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4장 탈출(脫出)[제3부 대륙의 회오리 제3권] (76/87)

달은 칼 끝에 지고 제3부 대륙의 회오리 제3권 

▣등장인물 

◈장천린(蔣天麟) - 강남 무창의 동정호반에서 신선루를 경영하던 젊은 상인으로 정 

인 취옥교의 의문의 배신과 신산 제갈사의 계략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죽음의 나락에서 되살아나 용백군이라는 전도유망한 청년상인으로의 새 인생을 시 

작하게 되는데... 사랑을 되찾고 누르하치의 음모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그의 앞날은 

과연....... 

◈취옥교(翠玉嬌) - 장천린의 정인으로 신선루를 운영하던 절세의 미인. 천린으로부 

터 청혼을 받은 꿈같은 날 어둡기만 한 과거로부터의 부름이 있게 된다. 사랑을 위 

해 배신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운명... 조화성의 명에 따라 금백만을 살 

해하고 천린의 곁을 떠나는데....... 

◈원계묵(元桂默) - 마도(魔刀)라 불리워지는 당대 도법의 일인자. 조화성의 살수 

모용초에 의해 연인 손미로부터 배신당하고 사부인 만승금도 도담후가 살해당한다. 

원수를 갚기 위해 백살대를 조직하여 필살의 의지를 불태우던 중 용백군이라는 젊은 

상인을 만나게 되는데....... 

◈모용초 - 조화성의 살수이자 마교십삼사의 일원. 절세의 미남자로 여인을 유혹하 

여 이용하는 데에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무정도(無情刀)라는 별호만큼이나 

냉정하고 잔인하지만 여인에 대한 유별난 증오심에는 깊은 사연이 있었으니....... 

◈부금진(符錦眞) - 피리를 즐겨 부는 미소년으로 약칭으로 소진(小眞)이라고도 불 

리워진다. 영물에 가까운 흰 앵무새 백아를 데리고 다니며 비도술 및 의술에 일가를 

이루었다. 신비에 싸인 인물. 그의 과거를 정확히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단위제(檀偉帝) - 산동성 제형안찰사사 소속으로 형부도독(刑府都督)이자 동창의 

대영반. 청렴강직하며 흉악무도한 범인을 체포하는데 달인의 솜씨를 지니고 있으며 

미궁(迷宮)에 빠진 사건을 처리하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 

◈반송(盤松) - 해적선 검은 바람에 의해 죽을 고비에 처했으나 용백군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화포인 진천뢰를 제작할 수 있는 인물로서 천월도법의 달인. 

◈담오(覃吾) - 북방의 고랍특성 낭인시장에서 몸값 삼십만 냥에 자신의 인생을 내 

놓은 무사. 돈을 위해 몸을 파는 아내 아랑을 저주한다. 용백군과의 조우 이후 돈과 

세상을 함께 저주하는 그의 인생이 뒤바뀐다. 

◈태진왕(太眞王) 주익적(朱翊 ) - 신종(神宗) 만력제(萬歷帝)의 이복동생으로서 

어지러운 황실을 구하기 위해 뜻있는 충신들을 규합하고 변방을 강화하였다. 황실의 

특무기관인 금의위(錦衣衛)와 동창(東廠)의 실세를 쥐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백연연(白娟娟) - 태진왕을 마음 속 깊이 사모하고 있는 지혜로운 여인. 환관의 

음모에 의해 사약을 받고 죽은 충신 백시열(白時悅)의 딸로 태진왕에 의해 목숨을 

구함 받고 태진궁의 시비로 살아간다. 

사문도(射文島) - 생사집혼(生死執魂)이라는 별호를 가질 정도로 엄청난 무공의 소 

바로북 99 3

유자. 친부모에게서조차 버림받은 비극의 사생아로서 조화성을 멸하고 염무를 죽여 

야만 비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존재. 철저히 비밀에 

가려진 사문도와 조화성과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 

◈황보설연(皇甫雪燕) - 개봉부 지부대인(支府大人) 황보인(皇甫仁)의 외동딸. 탐관 

오리인 아비와는 달리 순수한 정열을 가진 미인. 운명적인 만남 이후 장천린의 일행 

이 개봉부를 떠나는 날, 그녀는 일생일대의 운명을 건 결단을 단행하는데……. 

◈동방옥(東方玉) - 해남도 동방사성의 여동생. 황금에 눈이 먼 오라버니의 속임수 

에 빠져 장천린을 함정에 몰아넣게 되지만, 여인의 사랑은 초월적인 힘을 가지게 마 

련이다. 무공을 익혔으며 비파의 달인으로서 천린의 여인이 된다. 

◈고검령(古劍靈) - 별호는 무영(無影). 최소한 천하무공의 칠할을 파악하고 있다 

알려진 신비의 인물. 문과 무를 겸비하였으며 어떤 무공이든 세 번만 보면 완전히 

익힐 수 있다. 신산과 더불어 조화성이 가장 두려워 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제갈사(諸葛師) - 무공은 고검령에 비해 약하지만 신산(神算)이라 불리워지는 지 

략의 천재. 장천린을 계략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 악의 온상이라는 조 

화성을 격멸하고 염무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양심일지라도……. 

◈천황(天皇) 태사독(太嗣篤) - 조화성의 제삼신마전주(第三神魔殿主)로서 심기가 

깊을 뿐 아니라 무공의 깊이 또한 추측할 수 없다 알려진 신비의 인물. 실제적인 조 

화성의 제 이인자. 이십여 년간 계속되어 온 신산 제갈사와의 숙명의 대결……. 과 

연 승부의 향방은? 

◈옥류향(玉柳香) - 취옥교의 손에 죽은 금백만의 뒤를 이어 만금산장의 장주가 된 

전도유망한 청년상인. 세상의 어떤 일도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은 없다 믿는다. 그러 

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파란만장한 미래……. 

◈화가영(花佳榮) - 항주에서 가장 큰 기루인 천하군방원의 여주인. 만금산장의 장 

주 옥류향의 정인으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으나 예기치 않은 만남으로 인해 슬픈 

사련(邪戀)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담자개(譚子凱) - 조화성의 일원이자 마교의 소종사로서 마교십삼사의 일원. 늘 

초승달 모양으로 웃고 있는 모양의 조악한 탈을 쓰고 다닌다. 처절한 비극이 안겨다 

준 불행한 운명에 괴로워하는 그에게서는 오히려 인간적인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유리공녀(琉璃公女) - 파자사국의 상인인 아라사의 외동딸.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그녀가 중원으로 오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마주친 것은 절망과 비극 

이었다. 

◈천사예 - 황가철장(黃家鐵莊) 최고의 장인이었던 천일학 노인의 손녀. 병기에 대 

한 박학한 지식과 함께 병기제조에 천부적인 자질을 갖고 있다. 그러나 풀무질에 단 

련된 강철같은 여인 사예에게도 수줍은 사랑은 찾아오고……. 

◈비마(飛魔) 북검엽(北劍葉) - 혜성같이 나타나 무림의 고수들을 차례로 무릎 꿇게

4 바로북 99

한 신비에 싸인 존재.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조화성의 각 신마전에서는 각축전이 벌 

어지고……. 

◈염무(焰武) - 조화성의 성주이자 마교의 교주로서 천하무공의 구할을 수집한 극강 

한 무공의 소유자. 무영과 신산을 죽이기 위해 살인혈첩을 흩뿌리는 그에게도 철저 

히 가려져 있는 비밀이 있었으니……. 

5 바로북 99

제24장 탈출(脫出) 

"호태악을 제거했나?" 

철마왕 사진청은 그것부터 물었다. 

"실패했습니다. 도저히 손써 볼 틈이 없었습니다." 

사진청은 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핫!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는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호태악보다도 그들 가운데 몇몇은 나도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무서운 고수들이네. 

장천린은 냉소하며 말했다. 

"흥! 아무리 강하다해도 반드시 제거할 것입니다. 부친의 원수를 어찌 그냥 놔둔단 

말입니까?" 

그는 문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한데 그렇게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들이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입니까?" 

사진청은 신비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지." 

사진청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첫 번째 이유는 천금동의 기관장치 때문이지. 섣불리 탈출을 시도했다가는 개죽음 

하기 십상이거든. 두 번째 이유는 사실 그 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이지." 

"그게 뭡니까?" 

"그들의 약점. 그것을 우리가 쥐고 있기 때문이지." 

장천린은 궁금한 듯 반문했다. 

"약점이라면?" 

"후훗! 그들이 직접 서명한 연판장을 우리가 갖고 있지." 

사진청은 연판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가 말한 내용은 장천린이 천금동에서 들 

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장천린은 슬쩍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한데 그 연판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진청의 눈빛이 의미심장해졌다. 

"흠! 자네라면 어디 두겠는가?" 

장천린은 흠칫했다. 그는 눈을 반쯤 내려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사진청은 그에게서 

바로북 99 6

어떤 대답이 나올지 자못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장천린은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 같으면 깨끗이 태워 버리겠습니다. 그들이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말입니다." 

사진청은 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핫......! 맞았네. 연판장은 벌써 불에 타 버렸다네." 

장천린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랬단 말인가?' 

사진청은 괴소를 흘리며 말했다. 

"성주는 연판장을 이미 소각해 버렸네. 만의 하나 그들이 탈출한다 해도 그것을 빌 

미로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할 수 있도록 말일세." 

사진청의 눈에서 일순 무서운 광채가 뻗어 나왔다. 

"하지만 내가 탈출을 용납할 리가 있는가? 후훗... 오 년 전 노명이란 놈이 탈출한 

적이 있었지. 그러나 끝까지 놈을 추격하여 제거해 버렸지." 

장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주께서 관리하는 이상 그들의 옆구리에 날개가 달린다해도 탈출은 불가능할 것 

입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포권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하! 그럼 또 놀러오게나." 

사진청은 기분 좋은 듯 대소를 터뜨리며 그를 배웅해주었다. 

장천린은 처소로 돌아오는 동안 상념에 잠겼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다. 그렇게만 되면 청허자와 약속한 시간 안으로 모 

든 것을 마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지난 일들을 내심 차분하게 정리해 나갔다. 그의 계획은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모든 일들을 빈틈없이 마무리 짓는 것이다.' 

처소로 돌아오자 뜻밖에도 조옥령이 그를 맞이했다. 

"웬일이오? 이곳에는?" 

"호호! 마침 두 분께서 외출 중이더군요. 그래서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달려와 북대 

협을 기다리던 중이었죠." 

아닌게 아니라 유리공녀와 천사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장천린이 침실로 들어가 

자 조옥령은 서슴없이 그의 팔을 잡고 따라왔다. 

7 바로북 99

"북대협, 요즘 뭐가 그리 바쁘신가요?" 

장천린은 빙긋 웃었다. 

"글쎄? 장미림의 첩자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줄 필요가 있을까?" 

조옥령은 그의 팔에 몸을 기대며 살짝 눈을 흘겼다. 

"계속 그렇게 남의 약점을 꼬집을 건가요?" 

"하하! 어쨌든 사실이 아닌가?" 

조옥령은 문득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에게는 각기 남다른 처지가 있는 법이에요. 북대협이 처한 환경과 또 제가 처 

한 환경은 각기 틀리지 않아요? 그런데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면......." 

장천린은 낭랑하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누가 뭐라고 했소? 하하... 이제 보니 옥령 그대도 꽤 여린 구석이 있었군?" 

'옥... 령......?' 

조옥령의 얼굴에 야릇한 감정이 떠올랐다. 장천린은 침상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좌우간 나는 감탄하는 바이오. 장미림의 소녀들은 한결같이 들꽃 같은 꿋꿋한 면이 

있소. 단지 조금......." 

"조금... 뭔가요?" 

"영악한 점만 빼고." 

그 말에 조옥령은 깔깔거리며 한동안 웃더니 표정을 싹 바꾸며 물었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 볼까요?" 

"물어보구려." 

"만일 우리와 같은 처지에 영악하게 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 

"벌써 싸늘한 시체가 되어 들판에 나뒹굴고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노리개로 전락 

하고 말 거예요. 안 그런가요?" 

장천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옥령, 어쨌든 그대는 대단한 여인이오." 

장천린은 그녀와 나누었던 정사를 떠올렸다. 뜻밖에도 그녀는 순결한 처녀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낌없이 몸을 바쳤다. 물론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임 

무 때문에 몸을 바친 것이다. 

장천린은 그런 조옥령이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조옥령은 슬며시 그의 곁에 다가와 앉으며 입술을 열었다. 

"북대협, 유리공녀와 천사예 낭자를 정말 사랑하시나요?" 

8 바로북 99

장천린은 흠칫했다. 

"그건 왜 묻소?" 

"그냥요." 

"그냥?" 

"호호호! 농담이에요. 참, 제가 왜 이곳에 왔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흠, 말해보시오." 

"원로원에서 북대협을 불렀어요.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예요." 

장천린은 미간을 가볍게 찡그렸다. 

"원로원이......?" 

"조심하세요. 사진청이란 자가 당신을 의심하고 있으니까요." 

"......!" 

장천린은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청은 그에게 계속 호감을 보여주지 않았던 

가. 그런데 그가 의심하고 있다니....... 

조옥령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알기로 당신을 믿는 사람은 낭리초 뿐이에요. 심지어는 금불 숭의겸까지 당신 

을 의심하는 눈치니까요." 

장천린은 담담히 말했다. 

"알려주어 고맙소." 

조옥령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은 당신을 위해서 만은 아니에요. 그건... 이 조옥령 개 

인을 위해서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당신은 저의 첫 남자였으니까요." 

조옥령은 말을 끝내자마자 일어섰다. 그녀는 밖으로 걸어나가며 촉촉한 음성으로 말 

했다. 

"기억해 두세요. 저도 여자라는 사실을......." 

조옥령은 기묘한 여운을 남긴 채 사라졌다. 장천린은 잠깐 감정이 이상해졌지만 곧 

생각을 돌렸다. 

'사진청이 날 의심한다? 그렇다면 지금 원로원이 날 부르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그는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부딪쳐 보면 알겠지.' 

원로원에 도착하자 한 원로(元老)가 그를 맞이했다. 

9 바로북 99

그는 동천우(董天佑)란 인물로 흑의를 입고 있었으며 몸은 깡말랐고 안색이 백짓장 

처럼 창백한 노인이었다. 수중에는 검은 색의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동천우는 그를 내전으로 데리고 갔다. 

내전은 어두웠다. 창문이 있기는 했으나 그 크기가 작은데다 두터운 휘장까지 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전 안은 꽤 넓었는데 탁자와 두 개의 의자만 덜렁 놓여있었다 

"앉게." 

동천우는 먼저 의자에 앉은 후 지팡이로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장천린은 예를 표한 후 자리에 앉았다. 동천우는 눈을 가늘게 한 채 그의 전신을 쓸 

어보고 있었다. 

'눈빛이 곱지가 않아.' 

장천린은 마음을 단단히 다져먹었다. 동천우의 질문이 시작됐다. 

"자네가 북마영의 아들인 북검엽인가?" 

"그렇습니다." 

동천우의 창백한 얼굴에 야릇한 주름이 잡혔다. 

실상 그는 북마영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동생인 동천풍(董天風)이야말로 

북마영의 사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장천린은 그 점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흠, 부친의 고향은 어디인가?" 

"그건......." 

장천린은 당황했다. 미처 그 점까지는 알아두지 못했던 것이다. 

"흠, 자네 부친 북마영이 어릴 적 서주(徐州)의 한 표국에서 일했었는데 그때 자네 

는 네 살이었지. 기억나는가?" 

장천린은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글쎄요... 너무 어릴 적 일이라......." 

"허헛... 북마영은 성격이 화급하여 곧잘 충돌을 일으켰는데 지난 날 그는 백간산( 

白干山)에서 화산고수 이하영의 연인인 금옥수(金玉手) 엽현기(葉玄奇)를 때려죽인 

후......." 

장천린은 안색을 굳히며 동천우의 말을 끊었다. 

"소생은 모르는 일입니다. 대체 그런 얘기를 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동천우의 얼굴에 음침한 표정이 어렸다. 

"노부는 오래 전 북마영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네. 그때 자네는 마당에서 놀고 있 

었는데 여름이라 웃옷을 벗고 있었지. 노부의 기억으로는 자네의 왼쪽 어깨에 붉은 

점이 하나 찍혀 있었네. 한데 지금도 그 점이 남아있는지 궁금하군?" 

10 바로북 99

장천린은 내심 당혹을 금치 못했다. 

'이 늙은이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날 떠보려는 수작인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만일 자신이 가짜 북검엽이란 사실이 발각되면 이제까지 조화성에서 벌여왔던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수포가 돼버리는 것이다. 

장천린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노선배님, 그것은......." 

이때였다. 

"호호호호홋......!" 

갑자기 요염한 교소가 들려왔다. 대전 안으로 홍의를 입은 여인이 들어서고 있었다. 

장천린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홍의여인은 다름 아닌 해당이었던 것이다. 

해당은 그를 향해 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호홋......! 처음부터 그대를 의심했었지." 

그녀는 날카롭게 추궁했다. 

"북검엽으로 변장해 이곳으로 잠입한 것까지는 훌륭했어. 하지만 안됐어. 꼬리가 드 

러났으니까!" 

장천린은 해당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흥! 어떻게 알았냐고? 당신이 데려온 금발미녀 때문이지. 그 계집은 당신의 첩이 

아니야. 말해줄까? 그녀의 진짜 신분은 파자사국의 상인 아라사의 딸 유리공녀지. 

호홋, 과연 아니라고 발뺌할 수 있을까?" 

장천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흐흐흐......!" 

한 가닥 음침한 웃음소리와 함께 중년인 한 명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갈색머리를 한 이국인(異國人)이었다. 게다가 한쪽 눈이 애꾸로 거칠고 험악한 

인상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해적선 검은 바람에 소속되어 있던 오교(五蛟) 중 한 명이었다. 살인 

과 약탈, 강간을 일삼는 해적선 검은 바람의 일원인 그가 이곳에 나타난 것은 실로 

뜻밖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검은 바람의 우두머리 금월(金月)도 조화성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 

겠는가. 하지만 장천린은 애꾸눈 흉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애꾸는 한쪽밖에 없는 눈에서 흉광을 번쩍이며 거친 음성으로 말했다. 

"틀림없소! 그 계집은 아라사의 딸년이오." 

11 바로북 99

애꾸는 과거 아라사의 선박을 직접 친 장본인이었으니 유리공녀를 몰라볼 리가 없었 

다. 

장천린은 모든 것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일단 단정을 내린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슉! 

흰빛이 원을 그렸다. 

무엇인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오교의 일원인 애꾸눈 흉인의 잘 

려진 머리통이었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목이 잘리고 말았다. 

그의 목을 날린 것은 장천린의 소매였다. 달마삼검의 제 일식인 서래범음(西來梵音) 

이 검 대신 소맷자락을 통해 시전된 것이다. 

"......!" 

너무나도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동천우는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그는 설마 장천린이 그토록 신속하게 살인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 

도 조화성의 심장부인 원로원 안에서 말이다. 

하지만 동천우는 전대의 마두다웠다. 

윙! 

그는 벌떡 일어서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 끝에서 태산을 가를 듯한 무서운 경 

기가 뻗어나갔다. 

펑! 

장천린은 소맷자락을 휘둘러 지팡이를 막았다. 굉음이 울렸고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던 탁자가 가루가 되어버렸다. 

"갈!" 

동천우는 재차 지팡이로 흑천분분(黑天紛紛)이란 초식을 전개했다. 지팡이가 수십 

개로 늘어나며 부챗살 모양으로 공격해왔다. 

장천린은 왼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활짝 펼치며 분뢰철류장공(分雷鐵流掌功)을 뻗었 

다. 

짜자작! 

뇌정(雷霆)이 치는 듯한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시커먼 먹빛 기운이 뻗어나갔다. 

"헉......!" 

두 사람의 공격이 격돌한 순간 동천우는 경악성을 발하며 뒤로 연달아 일곱 걸음이 

나 밀려나갔다. 

"큭!" 

동천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얼굴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 

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내려보았다. 왼쪽 가슴에 폭이 좁아 마치 꼬챙

12 바로북 99

이처럼 생긴 기형검(奇形劍)이 꽂혀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코앞에 장천린이 서있었다. 

"노인장은 너무 오래 살았소. 몸에서 냄새가 난단 말이요." 

그 순간 동천우는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끈이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이 생을 마감해버린 것이다. 

장천린은 검을 뽑은 후 동천우의 옷자락으로 피를 닦아냈다. 그가 행한 일련의 동작 

은 조용했을 뿐더러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때였다. 

대전 안으로 작은 그림자가 뛰어들어왔다. 장천린은 한눈에 호연임을 알아보았다. 

"흥! 너도 죽어야겠다!" 

호연은 표범처럼 신형을 날려 해당을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일련의 사태에 넋이 빠져있던 해당은 대응은 커녕 뒷걸음질치기에 바빴 

다. 호연은 연신 악랄한 살수를 펼쳐 해당의 요혈을 연달아 공격했다. 

장천린은 급히 신형을 날려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왜 그래요? 저 계집을 죽여야......." 

호연은 반발하다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장천린의 말은 간단했다. 

"내가 아는 여인이기 때문이오." 

"알아......?" 

호연의 표정이 야릇하게 변했다. 장천린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해당, 네가 무사한 걸 보니 기쁘구나." 

장천린의 부드러운 말에 해당은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갑자기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의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 떠오른 것이다. 

"다... 당신......!" 

"하하! 동릉현에서 헤어진 지 오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널 잊지는 않았다." 

해당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바르르 떨었다. 

"다... 당신은... 바로 장......." 

장천린은 빙긋이 웃었다. 

"정말 반갑군. 이런 자리만 아니라면 좀더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13 바로북 99

그는 짓궂은 표정으로 눈을 찡긋했다. 

"그 동안 더 예뻐졌구나, 해당.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훗날 다시 보자." 

해당이 미처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는 신형을 날렸다. 

"잠깐만......." 

그녀가 불렀을 때 장천린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호연도 바로 신형을 날렸다. 

대전에 혼자 남은 해당은 망연자실한 채 중얼거렸다. 

"천린... 그 분이... 그 분이 나타나다니......."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뽀얀 안개가 서렸다. 

"그토록... 기다렸었는데......." 

호연은 장천린의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방 안을 한 차례 둘러본 그녀는 콧등을 찡 

그리며 종알거렸다. 

"이상하군요." 

"뭐가 말이오?" 

"이 방에서 여자 냄새가 나요." 

장천린은 피식 웃었다. 

"후각이 예민하군. 그러면 안될 일이라도 있소?" 

호연은 빤히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한 방에서 자나요?" 

장천린은 싱긋 웃었다. 

"때로는 그렇소." 

호연은 갑자기 쌀쌀한 음성으로 말했다. 

"연판장은 어떻게 됐죠?" 

장천린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소각되었소." 

호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각되다니... 그게 정말인가요?" 

"아마 사실일 것이오. 사진청에게 직접 들은 말이오." 

호연은 갑자기 힘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장천린은 그녀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소각된 줄도 모르고 그 긴 세월을 천금동에 묶여 있었으니 실로 어이없 

는 일이 아니겠는가. 

호연은 한동안 방 안을 서성이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14 바로북 99

"참, 아까 그 여인은 누구죠?" 

장천린은 침묵했다. 해당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그는 

해당에 관한 얘기를 누구에게든 하고 싶지가 않았다. 

호연은 쌜쭉해졌다. 

"흥,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담. 그것도 여자에 대해서... 쳇!" 

장천린은 그녀의 말을 묵살했다. 생각해야할 것이 많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됐구나.' 

호연은 계속 방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따금 그녀는 장천린을 쳐다보았다. 어떨 때 

는 아주 노골적으로 바라보았으나 장천린은 생각에 잠겨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조옥령이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다급히 외쳤다. 

"빨리 피신해야 해요! 동천우의 죽음이 제오신마전에 통보됐어요. 당신은 이제 표적 

이 되고 말았어요." 

장천린은 그녀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랐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소. 하지만 지금은 떠날 수 없소. 유리와 사예를 데리고 가야하오. 그녀들 

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오." 

조옥령은 곱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정말 여자 아끼는 마음은 대단하군요. 걱정 말아요. 그녀들은 제가 이미 조화성 밖 

으로 비밀리에 모셔두었으니까요." 

장천린은 아연해졌다. 

"아니, 언제 그런 일을......?" 

조옥령은 요염하게 웃었다. 

"호호! 당신은 제가 장미림 출신이란 걸 벌써 잊었나요?" 

"음!" 

"빠른 소식통이야말로 저에게는 생명인 걸요. 그리고 이걸 가져가세요." 

조옥령은 품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건네주었다. 

"무엇이오?" 

"당신이 찾던 연판장이에요." 

장천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각되지 않았단 말이오?" 

"정말 순진하군요. 그럼 사진청의 말을 믿었단 말인가요?" 

장천린은 그만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조옥령은 흑백이 분명한 눈으로 그를 바라

15 바로북 99

보며 말했다. 

"실상 제가 이곳에 잠입한 목적도 당신과 같은 일을 하려는 것이었어요." 

"아......." 

장천린은 비로소 그녀가 모든 것을 환히 꿰뚫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조옥령은 

불안한 듯 독촉했다. 

"자, 어서 나가세요." 

"옥령, 당신은?" 

"전 아직 할 일이 있어요." 

그녀는 한동안 촉촉한 눈으로 장천린을 바라본 후 속삭이듯 말했다. 

"나중에 다시 보게 될 거예요. 당신... 잊지 마세요. 제게 한 약속 말이에요." 

조옥령은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 곧바로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장천린은 자신도 모 

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는 내심 이렇게 중얼거렸다. 

'잊을 리가 있겠소? 당신같이 유능하고 어여쁜 낭자를 말이오?' 

한편 호연은 아까부터 뭐가 그리 기분 나쁜지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갑시다, 낭자." 

장천린이 재촉하자 흥! 하고 코웃음치더니 그녀는 먼저 신형을 날렸다. 장천린은 그 

녀가 왜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바로북 99 1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