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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혈로(血路) (77/87)

제25장 혈로(血路) 

휘이이잉! 

막바지에 이른 겨울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을 대지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눈보라 

가 휘날리고 있었다. 눈보라는 이따금 회오리에 휘말려 잿빛 하늘에 기둥을 만들기 

도 했다. 

설봉산에서 백여 리 정도 떨어진 곳. 

벌판은 온통 백설천지였다. 

두두두두! 

문득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소리가 났다. 눈보라를 헤치며 다섯 필의 말이 달려왔다. 

그들은 얼마 전 조화성을 탈출한 장천린 일행으로 유리공녀와 천사예, 호연과 단심 

객 유유평 등이었다. 

호연과 단심객은 이미 본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다. 

조화성을 빠져 나온 지 오 시진이나 지났지만 그들은 한 시도 쉬지 않고 달렸다. 추 

위와 허기로 인해 사람도 말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약속 장소인 태문현에 당도하게 돼요." 

호연의 음성에는 약간 생기가 돌고 있었다. 장천린은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호소저, 그 분들이 과연 무사히 탈출했을지 궁금하구려." 

호연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탈출로는 그 동안 몇 번이나 점검했어요. 실패란 있을 수 없는 일이 

에요." 

말괄량이 야생소녀의 언행은 어쩐지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장천린은 고개를 끄덕인 후 뒤를 돌아보았다. 유리공녀가 바로 뒤쪽에 있었다. 그녀 

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파자사국은 더운 나라다. 유리는 이런 추위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그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히히힝! 

"아앗!" 

돌연 유리가 탄 말이 앞발을 꿇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 

에 유리는 앞으로 퉁겨져 나가고 말았다. 

장천린은 깜짝 놀라 급히 신형을 날려 유리를 안전하게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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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다치지 않았소?" 

"괘... 괜찮아요. 단지......." 

유리공녀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장천린은 그녀를 안은 

채 마상에 올랐다. 유리공녀의 말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귓전에 대 

고 부드럽게 말했다. 

"조금만 참으시오. 곧 마을에 도착할 테니." 

유리공녀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천린은 그녀를 감싸듯 껴안은 채 말을 달렸다. 유리공녀는 그의 넓은 가슴에 안긴 

채 사르르 눈을 감았다. 추위와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장천린의 건장한 팔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힘차게 당기고 있었다. 그 바람에 그 

녀의 가슴이 장천린의 건장한 팔에 눌렸다. 유리공녀는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천린.......' 

그녀는 야릇한 흥분을 느끼며 더욱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때 두 사람의 모습을 본 호연의 눈빛이 야릇하게 변했다. 그녀의 눈에는 질투의 

빛이 떠올랐다. 

"끼럇!" 

그녀는 박차를 가해 선두로 나섰다. 가능한 빨리 달림으로써 마음의 갈등을 달래려 

는 듯이. 

얼마나 달렸을까? 

벌판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말은 입에 거품을 문 채 허덕거렸고, 휘몰아치 

는 눈보라로 인해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장천린 일행은 혹한으로 인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천사예가 겁먹은 듯이 말했다. 

"도무지 방향을 알 수가 없어요. 말들도 지쳐있어요. 이대로 가면 얼마 안 가 지쳐 

죽고 말 거예요." 

장천린은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이때였다. 단심객이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주위를 보시오! 심상치가 않소." 

중인들은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휘이이잉! 

어지럽게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사위를 온통 눈 세계로 감싼 가운데 과연 심상치 않 

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스스......! 

환영(幻影)인가? 자욱한 눈보라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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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 

문득 고막을 터뜨릴 듯 엄청난 북소리가 울렸다. 

히히히히힝! 

말들은 북소리에 놀라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앞발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 바람에 장 

천린 일행은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둥! 

다시 예의 북소리가 일행의 고막을 때렸다. 

"아......." 

북소리는 보통 북소리가 아니었다. 가공할 음파(音波)를 발산하여 기혈을 들끓게 했 

다. 그 바람에 비교적 내공이 약한 유리공녀와 천사예는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고 말았다. 

둥! 

또 다시 북소리가 울렸다. 

"아아......." 

유리공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손으로 고막을 틀어막았다. 천사예도 견디기 힘든 

듯 마상에서 비틀거렸다. 

장천린은 안색을 굳혔다. 

'안되겠다!' 

그는 급히 호신강기를 일으켜 주위의 음파를 차단시켰다. 단심객이 문득 부르짖었다 

"마교십삼사(魔敎十三邪)의 한 명인 고왕 해사아로군!" 

장천린의 흠칫하며 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눈에 눈보라를 헤치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둥! 둥! 둥! 

북소리는 더욱 빠른 간격으로 울려 퍼졌다. 

휘이이이잉! 

가공할 음파에 눈보라마저 영향을 받은 듯 미친 듯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바닥의 눈도 회오리에 휘말려 허공으로 빨려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 

로 가공할 광경이었다. 

쏴아아아! 

돌연 허공에 빨려 올라갔던 눈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눈 

의 양은 엄청났다. 덕분에 말의 허리까지 눈이 쌓이고 말았다. 

눈보라는 거짓말처럼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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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천린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느 새 주위에 검은 그림자가 백여 명이나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선두에는 삼인이 우뚝 서있었다. 

중앙의 인물은 얼굴에 온통 주름살이 가득한 꼽추노인이었다. 머리는 성성한 백발이 

었고 은빛의 눈썹이 한 자 가량이나 길게 뻗쳐 있었다. 

꼽추노인의 오른쪽에는 혈왕 낭리초가 입가에 잔혹한 웃음을 머금은 채 서있었으며, 

왼쪽에는 고왕 해사아가 서있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북이 들려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장천린은 가슴이 식는 기분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저들에게 잡히다니.......' 

혈왕 낭리초가 두 눈에 혈광을 번쩍이며 괴소를 흘렸다. 

"크흐흐! 북검엽 이놈! 네놈이 날 가지고 놀다니......." 

장천린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네놈을 갈가리 찢어 죽이지 못하면 내 성을 갈겠다!"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잡아먹을 듯이 장천린을 노려보았다. 장천린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들만 왔소?" 

"흐흐! 우리만으로도. 네놈을 죽이기는 충분하다!" 

장천린은 신비한 미소를 물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뚜껑을 열기 전에는 누구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하는 법이오." 

이때 꼽추노인이 괴상한 음성으로 말했다. 

"노부는 원로원의 장미타선(長眉駝仙) 함호성(咸豪成)이다." 

장천린은 내심 중얼거렸다. 

'원로원의 고수였군.' 

장미타선 함호성은 한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장천린을 직시했다. 

"누가 동천우를 죽였느냐?" 

"나요." 

장천린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순간 함호성의 눈에서 섬뜩한 광망이 흘러나왔다. 

"동천우는 노부의 막역지우로 백 년 이상을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 네가 동천우를 

죽였으니 설마하니 살기를 바라지는 않으니라 믿는다." 

함호성의 음성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장천린은 그에게서 질식할 듯한 압박감을 느 

꼈으나 심호흡을 한 후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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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인 이상 어찌 살기를 바라지 않겠소? 그런데 젊은 소생보다는 노인장이 먼저 

동천우의 뒤를 따르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소?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니 죽어도 같이 

죽어야 도리일 것이라 생각하오만?" 

함호성의 눈에서 새파란 불꽃이 튀었다. 그는 장천린이 일부러 자신을 놀린다는 것 

을 깨닫고 손을 번쩍 들었다. 

"쳐라!" 

명령이 떨어진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이 울렸다. 

"와아!" 

"죽여라!" 

백 여명의 흑의인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려 공격했다. 장천린은 이렇게 갑자기 공격 

을 가할 줄은 몰랐다. 그는 다급히 단심객에게 말했다. 

"유노인, 두 여인을 부탁하오." 

그가 말한 두 여인은 유리공녀와 천사예를 말하는 것이었다. 

"알겠네." 

단심객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여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장천린은 진기를 끌어올리며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았다. 일단 검을 잡자 그의 눈빛은 

달라졌다. 그는 냉오한 눈으로 흑의인들을 둘러보았다. 

"와아아아!" 

흑의인들은 함성을 지르며 벌떼처럼 덤벼들었다. 

쨍! 하는 청아한 음향과 함께 호연도 검을 뽑았다. 그녀는 조금도 겁먹지 않고 여장 

부처럼 검을 움켜쥔 채 자세를 잡았다. 

"조심하시오. 호소저." 

장천린의 말에 호연은 생긋 웃어 보였다. 

"제 걱정은 마세요." 

장천린은 빙글 몸을 돌렸다. 동시에 검이 반원을 그렸다. 

"크아악!" 

막 그에게 달려들던 삼인의 흑의인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양단 되어 설지 위로 나뒹 

굴었다. 실로 신속하고 깨끗한 솜씨였다. 

"덤벼라! 악의 무리들!" 

쏴아아! 

장천린은 검을 안은 채 신형을 날렸다. 그는 벌떼처럼 덤벼드는 흑의인들 사이로 파 

고들었다. 그가 흑의인들 사이를 누빌 때마다 검광이 춤을 추었다. 그때마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보라가 난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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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명....... 

"크아아악!" 

폐부를 쥐어뜯는 듯한 비명이 연이어지며 흑의인들은 썩은 짚단처럼 나뒹굴었다. 노 

도처럼 밀려들던 그들은 마치 불을 향해 날아들던 부나방처럼 제대로 공격 한 번 못 

해본 채 설지를 피로 물들이며 황천으로 가야만 했다. 

호연도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짧은 검을 마치 부챗살처럼 휘두르며 흑의인들을 베고 있었다. 비록 어린 소 

녀에 불과했지만 천금옥에서 전대의 고인들에게 사사 받은 그녀의 무공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고왕 해사아는 장천린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본 후 중얼거렸다. 

"정말 굉장하군. 저 자의 모습은 마치 과거의 무영(無影)을 보는 것 같군." 

낭리초가 냉소를 터뜨렸다. 

"흥! 어찌 무영에 비한단 말이오? 흐흐... 어쨌든 저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제거할 

것이오." 

곁에 있던 장미타선 함호성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수만 많았지 쓸모가 없는 것 같군. 아무래도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네." 

낭리초는 눈살을 찌푸렸다. 

"함원로께서도 저놈을 그 정도로 높이 평가하는 것이오?" 

함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 고검령이나 조화성주도 저 나이에 이만큼 강하지는 못했네." 

해사아가 괴소를 흘렸다. 

"흐흐! 보시오. 벌써 반 이상 죽었소. 이대로 가면 일각도 지나지 않아 전멸할 것이 

오." 

낭리초는 놀라며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안면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과연 흑의 

인들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오십여 명이 

떼죽음한 것이었다. 

"이... 이런 찢어 죽일......." 

그는 치를 떨며 뇌까리다 돌연 신형을 날렸다. 마치 한 덩이 피 구름이 움직이듯 대 

단한 기세로 날아간 그는 허공에 뜬 채 장천린을 공격했다. 

마침 고개를 돌리다 그 광경을 목도한 호연은 다급히 외쳤다. 

"조심하세요!" 

동시에 그녀는 번개처럼 교구를 날려 낭리초의 공격을 대신 받았다. 장천린이 대처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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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 

지축을 흔드는 폭음이 울렸다. 

"음......." 

호연은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술에 취한 듯이 비틀거리며 뒤로 오 

보나 밀려나갔다. 

"크하하하! 가소로운 계집!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위이이잉! 

낭리초는 비틀거리는 호연을 향해 재차 장력을 날렸다. 그의 손속에는 인정이라곤 

일점도 없었다. 호연은 더 이상 그의 공격을 막을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공 

포의 빛이 물드는 순간, 홀연히 누군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낭리초의 장력을 막았 

다. 

꽈르르릉! 

천번지복하는 듯한 굉음이 울리며 바닥의 눈덩이가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자욱한 눈 

보라를 흩뿌렸다. 그 여파로 바닥에는 다섯 자 이상의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으음!" 

누군가의 신음이 울렸다. 낭리초와 장천린은 각각 한 걸음씩 물러서고 있었다. 낭리 

초는 신형을 바로잡으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북검엽! 대체 네놈의 진정한 신분은 무엇이냐?" 

"후후......." 

장천린은 낮게 웃었다. 그는 분명한 음성으로 말했다. 

"정도 연합맹주." 

"뭣?" 

낭리초는 대경하여 안색이 크게 변했다. 함호성과 해사아도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낭리초는 무섭게 장천린을 노려보며 물었다. 

"네가 바로 이능소를 죽인 정도 연합맹주란 말이냐?" 

장천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의 이름은?" 

"굳이 이름을 알 필요가 있을까?" 

장천린은 수중의 검을 세웠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낭리초는 무시당 

했다는 느낌에 이를 뿌드득 갈아 부쳤다. 

우우웅! 

갑자기 그의 혈포가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동시에 두 눈동자도 핏빛으로 변했다. 

단심객이 놀라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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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시게! 그것은 낭리초의 독문무공인 혈라공(血羅功)이네." 

낭리초는 혈안(血眼)으로 단심객을 노려보았다. 

"유유평, 죽고 싶은 모양이군!" 

그는 벼락같이 손을 뻗어 일장을 후려쳤다. 단심객은 황급히 손바닥을 뻗어 그의 공 

격을 막았다. 

펑! 

"크윽!" 

단심객은 비명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그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낭리초, 네 상대는 나다!" 

막 단심객을 향해 두 번째 장력을 날리려던 낭리초는 허공에서 울리는 장천린의 음 

성을 들었다. 

짜자작! 

장천린은 허공에 뜬 채 좌수를 뻗었다. 뇌전이 치는 듯한 음향과 함께 묵빛 강기가 

작렬했다. 그가 펼친 것은 분뢰철류장이었다. 그것도 십성의 내력으로 전개한 것이 

었다. 

우르르릉....... 

뇌성이 천지를 뒤흔드는 듯했다. 

낭리초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고 인두처럼 시뻘겋게 변한 

양손을 급히 허공을 향해 뻗었다. 

파파파팍! 

혈강(血 )과 묵강(墨 )이 충돌했다. 

콰아아아.......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은 가공할 강기에 휘말려버렸다. 누 

가 장천린이고 누가 낭리초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헉......." 

강기의 소용돌이가 걷힌 후, 낭리초는 신음을 흘리며 뒤로 오 보나 연달아 물러났다 

. 그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했다. 

"핫핫핫......! 혈왕의 실력이 고작 이 정도였다니 실망했소이다." 

놀랍게도 장천린은 여전히 허공에 떠있었다. 허공에서 그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울린 

것이다. 

"천불항마(千佛降魔)!" 

장천린은 쇠종을 치는 듯한 일성을 발하며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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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츠츠......!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일식이었다. 그저 가볍게 허공을 수평으로 그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검 끝에서 눈부시게 찬란한 검기가 마치 빛살무늬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함호성은 안색이 급변하며 부르짖었다. 

"헉! 달마제이검(達磨第二劍) 천불항마(千佛降魔)!" 

그의 경고는 모든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스스스스....... 

찬란한 빛살무늬는 마치 파도처럼 허공을 번져나가더니 낭리초의 전신을 완전히 휘 

감아버렸다. 

"크아아악!" 

검파(劍波) 속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나왔다. 중인들은 눈을 크게 뜬 채 낭리 

초를 바라보았다. 낭리초를 휘감은 검파는 환상의 빛 무리 같았다. 그 가운데 갇혀 

있던 낭리초의 옷자락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파파파팍! 

낭리초의 전신을 보호하던 호신강기가 무참히 파괴된 것이다. 그의 의복은 아래서 

위로 올라가며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갔고, 마침내 목이 댕강 잘려져 허공으로 떠 

올랐다. 

쿵...... 

잘린 목과 동체가 거의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중인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 방금 전 본 장면은 마치 환영과도 같았다. 아니, 꿈을 

꾼 듯한 느낌이었다. 

함호성과 해사아의 얼굴은 납덩이처럼 굳어진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 

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장미타선 함호성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긴 눈썹을 부르르 떨며 뇌까렸다. 

"청허자가 네놈에게 달마삼검(達磨三劍)을... 가르쳤군!" 

"흐흐...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되겠군." 

해사아가 괴소를 흘리며 나섰다. 그는 들고 있던 작은북을 쳤다. 

둥! 

이번 북소리는 얼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가공한 위력을 발휘했다. 

'윽!' 

장천린은 북소리에 실려온 음파에 충격을 받고 뒤로 삼 보나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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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이한 일이었다.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고통을 못 느낀 것이다 

'음파를 내게 집중했구나.' 

장천린은 내심 중얼거리며 호신강기를 일으켜 음파를 차단시켰다. 

둥! 

해사아는 다시 북을 쳤다. 장천린의 눈썹이 경련을 일으켰다. 호신강기도 소용이 없 

었던 것이다. 그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다. 

이때 함호성은 흑의인들에게 명을 내렸다. 

"너희들은 저들을 죽여라." 

"옛!" 

잠시 공격을 중단했던 흑의인들은 일제히 호연과 단심객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시 벌떼처럼 덤벼드는 흑의인들을 향해 호연은 야멸차게 외쳤다. 

"흥! 수치도 모르는 놈들, 어서 와라! 모두 죽여주마!" 

슈슈슈슈! 

그녀는 수중의 검을 마치 풍차처럼 돌리며 흑의인들 사이로 뛰어 들었다. 실로 담대 

한 소녀였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전장에 뛰어든 장수와도 같았다. 

"케에에엑!" 

그녀의 검이 스칠 때마다 흑의인들은 서너 명씩 한꺼번에 사지가 절단된 채 날아갔 

다. 함호성은 긴 눈썹을 찡그리더니 훌쩍 신형을 날렸다. 

"계집애야, 너는 노부가 상대해 주마." 

한 번 신형을 날렸을 뿐인데 함호성은 이미 호연의 앞에서 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는 가볍게 소매를 저었다. 

펑! 

호연은 함호성의 소맷자락이 덮쳐오자 코웃음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철벽에라 

도 막힌 듯이 검이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한 순간 태산같은 경기가 그녀를 덮쳤 

다. 

펑! 

"아아아악!" 

호연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주르륵 밀려나갔다. 간신히 신형을 바로잡은 

그녀는 울컥 피를 토해냈다. 현기증이 일어나며 기혈이 거꾸로 치솟았다. 

무리였다. 그녀는 함호성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기가 치밀었다. 

"늙은이! 무덤 속에나 얌전히 누워있지 왜 설치느냐??" 

그녀는 이를 악물고 신형을 솟구쳐 올렸다. 허공에 뜬 그녀는 최후의 공격을 날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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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혼신의 힘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아니......!' 

그녀는 창백해졌다. 어찌된 영문인지 내공이 한 줌도 모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 

녀는 힘없이 허공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아아!' 

그녀는 절망을 금치 못했다. 

번연히 눈뜬 채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함호성의 소매가 허공을 덮으며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꽝! 

지축을 울리는 가공할 폭음이 울렸다. 

"크윽......!" 

누군가의 고통스런 신음이 그녀의 고막을 울렸다. 

'......?' 

호연은 눈을 떴다. 뜻밖의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그녀를 공격했던 함호성이 도리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앞에는 낯익은 두 인물이 우뚝 서있었다. 바로 남북쌍마였다. 

"할아버지!" 

호연은 반색을 하며 남북쌍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남마 소진청은 그녀를 덥석 안 

아 어깨를 다독거리며 껄껄 웃었다. 

"연아야, 걱정 마라. 저 늙은 꼽추는 우리가 상대하마." 

호연은 안심하며 장내에서 물러났다. 

남북쌍마의 뜻밖의 출현에 낭패한 함호성은 간신히 몸을 추스르며 일어섰다. 북마 

합비령이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 

"꼽추, 부끄럽지도 않느냐? 치사하게 어린아이를 상대로 무공을 펼치다니?" 

가뜩이나 주름살 투성이인 함호성의 안면이 징그러울 정도로 흉하게 일그러졌다. 

"으... 네놈들이 어떻게?" 

그는 의혹에 찬 눈으로 남북쌍마를 노려보았다. 합비령은 득의에 찬 웃음을 흘렸다. 

"흐흐! 우리들은 모두 천금동을 탈출했다." 

"......!" 

함호성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 그럴 리가!" 

이때 소진청이 회색 눈을 가늘게 뜨며 음산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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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뒀다 어디다 쓰냐? 네 앞에 있는 우리가 그럼 허깨비라도 된단 말이냐? 꼽추 

늙은이, 이젠 너도 죽을 때가 됐다. 준비나 해라." 

남북쌍마는 좌우로 나란히 선 채 함호성을 향해 다가갔다. 

함호성은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쳤다. 

'으... 한 놈만 상대한다 해도 자신 없거늘... 두 놈이 합공하면.......' 

그는 남북쌍마의 기세에 완전히 위축되고 말았다. 문득 그는 발악하듯 외쳐댔다. 

"비겁한 놈들! 한꺼번에 덤빌 셈이냐?" 

합비령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뭐라고? 꼽추야, 말도 안 되는 소린 집어치워라. 어린 계집애를 공격한 너보다는 

백 배 더 떳떳하다." 

"뒈져라! 꼽추!" 

소진청은 대갈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동시에 신형을 날리며 함호성을 공격했다. 

"헉!" 

함호성은 혼신의 힘을 다해 양인의 공세를 피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콰직! 

소진청의 장력을 간신히 피했다 싶자 합비령의 무지막지한 장력이 왼쪽 어깨를 부수 

고 지나갔다. 비틀거리는 순간 다시 소진청의 좌수가 그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강타 

하고 말았다. 

"크아아악!" 

폐부를 찢어발기는 듯한 처절한 비명과 함께 함호성은 머리가 으스러진 채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허연 뇌수와 사방으로 흩어지고 붉은 선혈이 백설을 온통 물들였다. 방금 전까지 기 

세가 등등하던 함호성의 최후는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해사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는 장천린을 목전에 둔 채 재빨리 염 

두를 굴렸다. 

'전세는 완전히 기울어 버렸다. 자칫하면 이곳에서 뼈를 묻을 지도.......' 

그는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애송이놈, 승부는 나중으로 미루자." 

그는 교활한 위인이었다. 뒤로 물러나는 듯하더니 갑작스럽게 달려들며 쌍장을 날렸 

다. 그야말로 벼락같은 공격이었다. 하지만 장천린은 이미 그의 눈빛을 보고 짐작하 

고 있었다. 

"야비한 늙은이로군." 

그는 장력을 맞받지 않고 신형을 날려 해사아의 머리를 뛰어 넘었다. 허탕을 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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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는 계획대로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바로 코앞에서 장천린이 퇴로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놈이......." 

그는 북채를 들어 다시 북을 치려했다. 그때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자루 검이 날아와 북에 꽂히는 것이 아닌가! 

"헛!" 

해사아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바로 옆에 호연이 싸 

늘한 표정으로 서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코웃음치며 빈정거렸다. 

"흥! 북만 없으면 맥도 못 추는 늙은이! 너도 이제 끝이다." 

그녀는 우수를 칼처럼 치켜들며 해사아를 공격했다. 수영(手影)이 부챗살처럼 펼쳐 

지며 뻗어나갔다. 

해사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노부의 마고(魔鼓)를 찢다니... 용서할 수 없다.!" 

우우웅! 

그는 분노를 폭발시키듯 혼신의 힘으로 일장을 후려쳤다. 호연의 눈이 커졌다. 그녀 

는 아직 상세가 회복되지 않은 몸이었다. 급한 성격과 남에게 지고 싶지 않은 오기 

로 인해 무작정 뛰어들었으나 결코 해사아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안 된다! 연아야!" 

남북쌍마는 깜짝 놀라 부르짖으며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펑! 하는 폭음과 함께 호연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녀는 

몇 번이나 곤두박질치며 날아갔다. 

"흐흐... 건방진 계집 같으니." 

해사아는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그때였다. 

"해사아! 죽어라!" 

장천린이었다. 그는 태어난 이래 이토록 분노한 적이 없었다. 눈앞에서 어린 소녀가 

노마의 장력을 맞고 가랑잎처럼 날아가는 것을 본 것이다. 그는 분노의 검을 던졌 

다. 

슈아아악! 

검은 허공을 찢으며 날아갔다. 

"......!" 

해사아는 눈을 부릅떴다. 그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만 절박할 뿐, 

어찌된 셈인지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쏘아오는 검을 번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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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그의 사지를 꽁꽁 묶어버렸던 것이다.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 

었다. 

"크아아아악!" 

해사아는 참담한 비명을 터뜨렸다. 검이 그의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가 버린 것이다. 

해사아의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가슴을 내려보았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 

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듯 중얼거렸다. 

"네... 네가... 무영의... 환우구검( 宇九劍)을... 익혔다니......!" 

절꺽! 

기묘한 음향이 일었다. 놀랍게도 그의 몸을 관통한 검이 다시 돌아와 허리를 양단해 

버린 것이다. 

해사아의 몸은 상체가 하체가 깨끗이 분리된 채 바닥으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실로 

참혹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장천린은 손을 들어 올렸다. 느릿하게 날아가던 검이 빙글 한 바퀴 돌더니 그의 손 

에 회수되었다. 장천린은 검을 거둔 후 이상한 표정으로 해사아의 동강난 시신을 바 

라보았다. 

"욱!" 

그는 한 모금의 어혈(瘀血)을 토해냈다. 그의 안색은 금세 창백하게 변했다. 

'진기를... 너무 무리하게 운용했다.' 

이때 남북쌍마가 급히 그의 곁으로 떨어졌다. 유리공녀와 천사예도 다급히 달려왔다 

"천린!" 

두 여인은 동시에 울부짖으며 장천린을 부축했다. 

장천린은 두 여인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쩐지 어색하기 만한 웃음이었다. 그는 두 

여인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어쨌든... 세 번째 계획은 성공한 셈이다......." 

울컥! 

다시 피를 토해낸 그는 전신에 맥이 풀리고 말았다. 두 여인이 부축하지 않았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그는 두 여인에게 몸을 의지한 채 눈을 감았다. 

"쉬고... 싶구나." 

그가 마지막 한 말이었다. 

"천린! 정신 차려요......." 

귓전으로 천사예의 음성이 아득히 흘러갔다. 의식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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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소진청이 다가와 그의 맥을 짚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것 없네. 탈진하여 잠시 혼절했을 뿐이야." 

천사예와 유리공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소진청은 고개를 돌렸다. 합비령이 호연을 안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품에 안 

긴 호연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연아는?" 

합비령은 낄낄거렸다. 

"이 계집애가 쉽게 죽을 아인가? 아무튼 이번에 느끼는 게 많았을 거야. 다시는 천 

방지축 까불지 않을 테니 말이야." 

휘이이이잉! 

눈보라가 세차게 날리고 있었다. 

벌판은 온통 설풍에 휘감긴 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무사히 위기를 넘기 

고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에는 시신이 즐비했지만 금세 거세게 몰아치 

는 눈보라에 뒤덮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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