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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2화 (2/200)

# 2

2화

사독문에서는 숨을 쉬기가 힘들다.

독충이나 독사를 비롯해 독을 지닌 수많은 생물들이 꿈틀거린다. 그들이 뱉어 낸 독기는 공기와 섞인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장에 헛구역질을 하면서 정신을 잃을 정도다.

비록 멀쩡한 몸은 아니지만 갈지혁은 버틸 수 있었다. 항상 맡아오던 냄새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종종 머리가 쿡쿡 쑤셨다. 비록 독황독립문에 있을 때도 이 같은 냄새와 함께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항상은 아니었다.

버틸 수 있는 것은 오기 덕분이다. 반드시 이곳에서 죽지 않고 나가고야 말 거라는 갈지혁의 정신력이 그의 생명을 강하게 붙잡았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천 년, 아니 억겁의 시간이 걸린다 해도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갈지혁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이끌고 집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오랜만에 나온 탓인지 너무 낯설다. 거의 죽다시피 이곳에서 며칠 간 쓰러져 잠만 잤다. 그는 옆에 놓여 있는 도끼를 움켜쥐었다.

장작을 패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머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움직인 것이다. 평소라면 쉽사리 할 수 있는 장작패기거늘 단 한 번의 도끼질에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노랗다. 가려진 앞머리 탓에 시야가 분간하기도 힘들었지만 애써 머리카락을 올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검상 탓이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검상이 꽤나 깊은 상처이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감추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보고 싶지 않은 상처다. 아직까지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상대에게 입었던 상처였기 때문이다.

독황독립문 안에서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상처가 바로 이 검상이다.

힘겹게 장작을 패던 갈지혁은 마침내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헉헉!”

갈지혁은 이를 악물었다.

몸을 움직이니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몸을 꼿꼿이 세웠다.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되고자 하는 꿈이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전에는 어떠한 일에도 무너질 수 없다.

막 갈지혁이 다시 도끼를 움켜쥐는 순간 노인이 수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뜩이나 엉망인 얼굴이 인상까지 찌푸리니 흉악스럽기도 하다.

“뭐냐?”

“장작을…….”

“시키지도 않은 일 하지 마라. 그리고 그 정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나가도 되겠군. 혹여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곳에 머물 생각이 있다면 버려라. 난 어린아이의 뒤치다꺼리나 할 생각은 없으니까.”

노인은 차갑게 말을 내뱉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갈지혁은 노인의 등을 바라보다가 곧 도끼를 잡았다.

‘고수다.’

쾅쾅!

도끼로 장작을 내리치면서 갈지혁은 방금 전 노인의 눈을 생각했다. 흉한 외모에 감춰질지도 모르지만 눈만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맑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여태까지 버텨 온 것만 봐도 고수일 것은 분명하다. 비록 지금은 아니라 하지만 얼마 전까지 독황독립문 최고의 기재였던 갈지혁이다.

전율이 인다. 여태까지 봤던 그 누구보다 심기가 깊어 보인다. 예전이었다면 당장에 무공을 겨루고 싶어 근질근질 했을 것이다.

힘겹게 장작을 모두 팬 갈지혁은 무거운 발을 옮겼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금 지독한 독기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풀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무유초(無有草)…….”

향기가 없는 꽃이다. 아름다운 색은 가지고 있지만 향기가 없다. 겉만 번드르르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지독한 독초다. 그냥 그 상태로는 그저 꽃일 뿐이지만 술 속에 한 달에서 일 년가량을 담아 두면 지독한 독이 된다.

애초에 향기가 없는 것처럼 무유초로 만들어진 독에는 냄새가 없다.

“제조 방법은?”

노인은 손을 움직이다 갑자기 물었다. 갈지혁은 침착하게 말했다.

“술에 담급니다. 특히 화주가 좋고 담근 지 십 개월하고 보름쯤이 가장 독기가 강합니다.”

“십삼 일이다. 십삼 일 중 미시쯤에 순간적으로 독기가 지독해지는 순간이 있다.”

말을 마친 노인은 다시금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다. 갈지혁의 존재 자체를 잊은 듯한 모습이다.

그 모습을 바라만 보던 갈지혁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르신.”

“…….”

“전 죽고 싶지 않습니다.”

갈지혁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죽고 싶지 않다는 한 마디에 노인은 움찔해 버렸다. 수도 없이 들어 본 말이지만 이렇게 담담하게 내뱉는 놈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온 이상 정해진 것은 하나다.

“이곳에선…… 살아 나갈 수 없다.”

생문이 열리지 않는 이상 길은 하나다. 뱀의 길이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그것이다. 뱀이 많아서 그리 불릴 뿐이지 그곳에는 맹독을 지닌 여러 생명이 존재한다. 산 자가 그곳을 지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너도 독황독립문의 무인이었다면 알 텐데? 사로(巳路)는 사람인 이상 건널 수 없다.”

“산 사람이 사로를 건널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 독인이라면?”

말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노인이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아니, 원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진 상태니 표정으로는 알 수 없지만 두 눈이 이글거린다. 화가 난 듯하다.

“건방진 놈! 독인이라는 것이 그리 우스워 보이더냐! 함부로 입에 담을 만큼!”

독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는 독의 길을 걷는 사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독인이라 한다면 이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노인이 화가 난 것은 갈지혁이 그것이 아닌 다른 의미로 독인이라는 말을 입에 담은 탓이다.

피 대신 독이 흐른다고 할 정도의 무인. 독에 대한 내성이 상상을 불허하고 수만 가지 독을 마치 수족(手足)처럼 쓰는 자를 일컫는 자.

그것이 바로 진정한 독인이다.

“함부로 담은 게 아닙니다. 제 꿈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것이 독인입니다. 더군다나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독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니 더더욱.”

노인의 눈동자에서 사람을 찢어발길 듯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실제로는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두려웠지만 오기로 버텼다. 오히려 웃음이 난다. 자신의 추측대로 이 노인이 엄청난 고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속에서 기혈이 들끓자 울컥하고 피가 터져 나왔다. 갈지혁은 이를 악물었다. 피가 입술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노인은 그런 갈지혁의 모습에 살기를 거두었다.

잠시 숨을 거두는 갈지혁을 바라보며 노인이 물었다.

“그래. 독인이 겨우 과정이라고 떠드는 네놈의 꿈은 무엇이냐. 천하제일? 아니면 독황독립문에 대한 복수?”

갈지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갈지혁이 마침내 말문을 텄다.

“강호인들의 머리에 제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습니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독왕(毒王)이라는 별호로.”

“설마 네놈…….”

“독왕이 될 겁니다.”

“크, 크하하핫!”

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독왕이 되겠다는 그 한 마디에 웃음을 참지 못해 버렸다. 이렇게 웃어 본 것이 언제인가. 벌써 삼사십 년은 훌쩍 넘은 듯하다.

그런 그가 웃음을 터트린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독왕이 되겠다는 것이 그만큼 우스웠던 것이다.

검왕(劍王), 도왕(刀王), 장왕(掌王), 권왕(拳王) 같은 호칭을 지녔던 자는 있지만 독왕이라는 별호를 지녔던 무인은 없다. 무림은 독을 쓰는 자에게 왕이라는 칭호를 내려 주지 않는다.

독을 사용하면 무공을 모르는 아이도 무인을 죽일 수 있다. 원한이 난무하는 무림에 사는 무림인들은 다리를 뻗고 자기를 원했다.

독을 쓰는 자들을 배척한 이유는 그것이다. 독을 쓰는 자들은 비겁하다고 칭했다. 그나마 사천당문(四川唐門)이 독으로 이름을 떨치고는 있지만 정파 무림이라는 틀 안에서 확실히 안주하기 때문이다.

무림은 아무리 독을 잘 쓰는 무인이라 해도 왕이라는 칭호를 내려 주지 않는 것은 그 이유에서다. 독인들에게 왕이라는 칭호를 준다는 것은 곧 독을 배척하는 자신들의 행동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한 지금 무림에 독왕?

우습다. 아니, 우습다 못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노인의 웃음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급기야는 방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갈지혁은 노인의 웃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두 눈만큼은 또렷이 보인다.

노인이 마침내 말문을 텄다.

“네 말 대로다. 사람은 나갈 수 없지만 독인은 가능하지.”

“어르신은 나가실 수 있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나갈 수 있다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셨으니까. 분명 어르신은 뱀의 길이라는 사로를 걸어 보셨을 겁니다.”

갈지혁의 확신 어린 말에 노인은 침묵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갈지혁은 확신이 섰다. 노인은 무유초를 들어 올린 채로 묵묵히 그것만을 응시했다.

노인의 입에서 짧은 대답이 나왔다.

“그래.”

말을 마치면서 노인은 무유초를 내려놓으며 몇 발자국 걸었다. 갈지혁은 비틀거리며 급히 그 뒤를 쫓았다.

“절 독인으로 만들어주십시오.”

“시끄럽다.”

노인은 커다란 솥뚜껑을 들어 올렸다. 무엇인가를 끓이고 있었는지 흰색 연기와 함께 달콤한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순간!

“우웩!”

급히 숨을 멈추려 했지만 독기가 코를 통해 스며들었다. 예전의 갈지혁이었다면 버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갈지혁의 몸 안에는 벌레가 있다.

회생충(懷生蟲)!

평소에는 잠잠하지만 내공을 움직이려 하면 꿈틀거리는 놈이다. 이놈이 몸 안에 있는 한 내공을 움직일 수 없다. 억지로 내공을 움직이면 기혈이 뒤틀려 피를 토하며 그대로 혼절하고 만다.

땅에 주저앉은 채로 토악질을 하는 갈지혁을 노인이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차가운 목소리가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회생충을 가지고 있어 내공의 운기조차 할 수 없는 몸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무리다. 독왕이 된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단 말이다! 무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노인의 눈가에 언뜻 슬픈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갈지혁은 조용히 일어서서 밖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노인도 몸을 돌려 솥 안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회생충이 사는 곳은 단전에서부터 한 치 위.”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가 기겁하고야 말았다. 갈지혁의 손에는 약초를 다듬던 칼이 들려 있었다.

그 칼이 정확하게 단전에서부터 한 치 위에 대어져 있던 것이다. 노인이 급히 손을 쓰려 했지만 갈지혁이 빨랐다.

검이 복부에 틀어박혔다.

입가를 타고 다시금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멍청한!”

노인은 급히 몸을 날려 쓰러지는 갈지혁을 부축했다. 부상이 채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몇 번씩 피를 토해 낸 것도 모자라 스스로 복부에 칼을 박아 넣었다.

맥을 짚어 보던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혼절하기는 했지만 맥은 정상이다.

복부에 틀어박힌 검을 빼낸 노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 끝을 살폈다.

예상 대로였다.

‘어린애 새끼손톱만 한 벌레를 이런 방식으로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회생충의 피는 흰색이다. 그렇기에 검날을 살펴보았지만 갈지혁의 붉은 피뿐이었다.

노인은 주변에 있는 약초와 독초들을 조합해 갈지혁의 상처를 처리하고는 허리를 폈다. 갈지혁을 덥석 들어 안은 노인은 침상으로 향했다.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독왕이 될 겁니다.

미친 듯이 웃었지만 한편에서는 왠지 모를 아픔이 쏟아져 나왔다. 상당히 머리가 좋은 녀석이다. 말 한 마디로 단숨에 자신이 독인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로.

패기도 있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복부에 칼을 들이박은 것도 그렇고 무엇인가 마음먹은 것을 밀어붙이는 저력도 그렇다.

‘후후, 아직도…… 독왕을 꿈꾸는 녀석이 있다니.’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독왕이 되겠다고 말하는 놈을. 그런 허망한 꿈을 좇아 달릴 녀석은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스승도 이런 기분이었겠군.’

우습게도 갈지혁과 똑같은 말을 노인도 육십 년 전에 내뱉었던 것이다. 그때 스승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었다.

노인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쭈글쭈글하고 너무나 추레하다. 아까 맥을 짚기 위해 봤던 갈지혁의 손은 이렇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던 노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꽉!

노인은 강하게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잊고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나 또한…… 독인이 되고 싶었다.’

* * *

누워 있던 갈지혁이 작게 경련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온몸은 땀으로 흥건하다. 무엇인가가 덕지덕지 붙은 복부 부근이 쿡쿡 쑤신다.

“큭!”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갈지혁이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며 물었다.

“회생충은…….”

“잡힐 리가 없지.”

“역시…….”

이미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단전 한 치 위에 검을 쑤셔 넣으면서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회생충은 녹록치 않다.

산발된 머리카락 사이로 갈지혁의 입술이 비틀리는 것을 본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회생충을 제거할 방법은 있다. 나 또한 회생충을 몸속에 넣고 다녔던 적이 있으니까.”

“정말입니까?”

“그래. 벌레는 화기(火氣)에 약하지. 회생충 또한 그렇다. 다만 그 과정이 복잡하고 고통스러워서 그렇지, 방법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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