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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1화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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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 1권

1화

오뉴월(五六月)의 뜨거운 날씨는 검이 온몸을 쑤시는 듯 욱신거리게끔 만든다. 더군다나 남만의 여름은 더욱 그렇다. 찌는 듯한 더위뿐만이 아니다.

더위보다 참기 힘든 것은 습기다.

호흡조차도 가빠오게 하는 습기가 사람들을 짜증 나게 만든다. 그렇지만 더위에 불만을 터트리는 자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들은 숨을 죽인 채 한 사내를 바라봤다.

고개를 들지 않아 외모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젊은 사내였다.

무릎을 꿇은 채로 나무에 묶여 있는 사내는 그를 바라보는 자들과는 조금 달랐다. 사내는 남만인이 아니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남만인들과 달리 그는 하얀 피부를 지녔다.

중원인이다.

사내를 바라보는 남만인들의 대부분의 얼굴에는 독기(毒氣)가 가득했다.

그런데 보통의 남만인들과는 달랐다.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검은 무복을 입고 있고 모두가 몸에 균형이 잡혀 있다. 남만인임과 동시에 무인이다.

그것도 남만제일의 독가인 독황독립문(毒皇獨立門)이다.

사내는 물조차 마시지 못해 축 처진 채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지긋이 나이를 먹어 보이는 자로 무엇보다 검은색이 아닌 청색의 무복을 입고 있는 자였다.

노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환호성을 뒤로한 채로 사내에게 걸어온 노인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토록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고함이 단숨에 사그라졌다.

노인이 손을 뻗어 사내의 턱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심하게 당한 탓인지 얼굴이 피범벅이다. 심지어 얼굴 정중앙에는 검상까지 있다. 정신을 잃은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노인을 향해 사내는 무서운 안광(眼光)을 토해 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건방진 놈. 그렇지만 그 눈을 보는 건 오늘까지다.”

사내의 입이 열리더니 쉰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후회하게 될 겁니다. 오늘을.”

“그런 일은 없다. 오늘 이후로 네놈은 죽은 것과 다름없으니까.”

노인은 독황독립문에서 규율을 담당하는 독안사신(毒眼死神) 율개다. 벌을 내릴 때의 모습이 잔혹한 사신 같다 하여 붙여진 별호다.

율개는 옆에 있는 통을 열었다. 안에는 쇠가 불에 달궈지면서 붉은 빛을 토해 내고 있었다. 독안사신 율개는 그 쇠의 가운데 구멍으로 꼬챙이를 쑤셔 박았다.

빨갛게 달궈진 쇠를 들어 올린 율개가 잔인한 미소를 흘렸다.

사내는 눈을 찔끔 감았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이 온몸을 엄습했다.

“으윽!”

치이익!

등에 화끈하게 이는 감각에 사내는 입술을 깨물었다. 새어 나오는 고통 어린 신음 소리를 감추기 위해서다. 율개가 등 뒤에 대고 있었던 쇠를 떼어 냈다.

“헉헉!”

사내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은 근성으로 참았지만 입술이 터져 버렸다. 비릿한 피가 입안으로 자꾸 흘러들었다.

“퉤!”

침을 내뱉으면서 사내는 호흡을 골랐다.

등 뒤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살갗이 모두 타 버렸을 게 분명하다. 파문된 자라는 낙인이 찍혀 버린 것이다.

열여덟 살의 생일날이었다.

독황독립문 최고의 기재(奇才)였던 갈지혁(葛池赫)이 파문당했다. 금지된 독물에 손을 댔다는 이유 하나로.

* * *

독황독립문에는 최대의 금역(禁域)이 있다.

사방이 진법으로 가득한 장소로 사독문(巳毒門)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독황독립문에서 가장 큰 죄를 지은 자만을 그곳에 가둔다. 그렇기에 사독문에 처져 있는 진법은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생문(生門)은 오로지 하나, 그리고 그 생문이 열리는 것은 밖에 있는 자들이 손을 쓰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그 외에도 사문을 벗어나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사독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곳은 뱀들로 가득하다. 그렇다. 유일하게 그 진법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그 뱀들을 지나서 오는 것이다.

불가능하다. 그냥 뱀들도 아니고 독을 가득 머금고 있는 맹독성의 독사들이다. 남만에는 중원에 알려지지 않은 독사들의 종류가 셀 수도 없이 많다.

단 한 번만 물려도 온몸의 피가 역류하면서 그대로 게거품을 물게 하는 독사도 있다.

그들의 독은 범조차도 얼마 버텨 내지 못한다. 그러한 독사들이 하나도 아니고 가득 길을 채우고 있는데 그곳을 벗어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한곳에 장정 둘이 한 사내를 양쪽으로 부축한 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독문의 유일한 생문을 연 것이다. 아마도 사독문에 가둘 새로운 죄인이 생긴 모양이다.

장정 둘은 부축하고 있는 사내를 획 하고 집어던졌다. 완전히 힘이 빠져 버린 사내는 볼썽사납게 땅을 굴렀다. 장정 둘은 서로 눈짓을 하고는 생문을 통해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르릉!

곧 울리는 소리. 생문이 닫혀 버렸다.

엎어진 사내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죽은 사람인 양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꽉 쥐어진 주먹만큼은 펴질 줄을 몰랐다. 완전히 축 늘어진 채로 이곳까지 끌려올 때도 그랬다.

사독문은 위험한 곳이다. 뱀도 그렇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독충들이 우글거린다. 그러한 곳에서 이토록 무방비로 누워 있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없는 갈지혁은 알아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천천히 갈지혁의 주변으로 죽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전갈, 거미, 그리고 독이 있는 두꺼비까지…….

막 전갈이 날카로운 꼬리를 세우는 순간 갈지혁의 손이 꿈틀했다.

갈지혁의 손이 꿈틀거리는 것과 동시에 나무 위에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급히 손을 움직였다. 순간 노인의 손놀림에 갈지혁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쳐 품 안으로 들어왔다.

손을 대지 않고도 물건을 끌어들이는 무공, 허공섭물(虛空攝物)이다.

노인의 외모는 사람의 것으로 보기 힘들어 보였다. 얼굴의 일부분은 일그러졌고, 또한 험상궂어 보이는 외모다.

노인이 조심스럽게 갈지혁의 코앞에 손을 가져다 댔다. 꿈틀 하는 모습을 보고 구하긴 했지만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미약하지만 끊어지지 않은 숨결을 느끼고서야 노인은 갈지혁이 살아 있음을 확신했다.

“운도 좋은 놈.”

노인은 갈지혁의 피투성이인 얼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초라한 집이다.

대충 나무들을 잘라 내고 얼기설기 얽은 후 짚으로 위를 덮었다. 비가 많이 오면 지붕에서도 비가 샐 정도로 형편없다. 어디 그뿐이랴. 방 안은 지독한 냄새로 가득했다. 그 냄새는 동물의 썩은 내와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완전히 정신을 잃었던 갈지혁의 정신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우웩!”

정신이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입안에 있는 역한 무엇인가에 당장에 그는 토악질을 해댔다.

한참을 토했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계속해서 구역질이 치밀었다. 일어날 힘조차 없거늘 몸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토해 내니 완전히 탈진해 버렸다.

갈지혁은 그대로 다시금 땅에 쓰러졌다.

얼굴도 쓰라리다. 그는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자잘한 상처들은 언제든 치료가 되겠지만 얼굴 정중앙을 가른 검상은 상당히 깊다.

피가 완전히 닦인 탓에 갈지혁의 얼굴이 드러났다. 남만에서 살아온 그이거늘 오히려 피부는 웬만한 중원인들보다도 흰 편이다. 얼굴 또한 준수하다.

독황독립문 내에서 최고의 기재이자 미남으로 불렸던 갈지혁이다. 비록 다소 차가워 보이는 것이 흠이지만 그것 또한 그만의 매력이기도 했다.

갈지혁은 엎어진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갈지혁은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정신을 잃은 채로 어딘가로 끌려가던 것은 기억이 난다. 거의 기억이 끊기다시피 한 상태로 갈지혁은 자신이 어디에 갇히게 되었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사독문.

한 번 들어오면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독황독립문 내에서도 최고의 죄를 지은 자들만 가둔다는 장소로 그 안에 대해서는 몇 가지를 제하고는 전혀 알 수 없다.

그건 살아 나온 사람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왜…….’

비록 금지된 독에 손을 댔다고는 하지만 이만한 벌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몇 년 정도 어딘가에 갇히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가온 벌은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파문, 그리고 사독문.

최고의 독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망도 무너져 버렸다. 파문이라는 두 글자 앞에.

그때였다.

“오호라, 일어났나 보군.”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목소리에 갈지혁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세우려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있게 된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썩을 놈!”

무엇인가를 발견했는지 노인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네놈 주둥아리에 물린 약초가 얼마나 귀한 것이거늘 그걸 그대로 토해?”

그제야 갈지혁은 자신이 뱉은 구역질이 치미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약초였던 것이다. 지금 이 노인이 자신에게 물려 준.

갈지혁의 얼굴을 향해 노인이 자신의 흉측한 면상을 들이밀었다. 갈지혁은 치미는 놀람을 간신히 감췄다. 일그러진 얼굴을 한 노인이 갑작스럽게 얼굴을 내민 탓이다.

“그래, 다행히 멀쩡하긴 한 모양이군.”

“죄, 죄송합니다. 어르신.”

갈지혁은 힘겹게 말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이다. 그렇지만 이곳이 사독문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중죄인임은 분명하다. 이곳에 갇힌 사람은 여태까지 한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로 적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 흉측한 외모의 노인일 것이다.

“꼴에 죄송한 건 아는 모양이군.”

노인은 짊어지고 있던 짐을 옆으로 대충 집어던졌다. 갈지혁은 이 방 안에 있는 이 지독한 냄새가 무엇인지 대충 알아차렸다. 그는 독황독립문의 기재였다. 냄새만으로도 어떠한 약초와 독들이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약사십니까 아니면…….”

“독인(毒人)이냐고 묻고 싶은 게냐?”

갈지혁이 하려고 했던 말을 노인이 가로챘다. 노인이 잠시 갈지혁의 얼굴을 살피다가 대답했다.

“독인이다.”

“아…….”

“용케도 알아차렸구나. 어떻게 알아차렸지?”

“냄새가 납니다. 독과 약초의 냄새가.”

노인의 얼굴에 언뜻 놀람의 빛이 스쳤다.

이곳에는 수백 가지 이상의 독초와 약재들이 있다. 그것들이 온통 뒤섞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썩은 내라고만 생각하기 일쑤다. 독을 어느 정도 다룬다는 자들도 분간하지 못할 것을 이 어려 보이는 사내는 단숨에 알아차렸다.

“그럼 네놈이 주둥아리에 물고 있던 것의 정체는 알겠느냐?”

“전혀…….”

“초롱화(草弄花)다.”

“그, 그건 독초!”

“맞아. 네놈의 정신력이 부족했으면 당장에 죽었겠지. 하지만 초롱화는 독초이면서 약초이기도 하다. 네놈은 초롱화에게 감사해야 해. 안 그랬으면 살기 쉽지 않았을 테니.”

초롱화는 늪지대에서 나는 식물이다. 늪의 습한 기운을 먹고 자라는 풀로 만약 그 풀을 먹게 되면 헛것을 보게 되고 급기야 죽기까지 하는 독초다.

그렇지만 그 초롱화가 약초가 된다는 말은 갈지혁조차 금시초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안다는 것은 독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말이다. 갈지혁이 조심스레 물었다.

“노야는 누구십니까.”

“내가 먼저 묻지. 네놈 등 뒤에 박힌 파문이라는 그 글자……. 네놈은 독황독립문의 제자냐?”

“분명 며칠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허기야 파문당한 놈이니. 어떠한 죄를 지었기에 파문까지 당한단 말이냐.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 놈이.”

사독문은 엄청난 죄를 짓는 죄인만을 가두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 왔다면 분명 중죄인, 그렇지만 노인은 갈지혁이 그리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갈지혁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툭 내뱉었다.

“금지된 독에 손을 댔습니다.”

“……끝이냐?”

“그게 다입니다.”

“정말이냐? 겨우 금지된 독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이 사독문에 가두었다고?”

노인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갈지혁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금지된 독에 손을 댄 것은 중죄다. 그렇다 하지만 이곳에 가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 독을 이용해 독황독립문을 흔들었다면 모를까 겨우 손을 댔다는 것 정도로 사독문에 가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노인의 입에서 온몸을 얼릴 정도의 차가운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거짓은 아니렷다?”

“거짓말을 해서 뭐합니까.”

“것도 그렇군. 그럼 난 잠시 볼일이 있어서 나갈 테니 쉬고 있거라.”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지혁이 급히 물었다.

“잠시만! 노야가 누구냐는 제 말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나? 너와 같은 업(業)을 지고 있는 자.”

말을 마친 노인은 가볍게 어깨 쪽에 있는 옷을 잡아당겼다. 노인의 어깨에는 두 글자가 박혀 있었다.

파문(破門)!

갈지혁과 같다. 노인 또한 파문을 당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운이 좋은 줄 알아. 네놈 등에 파문이라는 두 글자만 박혀 있지 않았다면 그 독충들 속에서 구해 내지 않았을 테니까.”

말을 마친 노인은 집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홀로 남은 갈지혁의 눈이 나가버린 노인의 등을 쫓았다.

파문을 당한 자, 그리고 독황독립문에 있는 수많은 책들을 읽은 갈지혁조차 모르는 초롱화가 약초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아는 인물.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어떠한 연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의 몸에서 짙은 냄새가 배어 있다. 독의 길을 걷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진한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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