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장 검법 수행자 (60/87)

제8장 검법 수행자 

막부산(幕阜山). 

강서성(江西省)에 위치한 천하의 명산으로 풍광이 수려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산로에 두 필의 말이 나타났다. 

마상의 이인은 모두 죽립을 쓰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헌헌장부였으나 다른 한 명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왜소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장천린과 천사예였다. 천사예는 줄곧 남장 차림이었다. 

이 개월 전, 북경을 떠나 구룡장원으로 돌아온 장천린은 곧바로 북경으로부터 날아 

온 비보(悲報)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황실의 일은 그가 관여할 성질이 아니었다. 또한 

존경했던 태진왕의 죽음으로 인해 그나마 연결되어 있던 황실과의 연마저 끊어진 셈 

이었다. 그는 비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이 그를 휘청거리게 했다. 

신산의 죽음! 

정도무림의 구심점이었던 신산 제갈사의 죽음은 실로 충격이었다. 북해 사태청을 무 

너뜨린 북해(北海)에서 천의 뇌를 지녔다는 그 자신도 생의 종지부를 찍고만 것이다 

신산의 죽음은 전무림을 경동시켰다. 아울러 조화성의 야욕을 억제해 온 신산의 존 

재가 사라짐으로써 정도무림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신산이 죽은 후, 지금까지는 비교적 은인자중했던 조화성이 드디어 본격적인 움직임 

을 보인 것이다. 그들은 무림제패의 야욕을 정면으로 드러낸 채 곳곳에서 피의 행진 

을 벌이기 시작했다. 

무림은 일대혼란에 빠져들고 말았다. 

사태가 점점 더 겉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치닫자 장천린은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 

르렀다. 

그의 결심이 무엇인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열흘 전 그는 구룡장원을 출발했다 

. 떠나기 전 수하들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내렸으며 수행자는 오직 남장여인 천사예 

뿐이었다. 

열흘 후, 그는 막부산에 당도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막부산역에 들어서자 공기는 한층 싱그러워졌으며 하늘은 더욱 높아 보였다. 

"아... 정말 좋은 날씨예요. 하늘이 너무나 맑아요." 

천사예는 연신 탄성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는 몹시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장천 

린은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입을 굳게 다문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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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예는 그의 표정이 굳어있는 것을 보고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대인님." 

장천린은 대답대신 그녀를 바라보았다. 천사예는 고개를 떨구며 물었다. 

"막부산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요." 

"어떤 분을......?" 

"한(閑) 선생이란 분이오." 

천사예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 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장천린은 그저 빙긋 웃어 보였을 뿐 묵묵히 말을 몰았다. 지금 그는 한 가지만을 골 

똘히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얼마쯤 가자 산로가 험해져 더 이상 말을 탈 수가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걸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선인대(仙人臺)는 막부산의 명소로 하늘을 향해 깎아지른 듯한 수직벽이었다. 

선인대 아래 당도한 장천린은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 들어보니 도끼로 찍어낸 듯이 

아찔한 절벽이 이백 장 이상 수직으로 솟아 있었다. 

'이곳에 있다고 했는데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장천린은 선인대를 올려보며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기왕 나선 길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뜻을 달성하고 말리라.' 

한편 천사예는 몹시 힘든 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공을 익 

히지 않은 여인의 몸으로 이곳까지 온 것만 해도 체력이 크게 소모됐을 것이다. 

장천린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사예, 날 꼭 잡으시오." 

장천린은 그녀의 허리를 한 손으로 껴안은 채 허공으로 신형을 날렸다. 

"어멋!" 

천사예는 깜짝 놀라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휙휙! 

귓전으로 바람소리가 스쳐갔다. 천사예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장천린 

의 팔에 안긴 순간 몸이 붕 떠올랐고, 곧바로 허공으로 빠르게 솟구쳐 오른 것이다.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그녀는 살며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세...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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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발 아래로 까마득한 절벽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허공을 날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늘을 날다니... 용대인께서 이런 신기를 부리시다니.......' 

그녀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 

휙휙! 

장천린은 그녀를 안은 채 선인대를 오르고 있었다. 한 번에 사오 장을 솟구쳤으며 

힘이 다할 때마다 발끝으로 절벽을 차고 다시 올라갔다. 그렇게 오르기를 몇십 차례 

나 했을까? 

"다 왔소, 사예. 이제 눈떠도 되오." 

두려움에 눈을 꼭 감고 있던 천사예는 조심스럽게 눈을 떠보았다. 과연 허공이 아닌 

바닥에 내려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어머!" 

그녀는 두 손으로 장천린의 목을 꼭 껴안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 

어 떨어졌다. 

"하하, 방금 사용한 것은 경신술(輕身術)이란 것이오. 너무 놀랄 것 없소." 

장천린은 낭랑하게 웃으며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선인대 정상이었다. 아래서 볼 때는 칼로 깎은 듯이 날카롭고 뾰 

족해 보였으나 뜻밖에도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평평한 분지였으며 부드러운 초지(草地

)로 형성되어 있었다. 

방원 삼 마장쯤 되는 분지 한가운데에는 모옥(茅屋)이 그림처럼 지어져 있었다. 

장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이 한선생의 거처이겠구나.' 

그는 분지를 가로질러 모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모옥은 조촐한 규모로 세상을 등지고 사는 은자(隱者)의 처소다워 보였다. 모옥 앞 

에 당도한 장천린은 가볍게 기침한 후 입을 열었다. 

"계십니까?" 

모옥으로부터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안에 아무도 안 계시오?" 

다시 한 번 불러봤으나 역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장천린은 의아한 느낌이 들었 

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방문을 열어 보았다. 

방안을 들여다 본 그는 짧은 순간에 판단을 내렸다. 

'방안에 먼지 한 점 없는 것으로 미루어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하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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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은 바닥이나 벽, 천장이 모두 나무로 되어있어 은은한 

목향(木香)이 아취를 풍기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등나무 의자가 있었다. 장천린은 등의자에 앉았다. 그는 이미 행동 

을 결정해 둔 것 같았다. 

한편 뒤따라 들어온 천사예는 불안한 듯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장천린이 무 

슨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스릉! 

장천린은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았다. 천사에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팍! 

장천린은 검을 수직으로 세워 탁자에 깊숙이 꽂았다. 천사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 

는 것 같았다. 

'대체 어쩌시려고......?' 

그녀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으나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열흘이 넘는 동안 

줄곧 그와 함께 행동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장천린에 대해 흠모하면서도 두려운 마 

음을 지니고 있었다. 

장천린은 어떨 때는 다정한 듯하지만 어떨 때는 얼음장같은 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 

래서 그녀는 끊임없이 그를 훔쳐보면서도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힘이 들 

었었다. 

검을 탁자에 꽂아둔 장천린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방안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천사예는 자신의 숨소리조차 의식이 될 정도로 조바심이 

났지만 감히 움직이지도 못한 채 창가에 기대서서 기다렸다. 최소한 그가 먼저 입 

을 열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만큼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실상 장천린은 신산의 죽음을 접한 그 날 중대한 결심을 했다. 실로 오랫동안 망설 

여오던 일에 대해 단안을 내린 것이다. 

장천린은 엽천우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무림일통(武林一統)! 

영웅호걸과 거마효웅들이 난무하는 무림계를 통일시키겠다는 엄청난 결심을 굳힌 것 

이다. 

그러나 대업을 이룩하기에 그의 힘은 너무나 미미했다. 그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 무림일통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강해져야 했다. 아니, 그는 천하 

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가 돼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네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현재로써는 

그 자신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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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번째 계획은 이곳 막부산에 은거하고 있는 한선생(閑先生)을 찾는 것이었다. 

초당(草堂)의 장님노인 낙일검 유겸승의 말을 참고로 그는 한선생을 만나기 위해 막 

부산에 온 것이었다. 

저벅저벅....... 

문득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모옥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장 

천린은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발자국 소리가 둔탁하고 평범하다. 저 소리로 미루어 무공을 익힌 자의 발걸음은 

아니다. 설마.......' 

그는 혼란을 느꼈다. 

그때 발걸음이 멈추며 모옥의 문이 열렸다. 

문 앞에 나타난 자는 칠순 가량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백발이 어지럽게 헝클어 

져 있었으며 얼굴은 온통 주름살 투성이였다. 노인은 허름한 마의(麻衣)를 입고 있 

었으며 허리에는 호리병을, 옆구리에는 약초바구니를 매달고 있었다. 

그는 아직 방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듯 흥얼거리며 들어왔다. 그러다 

장천린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그의 주름진 눈은 곧 탁자에 꽂혀있는 검을 발견하고 

더욱 작게 찌부러졌다. 

"공자는 뉘시기에......?" 

그는 더듬거렸다. 말투로 미루어 영락없는 촌로(村老)였다. 

장천린은 담담히 물었다. 

"선인대에서 사람이 사는 곳은 오직 이곳뿐이오?" 

촌노는 여전히 더듬거렸다. 

"그렇소만......." 

"이 모옥에 노인장 말고 또 누가 살고 있소?" 

촌노는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 늙은이 혼자 살고... 있습죠." 

"그럼 노인장이 한선생이시오?" 

노인의 두 눈 깊숙한 곳으로부터 한 가닥 이채가 찰나적으로 솟았다 사라졌다. 

"그건... 늙은이가 그냥 붙여본 이름이오. 그냥 한가하고 일이 없어서......." 

장천린은 안색을 차갑게 굳히며 말했다. 

"나는 검의 수업자요. 천하를 유랑하며 각처에 있는 검법의 달인을 찾아다니며 비무 

(比武)를 하고 있소이다." 

자칭 한선생이란 노인은 성긴 눈썹을 떨었다. 

"한선생의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온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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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생은 문득 어이없다는 듯이 너털웃음 쳤다. 

"허허... 노부가 칼을 만진 것은 오직 반찬을 만들 때뿐이오. 검법의 달인이라니 그 

무슨 말씀이시오?" 

장천린은 여전히 차갑게 말했다. 

"칼이 아니라 검이오." 

한선생은 눈을 멀뚱거리며 탁자에 꽂힌 검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노부는 검을 만져본 적이 없소." 

장천린은 몸을 일으켰다. 

"나는 낙일검 유겸승이 헛소리하는 사람이라고는 믿지 않소." 

다음 순간 탁자에 꽂힌 검을 뽑은 그는 전광석화처럼 노인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쳤 

다. 

슉! 

검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노인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유노인, 당신의 말이 거짓이었다면 한 명의 죄 없는 노인이 덧없이 죽을 것이오.' 

한선생의 안면이 굳어졌다.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은 그저 섬광이라 느낄 정도 

로 빨랐다. 도저히 회수하거나 방향을 돌릴 길이 없을 정도였다. 갑자기 그는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캉! 

장천린의 검은 옆으로 퉁겨 나갔다. 놀랍게도 한선생이 그의 검을 쳐낸 것은 옆구리 

의 바구니에 담겨져 있던 약초가지였다. 

장천린은 검을 늘어뜨리며 싱긋 웃었다. 

"유노인은 과연 거짓말을 하지 않았군." 

한선생은 그를 노려보며 냉엄하게 물었다. 

"공자 앞의 인물이 만일 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시체가 되어 뒹굴었을 것이오." 

장천린은 담담히 말했다. 

"나는 내 판단을 믿소. 정체를 숨기려는 한선생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소. 이해해 주시오." 

한선생은 눈을 가늘게 하며 물었다. 

"무슨 일로 노부를 찾아온 것이오?" 

장천린은 진지하게 말했다. 

"말씀드린 대로 소생은 검의 수업자요. 한선생 같은 검의 달인과 비무하기 위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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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다." 

한선생은 잠시 그를 응시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노부는 검을 놓은 지 이미 오래 되었소." 

장천린은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검은 다시 쥐면 되는 것이오." 

"노부는 그럴 생각이 없소." 

"그렇다면 원하게 만들어 드리겠소." 

슉! 

장천린은 들고있던 검으로 한선생의 목을 찔러갔다. 가히 번개처럼 빠른 공격이었다 

카캉! 

이번에도 한선생은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약초바구니로 쳐낸 것이다. 한선생의 얼 

굴에는 분노의 빛이 어렸다. 

"공자는 정말 무례하오. 어찌 은둔한 사람에게 억지로 검을 쥐게 하려는 것이오?" 

장천린은 대답 대신 재차 공격을 하겠다. 이번에는 더욱 빨랐다. 검풍 소리도 없었 

고 그저 섬광이 번쩍했다고 느꼈을 뿐인데 벌써 한선생의 삼대사혈을 찔러가고 있었 

다. 

그의 공격은 잔인하고 혹독했다. 한선생의 안색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장천린이 사용한 검법은 자부경에 나오는 것으로 혈랑십이검(血狼十二劍)이었다. 

파츠츳! 

일단 공격이 시작되자 검광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갔다. 만일 평범한 무림인이었다 

면 벌써 난자 당해 쓰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선생은 여전히 옷자락 하나 베어지지 

않은 채 검광 속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마치 갈대가 바람 따라 흔들리듯 휘청휘청 하면서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모두 

피해내고 있었다. 

장천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이 노인은 한 걸음도 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모두 피해버렸다.' 

그는 자존심이 상해 검법을 바꾸었다. 

스슷....... 

느릿느릿하게 검이 움직였다. 방금 전의 쾌검술과는 정반대 되는 만검(晩劍)이었다. 

검의 변화가 너무나 느려 검이 어느 쪽으로 뻗어나갈지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노전익에게 배운 만검술이었다. 

한선생의 안색이 싹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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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신검(神劍) 노전익의 제자인가?" 

장천린은 대답 대신 천천히 검 끝을 움직였다. 한선생의 눈썹이 경련했다. 그는 시 

선을 장천린의 검 끝에서 떼지 않은 채 버럭 외쳤다. 

"진정 살기(殺氣)를 품었단 말인가?" 

번... 쩍! 

만중쾌(晩中快). 극도의 느림 가운데 가공할 쾌검이 작렬했다. 한선생의 손에 들린 

약초바구니도 거의 동시에 벼락처럼 움직였다. 

파파파팍! 

어지럽게 약초가 날아갔다. 장천린의 검이 약초바구니를 관통한 것이다. 그러나 한 

선생은 여전히 제 자리에서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장천린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음. 무서운 고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어떤 고수도 이 노인보다는 아래다. 엽천 

우보다도 상수다.' 

장천린은 검을 움직이며 염두를 굴렸다. 

'이 노인의 실력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구나.' 

장천린은 호승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상인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무 

림인이 되기를 거부했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무인 특유의 패기가 피어오르 

고 있었다. 

장천린이 익힌 무학의 장기는 장공(掌功)이었다. 태마경(太魔經)과 자부경 상의 무 

공도 대부분 신공을 바탕으로 한 장법이나 수공(手功) 등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 

에서는 그런 무공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스......! 

그는 검을 미간(眉間)의 중심으로 들어올리며 침중하게 말했다. 

"소문 이상으로 강하시군. 한선생, 정식으로 비무를 부탁하오이다!" 

한선생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공자가 아무리 무공이 강하다 해도 연륜을 속일 수는 없네. 공자의 만검은 노전익 

의 것을 모방했으나 그 기도 면에서는 노전익과 비할 수가 없네." 

장천린은 억양이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연륜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소." 

츠츳......! 

그의 검 끝이 미간에서 점차 위로 올라갔다. 검극은 천중(天中)을 짚었다. 

-검을 움직이는 것은 한정된 변식(變式)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검이 

움직이고, 검이 움직이면 마음이 동(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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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왕검십결해(王劍十訣解) 중 제 일해였다. 

장천린의 마음은 짧은 순간에 명경지수처럼 맑아졌다. 그는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점차 그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검 끝이 움직였다. 그는 곧 대지(大地)가 되 

고 자연이 되었다. 

처음으로 한선생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의 눈에는 경이로움이 떠올랐다. 

그 순간 검이 움직였다. 그것은 다만 움직였다고 밖에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빛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찰나적으로 한선생은 뒤로 삼 보나 물러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 옷자락 

이 베어져 나갔다. 

장천린은 검을 거두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최선을 다했다. 한데도 상대를 겨우 삼보밖에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장천린은 한선생의 무공을 자신의 생각보다 다시 한 단계 위로 올려놓아야 했다. 이 

때 한선생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공자의 검법은 최상이네. 십 년이 지나지 않아 능히 무적으로 군림할 것이네." 

장천린은 검을 거두며 말했다. 

"나는 시간이 없소이다." 

장천린은 정중히 포권하며 말했다. 

"한선생, 검에 대한 논리를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한선생은 흠칫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십 년의 기간을 십 일로 단축시켜 주십시오." 

한선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검은 장난이 아니네." 

장천린은 더욱 침중하게 말했다. 

"나 역시 장난이 아닙니다." 

이름 모를 차였다. 

심산에서 캔 약초를 잘 말려 덖은 후 알맞은 온도의 물에 달인 차로 청아한 향기가 

일품이었다. 장천린은 한선생이 직접 끓인 차를 함께 마셨다. 그는 이 차가 용정차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예는 두 사람이 있는 방 한쪽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어째서 그토록 빠른 기간에 검법의 완성을 꾀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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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생의 질문에 장천린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난세(亂世)를 관류하는 시간은 결코 날 

위해 멈춰주지 않습니다." 

한선생은 한숨을 쉬었다. 

"공자, 자네의 패기는 놀라우나 검이란 자네 말처럼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 

니네. 하나의 검법을 배운다는 것은 짧은 시간에 가능할는지도 모르네. 하나 그것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려면 연마하는데 장구한 세월을 소비해야만 하네." 

"한선생." 

장천린은 담담하면서도 확신이 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 모든 것은 소생이 처리할 문제입니다. 한선생께서는 소생에게 길만 가르쳐 주시 

면 됩니다." 

그의 태도는 완강했다. 

"허허허......." 

한선생은 나직이 웃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이 묻는다. 

"참, 이제 보니 아직 자네 이름을 물어보지도 못했군." 

장천린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용백군이라 합니다." 

"용백군!" 

한선생의 눈빛이 괴이하게 번뜩였다. 그의 눈빛은 찰나간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장천린은 그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한선생은 낮게 신음하며 물었다. 

"이 난세를... 자네가 수습하겠다는 것인가?" 

"노력해 볼 작정입니다." 

"자신이 있는가?" 

장천린은 역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다만 노력할 뿐입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습니다." 

한선생은 신비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너무 신비하군." 

"한선생은 제가 예상한 것보다 열 배나 더 신비합니다." 

"허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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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생은 낮게 웃음을 흘린 후 말했다. 

"노부는 평생 검에 있어 후계자를 두지 않았네. 하나 이번에는 자네와 한 번 검론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 

장천린은 고개를 숙였다. 

"사사를 부탁드립니다." 

"허허... 자네와 나와의 검에 대한 실력 차이는 거의 백짓장 한 장 차이일세. 서로 

다른 방면이고 연륜이 틀리기 때문이네." 

"......." 

"하나 이야기하다 보면 자네도 얻는 바가 조금은 있을 것이네." 

장천린은 빙긋이 웃었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허허... 그렇게 되기를 바라겠네." 

검도가 일정한 수위에 오른 고수에게 있어 검론은 직접 검을 연마하는 것 이상으로 

검의 진경을 이루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특히 왕검십결해의 오묘한 검리(劍理)를 

완전히 깨우치지 못한 장천린에게 있어서 한선생과의 검론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주었다. 

그로부터 오 일 간. 

한선생은 장천린에게 천하각파의 검법에 대해 해석해 주었다. 그것은 대충 잡아도 

수백 가지가 넘었다. 더욱이 천여 년 전에 실전된 검법에서 오늘날 강호상에서 지대 

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검법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초월한 그의 검법강론은 끝이 

없었다. 

장천린은 그의 강론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한선생의 검학은 해박 

하다 못해 경세적이었던 것이다. 

장천린은 한선생의 실력에 대해 재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 일이란 짧은 기간 

동안에 그는 천하가 너무도 넓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 이름 없는 은거기인의 

무공이 지금까지 자신이 만난 그 누구보다 강하지 않던가? 

오 일의 기간은 물 흐르듯이 지나갔다. 

그리고 육 일째 되는 날, 그 날부터는 상호간에 알고 있는 검도(劍道)에 대해 이야 

기했다. 그들의 검에 대한 인식은 상반(相反)된 것도 있었으나 일치되는 부분도 있 

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마주앉은 채 검론을 계속했다. 

한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검법을 말하면 한 사람이 그 검법의 파해법(破解法)을 

말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때때로 쌍방간에는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는 적도 있 

었다. 

막부산 선인대에서의 검론- 향후 무림에서는 이를 일컬어 선인대의 검론이라 칭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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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아무도 몰랐다. 훗날 이것이 미래의 가장 위대한 한 명의 검왕(劍王)을 탄생시키게 

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천사예는 두 사람의 검론에 방해가 될까봐 지난 열흘 간 모옥 밖에서 기다렸다. 그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모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답답하고 지루한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몇 차례나 음식을 장만해 방문 앞에 갖다 두었으나 두 사람은 한 번도 음식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장천린에게 성취가 있기를 두 손 모아 빌 뿐이었다. 그녀의 생각으로도 한선 

생과의 지난 열흘은 무척 중대한 순간인 것 같았다. 

천사예는 무림인이 아니다. 

따라서 장천린이 어떤 일을 도모하려고 하는지, 그가 한선생으로부터 검론을 듣는 

것이 장차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 

직 하나였다. 

장천린에게 이로운 일이라면 그저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한 여인에게 있어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게 만든다. 특히나 사랑이란 감정을 처음 

으로 느낀 여인에게 있어 삶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고정되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천사예는 사랑을 앓고 있었다. 그것은 육체의 어떤 병보다 지독한 것이다. 그녀는 

오직 장천린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느꼈으며 설사 영원히 그를 위 

해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같이 음식을 장만했다. 

모옥의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두 사람이 음식에 손 하나 대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여전히 음식을 만들었고, 새로운 음식들을 방문 앞에 갖다 놓았다. 그것이 그녀에게 

는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녀는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며 이런 기쁨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오누이 둘이서 험한 세파를 헤쳐나가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이렇게 

아늑하고 행복한 감정을 누려본 적은 없었다. 

마침내 열흘이 지났을 때였다. 

"용대인님......!" 

모옥의 방문이 열리고 장천린이 걸어나오자 천사예는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장천린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느라 수고했소, 사예." 

그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준 다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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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려갑시다." 

"성취가 있었나요?" 

장천린은 미소지었다. 

"가르침은 많았는데 어떨지는 모르겠소." 

그는 모옥을 등지고 걸어갔다. 

"한선생께서는요?" 

"방안에 계시오." 

천사예는 그의 소매를 잡고 따르며 방긋 웃었다. 

"아무튼 잘 되셨다니 참 다행이에요." 

장천린은 고개 들어 모옥을 바라보았다. 모옥은 벌써 멀찌감치 보였다.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지난 열흘 간 한선생에게 많은 것을 깨우쳤다. 하나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것 

은 어찌하여 한선생이 그토록 쉽게 내 부탁에 응했는가에 대한 문제다.' 

귓전에 천사예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어디로 가실 셈인가요?" 

"개봉(開封)." 

장천린의 대답은 간결했다. 이때 모옥의 문이 열리고 백발의 한선생이 모습을 나타 

냈다.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용백군... 저 아이가 그 유명한 용백군......." 

그는 나직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천하무림에 용이 없는 줄 알았더니 엉뚱하게 상계(商界)에 숨어 있었군.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이제 나도 나가 봐야겠군." 

그는 누군가에게 하듯 계속 중얼거렸다. 

"용백군, 자네는 행운아일세. 자네가 하루만, 아니 한 시진만 늦었어도 날 만나지 

못했을 것이네." 

그는 빙긋이 웃었다. 

"물론 자네 때문에 열흘의 계획 차질이 생겼지만......." 

그는 몸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세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면 어찌 열흘이 아깝겠는가?' 

신비의 기인 한선생. 그의 미간에는 한 가닥 어두운 그늘이 밀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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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달인(達人). 

그런 칭호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다. 한선생은 불세출의 검의 달인이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욱 그를 기인의 반열에 올려 

둘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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