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4화
일악천은 말없이 잎을 옆에 내려놓았다. 갈지혁의 말 대로다. 곤충은 독초에 접근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렇게 멀쩡하다는 것은 곧 독초라는 말이 된다. 더군다나 사독문에서 독초가 아닌 풀들이 자라는 곳에는 곤충이 모여 산다.
“네 말이 맞다. 하지만 이 독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아느냐?”
“그건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순간에는 그것이 독초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수만, 아니 수십만에 달한다 해도 모두 외워라.”
갈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일악천은 혀를 찼다.
‘끙, 재미없는 녀석.’
그 많은 걸 어떻게 모두 외우냐고 반항하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상이라도 찌푸리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니…….
순수한 것은 아니다. 그저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상대를 확실하게 파악하기 전까지는 결코 속내를 보이지 않는 부류다. 더군다나 은근히 성깔도 있어 어떠한 것을 정하면 결코 그것에서부터 물러서지 않는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 독왕이라는 헛된 꿈을 접지 않았을 테고.
사람이 그리웠던 일악천으로서는 감정을 보이지 않는 갈지혁은 최악의 동거인이다.
새벽 공기가 다소 차다.
남만에서 차가운 날씨를 느끼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오늘은 왠지 추운 것 같다. 아마도 곧 있을 일 때문인 듯하다. 갈지혁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폐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공기를 느끼며 갈지혁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다시 회생충을 죽이기 위해 일악천이 만들어 놓은 독물 속에 들어가야 한다.
수십 번 혼절했다. 최근 들어서는 어떻게 버텨 냈다고 하지만 오늘은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버텨 내지 못하면 회생충이 아니라 자신이 죽는다.
슬슬 아랫배가 무거워진다. 회생충이 요동을 치고 있는 것이다. 독물 속에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낼수록 몸은 오히려 제 것이 아닌 듯 축 늘어져 버렸다. 회생충이 점점 몸속에서 난동을 부리는 탓이다.
갈지혁은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멀리 일악천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떠한 길로 들어설지는 지금으로서는 모른다. 그렇지만…….
‘죽지 않아.’
갈지혁은 빠른 걸음으로 일악천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고개를 꾸벅했다.
“네놈도 알다시피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각오는 되었느냐?”
각오? 그런 것이 무에 필요하단 말인가. 독기라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다. 고통을 못 버텨 혼절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고통이 배 이상일 거라고 했지만 갈지혁은 바로 머리를 끄덕였다.
“들어가거라.”
일악천은 힐끔 커다란 항아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갈지혁이 옷을 벗고는 천천히 항아리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흡!”
들어간 지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제는 아랫배가 무겁다 못해 찢어지는 기분이다. 독기는 온몸을 휘젓는 듯했고 마치 검이 복부에 쑤셔 박혀 마구 요동을 치는 듯했다.
회생충의 발악이다. 점점 힘을 잃는 회생충이 난리를 피기 시작한 것이다.
독기가 천천히 체내로 스며들면서 회생충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그 독기를 제거할 내공을 갈지혁은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다.
회생충이 죽으면 내공을 운기할 수 있고, 그렇게만 되면 산다. 그렇지만 회생충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대로 독에 중독되어 즉사다.
주먹은 꽉 쥐었고 입술은 터져라 깨물었다. 얼굴은 새파랗다 못해 하얗게 변해 버렸다. 당장에 항아리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 온몸을 엄습했지만 버텨야만 했다. 지금 물러선다면 회생충은 이 독에 죽지 않는다.
회생충은 신기한 벌레다.
회생충을 몸에 품고 있으면 내공을 운기할 수는 없지만 독에는 상당히 강해진다. 회생충 자체가 상당한 독성을 가지고 있어 웬만한 독으로는 꿈적도 하지 않게 된다.
지금 일악천이 제작한 항아리 속에 있는 독물이었기에 회생충이 이만큼 궁지에 몰린 것이지 아마 그가 없었다면 평생 회생충은 몸속에 가지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으드득!
이가 갈렸다. 온몸의 힘이 쫙 풀리고 세상도 노랗다. 막 뜨기 시작한 아침 해조차 알아볼 수가 없다. 눈이 풀리고 꽉 쥔 손도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서서히 잃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였다.
“정신 차려라!”
노인의 일갈. 그 외침에 갈지혁은 끊어지려던 정신을 붙잡았다. 뿌옇지만 눈앞에 있는 누군가의 신형이 언뜻 보인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지금이 어떠한 상황인지도 기억이 난다. 소리를 친 노인은 분명 일악천이고 자신은 회생충이라는 벌레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큭!”
독황독립문에서 파문을 당하면서 수많은 매질을 당했다. 매질을 당할 때도, 등에 파문이라는 낙인이 찍힐 때도 고통 어린 신음 소리를 내지 않은 그다.
이제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독기가 머리끝까지 치밀면서 갈지혁은 눈을 부릅떴다. 미간이 쉴 새 없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그럴수록 더욱 눈에 힘을 줬다. 정신을 잃으면 그대로 끝이다.
아랫배가 터질 것 같이 꿈틀거리면서 갈지혁의 몸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순간 하늘과 땅이 뒤섞인 듯한 환청이 보였다.
눈 속에 보이는 세상이 마치 환상인 양 뒤틀렸다. 그와 동시에 복부의 살점을 비롯해 몸이 수십 갈래로 찢어졌다.
마침내 버티고 버텼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버텨라! 이제 다 됐다!”
이번에도 갈지혁을 잡아준 것은 일악천의 외침이었다. 단순한 외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잃을 뻔한 갈지혁의 끈을 잡아주었다.
입에서 한 움큼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때 일악천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파앙!
항아리가 깨지면서 그대로 갈지혁의 몸이 튕겨져 나왔다. 재빠르게 일악천은 갈지혁을 잡아 앉히고는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운기해!”
그렇지만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갈지혁으로서는 그 말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순간 일악천은 갈지혁의 뺨을 쳤다. 양쪽 뺨을 강하게 후려친 그가 다시 외쳤다.
“숨을 쉬고 내공을 움직여!”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있는 갈지혁을 보며 일악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신을 잃은 것이다. 회생충은 제거했지만 몸에 흡수 된 독기가 이제는 골수까지 치밀 게다. 밖에서 일악천이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 독은 밖에서는 제거할 수 없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음!’
등에 손을 대고 있던 일악천은 미약한 내공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그는 급히 갈지혁은 살폈다. 정신을 잃은 것처럼 푹 수그린 고개, 하지만 꽉 쥐어진 두 주먹을 보는 순간 일악천은 희망이 있음을 느꼈다.
‘오냐! 이놈! 바로 그거다!’
일악천은 급히 내공이 움직일 수 있게 자신의 공력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천천히 갈지혁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독을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반 시진 동안 그 상태로 앉아 있던 갈지혁은 일악천이 손을 떼는 순간 옆으로 픽 쓰러져 버렸다. 일악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땀을 닦았다. 그만큼 긴장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쓰러진 갈지혁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자그마한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회, 회생충은…….”
“죽었다.”
그 말을 듣기는 했는지 그대로 갈지혁은 혼절했다.
회생충을 제거한다는 것은 실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소림의 고승이라고 해도 버티기 힘들 정도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일악천은 그저 조용히 갈지혁을 바라만 봤다.
한순간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내는 그러했던 자신을 비웃기라도하는 듯이 내공을 움직였다. 살고자 하는 독한 마음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분명 속내를 숨기고 사는 놈이다. 한 달 동안 곁에 두고 있는 동안 마치 뜬구름 같은 기분을 들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든다. 아마도 반드시 하고야 만다는 그 오기 탓이리라.
‘푹 쉬어라. 내일부터는 다시 지옥을 보게 될 테니.’
쓰러져 있는 갈지혁을 들쳐 엎으며 일악천은 속으로 말했다.
비록 회생충을 제거하는 것이 엄청난 고통이었다는 건 알지만 이제부터 갈 길은 지금보다 훨씬 더 괴로운 길일 게다. 이 정도에 쉴 정도로 독의 길은 우습지 않다.
그는 어깨에 매달려 있는 갈지혁을 슬쩍 바라봤다. 완전히 축 처진 상태지만 깨어만 나면 예전보다 몸 상태가 좋아졌을 게다. 이제는 예전처럼 내공도 쓸 수 있으니 무공도 익힐 수 있다.
‘어린놈 뒤치다꺼리나 해야 할 팔자라더니…….’
예전에 중원에 갔을 때 점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어떤 나이든 점쟁이가 산통을 흔들다가 말했었다. 말년에 가면 어린애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살 거라고. 그때는 그 말을 그저 손자를 보면서 살아갈 거라는 말로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니 그 점괘가 딱 맞아 버렸다.
갈지혁을 향한 눈을 돌리면서 일악천은 중얼거렸다.
“망할 점쟁이…….”
* * *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갈지혁의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얼굴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흘러내렸다. 지금 그는 몸속에 들어온 독기와 싸우고 있었다. 내공이 돌아온 후부터 갈지혁은 하루도 쉬지 않고 독물을 먹어야만 했다.
독은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쓰는 본인도 당할 위험이 있다. 독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 독에 대한 내성이 없다면 자신이 사용하고도 중독당할 수 있다.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스스로 독물을 먹는 거다.
그럼으로 인해 독에 대한 내성을 쌓고, 그러다 보면 웬만한 독은 결코 해코지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에 오른다. 그 상태에서 더욱 발전하면 그때야말로 독에 대해서는 무적의 몸이 될 수 있다.
피 대신 독이 흐른다는 독인이 바로 그러한 경지다. 그리고 독인이 아니면서도 독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경지를 무림인들은 금강불괴(金剛不壞)라 한다.
갈지혁은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가 되어야 한다. 만독불침지체라는 것은 천하의 어떠한 독도 침범하지 못하는 신체를 일컫는다. 최상의 독공을 수련하거나, 극악한 독약을 먹게 되어 독에 내성을 가지는 상태를 말한다.
지금 갈지혁은 두 가지 모두를 하고 있다. 독을 먹으면서 내성을 쌓고, 일악천에게 독공을 배우고 있다.
딱히 심법은 다른 것을 익힐 필요가 없었다. 애초부터 같은 문파의 문도였다. 둘은 같은 내공심법을 익혔다. 그렇지만 무공은 다르다. 일악천이 갈지혁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은 그의 칠십 년에 달하는 독의 정수다.
여태까지 배웠던 독황독립문의 무공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여태까지 갈지혁이 배웠던 것은 독공과 조법, 그리고 장법과 지법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일악천은 검을 들라고 말했다.
“검법(劍法)의 대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무림에 나간다면 싸울 상대의 절반 이상은 검을 사용할 거다. 적어도 검에 대해서는 알아야지. 그리고 검이란 것은 장, 지, 조, 각, 권을 기본으로 한다.”
그 탓에 제대로 들어 본 적도 없는 검을 하루 종일 들어야만 했다. 하루에 만 번을 휘두르라고 했다. 처음엔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튿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팔이 무거워졌다. 그나마 이제는 손에도 굳은살이 박히고 나름대로 자세도 잡혀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무공의 기본이 잡혀 있던 갈지혁인지라 가벼운 검법을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장법(掌法)과 지법(指法)에서는 일악천도 속으로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실력을 보였다.
원래 갈지혁이 익히고 있던 독공은 독황독립문에서도 기재들에게만 알려 준다던 만독환혼공(萬毒煥混功)이다. 그렇지만 일악천은 그 무공은 깨끗이 잊어야 한다고 했다.
“만독환혼공은 한계가 있다. 네가 스스로 독공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깨끗이 잊어라. 하지만 네가 내가 말한 수준에 오른 후라면 다시 한 번 만독환혼공을 생각해라. 너에게 도움이 될 게다.”
그 후에 일악천이 내놓은 독공은 그의 인생이 담긴 것이었다.
수라독공(修羅混功).
“익혀라. 그리고 오성 이상을 깨우치면 내가 몇 가지 무공을 전수하지.”
적어도 일악천이 전수해 주는 무공이라면 천하를 뒤흔들 정도의 것이리라.
갈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정해 준 대로 무공을 연마했다.
갈지혁은 가부좌를 풀면서 땀으로 젖은 얼굴을 닦아 냈다. 이번에 마신 독도 상당히 지독했다. 뒤에서 일악천이 보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손으로 독을 먹는 건 상당히 두렵기 마련이다.
항상 죽음을 생각해야만 한다.
애초부터 독의 길을 걸으면서 각오한 일이지만 역시나 이렇게 독과 싸우고 나면 온몸의 진이 잔뜩 빠져 버린다.
지친 그이지만 바로 다음 일로 넘어가야 한다. 이제는 검을 건드려야 할 시간이다. 갈지혁은 쉬지 않고 바로 검을 들었다. 그때 일악천이 다가왔다.
“따라 오너라.”
“무슨 일이 있습니까?”
평소 훈련에 혹독한 그다. 그런 일악천이 훈련도 빼먹고 어딘가를 같이 가자고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렇지만 일악천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꾸도 없이 걷는 일악천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일악천은 집 옆에 놓여 있는 통 하나를 들어 올리더니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말없이 따라 걷던 갈지혁은 낯선 주변의 광경에 연신 두리번거렸다. 이렇게 먼 곳까지 나가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 걷던 갈지혁의 안색이 서서히 변한 것은 일악천을 따라나선 지 이각 정도가 흐른 후였다.
점점 숨을 쉬기가 힘들다. 공기 중에 독기가 스며 있는 것이다. 내공을 멀쩡히 돌릴 수 있는 갈지혁의 손으로 코를 가릴 정도니 그것이 얼마나 심한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이 정도의 독기를 이렇게 공기 중으로 느낀 것은 생전 처음이다.
“어르신, 이건…….”
“조용히 해라.”
갈지혁은 지독한 독기에 호흡까지 줄이면서 괴로워했지만 일악천은 너무나 태연했다.
그에게 이 정도 독은 결코 위협거리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