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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장 과거, 운명, 사랑 (80/87)

제28장 과거, 운명, 사랑 

흑룡산(黑龍山). 

멀리서 보면 마치 한 마리의 흑룡이 엎드려 있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호 

북성에 위치한 이 흑룡산은 사시사철 짙은 안개로 가려져 있어 습하고 햇볕이 잘 들 

지 않아 늘 음침한 느낌을 주었다. 

따라서 경험이 많은 사냥꾼들조차 감히 혼자서는 흑룡산에 오를 염두는 내지 못했다 

흑룡산 어귀에 한 명의 흑삼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은 어깨에 보자기로 감은 물건을 둘러메고 두 손 역시 검은 천으로 칭칭 감싸고 

있었는데 안색이 이상할 정도로 창백했다. 

생사집혼 사문도였다. 

그는 안개에 감싸여 있는 흑룡산을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돌아왔구나. 다시는 올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사문도의 얼굴에는 감상의 그늘이 어렸다. 

그는 바로 이곳 흑룡산 마애동(摩崖洞)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 명의 의부(義父)와 네 명의 사부에 의해 뼈를 깎고 살을 태우는 듯한 무(武)의 

고련(苦練)을 하며 살았다. 그런 그에게 어린 날의 치기나 장난스런 추억이라곤 없 

었다. 

지금 그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칠흑 같은 어둠과 굶주림, 고통, 피로 등이 

대부분이었다. 비운의 운명을 타고나 세상에 눈뜰 때부터 밤이건 낮이건 오로지 피 

나는 무공연마로만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수백 종의 독(毒)을 탄 물에 매일 목욕을 해야 했고, 펄펄 끓는 물에 팔을 담그고 

단련했으며 벌겋게 달구어진 철판 위를 걸어야 했다. 때로는 전신의 요혈에 수백 개 

의 침(針)이 꽂힌 채 백일 동안을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 

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끔찍한 기억은 그의 나이 열 살 때 뱀굴에 던져져 득실거리는 수 

천 마리의 뱀 속에서 한 달 이상을 살았던 것이었다. 그것도 칠흑같이 캄캄한 암흑 

속이었다. 

그곳에서 안력(眼力)과 청력(聽力)을 기르고 생존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만 했다 

. 살아있는 뱀을 씹어먹으면서 그 얼마나 피눈물을 뿌려야 했던가? 

"네 분 사부께서는 아직도 마애동에 계실까?" 

회상에서 깨어난 사문도의 얼굴에는 애상이 흘렀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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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걸음 걸었을까? 문득 그의 칼끝 같은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갔다. 

'얼마 전부터 미행하더니... 귀찮게 굴면 그냥 두지 않겠다. 이번 길만은 피를 흘리 

지 않았으면 하는 내 심정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사문도는 구룡장원을 떠날 때부터 줄곧 누군가 미행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 

교묘한 미행술이라 그는 상대방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계속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휙! 

사문도는 신형을 날렸다. 

그가 사라진 후, 그 자리에 홍영(紅影)이 나타났다. 일신에 피처럼 붉은 홍의를 차 

려입은 여인이었다. 

홍해(紅海)였다. 

놀랍게도 혈관음 영호해상의 대제자인 홍해란 여인이 이제까지 사문도를 미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사문도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생사집혼... 놈이 왜 이곳으로 왔을까?" 

그녀는 절강성에서 활동하던 중 우연히 사문도를 발견했다. 

생사집혼 사문도는 무림에서 공포적인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금월산 사 

건 이후로는 조화성에서 원계묵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존재였다. 

조화성에서 사문도를 죽이지 않는 것은 그가 속해있는 구룡장원이 무림의 세력이 아 

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화성의 인물이라면 누구나 생사집혼에 대해 공포심과 더 

불어 증오를 느끼고 있었다. 

사문도를 발견한 홍해는 그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계속 비밀표기를 남겼다. 표기는 그녀의 사부인 혈관음에게 전달될 것이다. 

"호호호! 생사집혼, 이 흑룡산은 네 무덤이 될 것이다." 

홍해는 교소를 터뜨리더니 근처의 소나무 둥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슷! 

그녀의 손끝으로부터 붉은 빛이 뻗더니 소나무 가지에 홍색 수실이 감겼다. 그것은 

혈관음의 문도들만 알아볼 수 있는 비밀표기였다. 

사문도는 흑룡산으로 깊숙이 들어서고 있었다. 

산중으로 진입하자 안개가 더욱 짙어졌고 습기로 인해 옷이 축축하게 젖었다. 하지 

만 그 모든 것들은 그에게 몹시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도 흑룡산의 산 

세를 그려낼 수가 있었다. 

마애곡은 흑룡산 서쪽에 있는 높이 삼백 장에 달하는 절벽 아래 있었다. 

마애곡에 당도한 사문도의 얼굴에는 착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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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안개에 가려 중간 지점까지밖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마애(魔崖)를 올려보았다. 

마애는 도끼를 찍어낸 후 반들반들하게 다듬은 듯한 매끄러운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동작이 날랜 원숭이라 해도 마애를 오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마애의 중간 지점에 동굴이 하나 있었고 그 동굴을 마애동이라 불렀다. 사문도는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것이다. 

사문도는 감회어린 눈으로 한동안 마애를 바라보다가 신형을 솟구쳤다. 

그의 신형은 일직선으로 안개를 뚫고 솟아올랐다. 천마충소(天魔 宵)라는 마도의 

전설적인 경공술을 시전한 것이다. 

"이... 이럴 수가......!" 

마애동 입구. 

사문도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가 내려선 곳은 마애의 중간에 바위가 돌출되어 있는 지점이었는데 그곳에 동굴이 

뚫려 있어야했다. 그런데 동굴은 간데 없고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만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사문도의 얼굴은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마애동이 저절로 무너졌단 말인가?' 

그는 회의에 찬 눈빛으로 무너진 마애동을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그는 현 

기증이 일어났다. 

그는 곧 냉정을 회복했다. 면밀히 입구를 살펴본 그의 안색이 무겁게 변했다. 

'누군가 장력을 날려 인위적으로 입구를 무너뜨렸다!' 

그렇다. 그의 판단은 틀림없었다. 동굴의 입구 암벽에는 장력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그는 마애동에 이곳 말고는 다른 출구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분들이 고의로 무너뜨렸단 말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그 분들을 해치기 위해?' 

사문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전신에 힘이 빠졌다. 

마애동으로 오는 동안 얼마나 기대에 차 있었던가? 의문으로 점철된 자신의 신세에 

대한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단숨에 이곳까지 달려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후후후훗! 결국 나는 비극의 사생아란 낙인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자조의 웃음을 흘리는 사문도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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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는 비애와 분노를 일시에 폭발시키려는 듯이 암벽을 향해 

장력을 날렸다. 

콰쾅! 

장력이 암벽에 작렬하자 폭음과 함께 절벽이 흔들렸다. 

"으하하하핫......!" 

우르르르....... 

그가 밟고 있던 바위가 진동을 일으키더니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사문도는 떨어 

져 내리는 바위와 함께 마애곡 아래로 추락했다. 

'흐흐... 좋다. 하늘도 날 외면하는구나. 그렇다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 조화성을 

철저히 붕괴시켜 주마! 조화성을 무너뜨리고 염무를 쳐죽이겠다. 그런 연후 과연 

내 비극적인 운명의 굴레가 벗겨지는가를 똑똑히 지켜보겠다!' 

사문도는 무너져 내린 바위더미 위에 우뚝 선 채 두 눈에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문득 그의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좌측 절벽 아래를 돌아보며 음산하게 외쳤다 

"나와라!" 

조용했다. 숨막히는 정적만이 감돌 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후훗! 쥐새끼처럼 숨는다고 모를 줄 아느냐? 벌써부터 네놈이 미행하고 있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 

사문도의 소매가 절벽 아래 바위를 향해 떨쳐졌다. 

쾅! 

장력이 떨어진 바위가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앗!" 

다급한 비명과 함께 홍영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핫핫핫! 어디 네 얼굴이나 좀 보자." 

사문도의 신형은 훌훌 날아 홍영을 덮쳐갔다. 

"흥! 죽엇!" 

홍영은 날카로운 외침을 발하며 소매를 휘둘렀다. 소매로부터 무엇인가 시커먼 것이 

뿌려져 허공을 가득 덮었다. 

사문도는 한눈에 그것이 독질려(毒鐵沙)란 암기임을 알아보고 냉갈했다. 

"흐흐! 이제 보니 계집이었군." 

그는 손바닥을 뒤집어 쳐냈다. 펑! 하는 폭음과 함께 독질려는 방향을 바꾸어 홍영 

의 전신에 뒤덮이고 말았다.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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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자신이 뿌린 독질려에 스스로 당하고 만 것 

이었다. 홍영은 저만치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사문도가 옆에 내려섰다. 

"너는 누구냐?" 

홍해였다. 그녀는 낯빛이 이미 검게 물들었으나 더듬거리며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생사집혼... 과연... 강하지만... 결국은... 이곳에서 죽을 것......." 

"누구냐고 물었다!" 

"호홋... 혈관음의 제자 홍해다." 

사문도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살광이 뿜어져 나왔다. 

"조화성의 주구로구나!" 

그의 홍해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아악!"' 

홍해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삼 장 밖으로 날아갔다. 사문도의 발길질에 그녀는 

즉사하고 말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한 가닥 냉엄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실로 잔인한 아이로구나." 

사문도의 몸이 빙글 돌아섰다. 

언제 나타났는지 한 채의 붉은 색 가마가 바닥에 내려서 있었고 가마 주위에는 네 

명의 홍의여인들이 공손히 시립하고 있었다. 

사문도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혈관음 영호해상이 아니냐?" 

홍의여인들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죽일 놈! 함부로 지껄이다니......." 

"주둥이를 찢어버리겠다!" 

이때 가마 안으로부터 차분히 가라앉은 여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라. 내가 상대하겠다." 

가마의 드리워져 있는 주렴이 흔들리는 듯 하더니 홍색 궁장 차림의 삼십대 미부(美

婦)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의 혼백을 뺄 정도로 고혹적인 미부의 얼굴에는 은은한 

서릿발이 서려있었다. 

'......!' 

사문도는 움찔했다. 미부에게서 강렬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니, 그는 어디선가 

미부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궁장미부는 그를 바라보며 잔잔한 음성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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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요즘 이름을 날리는 생사집혼이란 아이인가?" 

사문도의 눈썹이 꿈틀했다. 

"부인은 누구요?" 

그의 말투는 아까보다는 다소 나아졌다. 

"이 몸은 영호해상이라고 하지. 남들이 혈관음(血觀音)이라 부르더군." 

사문도는 내심 부르짖었다. 

'혈관음 영호해상......!' 

그 얼마나 공포스런 이름인가? 마교의 십삼사(十三邪)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음독 

하며 강하다는 혈관음이 나타난 것이다. 

'혈관음이 이렇게 젊을 줄이야.......' 

사문도는 정말 놀랐다. 그는 혈관음의 나이가 최소한 육순은 넘었으리라 상상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찌 알겠는가? 혈관음 영호해상의 실제 나이는 오십이 넘었 

던 것이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만 젊어 보일 뿐이었다. 

혈관음은 여전히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는 내 제자를 죽였네." 

"그렇소." 

"또한 과거 조화성 고수들을 많이 죽였네." 

"그렇소." 

"그 빚을 어떻게 갚을 셈인가?" 

사문도는 흐흐, 하고 웃었다. 

"돈을 빚졌으면 돈으로 갚고 인명(人命)을 빚졌으면 인명으로 갚아야 할 것이오. 흐 

흐... 하지만 나는 갚을 생각이 없소. 도리어 더욱 많은 빚을 그대들에게 져야겠소. 

영호해상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무엇 때문인가?" 

"흐흐... 그건 나도 모르오. 단지 죽여야 한다는 것! 조화성의 인물이라면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것밖에 모르오." 

영호해상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나에게... 협박하는 건가?" 

"흐흐흐흣......." 

사문도는 괴소를 흘리며 어깨에 맨 보퉁이를 내렸다. 동여맨 천을 풀자 그 속에서 

애병 일월쌍극(日月雙戟)이 나왔다. 그는 일월쌍극을 양손에 나누어 들며 차갑게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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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 혈관음, 당신의 목이 필요하다." 

"호호호호호! 정말 건방진 어린애로군!" 

빙글! 

영호해상의 어깨가 춤추듯 흔들리는 순간 그녀의 몸이 한 바퀴 회전했다. 그녀의 소 

매로부터 한 쌍의 섬섬옥수가 나왔다. 기이하게도 피처럼 붉고 투명한 빛을 띄고 있 

었다. 

츠츠츳! 

그녀의 몸에서 섬뜩한 붉은 기류가 흘러나와 은은한 소용돌이는 이루는 듯했다. 그 

것을 본 사문도의 눈에서는 독기가 뻗었다. 

"철혈강기(鐵血 氣)!" 

위잉! 

일월쌍극이 무섭게 회전하며 가공할 예기를 뿌렸다. 쌍극의 번뜩이는 광채가 곧장 

혈관음 영호해상의 좌우 어깨를 향해 떨어졌다. 

"호호호홋! 혈비천공(血飛穿空)!" 

쩌어엉! 

귀청을 찢는 듯한 금속음이 울렸다. 

사문도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영호해상도 한 걸음 물러났으나 그녀의 안색은 약 

간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두 사람은 다시 격돌했다. 이번에는 영호 

해상이 먼저 공격했다. 

스스스! 

그녀의 한 쌍의 손이 춤추었다. 

사문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두 개의 붉은 손바닥이 허공을 덮는 듯하더니 갑자 

기 핏빛의 관음상(觀音像)으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음!' 

그는 신음을 발하며 공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관음상은 그를 에워싸듯 몰려들고 

있었다. 

"호호홋! 얘야, 이만 가거라!" 

영호해상의 살기에 찬 외침과 함께 수십 개의 관음상이 일제히 공격해왔다. 

위이이이잉! 

사문도는 감히 태만하지 못하고 일월쌍극을 교차시킨 후 관음상을 뚫어져라 노려보 

았다. 허공을 가득 메운 채 공격해 오는 관음상!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허 

상(虛像)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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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어엉! 

사문도의 손에서 일월쌍극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폭풍! 그것은 폭풍과도 같은 공격이었다. 

퍼퍼퍼퍼... 펑! 

일월쌍극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여지없이 관음상이 폭음과 함께 날아갔다. 실로 상 

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혈관음 영호해상이 펼친 것은 마교에서 전래되는 극한마공이었다. 마교비전의 내가 

기공(內家氣功)이 관음상으로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그녀가 지닌 최후의 공부 

였다. 

영호해상의 안색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졌다. 

'이럴 수가.......' 

쐐애액! 

문득 그녀의 면전으로 일월쌍극이 날아들었다. 

그녀는 짧은 순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 마공을 발출했지만 그녀가 

환출해 낸 관음상은 모두 파괴되었다. 이제 그녀는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눈 

을 크게 뜬 채 육중한 일월쌍극이 자신의 머리로 떨어지는 것을 볼 도리밖에 없었다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아......!' 

그녀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였다. 

"안돼......!" 

문득 어디선가 애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해당!' 

사문도의 몸이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 한 가닥 날씬한 홍영이 뛰어들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개봉부에서 화원을 경영하던 소녀였다. 해당이라고 했었지....... 

사문도의 손에 힘이 빠졌다. 

펑! 

"우욱!" 

사문도는 가슴에 격통을 느끼며 입과 코로 분수 같은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영호해 

상의 붉은 손바닥이 그의 가슴을 친 것이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았다. 세상이 온통 회전하는 가운 

데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이 다가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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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그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며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편 영호해상은 믿을 수 없는 사태에 넋을 잃고 말았다. 

정수리에 떨어지던 일월쌍극이 멈칫하는 것을 느낀 순간 본능적으로 전력을 다해 사 

문도의 가슴을 쳤다. 그녀는 설마 자신의 공격이 적중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상대는 무방비로 그녀의 혈수공(血手功)을 맞고 피를 뿜으며 날아가 버린 것 

이 아닌가? 

'어째서.......'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저만치 쓰러져 있는 사문도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해당 

이 미친 듯이 달려가더니 사문도의 몸 위에 엎어지는 것이 아닌가? 

"사공자님!" 

순간 영호해상은 아찔한 충격을 느꼈다. 

'사공자? 그럼... 저 아이와 아는 사이였단 말인가?' 

죽은 듯이 누워있는 사문도를 끌어안은 해당은 그를 세차게 흔들며 울부짖고 있었다 

"당신이었군요! 그래요... 어쩐지 이름을 들었을 때 당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 

어요... 흑흑! 생사집혼이 과연 당신이었군요......." 

비운의 여인 해당. 

그녀는 장천린이란 한 사내의 영상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그 

러던 어느 날이었던가. 

개봉부에서 꽃가게를 하고 있을 때 불쑥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있었다. 

사문도란 이름을 지닌 외로움에 지친 고독한 사나이였다. 그는 어느새 그녀의 가슴 

속에 또 하나의 영상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해당아... 네가 아는 청년이냐?" 

영호해상이 오열하고 있는 해당의 뒤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하지만 해당은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공자... 아니 문도, 해당은 어쩌면 그때 당신을 잡았어야 했어요. 다만... 다만 

그때는 너무나 어려서......." 

해당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사문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살... 살아있어!' 

해당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 한 가닥 희망의 빛이 어렸다. 그녀는 사 

문도를 안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살릴 테야!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꼭! 꼭 살리고 말 거야!" 

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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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은 사문도를 안고 신형을 날렸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영호해상은 미처 그 

녀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해당아......!" 

그녀는 다급히 부르짖으며 신형을 날리려 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탄식소리가 그 

녀의 발길을 붙잡았다. 

"내버려둬라. 이화야." 

영호해상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멍한 표정이더니 소 

리가 들린 쪽으로 서서히 몸을 돌렸다. 

그녀가 바라보는 곳. 하나의 커다란 바위 뒤에서 관복차림의 한 명의 노인이 걸어나 

오고 있었다. 

"오... 오라버니......!" 

그녀는 격동을 일으키며 부르짖었다. 노인- 놀랍게도 그는 단위제였다. 

단위제와 영호해상. 그들은 남매지간이었던 것이다. 

오래 전 단위제는 누이인 단리화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 

는지 알지 못해 그토록 애를 태우며 찾는 누이 단리화... 그녀가 바로 혈관음 영호 

해상이었던 것이다. 

단위제는 성큼성큼 다가와 영호해상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 해당은 반드시 그 아이를 살려낼 게야." 

영호해상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아이가 어떻게... 생사집혼을 알았을까요?" 

단위제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지. 남녀의 운명은 하늘이 정한 것이란다. 그저 자연의 순리에 맡겨 두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는 잔잔한 눈빛으로 영호해상을 주시했다. 

"생각해 보았느냐? 이제 너도 과거의 잔재를 씻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 

"......." 

영호해상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백마(白魔) 갈훼가 네 생명을 구했다고는 하나 그 동안 충분히 빚을 갚았다. 이제 

는 마교에서 탈퇴할 때가 되었다." 

영호해상의 얼굴이 흔들렸다. 

"해당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 아이마저 불행하게 만들 셈은 아니겠지 

? 사문도는 조화성과 양립할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아이다. 그런데 네가 조화성에 남 

아 있다면 해당이 어찌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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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어찌해야 할지......." 

영호해상은 괴로운 듯 머리를 흔들었다. 

단리화는 실로 불행한 여인이었다. 

가문이 누명을 입고 참화를 당한 후, 그녀는 의지가지 없는 신세가 되어 천하를 유 

랑해야만 했다. 

힘없는 여인의 몸으로 거친 세파를 어찌 감당해 내겠는가? 그녀는 숱한 사내들로부 

터 능욕을 당해야 했다.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그녀는 몇 번이나 자살하고 싶었지 

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는 오라버니인 단위제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오욕 

의 몸을 이끈 채 천하를 떠돌아 다녔다. 그러던 중 기진맥진한 나머지 눈밭에 쓰러 

지고 말았다. 

그때 그녀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백마 갈훼였다.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인데다 만삭이었다. 갈훼에게 구함을 받은 후 그녀는 딸을 낳았 

으니 그 딸이 바로 해당이었다. 물론 해당이 누구의 씨인지 그녀 자신도 알 수가 없 

었다. 

갈훼는 마도의 전설적인 위인이었다. 비록 창노한 나이였으나 그녀의 뛰어난 미모에 

마음이 끌렸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제자로 거둔 후 곁에 두게 되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표면적인 관계일 뿐이었다. 어느 날 그는 욕정을 참지 

못해 그녀를 범해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비밀스런 내연의 관계가 이어져 

오게 되었다. 

한편 단리화는 해당을 볼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가책과 고통을 느꼈다. 천하를 유랑 

하면서 숱한 사내들에게 능욕을 당했기에 해당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사실 

이 그녀를 수시로 괴롭혔던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해당을 곁에 둘 수가 없었다. 결국 젖먹이에 불과한 어린 딸을 밖으 

로 내보내게 되었다. 한 노파에게 돈을 주고 대신 양육하게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그것이 두 모녀 사이에 긴 이별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녀 

에게 돈을 받고 양육을 맡았던 노파가 해당을 안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노파는 해당을 싼값에 노예로 팔아버렸다. 그 날 이후 해당은 어린 나이에 노류장화 

(路柳墻花)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 후 단리화는 극적으로 해당을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해당이 그렇게 된 것이 자신 

의 탓이라 여겨져 늘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기만 했었다. 

산동(山洞). 

차가운 삭풍이 동굴 안으로 흘러들며 스산한 음향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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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기이하게도 동굴 안은 후끈한 열기로 인해 달아오르고 있었다. 차가운 삭풍조차 동 

굴 안의 열기에 스러지고 있었다. 

동굴 안에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닥에 마른 짚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는 전라의 남녀가 

누워 있었다. 

"살려야 해... 해당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해당이었다. 

그녀는 알몸이었는데 역시 아무 것도 걸치지 않는 사문도의 몸 위에 포개져 있었다. 

사문도의 얼굴은 백짓장이다 못해 납빛을 띄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뚜렷한 혈장 

인(血掌印)이 찍혀있었다. 

해당의 전신 모공으로부터 분홍빛의 기체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혼 

신의 힘을 다해 접음도양대법(接陰導陽大法)을 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접음도양대법이란 여인의 순음지기(純陰之氣)로 남자의 순양지기(純陽之氣)를 도인( 

導引)하여 내상(內傷)을 치유하거나 죽어 가는 사람을 극적으로 부활케 하는 마도의 

전설적인 대법이었다. 

"하아... 아......." 

해당은 전신을 움직이며 사문도의 몸을 마찰했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그녀는 젖가슴을 사문도의 가슴에 밀착시켜 쉴새없이 문질렀으 

며 양손은 활짝 펼쳐 사문도의 옆구리 혈맥을 끊임없이 추궁과혈(推宮過穴)했다. 

입술과 입술은 빈틈없이 맞닿았고, 아랫배와 아랫배도 한 치의 틈도 없이 붙어 있었 

고 두 다리도 사문도의 하반신을 뱀처럼 휘감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온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음탕한 

광경으로 보였지만 그녀는 이 순간 혼력을 다하고 있었다. 

전신의 모공을 열고 순음지기를 뿜어내 사문도의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만일 이번 대법이 실패하면 사문도를 살릴 수 없음은 물론 그녀 자신도 탈진되어 죽 

게 되는 것이다. 아니, 설사 성공한다 해도 그녀는 원기(元氣)가 크게 손상되고 만 

다. 

'이 분은 해당의 마지막 희망이야. 결코 죽어선 안돼... 안돼.......' 

해당은 기도하듯 부르짖으며 입술을 벌렸다. 

그녀의 입에서 홍색의 기체가 뭉클거리며 흘러나왔다. 그녀는 사문도의 파리한 입술 

을 벌리고 그 기운을 흘려 넣었다. 동시에 전신을 더욱 격렬하게 마찰시켰다. 

그야말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녀의 헌신적인 희생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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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사문도의 얼굴에 핏기가 돌면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아!" 

해당은 탄성을 발하며 더욱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사문도의 몸이 점차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희열을 느끼며 더욱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전신을 움직였다. 

한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흑......!" 

마치 작살이라도 맞은 새처럼 그녀의 몸이 파르르 경련했다. 접음도양대법의 최대고 

비에 들어선 것이다. 

의식을 잃은 사문도는 무의식중에 양력(陽力)이 최대한으로 격발되며 해당의 유도에 

의해 저절로 그녀의 체내로 진입해 버린 것이다. 팽창할 대로 팽창한 사내의 양물 

이 순음의 원천으로 파고 든 것이다. 

해당은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안돼... 안돼... 정신이 흩어지면 끝이야.......' 

그녀는 사나이의 꿈틀거리는 뜨거운 기운을 체내 깊은 곳에 느끼며 어쩔 수 없는 본 

능적인 희열을 느꼈다. 더구나 그녀는 숱한 사내들을 겪어왔기에 충동을 참기가 힘 

들었다. 

그러나 욕정에 정신이 흐트러지면 접음도양대법은 실패하고 만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 다 탈진해 죽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흐윽......." 

해당은 이를 악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사지로 단단하게 사문도를 껴안은 

채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최대한으로 순음지기를 사문도의 체내로 흘려 넣어야 

했던 것이다. 

차츰 사문도의 육신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해당 

의 동작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해당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을 느꼈다. 말할 수 없는 쾌감이 전신의 혈관 속을 내달리며 그녀의 정신을 여지없 

이 흔드는 것이었다. 

'아... 안돼.......' 

해당의 입술에서는 피가 맺혔다. 

쾌락에 휩쓸리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러나 몸은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녀의 체내 

로 들어온 사문도의 순양지기를 자신의 순음지기와 혼합하여 그의 잠력(潛力)을 폭 

발시켜야 했다. 

쾌락과 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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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두 가지 감정을 분리하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런 일이었다. 해당은 세상에 태 

어난 이래 이런 고통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해내야 했다. 그것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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