 더욱이 왕부의 분위기가 심 

상치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장천린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러던 차 용대인께서 태진궁에서 나오시는 것을 보고 먼저 와 기다리던 중이었습 

니다." 

단위제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대체 전하께서 어찌 그리 쉽게 돌아가셨단 말이오?" 

그의 음성에는 분노가 실려 있었다. 

장천린은 탄식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단위제는 설 

명을 듣는 동안 몇 차례나 안색이 변하곤 했다. 이윽고 얘기가 끝나자 그는 침묵에 

빠진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장천린은 한 가닥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단위제의 탁월한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건에 대한 분석력과 추리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가 나타남으로 

써 미궁에 빠진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든 것이었다. 

그는 단위제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사문도와 부금진 

도 동감인 듯 조용히 걷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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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야심한 시각에 보광사의 담장을 소리없이 뛰어넘는 사인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장 

천린 일행이었다. 

해우선사의 선방 앞에 다다른 장천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코끝에 희미 

한 피비린내가 풍겨왔기 때문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더구나 선방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지 않은 

가? 해우선사의 청력으로 미루어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 

로 입을 열었다. 

"선사......." 

그러나 선방 안에는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장천린은 선방 문을 열어 젖혔 

다. 

"아......!" 

그는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 

달빛이 선방 안으로 흘러들었다. 달빛 아래 쓰러져 있는 것은 예상대로 해우선사의 

시체였다. 장천린은 흡사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럴 수가......!"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그와 담소했던 해우선사였다. 더욱이 무공이 지고무상한 경지 

에 이른 그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었을 줄이야! 

장천린은 일시지간 마음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한편 단위제는 벌써부터 특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침착한 표정으로 예 

리하게 선방 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번뜩이는 시선으로 선방 안의 먼지 한 점까지 

놓치지 않고 살펴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눈에 이채가 솟았다. 그는 한쪽 벽에 걸려있는 족자를 향해 걸어가더 

니 서슴없이 족자를 잡아당겼다. 

족자 옆의 벽에 구멍이 나타났다. 

"음!" 

단위제는 신음을 흘리며 구멍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속에 아무 것도 없음을 확 

인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뒷짐을 지더니 방안을 서성거렸다. 

그것은 그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보이는 습관이었다. 물론 그 순간에도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방바닥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문득 그는 허리를 숙이더니 바 

닥에서 무엇인가를 주웠다. 

그것은 한 가닥의 푸른 실오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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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제는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실오라기를 품속에 잘 간직한 후 돌아서 해우선사의 시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해우선사는 엎어져 있었는데 바닥에는 말라버린 핏자국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단위제는 사문도에게 지시했다. 

"문도, 상처를 좀 살펴봐 주게." 

사문도는 군말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해우선사의 몸을 똑바로 눕히자 그를 

죽게 한 치명상이 가슴에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문도는 무기의 전문가였다. 어떤 무기든 그 특성을 상세히 알고 있었으며, 상처만 

보고도 어떤 무기에 의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었다. 그는 해우선사의 가슴에 나있 

는 상처를 조사했다. 

그의 안색에 미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어떤가?" 

단위제의 물음에 그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무서운 검법에 당했습니다. 단 일초에 가슴 부위의 혈맥이 단절되었습니다. 수법으 

로 미루어볼 때 당대에서 손꼽히는 고수의 솜씨임이 분명합니다." 

"어떤 검법인가?" 

"이것은 북파류(北派流)입니다. 더욱이 상처를 깊이 내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사도의 

검법이 아니라 정도(正道)의 검법에 가깝습니다." 

단위제는 외외인 듯 눈을 크게 떴다. 

"정도라구......?" 

이때 단위제는 해우선사의 옷자락에 묻어있는 피를 보고 눈썹을 꿈틀했다. 

"검에 묻은 피를 닦았군." 

그는 승포에 묻은 핏자국을 자세히 관찰한 후에 중얼거렸다. 

"넓이가 한 치 두 푼밖에 안 되는 종잇장같이 얇은 연검(軟劍) 종류로군." 

그의 추리는 계속 되었다. 

"연검을 쓰는 정도의 검의 달인이라면 그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 더욱이 해우선사를 

일검에 죽일 정도의 실력자라면.......' 

그는 범인의 윤곽이 잡히는 듯했으나 여전히 안개 속을 더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때, 부금진의 안색이 변하고 있었다. 

그는 해우선사의 상처를 노려보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 듯했다. 

"형님! 여기를 보십시오." 

사문도가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흥분한 음성을 발했다. 그의 손가락은 해우선사의 

몸 아래 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장천린은 그 곳을 바라보다 안색이 굳어지고 말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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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선방의 바닥에 피로 다급하게 쓴 글씨가 보였다. 

......엽(葉)...... 

해우선사가 죽기 직전 혼신의 힘을 다해 남긴 글자는 장천린의 가슴이 커다란 충격 

을 안겨 주었다. 

그는 태진왕이 해우선사에게 준 서찰 속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린 것이다. 

'전하는 당신이 죽는다면 가장 가까운 측근의 사인 중 한 명의 짓일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장천린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엽천우! 그 자의 짓이란 말인가!" 

부지중에 외친 장천린의 말에 중인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장천린의 두 눈은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는 으스러져라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 

다. 

이때였다. 밖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백님. 제자 공현(空玄)입니다." 

그것은 노승의 음성이었다. 선방 안에 있는 사인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단위 

제는 급히 전음으로 말했다. 

'지금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용대인.' 

장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사인은 창문을 통해 소리없이 빠져나갔다. 하 

나같이 신출귀몰한 동작이었다. 

그들이 막 선방에서 십여 장쯤 벗어났을 때, 누군가의 공포에 찬 외침이 들려왔다. 

"사... 살인이다! 사백님께서 돌아가셨다......!" 

태진궁은 삼엄한 경비에 싸여 있었다. 궁 내외는 상하인을 막론하고 접근이 금지되 

고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멈춰라!" 

"서라!" 

친왕전을 경비하던 금의위의 고수들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사인을 발견하고 호 

통쳤다. 

사인은 바로 장천린과 사문도, 부금진과 단위제 등이었다. 

장천린의 안색은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분노의 빛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금의위의 고수들은 경계를 풀며 아는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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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용대인이 아니십니까?" 

장천린은 싸늘하게 말했다. 

"그렇다. 엽천우를 만나러 왔다." 

우두머리인 듯한 금의위 고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장천린의 말투가 무척이나 거슬렸 

던 것이다. 

"아니 되오, 대인. 이곳은 현재 출입이 금지되어 있소이다." 

장천린은 냉소했다. 

"흥! 안되면 무력으로라도 들어가야겠다. 비켜라." 

일이 이쯤 되자 금의위 고수들은 사태가 이상함을 느낀 듯 일제히 무기를 꺼냈다. 

"더 들어오면 척살하겠소." 

장천린은 살기 띤 음성으로 말했다. 

"문도, 길을 열어라." 

사문도의 입가에 괴이한 웃음이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는 앞으로 나서며 음산하게 말했다. 

"금의위의 고수 나리들, 형님께서 길을 열라 하셨다. 귀가 뚫려있다면 어서 비켜라. 

"이런... 건방진 놈!" 

금의위 고수들은 안색이 퍼렇게 질린 채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무기를 치켜세운 

채 일전을 불사할 기세를 보였다. 

한편, 단위제는 장천린을 바라보며 내심 고개를 젓고 있었다. 

'좋지 않다. 용대인이 지나치게 흥분하셨구나.'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지켜보기로 했다. 

"못 비킨다면 내가 비키게 해주마!" 

사문도의 입에서 간담이 써늘해지는 외침과 동시에 웅후한 파공성이 울렸다. 그가 

쌍장을 벼락같이 떨쳐낸 것이다. 

금의위 고수들은 일제히 도검을 휘두르며 그의 진입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사문도가 누군가? 무림을 공포에 떨게 한 생사집혼이었다. 그의 쌍장은 단숨 

에 금의위의 고수 다섯 명의 병기를 한쪽으로 쏠리게 했다. 

"흐흐! 얌전히 길을 터라!" 

펑!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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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금의위 고수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날아갔다. 뒤에서 장천린의 가라앉 

은 음성이 들렸다. 

"죽이지는 마라. 문도." 

"염려 마십시오. 형님." 

사문도는 길이 트이자 앞장 서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멈춰라!" 

대문 밖의 소란을 들은 듯 금의위의 고수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다시 길을 막았다. 

사문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펑! 꽈르릉! 

그가 쌍장을 휘두를 때마다 길을 막던 고수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사문도는 성큼성큼 걸어가며 앞을 막는 자들을 닥치는 대로 날려버렸다. 

그는 마치 전신(戰神)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창을 낚아채 한 바퀴 원을 그리면 상대의 병기가 그대로 썩은 나뭇가지처럼 잘리며 

날아가곤 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무공이었다. 아무도 그의 앞에서 이초(二招) 

이상을 펼쳐 보지도 못했다. 

그의 뒤를 따르던 단위제는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못 본 사이 문도의 무공은 더욱 고강해졌구나.' 

잠시 후 일행은 한 대전의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은 친왕전의 지하밀부로 태진왕의 

유체가 안치된 곳이었다. 

지하로 내려가자 좁은 통로에서 금의위 고수들이 필사적으로 진입을 막았다. 그러나 

사문도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저지선이 와해되어 버렸다. 

마침내 그들은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석문(石門)으로 막혀져 있었다. 문 

득 장천린이 앞으로 나섰다. 

"물러서라. 문도. 내가 석문을 깨겠다." 

그 말에 사문도는 물론 단위제와 부금진도 의혹을 느꼈다. 

'저 석문은 두께가 적어도 한 자 이상인데 대인께서 어떻게 하려고......?' 

그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장천린을 바라보았다. 

장천린은 쌍장을 들어 가슴 앞에 모으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좌수와 

우수가 각각 홍청(紅靑)의 색을 띄우는 것이 아닌가? 

우우웅....... 

주위의 공기가 무형의 음파를 일으키며 회오리쳤다. 

"타!" 

꽝... 꽈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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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할 일이었다. 장천린이 쌍장을 뻗는 순간 굉음과 함께 거대한 석문이 박살나 버 

리는 것이 아닌가! 

일행은 크게 놀라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실상 장천린은 처음으로 태마경(太魔經)에 기재되어 있는 쌍극마공(雙極魔功)이란 

마공을 펼친 것이었다. 

통로를 가득 메웠던 자욱한 흙먼지가 가라앉고 안쪽의 광경이 드러났다. 그곳은 하 

나의 넓은 석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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